2022/11/22 22:29

허 본좌와의 만남 종교학공부

지난달 있었던 뜻밖의 만남. 이 만남은 두 결과물을 남겼다. 하나는 내가 남긴 학문적 메모. 온갖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근거가 부족한 추측은 자제하고 주관도 배제하고 학술적인 폼을 부려 점잖게 쓴 글이다.(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로 게재) 또 하나의 결과물은 그쪽에서 유튜브에 올린 영상. 낚시성 제목에 야릇한 썸네일로 많은 조회수를 올린 영상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쓰겠다는 양해 없이 종교학자 타이틀을 자기들 맘대로 소비한 것이라 기분이 좋지 않지만 그냥 참는 중이다.



이어지는 내용

2022/11/19 17:04

이름 없는 대상 얻어 배우는 인생

10·29 참사 이후 정부가 주도한 추모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름 없는 대상을 추모할 수 있느냐이다. 직감적으로도 구체적인지 않은 숫자만 앞에 놓인, 그것도 사망자라는 용어 앞에서 우리의 슬픔은 제대로 표현되기는 힘들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그 대답은 명확하다. 위패 없는 제사는 불가능하고, 이름 없는 존재가 제대로 된 의례적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진오귀굿 이야기에서 이름 없음의 의미(혹은 무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아래는 김동규 선생의 발표에서 소개받은 사례를 약간 수정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사례 속의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마지막에 예기치 않게 나타난 여인의 존재이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기에, 그는 메인 무대인 ‘본과장’에서 달래질 수 없었고, ‘뒷전’에서 임시적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40대 여성이 남편처럼 보이는 남성과 함께 사업상의 어려움 때문에 무당을 방문했다. 무당의 점괘에 따르면 최근에 죽은 한 남자 귀신이 여전히 떠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같이 온 남성은 처음에는 남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자친구였으며, 문제의 남자 귀신은 최근에 죽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1년 정도 별거했지만, 이를 견디지 못했던 남편이 부모님의 산소 앞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고 한다. 결국, 그 남자 귀신을 위한 진오기굿을 하게 되었다. 진오기굿은 평소와 다름이 없이 진행되었다. 남자 귀신은 다니의 입을 빌어 남겨진 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을 표했고, 같이 굿당에 온 전 아내의 남자친구에게 부인과 딸을 부탁하는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굿을 하는 도중 갑자기 무당이 바깥을 보면서 밖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계속 서성이는 여자 귀신이 보이는데 누군지 아느냐고 여성 고객에게 물었다. 여성 고객은 그 여자 귀신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여자 귀신이 무당의 입을 빌어 한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남편이 별거 중에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남편이 죽자 그 여자 역시 임신 중에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굿청에 있는 누구도 확인해줄 수 없는 여자 귀신은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없기에 방안에 차려진 굿상에서 대접받을 수 없었고, 나중에 마당전(뒷전)에서 받아 가시라 축원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2022/04/13 19:15

일상화된 코로나의 아픔 종교학공부

1. 코로나 천만 시대에 좋아진(?) 것이 있다.(코로나의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한 태도이겠으나, 사회적 태도 변화를 말하는 것이니 너그러이 보아주셨으면 한다.) 이젠 코로나가 일상적인 질병으로, 덜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누그러지고 있다. 2년 전에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겼는지를 떠올린다면 이제는 심리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위드코로나에 접어들고 있음이 실감난다. 물론 인식의 변화에는 의학적 환경이 기본 바탕이 된다. 모두 알고 있듯이, 한편으로는 코로나19라는 같은 이름을 쓰고 있지만 코로나는 여러 변이를 거쳐 실질적으로 다른 질병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차례의 백신 접종을 통해 견뎌낼 몸이 사회적으로 준비되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이와 더불어 일어난 마음의 변화를,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되돌아보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더는 죄를 묻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병에 걸린 이들이 공동체에 위기를 불러온, 원망의 대상이 되었고, 더 나아가 대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서 병에 걸렸다는 부적절한 인과(因果)도 흔하게 설정되었다. 종교의 못된 습성이 어떠한 비극적인 상황을 윤리적 잘못과 연결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런 종교적 사유는 곧잘 작동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비난받았던 많은 사례에는, 당사자가 방역에 부주의했던 측면에 더해 과도한 비난이 가해질 때가 있었다. 발병 자체에 윤리적 잘못이 있는 것 같은 뉘앙스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에 무거운 뉘앙스가 부과되지 않는다. 다들 한 번쯤 겪는 일이 되었다. 더 아픈 사람이 있고 별 증상 없이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생기면 불편한 일 정도로 가벼워졌다.

2. 2021년 가을 한국종교학회 기조강연에서 오강남 선생님은 코로나19 이후의 종교적 변화로 한국 개신교에 강하게 존재했던 기복 신앙이 감소하고 인과응보 사상이 약화하리라 전망하였다. 코로나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걸리는 병이기에, 착한 사람이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이 죄값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적 상벌 사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더 나아가 인과응보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천국과 지옥 교리의 설득력도 상실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러나 인과응보 교리가 금세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오강남 선생님은 미국의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 어른은 자신이 아는 젊은 교인이 주일성수를 하지 않는 등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다가 몹쓸 병(코로나)에 걸렸다고 개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의 현실은 이런 식의 교리적 판단을 금세 무력하게 한다.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남아있을 수는 있어도 대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게 될 것이다. 공공연한 담론으로는 힘을 잃고 교회 내에서 주류적 설명의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작년에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생각해본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본 것은 특정한 비극적 상황(지옥행이 고지되고 시연되는 일)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의 장르물에서는 사건에 대한 신학적 설명이 제시되고 그에 따른 해결이 줄거리를 이룬다. 그러나 <지옥>에는 그러한 설명이 배제되어 있고, 그것을 설명하려는 종교적 노력(새진리회)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그것의 붕괴를 보여준다. 장진수 새진리회 의장은 진지한 신학적 사유를 통해, 지옥행 시연은 인간의 죄에 대한 징벌이고 인간 사회를 정화하기 위한 신의 개입이라는 설명을 제안한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비극이 죄의 대가라는 신학적 설명은 여지없이 어긋난다. 시연이라는 비극을 겪는 이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명의 붕괴는 새진리회라는 종교집단의 흔들림으로 연결된다.
<지옥>에서 분명한 것은 인간 앞에 비극적인 현실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기대처럼 비극을 인과적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더한 비극을 낳을 뿐이며, 타인의 죄를 정죄하는 인간 사회가 다름 아닌 지옥이 될 터이다. 비극적 현실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19와도 같다. 그냥 겪는 일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놓인 현실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이다. 죄를 묻는 사유의 극복,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그려낸 것이 이 드라마의 성취라고 나는 생각한다.

4. 이제는 폭력적인 신정론이 공공연히 언급되지는 않는다. 2004년에 인도네시아가 쓰나미로 인해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을 때 “기독교를 박해한 이슬람 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설교가, 2011년 일본 대지진 때에 “하나님을 멀리해서 생긴 경고”라는 대형교회의 설교가 있었다. 2005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 시를 강타했을 때는 “카트리나는 동성애자에 대한 심판”이라는 설교가 대형교회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목소리가 한국 교계를 대표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일차적으로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 그리고 이번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막무가내식 인과응보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여러 측면에서 코로나 상황은 종교계에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나는 오강남 선생님의 견해에 찬성하면서, 이 어려운 상황에서 종교계가 배우는 것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을 겪은 후에 비극적 상황에 죄를 묻는 일이 더 신중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년 3월 뉴스레터로 실은 글이다.


2022/04/13 19:13

코로나 시대의 좀비 종교학공부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 녀석은 날마다 좀비 놀이를 해달라고 성화다. 좀비 흉내를 내고, 총으로 좀비 쏘아죽이는 놀이를 하면서 저녁 시간이 다 간다. 나는 이쪽 문화에 시큰둥해서 끝까지 본 좀비 영화도 별로 없지만,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좀비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상징이다. 좀비의 유래와 영화적 발전에 관해서는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진 편이지만, 그 변화를 종교연구자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고 싶다. 여기에는 상징의 생명력에 관한 중요한 쟁점들이 녹아 있다.

공동체 바깥의 존재
좀비는 아이티의 부두교 주술사 보코르(bokor)가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다. 보코로는 특정한 사람에게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극물을 사용하여 가사(假死) 상태에 이르게 하고 무덤에 집어넣는다.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이 의식을 차리고 무덤 밖으로 나오면 주술사의 부림을 받는 좀비가 된다고 한다. 어떠한 사람이 좀비가 되는가? 인류학자 웨이드 데이비스에 따르면 좀비 만들기는 아이티의 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에서 규율을 어기거나 배신한 사람에 대한 처벌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좀비가 되살아난 시체라고 알고 있지만, 원래 부두교 맥락에서는 시체 상태로 비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주술로 만들어진 사회적 죽음이다. 좀비는 공동체의 안녕에 위해를 가한 것으로 인식된 존재를 공동체 바깥으로 추방한 무존재이다. 그래서 아이티 사람들은 좀비가 아니라 '좀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타자의 상징, 타자화된 상징
아이티가 미국의 지배를 받았던 1915년부터 1934년에 이르는 시기에 부두교와 좀비가 미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부두교는 미국 공포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 부두교 주술사가 백인 여성을 좀비로 만드는 <화이트 좀비>(White Zombie, 1932)가 최초의 좀비 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타자의 종교상징을 영화산업에 끌어들여 공포의 재료로 사용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미국인에게 아이티는 ‘해방 흑인 노예의 나라’라는 두려운 타자였고, 그곳의 주술사가 미국인을 노예화한다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좀비는 타자화되고 다른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좀비와 가까운 존재들이 등장한 것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부터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 셀 수 없는 좀비 영화들이 이어지며 영화 내의 좀비 문법을 형성하였다.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좀비는 사람을 잡아먹으려 한다. 둘째, 좀비에 물린 인간은 반드시 좀비가 된다. 셋째, 뇌를 파괴해야 좀비를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영화는 세상이 좀비로 가득한 ‘좀비 종말론’(zombie apocalypse)을 기본 세계관으로 한다. 

영상 속에서 얻은 상징의 생명
영상의 세계에서 자가 발전한 좀비는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부두교의 의례적 맥락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좀비 이야기에서 부두교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난 좀비는 영화를 비롯해 소설, 애니메이션, 게임, 웹툰 등 거의 모든 문화 콘텐츠에서 폭발적으로 생산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좀비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 현상에 대한 종교학자의 평가는 여럿 있을 수 있다.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전공자가 있는 반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전공자도 있을 것이다. 글을 준비하면서 “Encyclopedia of Religion”이나 “HarperCollins Dictionary of Religion”과 같은 종교학 사전들을 찾아보았는데, ‘좀비’는 독립된 항목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부두교’ 항목 안에서만 설명되었다. 아마 전통적인 입장에서 현대의 좀비는 탈맥락화된 것, 그래서 탈종교화된 것이라고 여겨져서 누락된 것 아닐까? 하지만 부두교에서 독립해서 콘텐츠 안에서 독자적인 생명력을 얻은 좀비를 독자적인 상징으로 인정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상징이 대중적인 힘을 얻는 과정은 전통적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진행된다.
영화산업이 세계화되었기에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장에서 세계의 귀신, 괴물이 통합적 세계를 이루는 것(영적 세계의 지구화!)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괜찮은 엑소시즘 영화를 만들고 한국 감독이 태국 귀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종교적 현실보다는 영화적 현실을 바탕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제 한국은 주목할만한 좀비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다. <부산행>, <반도>, <#살아있다>, <킹덤>과 같은 작품들은 한국에 좀비들을 유통시키고 해외에 한국 좀비를 수출한다. 좀비를 우리의 이야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럴 능력이 있는 영화판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로 만난 좀비
좀비는 현대사회에 관한 은유로 사랑받는다. 현대의 맹목적 군중,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사람들, 신체를 상실한 비인간적 통제사회 등 사회의 속성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여기서는 깊이 있는 논의로 이어지는 이쪽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고, 대신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현재 좀비가 지배적 상징이 된 것은 코로나 상황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경계하게 되었다.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 숙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스크가 아직 익숙해지기 전인 작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길 가다 사람이 오면 조금이라도 떨어져서 지나가려 거리를 두곤 했다. 무의식적인 경계심이기도 하고 그게 상대방에 대한 매너라는 생각에서였다. 모르는 사람이 의식하지 않은 채 감염자가 되어 나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거리두기와 격리라는 말이 일상이 지배하던 시기에, 좀비의 감염을 통해 종말론적 상황이 야기된다는 좀비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호소력이 있게 소비되었다. 그렇게 좀비 이야기에 감염된 아들 녀석의 성화는 이 시대의 지배적 상징을 계속 상기해준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1년 9월 뉴스레터로 실은 글이다


2022/01/01 11:59

책꽂이 한 칸 신변잡기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의 꿈은 꼭 필요한 내용의 글만 적게 쓰는 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도서관을 전전하다가 제목만 그럴듯하고 내용은 이런저런 논문을 엮어 만든,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책들에 물렸던 터였다. 보석 같은 책 몇 권만 남긴 학자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한 책으로 종이 낭비를 하는 학자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2021년 나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재작년부터 나는 학술적 글을 생산하는 공장 안에 들어와 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지금 우리 학계는 논문의 생산을 강요하는 체제이다. 학자는 논문의 생산량으로 평가받는다. 나 역시 연간 논문 편수를 계약 조건으로 하는 연구직에 있다 보니, 내 학문적 관심은 오직 적당한 크기로 잘라 논문을 만들 재료를 찾는 일이 거의 전부이다. 내가 설정한 학문적 기준이 아니라 ‘논문심사를 통과할 정도’가 학문적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논문과 써야 할 글을 이것저것 쓰다 보니 그 부산물로 내 이름이 포함된 책들이 왕창 나왔다. 작년에 여러 권의 공저가 나오는 바람에 내 책(?)이 책꽂이 한 칸을 꽉 채웠다. 나는 이미 종이 공해의 공범이 되어 있다. 국가 정책은 한글 논문의 양을, 한글 컨텐츠의 양을 늘리는 데 중점이 맞춰진 듯하며, 어느 정도는 그 결과에 만족하는 것 같다. 학자들은 글의 값이 떨어지는 것에 신음하고 있지만 정책은 이 방향으로 계속될 것이고, 나 역시 여기에 적응해가고 있다. 올해도 종교학 관련된 글의 양을 늘리는 것을 나의 소임으로 삼을 터이다.
이상은 이 블로그가 일 년 동안 방치된 것의 간접적인 이유이다. 인쇄되는 공식적인 글을 쓰느라 방전된 상태의 연속이었다. 물론 블로그와 논문은 장르가 다르기에 그 둘이 공존한다는 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지만, 이상하게도 작년에는 그럴 힘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핑계 대지 말고 보람 있게, 그 보람의 흔적이 여기 남도록 지내리라 희미하게 다짐해본다.

 

2020/12/10 19:24

석마를 탄 앨리스 독서: 메모

아래는 1905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해 수잔 손택의 후임으로 1년간 황실 ‘서양전례관’으로 일했던 독일 여인 크뢰거가 쓴 조선견문기이다. 1909년 독일에서 출판된 이 책이 논란이 된 것은 아래 내용 때문이다. 여기서 묘사된 앨리스의 행위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엘리스의 남편 롱위즈가 뉴욕타임즈를 통해 책 내용이 허위이고 크뢰벨은 거짓말쟁이라고 언플을 했다. 진위여부는 논란으로 남아있었지만, 최근에 코넬도서관에서 사진기자 월러드 스트레이트의 사진이 발간되면서 사실이 입증되었다. 철없는 여성의 해맑은 모습이 전해지는 사진이다. 문제가 되는 행위가 일어난 곳은 명성황후의 묘소(1919년 현재의 홍릉으로 옮겨졌지만, 1905년에는 청량리의 숭인원 자리였음)였다.

갑자기 뿌옇게 먼지가 일더니, 위세 당당하게 말을 탄 무리가 나타났다. 바로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 공주’와 그녀의 약혼자, 그리고 수행원들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 하객들은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붉은색의 긴 승마복에 짝 달라붙은 바지를 무릎까지 올라오는 반짝거리는 가죽 장화에 집어넣고, 오른손에는 말채찍을 들고있고, 심지어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는 미국 대통령 딸의 모습을 고위층 하객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녀의 전혀 다른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황후의 능 앞에서 행렬이 멈추자. 하객들이 모두 머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이윽고 나는 의전관으로서 황실의 고관들과 함께 나서서 이 ‘기병대의 모습을 한 딸’에게 환영 인사를 했다. 그녀는 우리의 환영 인사에 겨우 고개만 까닥이며 감사를 표했다. 예절에 맞는 그런 태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히려 무덤가에 세워져 있는 각종 수호 석상들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한 석상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그녀 약혼자에게 눈짓하자, 그는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황실 가족의 묘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얼굴 찌푸리게 한’ 행동에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미국인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한 단면이었다.
엠마 크뢰벨,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 김영자 옮김 (민속원, 2015), 236-237.


월러드 스트레이트 <서울사진>(서울역사박물관, 2015), 55.


2020/09/25 19:54

동작구 종교 이야기 종교학공부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산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고장의 내력을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종교 이야기라면 귀를 쫑긋 세우는 직업적 습관 탓에, 그리고 최근에 관련된 작업을 한 덕에, 귀에 익은 내 주변 지명들에 얽힌 종교적 사연들이 하나둘 쌓였다. 현재 지자체에서는 동작구를 사육신묘를 근거로 ‘충효의 고장’으로 브랜드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작구는 유교 문화 외에도 숱한 종교들의 만남과 자리 잡기가 명멸한 곳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근대 이후의 종교적 변화들을 기독교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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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16:10

디지털 세상의 가톨릭 전례 독서: 익힘

필립 테레사 베르거,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 안선희 옮김 (CLC, 2020).

디지털 예배에 대한 최신 논의를 알기 위해, 정보 습득의 차원에서 집어든 책인데, 이론적으로도 깊이 있게 정리되어 있어 많은 공부가 되었다. 저자는 가톨릭 전례학자로서 디지털로 매개되는 가톨릭 미사가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마치 코로나 이후의 일을 예측이라도 한 듯한 통찰력 있는 견해이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가톨릭이 ‘모인 회중에 대해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거기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책이 쓰여진 2018년 이전) 프란체스코 교황의 행보가 그의 낙관론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그가 예측한 대로 2020년 현재 성사의 효력이 디지털로 매개될 수 있다는 입장이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정식화되고 있다.

이 책은 디지털 환경의 새로운 실험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가톨릭 성사의 기본적인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전례는 “근본적으로 물질적이며 감각적”이었다. 디지털 환경 역시 물질적이다. 물질을 통해 매개된다는 기본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과거부터도 예배에 대면 참여가 필수가 아니었다는 사례를 제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메모해둔다.
-11세기 베네딕트회 수사 다미아노(Peter Damian)가 쓴 마사에 관한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교회의 함께 하는 활동 속에서 신자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86)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하나로 묶여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물리적 환경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성도들과 교통(communion)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한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물리적 공간 때문에 신자들과 함께 모이지 못할 때조차도 진실로 모두와 함께 하는 것”(87)

-13세기 여성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눈으로 보는 성찬식이라는 개념’이 발달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바이넘의 연구에서 제시되듯이, 남성 사제에 의해 성체성사 참여가 제한된 상황에서, 여성 신비가들은 환시 속에서 빵과 포도주를 받는 경험과 그리스도가 직접 먹여주는 신비를 체험하는 경험을 했다.
아시시의 클라라(Clare of Assisi)의 사례도 있다. 클라라는 아파서 나갈 수 없을 때 환시 속에서 미사 장면으로 보게 된다. 그 환시가 너무 선명하고 참석자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정도라서 참석을 인정받게 된다. 1957년에 교황청에서는 이를 근거로 그녀를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게 된다.



2020/08/26 14:28

페티시즘 개념을 통해서 본 개신교와 무속의 만남 종교학공부

개신교 선교사의 페티시즘 개념에 관한 글. 이 주제에 대해 옛날에 쓴 논문을 대폭 수정하고 자료를 추가해서 이번에 발표한 글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섞어 엄청 길게 올려본다.

1. 머리말
2. 페티시즘 개념사: 만남과 물질
(1) 페티시즘의 출현
(2) 종교학의 페티시즘
(3) 경제학과 심리학의 페티시즘
3. 선교 현장의 페티시즘
(1) 전도된 물질적 가치
(2) 페티시 파괴: 개종의 세레모니
(3) 페티시즘의 학문적 서술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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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7 11:39

스타(Starr)의 사진 촬영 독서: 메모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무당과 굿 사진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서 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경찰들이 입회한 가운데 굳은 표정을 한 무당들이 찍힌 사진에서는 권력의 작동이 느껴진다. 이러한 식의 사진 제작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어 옮겨 둔다.
1911년 한국에서 조사를 진행한 미국 인류학자 프레더릭 스타(Frederick Starr)의 기록이다. 스타는 일제 당국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그의 조사에는 으레 경찰이 대동했다. 그는 1911년에 서울에서 ‘무당 공연’을 주선해 사진을 찍으려 했다. 원래는 왕릉 사이에서 공연하려고 했으나 이왕가(Prince Yi’s department)에서 거부하자 묘목 근처에 자리를 잡고 여성 ‘공연자’ 몇 명과 계약했다. 그의 노트에는 다음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식민지 상황에서 미국인, 일본 경찰, 통역자, 무당이라는 권력의 정도가 다른 네 주체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일은 성공적이었고 좋은 영상을 얻었다. 공연을 맡은 여성[무당]은 다소 불안해했다. 오늘 서울에서 한 모든 일이 불법이고 밖에서 못마땅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여러 번 경찰의 관리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를 따라다닌 감시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분해했고 어느 정도는 두려워했다. 그녀가 공연을 시작하고 조금 후, 쓸모없는 지방 경찰관이 나타나 김씨[통역자]를 몰래 불러내 따라오게 해서 이후의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했다. 김씨는 설명을 했어야 함에도 그 일을 내게 고하는 대신 순순히 경찰에 따랐고, 우리의 모든 일이 망쳐질 것만 같았다! 나는 서둘러 따라가 나의 순한 양을 멈추고 경찰관에게 돌아와 설명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불쌍한 여성과 동료들이 겁에 질려 짐을 싸서 도망갈 채비를 하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경찰관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당신이 아무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었다고 말했다. 내 공연을 방해하고, 공연자들에 겁을 주고, 무엇보다도 통역자를 일하지 못하게 데려가버린 것에 대해 화를 냈다.
Robert Oppenheim, “‘The West’ and the Anthropology of Other People's Colonialism: Frederick Starr in Korea, 1911–1930,”
64-3 (2005),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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