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Scarth Gale, "Han-Yang(Seoul),"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2-2 (1901): 1-43.
이어지는 내용
신도시 주변 개신교회 건축을 분석한 이정구의 글에서는 교회 입지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1) 최근 축조된 대부분의 대형 교회들은 외형이나 건축 재료, 규모 면에서 입지의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축조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교회들이 신도시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 지가(地價)가 급등하기 전에 종교 부지 용도로 매입한 경우다. 이렇게 매입한 땅은 대부분 거주지보다 지가가 낮은 논과 산, 밭으로 거주지와는 일정한 거리에 있다.
2) 신도시에 건립한 몇몇 대형 교회는 거주 지역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 지역사회 및 주민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지금은 거주 지역과 상업 지역이 확장도어 건립 당시보다는 주민들의 동선이 좁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주 지역과 먼 거리에 있어서 자동차 없이는 교회 출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신도시 초기 입주민들은 주변의 논 한가운데와 산등성이에 있는 이러한 대형 교회를 ‘특정 신앙인들의 이기적인 집단공동체’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이며 변할 수 없는 교회론의 보편적인 본질에 반하여 지역성보다는 팽창주의에 본질을 둔 교회론을 근간으로 축조되었다.
[이정구, “한국교회 건축의 과거, 현재, 미래”, <<한국교회 건축과 기독교 미술 탐사>>(동연, 2009), 103-5.]
그저께 ‘함석헌의 종교’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은 한국기독교가 낳은 예외적으로 풍성한 텍스트인 함석헌과 그에 대한 종교학적인 독해가 만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날의 좋은 발표들을 듣던 중 내 마음을 찌릿하게 울린 대목은 예기치 못했던 세부적인 부분이었다. 함석헌은 <<바가바드 기타>>의 주해를 통해 그 특유의 기독교 사상의 폭을 넓힌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이러한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1950년 부산의 헌책방에서 <<기타>>를 구해 읽게 된 것”이었다고 한다. 발표문에의 해당 내용을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에는 항상 기억하면서 못 보고 있었는데, 6·25전쟁에 쫓겨 부산 가 있는 동안에 하루는 헌책집을 슬슬 돌아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어느 집 책 틈에 에브리맨스 문고판의 기타가 한 권 끼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의 나의 놀람, 기쁨!
[<<바가바드기타>>, 함석헌 주석, <<함석헌 전집>> 13권(한길사, 1983), 3-4.]

사실 최근에 조너선 스미스가 엘리아데의 <<종교형태론>>에 붙이는 주석에서 괴테의 식물 형태론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때 좀 황당했다.(<<Relating Religion>>의 2장을 참고할 것) 처음 듣는 괴테의 식물학 책도 신기했거니와 엘리아데가 직접 언급도 하지 않은 책을 <<형태론>>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이론으로 제시한 것도 낯설었다.
그런데 괴테의 이파리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다른 사상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이야기가 조금 덜 낯설게 되었다. 그 사상가는 발터 벤야민이다. 그가 받아들인 괴테를 통해서 엘리아데가 받아들인 괴테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얻었다. 더 나아가 ‘현상학’이라는 전통에 대해서도 전보다 이해하게 되었다.
![]() | 무교 - ![]() 최준식 지음/모시는사람들 |
“그러면 도대체 에로스는 무엇이란 말입니까?”“……그는 가사적인(죽을 수 있는) 것과 불사적인 것의 중간자라 할 수 있지요.”“디오티마여! 그 중간자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소크라테스여! 그것은 위대한 정령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정령(daimon)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신과 가사적 존재의 중간자라 할 수 있답니다.”
달케(Paul Dahlke, 1865-1928)는 종교가 인격신에 대한 믿음과 동일시되면 종교로서 불교를 정의할 때 불교가 ‘신 없는 종교’의 구조를 갖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문제시하였다. 그리하여 달케는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삶의 저편’에 대한 질문이라고 역설하였다. 단지 이 질문의 답이 실재로부터 주어질 수 없을 때 종교적 방편개념으로서 ‘신’이 필요한 것이다. 즉 인류의 견실한 발전을 위해 방편으로서 ‘신’ 개념이 필요하다는 게 달케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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