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1 23:20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 종교학공부

(또 책 광고라니...)
내가 쓴 글이 포함된 책이 나왔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뉴스레터 내용을 골라 뽑아 만든 책 <<이야기를 해야 알죠!>>(모시는사람들, 2018). 이 책은 연구소 3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책으로, 이만큼 많은 종교 전문가가 이처럼 다채로운 주제들에 대해 발언해왔다는 연구소의 자부심이 담긴 책이다. 나는 37인의 저자 중 한 명이자 53편의 글 중 두 편으로 참여하였다. (책에 실린 글의 옛 형태는 이 블로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연구소의 30년 생존에 대한 자축의 성격을 갖는다. 연구소를 소개하는 데 주로 할애된 머리말은 이를 보여준다. 연구소와 인연 있는 분들이 나눠 가진 것만으로도 재고가 상당히 충당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일반 독자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글의 내용은 다양하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 그때그때 학문적 단상을 편하게 쓴 글들인데, 책의 형태로 독자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의미를 깎아내리는 건 아니다. 책 전체의 의미를 미쳐 정리할 새 없이 책이 나와버렸다는 것을 솔직히 밝히는 것뿐이다. 글의 수준은 높고, 종교학의 오지랖의 범위가 상당하다는 점도 잘 나타난다. 다만 글들이 한 덩어리로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는, 책 안에 속한 나로서는 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책 제목이 재미있다. 종교학자에게 하는 말 아닐까? 일반인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이야기를 해야 종교학이라는 학문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닐까?)



2018/06/01 16:31

메리 더글러스 종교학공부

(책 광고를 올립니다)
<메리 더글러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책 한 권 번역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혹은 발목이 잡혀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의 이론을 소개하는 작은 책을 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인류학자 해설서를 쓰다니, 이것은 본업에서 이탈한 것인 동시에 그만큼 더글러스가 종교학에서 중요한 이론가라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더글러스에 대해 종교학의 입장에서 쓴 편파해설서이다. 한편으로는 종교를 공부하면서 그에게서 배운 것에 고마워하며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학문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글을 썼다. 나는 더글러스의 개인사에 대해서 전혀 모른 상태에서 몇 년 전에 그의 책을 번역했는데, 이번에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이런 것도 모르고 번역을 한 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소화한 만큼만 썼다. 그래서 더글러스의 학문 세계의 극히 일부만 담긴 소개서가 되었다. 인류학 입장에서 조명하는 책은 언젠가 나오겠지... 나는 더글러스의 책을 읽고 번역할 때 참 어려운 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통찰력은 많이 언급되지만, 그의 저서가 실제로 읽히는 것은 많이 못 보았다. 그래서 내가 최대한 노력한 것은 더글러스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위험은 있다. 대가의 이론을 내 수준에서 쉽게 표현하다 보면 그저 그런 이야기로 전락할 수는 있다. 내 ‘번역’의 미숙함 때문에 그런 걱정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우리 이야기 속에 더글러스 이론을 담고 부드럽게 하고 싶었다. 이런 책은 자체로 가치를 갖기보다는, <자연 상징>을 포함한 더글러스의 원저에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는 데 가치가 있는 거니까.

(*컴북스이론총서는 내노라하는 이론가들을 다룬다. 그러다보니 책 표지의 인물사진들이 볼만하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시선과 고뇌에 찬 관상들. 그 사이에 더글러스는 맘씨 좋은 아주머니 얼굴을 하고 있다. 해상도가 높지 않은 사진을 써서 후덕한 인상을 더해준다.
**오늘 검색해보니 뛰어난 지식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오리지널 마인드>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경계를 뛰어넘는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메리 더글러스에 대한 인터뷰도 실려 있었다. 그가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한 명으로 포함되었다는 것은 내 책의 홍보 요인이 되는 좋은 일이지만, 그 인터뷰를 보지 못하고 이 책을 쓴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8/05/19 21:55

이론과 전통 종교학공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3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서 발표 하나를 맡았다. 원래 취지로 볼 때 원로급 학자가 할 만한 내용인데 내게 주어져 난감했다. 나에겐 회상할만한 학문적 이력란게 없지 않은가? 그럭저럭 “새로운 세계종교 수업을 꿈꾸며”라는 제목을 달고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다른 학술 발표와는 달리 이 발표에는 종교학에 대한 내 날생각이 많이 들어간 게 특이하다. 별 근거나 인용도 없이 무책임하게 질러 놓아도 발표의 성격상 토론을 통해 보완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늘 발표에서 나는 몸이 안 좋아 토론에 참여하지 못하고 먼저 와 버렸다) 발표문에서 날생각이 거칠게 뭉쳐 있는 몇 부분을 여기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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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0:26

새로운 죽음 전문가 독서: 메모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의 전권을 위임하는 일은 당연했다. 중세에는 이러한 죽음의 예술(ars moriendi)을 담당하는 주체가 영적 대리인, 즉 목사나 신부였으며, 현대에는 의사가 전권을 위임받아 ‘백의白衣를 두른 반신半信’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추세이다.……성직자들이 죽음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확신하였을 때 그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성스러운 ‘마지막 향유’를 이마에 떨어뜨리는 행위는 사망 직전 단 한 번 이루어졌고, 이는 수백년 간 절대불변의 임종 예식 절차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마지막 향유’는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의사가 가지는 전지적 후견자로서의 태도는 특히 임종과 관련해서 볼 때 근본적 문제가 있다. 의학에서 의료행위란 환자를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하므로 환자의 사망은 곧 건강의 소멸을 의미하여 의사의 의료행위가 실패했다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본다면 어차피 모든 환자는 언젠가 죽게 될 것이므로 의료행위는 결국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의료행위의 초점은 다소 비의학적 요소가 포함되더라도 환자의 안녕에 둘 것인가 아니면 의료산업에서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강력한 죽음의 통제를 통한 생명의 연장에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지안 도메니코 보라시오,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의 의미와 그 실현가능성>>, 김영하 옮김 (동녘사이언스, 20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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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23:04

랜디스가 채록한 한국 동요 기독교세계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성공회 선교사 중 한 명인 랜디스는 인천 지역에서 병원과 고아원을 운영하였다. 그는 고아들에게 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동요를 채록하여 1898년 미국 저널에 발표하였다. 수록된 지면은 다음과 같다.
E. B. Landis, "Rhymes of Korean Children," The Journal of American Folklore 11-42 (1898): 203-09.

랜디스가 의례를 중시하는 성공회 선교사이기 때문에 다른 개신교 선교사들과는 달리 의례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났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그의 글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 동요는 내 관심과는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동요 모음의 첫 두 노래가 (그가 성공회 사제로서 중시했으리라 생각하는) 의례와 사제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는 곡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왜 처음에 실렸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의 스타일대로 건조하게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가 이 노래들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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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13:28

조선 사찰과 기생 독서: 메모

한 일본인이 1932에 쓴 조선 기생관광에 대한 책에서 사찰 이야기가 나온다. 사찰이 유흥의 장소로 사용된 것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일인데, 일제강점기에는 기생 관광과 관련된 곳들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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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07:16

요가와 혼합현상 기독교세계


1. <기독교사상> 2018년 2월호에 “한국 기독교의 혼합주의, 혼합현상”이라는 내 글이 실렸다. 편집장 선생님의 배려 덕이다. 나로서는 혼합주의 담론의 주무대 중 하나였던 유서 깊은 잡지에 그에 대한 다른 시각을 담은 내 글이 추가된 것에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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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12:01

세계종교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의 쟁점 세 가지 독서: 메모

저자들은 종교학 교육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세계종교 패러다임에 대한 최근 종교학계의 비판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잘 된 요약이어서, 나도 이번 방학 동안 이들이 요약한 세 가지 쟁점을 기준으로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할 예정이다.
Christopher R. Cotter & David G. Robertson, “Introduction,” After World Religions: Reconstructing Religious Studies (London: Routledge, 2016),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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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7 19:12

종교 아닌 것을 통해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 종교학공부

정진홍: (대학에서 종교를 가르친 경험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불교, 기독교 등 전통적인 개개 종교를 거론하지 않고 종교를 이야기하면 학생들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아데의 <종교양태론>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흥분이 상당히 보편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172)

저는 학생들에게 전통종교에 대한 ‘정보는 다른 곳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으니 여기에서는 종교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이야기 합니다.……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뭐냐? 그런 종교를 ‘보는, 또는 겪는 어떤 다른 것’을 우리 삶의 경험 속에서 느끼고 있지 않느냐? 그 느낌이 무엇인가 구체화시켜 보자. 그 느낌을 가졌다면 당연하게 그걸 찾아봐야 할 것 아니냐? 그런 거죠.
학생들에게 종교적 가치나 가르침을 얼마만큼 비종교적 언어로 서술해서 전달할 수 있게 할까. 이게 종교 가르치는 사람들의 큰 과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종교언어의 소통 가능한 비종교언어화가 종교 가르치는 사람의 과제이고 종교언어와 비종교언어를 서로 넘나들  수 있어야 종교학자라고 생각합니다.(185-86)
“특별좌담회: 종교 가르치기”, <<종교문화비평>> 29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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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2:09

세계종교를 가르치는 신참 강사의 고민 독서: 메모

어떻게 신빙성 없는 이론과 역사의 전제 위에서 만들어진 과목을 가르칠 수 있을까? 최근 연구에서 거듭해서 그에 반대되는 내용이 증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 체계가 변별되는 역사와 경계를 지닌 개별 독립체라고 가정하는 과목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종교적’ 정체성과 ‘세계종교’ 그 자체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세계종교 입문을 가르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한 답은 그런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전통적인 세계종교 수업을 하는 대신 종교적 정체성을 당연시하지 않으면서 수업을 할 것이다. 세계종교들만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세계종교 입문을 가르칠 것이다.
Tara Baldrick-Morrone, Michael Graziano and Brad Stoddard, “’Not a Task for Amateurs’: Graduate Instructors and Critical Theory in the World Religion Classroom,” Christopher R. Cotter & David G. Robertson (ed.), After World Religions: Reconstructing Religious Studies (London: Routledge, 2016),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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