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5 19:54

동작구 종교 이야기 종교학공부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산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고장의 내력을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종교 이야기라면 귀를 쫑긋 세우는 직업적 습관 탓에, 그리고 최근에 관련된 작업을 한 덕에, 귀에 익은 내 주변 지명들에 얽힌 종교적 사연들이 하나둘 쌓였다. 현재 지자체에서는 동작구를 사육신묘를 근거로 ‘충효의 고장’으로 브랜드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작구는 유교 문화 외에도 숱한 종교들의 만남과 자리 잡기가 명멸한 곳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근대 이후의 종교적 변화들을 기독교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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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8 16:10

디지털 세상의 가톨릭 전례 독서: 익힘

필립 테레사 베르거,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 안선희 옮김 (CLC, 2020).

디지털 예배에 대한 최신 논의를 알기 위해, 정보 습득의 차원에서 집어든 책인데, 이론적으로도 깊이 있게 정리되어 있어 많은 공부가 되었다. 저자는 가톨릭 전례학자로서 디지털로 매개되는 가톨릭 미사가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마치 코로나 이후의 일을 예측이라도 한 듯한 통찰력 있는 견해이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가톨릭이 ‘모인 회중에 대해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거기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책이 쓰여진 2018년 이전) 프란체스코 교황의 행보가 그의 낙관론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그가 예측한 대로 2020년 현재 성사의 효력이 디지털로 매개될 수 있다는 입장이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정식화되고 있다.

이 책은 디지털 환경의 새로운 실험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가톨릭 성사의 기본적인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전례는 “근본적으로 물질적이며 감각적”이었다. 디지털 환경 역시 물질적이다. 물질을 통해 매개된다는 기본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과거부터도 예배에 대면 참여가 필수가 아니었다는 사례를 제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메모해둔다.
-11세기 베네딕트회 수사 다미아노(Peter Damian)가 쓴 마사에 관한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교회의 함께 하는 활동 속에서 신자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86)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하나로 묶여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물리적 환경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성도들과 교통(communion)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한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물리적 공간 때문에 신자들과 함께 모이지 못할 때조차도 진실로 모두와 함께 하는 것”(87)

-13세기 여성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눈으로 보는 성찬식이라는 개념’이 발달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바이넘의 연구에서 제시되듯이, 남성 사제에 의해 성체성사 참여가 제한된 상황에서, 여성 신비가들은 환시 속에서 빵과 포도주를 받는 경험과 그리스도가 직접 먹여주는 신비를 체험하는 경험을 했다.
아시시의 클라라(Clare of Assisi)의 사례도 있다. 클라라는 아파서 나갈 수 없을 때 환시 속에서 미사 장면으로 보게 된다. 그 환시가 너무 선명하고 참석자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정도라서 참석을 인정받게 된다. 1957년에 교황청에서는 이를 근거로 그녀를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게 된다.



2020/08/26 14:28

페티시즘 개념을 통해서 본 개신교와 무속의 만남 종교학공부

개신교 선교사의 페티시즘 개념에 관한 글. 이 주제에 대해 옛날에 쓴 논문을 대폭 수정하고 자료를 추가해서 이번에 발표한 글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섞어 엄청 길게 올려본다.

1. 머리말
2. 페티시즘 개념사: 만남과 물질
(1) 페티시즘의 출현
(2) 종교학의 페티시즘
(3) 경제학과 심리학의 페티시즘
3. 선교 현장의 페티시즘
(1) 전도된 물질적 가치
(2) 페티시 파괴: 개종의 세레모니
(3) 페티시즘의 학문적 서술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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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7 11:39

스타(Starr)의 사진 촬영 독서: 메모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무당과 굿 사진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서 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경찰들이 입회한 가운데 굳은 표정을 한 무당들이 찍힌 사진에서는 권력의 작동이 느껴진다. 이러한 식의 사진 제작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어 옮겨 둔다.
1911년 한국에서 조사를 진행한 미국 인류학자 프레더릭 스타(Frederick Starr)의 기록이다. 스타는 일제 당국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그의 조사에는 으레 경찰이 대동했다. 그는 1911년에 서울에서 ‘무당 공연’을 주선해 사진을 찍으려 했다. 원래는 왕릉 사이에서 공연하려고 했으나 이왕가(Prince Yi’s department)에서 거부하자 묘목 근처에 자리를 잡고 여성 ‘공연자’ 몇 명과 계약했다. 그의 노트에는 다음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식민지 상황에서 미국인, 일본 경찰, 통역자, 무당이라는 권력의 정도가 다른 네 주체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일은 성공적이었고 좋은 영상을 얻었다. 공연을 맡은 여성[무당]은 다소 불안해했다. 오늘 서울에서 한 모든 일이 불법이고 밖에서 못마땅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여러 번 경찰의 관리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를 따라다닌 감시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분해했고 어느 정도는 두려워했다. 그녀가 공연을 시작하고 조금 후, 쓸모없는 지방 경찰관이 나타나 김씨[통역자]를 몰래 불러내 따라오게 해서 이후의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했다. 김씨는 설명을 했어야 함에도 그 일을 내게 고하는 대신 순순히 경찰에 따랐고, 우리의 모든 일이 망쳐질 것만 같았다! 나는 서둘러 따라가 나의 순한 양을 멈추고 경찰관에게 돌아와 설명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불쌍한 여성과 동료들이 겁에 질려 짐을 싸서 도망갈 채비를 하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경찰관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당신이 아무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었다고 말했다. 내 공연을 방해하고, 공연자들에 겁을 주고, 무엇보다도 통역자를 일하지 못하게 데려가버린 것에 대해 화를 냈다.
Robert Oppenheim, “‘The West’ and the Anthropology of Other People's Colonialism: Frederick Starr in Korea, 1911–1930,”
64-3 (2005), 696.

2020/07/06 11:24

스타(Starr)의 의상 독서: 메모

프레더릭 스타(Frederick Starr)는 1891년부터 31년간 시카고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한 인물로, 말년에는 일본에서 주로 연구하였다.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1910년대에 네 차례에 걸쳐 방문하였고 “Korean Buddhism”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는 동안 미국 대학교수로서 명망 높은 인물이었다. 정치계, 학계를 비롯해 많은 인물과 교류하였고, 그 영향력은 한국 방문에도 활용되었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 그의 의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요약, 인용하겠다.
Robert Oppenheim, “‘The West’ and the Anthropology of Other People's Colonialism: Frederick Starr in Korea, 1911–1930,” 64-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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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23:04

가스펠, 영가, 블루스 독서: 메모

가스펠 송과 흑인 영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일단 가사의 내용이 다습니다. 흑인 영가는 죽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주요 관심사입니다. 또 노래를 부르며 천국을 상상하고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반면에 가스펠 송 가수들은 슬픔과 괴로움이 표현된 노랫말을 신앙의 환희를 실어 불렀습니다. 가스펠 송은 노래하면서 내면의 기쁨이 솟구치도록 만드는 창조적인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곡조도 리드미컬하고 격렬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도취되고 환희를 느낀다는 점에서 가스펠 송은 링 샤우트(ring shout)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124)

음악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블루스와 가스펠 송의 가사는 완전히 다릅니다. 노랫말만 본다면 블루스는 ‘악마의 노래’, 가스펠은 ‘신의 노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블루스는 악마에게 말을 걸거나 저주의 말을 내밷도 하고, 살인이나 폭력 등 부도덕한 주제가 많으며, 성욕과 금전욕, 식욕 등 인간의 현실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스펠 송은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키지만 블루스는 실의와 낙담의 신음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웰스 게이코, <<타는 태양 아래서 우리는 노래했네>>, 유은정 옮김 (돌베게, 2019), 133.




2020/07/03 15:21

흑사병과 중세 종교 독서: 발제

필립 지글러, <<흑사병>>, 한은경 옮김 (한길, 2003).
서문에서 밝혔듯이 책의 저자는 아마추어 저술가이다. 핵심이 잡히지 않아 내용이 산만하고, 어떤 부분은 신뢰하기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이 책에서 통해 알게 된, 코로나 정국에 음미할만한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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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01:06

건물과 종교 종교학공부

1. 종교 개념과 건물이 긴밀하게 결합한 것은 우리 언어의 특징이다. 우리는 종교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 “절에 다닌다”,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교회, 절, 성당이 그 종교 자체처럼 받아들여진다. 우리말에만 있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go to church”라는 숙어가 있는데, 이것은 “예배를 본다”는 의미이지 개신교 소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어 단어 ‘church’는 개신교와 천주교 건물 모두를 가리킨다. 한국어에서만 교회와 성당이 엄격히 분리된다. 언제부터 이런 표현이 자리 잡았을까?

2. 천도교 교당 건축에 관한 발표를 듣던 중에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건축물이 종교를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종교 개념이 형성되는 초기부터 있었던 관념이다. 우선 1905년 12월 1일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손병희가 ‘천도교’를 알린 광고를 보자. “천도교 대고천하(大告天下)”라고 불리는 광고이다.

夫吾敎 天道之大原일새 曰天道라. 吾道之創明이 及今四十六年에 信奉之人이 如是其廣며 如是其多호대 敎堂之不遑建築은 其爲遺憾이 不容提說이오 現今 人文이 闡開야 各敎之自由信仰이 爲萬國之公例오 其敎堂之自由建築도 亦係成例니 吾敎會堂之翼然大立이 亦應天順人之一大標準也라 惟我同胞諸君은 亮悉홈. 敎堂建築開工은 明年 二月노 爲始事.
天道敎 大道主 孫秉熙

동학(東學)이 천도교(天道敎)라는 종교의 틀을 갖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중요한 문서이다. 그런데 종교 선언이 바로 교당 건축 선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을 유람한 손병희는 근대적 종교 질서를 배워왔을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그가 ‘종교다움’의 내용으로 내세운 것이 위의 문서에서는 신앙의 자유와 건축의 자유 두 내용이었다. 교당 건축은 종교의 ‘표준’을 따르는 것이다. 어엿한 종교라면 자신의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당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1900년대에 강하게 존재했음을 볼 수 있고 대중들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명동성당, 정동교회 등의 건축을 보면서 종교라는 새로운 제도의 수용을 경험한 것이 이러한 생각에 반영된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2020/06/29 23:57

덜어내는 일 독서: 메모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배운 사람이라고 병원에서 특별날 것은 하나 없다. 그저 한 명의 환자, 한 명의 보호자일 뿐이다. 치매를 앓는 가족을 돌보는 글쓴이, 도교 전공자로서 삶과 죽음, 건강에 관한 숱한 언어 속에서 작업하는 글쓴이의 경험이 그러했던 것 같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을 가진 글쓴이는 치매와 관련된 연구들을 통해 인간, 자아에 대한 물음을 이어간다.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눈앞의 경험을 설명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학문을 하면서 날마다 더해놓은 것들은 책의 쪽수를 불릴 수는 있지만 눈앞의 현실에 대해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자아는 실재하는 것인가? 불교적으로 보이는 이 질문을 인지과학과 뇌과학에서 만나는 것은 흥미롭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질문의 만남까지이다. 치매와 “도를 닦는다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일”이라는 도덕경의 한 구절을 태연하게 병렬해놓기까지 얼마나 깊은 고뇌를 거쳤을까.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글이다. 


2020/05/27 17:36

원시문화로 배운 종교학 독서: 익힘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원시문화: 신화, 철학, 종교, 언어, 기술, 그리고 관습의 발달에 관한 연구>>, 유기쁨 옮김 (아카넷, 2018).
온갖 사례로 가득한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며 행복했다. 이 변태 같은 감정은 무엇일까? 유럽과 세계 각지로부터 수없이 쏟아지는 자료들, 자료의 엄밀성이 확인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자료들에 압도당할 때면 생각의 길을 잃고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 멍해지기 마련이다. (다시 읽으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황금 가지>를 읽을 때는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타일러의 글은 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신기하게도 종교학사를 장식하는 주요 주제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특히 애니미즘 서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번역판의 2권을 읽을 때 황홀감이 극에 달했다. 종교가 없는 민족이 있다는 보고를 논박하면서 종교의 기본적인 정의를 제안하는 애니미즘 이론의 첫 부분은 전부터 주목했던 내용이다. 이번에 번역본 덕분에 추가로 음미하게 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영혼 교리의 다양성(부족사회의 정령, 동아시아의 귀신, 기독교의 영혼을 연결하는 그의 강력한 논의), 망자와 음식을 통한 교류, 저승 관념의 비교, 페티시즘을 영혼 이론 내에 포함, 영혼의 물질성 여부, 퇴화 이론의 철저한 논파, 선교사에 의한 부족사회 자료 오염에 대한 민감한 태도, 기독교(혹은 선교지에서 이해된 기독교)의 이원론적인 속성 등.
그의 저서 이후 종교학사에서 떠오르게 될 주제들이 그의 자료 배치 안에 녹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주제 의식에 따른 배열을 읽어내면서, 오랜만에 종교학 책을 읽은 뿌듯함을 느낀다. 종교학을 한다는 것은 선배들이 고민했던 문제 의식의 공유 아닌가. 아마도 공유된 주제에 목말랐나 보다. 그래서 이 책을 종교학을 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면서 이 거목으로부터 후대에 어떤 꽃이 피어올랐는지를 떠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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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배움과 놀이가
채 나누어지지 않는,
두루뭉술한 공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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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자료: 벌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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