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2 21:34

종교의 노이로제 독서: 메모

세속과 종교가 미신의 제거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지만, 종교는 끊임없이 세속으로부터 미신의 출처를 마련해준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특히 이미 기득권을 획득한 세계종교가 아닐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이비종교는 미신으로부터 자양분을 받는다.……미신은 전염병과 같다. 언제 어디에나 있고, 항상 잠입 태세를 갖추고 있어서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래서 종교는 늘 미신의 영역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노이로제’ 상태에 처해 있다.……백백교는 최악의 ‘스캔들 메이커’로서 그 위험성을 알려주는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석만, “1937년 백백교 사건의 의미”, <<한국 근대종교란 무엇인가?>>(모시는사람들, 2017), 276-277.

한국 사회에서 백백교와 그 후예들이 계속 호출되는 이유를 선명하게 설명한 글. 종교와 미신이라는 두 범주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그려놓으니, 종교가 미신이나 사이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잘 보인다.


2020/01/17 20:18

메시아(=알마시히) 종교학공부

1.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2020)는 스릴러물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종교 스릴러”인데, 여기서 긴장은 “이 사람이 진짜(real)일까, 아닐까”에서 조성된다.(영어 표현으로는 “conceive or con”) 종교 스릴러라니, 신선한 긴장이다.
이 드라마의 매력이자 논란거리는 무려 이슬람과 기독교를 아우르는 메시아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남자를 추종하는 사람은 시리아의 무슬림과 미국의 개신교도이다. 두 회중을 동시에 이끄는 종교 지도자! 이 기묘한 결합을 위해 드라마는 공을 들였고, 이 상상력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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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4:44

인디언 기우제 종교학공부

“인디언 기우제”는 작년 말의 유행어이다. 유시민 작가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한 표현이다. 죄가 있어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다고 믿고 뭔가가 나올 때까지 계속 수사를 들이미는 것을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라고 불렀다.(2019년 12월 3일 알릴레오) 이 표현은 호응을 얻어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올해 초에는 진중권이 “비는 기우제를 드리자마자 주룩주룩 내렸다”라고 되받아치면서 뜻이 더 혼탁해졌다.) 여기서 인디언 기우제란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 결국 비가 온다는 뜻이다. 나는 검찰에 대한 유시민의 비판에 동의하지만 이 표현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인디언을 무도한 검찰에 빗댄 것은 인디언의 명예훼손이고, 인디언이라는 한 무리의 사람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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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00:11

종교는 좋은 것 독서: 메모

종교의 좋음.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다. 나라면 종교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다. 종교 연구가가 종교에 대해 갖는 태도는 연구의 결과로 나타나는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연구 이전에 그의 삶의 경험에서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내 삶의 경험에서 부족한 부분, 그 좋음을 제대로 겪지 못한 결핍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당분간은 밍숭맹숭한 태도로 연구에 임할 것 같다.

종교는 좋은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종교는 사실을 넘어서는 ‘다른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유한의 닫힘에서 무한의 열림을 숨쉬게 하고, 불가능의 벽과 마주치면서 가능성의 낌새를 터득하게 합니다. 미움의 늪이 사랑의 들판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고, 사람의 귀함이 어떤 까닭으로도 가려지거나 지워질 수 없다는 것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삶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맑아지고 펴지고 다듬어지고 온전해집니다. ‘지금 여기의 삶’에 스미는 ‘다른 삶’이 없었더라면 사람살이는 무척 황폐했으리라는 사실조차 일컫고 싶습니다.
정진홍, <지성적 공간 안에서의 종교> (세창출판사, 2015), 4쪽.


2020/01/15 17:37

미로 안의 종교학 독서: 메모

선생님께선 좋은 말을 해주시지 않는다. 종교학은 미로 안에 있다. 출구가 있긴 하겠지만 미아로 남을 수도 있는 자리이다. ‘문제의 문제다움’을 되새기며 정신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새해에 읽은 좋은 글귀로 마음을 바싹 동여매게 된다.

종교를 인식하겠다는 우리의 희구가 언제나 열린 출구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물음 자체를 다듬는 일에서부터 방법론을 구축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리고 도달했다고 여겨지는 인식의 내용을 언어화하고 이를 소통 가능한 앎으로 엮어내기까지, 더 나아가 그 앎에서 말미암으리라고 예측되는 의미와 가치를 규범화하는 일 등은 의외로 심각한 딜레마를 이 모든 과정 곳곳에서 직면하게 합니다.……그것은 문제에 직면한 당혹과 점철하는 좌절,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강인하게 지속되는 출구의 모색, 그리고 마침내 이른 문제의 문제다움에 대한 터득과 그에 상응하는 해답의 확인을 한꺼번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로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끝내 그 미로 안에서 미아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로는 그것 자체가 역설입니다. 미로는 출구의 모색이 거의 불가능한 닫힌 상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출구의 모색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열림을 아울러 담고 있는 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도모하는 우리의 자리가 바로 이러한 ‘미로적 정황’인지도 모릅니다.
정진홍, <지성적 공간 안에서의 종교> (세창출판사, 2015), 275-276쪽.


2019/12/30 23:26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은 종교 독서: 메모

주장이 주장 자체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절대적인 것으로 축조하게 되면 내용의 다름은 그리 중요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어떻게 지탱해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 가장 긴박한 과제가 됩니다. 내용은 뒷전으로 물러가고 태도만이 전면으로 등장합니다. 인식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신념이 차지합니다. 그것이 주장의 교조화 현상입니다.
……
종교문화에서 보면 가장 편리한 ‘구원의 수단’으로 선택되는 것이 주문(呪文)의 음송(吟誦)입니다. 그런데 종교사는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편리한 환상’에의 몰입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현실성을 지닐 까닭이 없습니다. 주문의 음송은 자기최면, 자기기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근본주의는 삶의 공동체를 철저하게 외면한 채 스스로 그렇게 주문을 음송하면서 종교사로부터 사라졌습니다.
정진홍, “주문의 음송”, <<잃어버린 언어들>>(당대, 2004), 322-326.

사람들은 종교는 교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사회현상이 ‘종교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종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교조적이지 않게 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그런 한편으로 위의 인용문에서 근본주의가 종교사에서 사라져 간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2019/12/24 14:38

법한자전의 종교 항목(1912) 서랍1: 문서

르 장드르 신부가 편찬한 필사본 불한사전 <<법한자전>>(1912). 2010년에 한 신자가 기증해서 알려진 자료로 2016년에 자료집으로 출판되었다. 나도 이번에 처음 본 자료이다. 페롱 신부의 불한사전(1869)을 보완해 작성된 사전이기 때문에 옛 어휘가 주를 이루지만 새로운 어휘도 보강되었다. 해독 못 한 부분도 꽤 있지만 나중에 보완하기로 하고 우선 읽을 수 있는 내용 중심으로 올려둔다.
사전의 religion 항목이다. 불어 religion에 대응하는 한글 어휘는 도(교리)와 교(가르침)이다. 이는 옛 사전과 다르지 않다. 종교는 제일감의 대응어는 아니지만 존재하는 단어라는 사실이 ‘자연종교’라는 단어가 실려있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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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22:10

유길준의 세계대세론(1883)의 종교 서랍1: 문서

학계에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자료가 한국에서 종교라는 단어가 사용된 첫 사례라고 생각한다. 유길준이 일본 책에서 옮겨왔을 것으로 보이는 종교론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종교에 관한 여러 견해가 들어있다. 이것이 초기 종교 개념을 깔끔하게 요약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되어 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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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4 18:25

조선신궁에 내린 눈 서랍2: 도상


그냥 보면 아름다운 사진으로 가득한 책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들에 의해 조성된 그들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섬뜩하다. 이 책은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 건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37년에 조선신궁봉찬회에서 제작한 사진집이다. 1930년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책의 만듦새와 사진의 질에 질린다.
그들은 지금의 남산공원 자리에 식민지 조선의 신성한 중심을 세웠다. 사진에는 그들이 이 자리에 얼마나 완벽한 일본을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는지가 잘 담겨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담았다. 위의 사진의 제목은 “눈 내린 풍경”이다. “하늘의 문 활짝 열린 듯 여섯 송이 꽃. 춤추며 내려오는 신사의 정원”이라는 시적인 해설이 달려 있다. 다른 쪽에 있는 설경 사진에는 신사에 ‘정결한’ 눈이 내렸다는 표현도 있다. 이곳은 실로 그들이 정화(淨化)하고 그 위에 일본의 풍경을 완성한 곳이었다. 신사를 세우고 관리하고 의례를 지내고 사진에 담는 그 모든 과정의 정성스러움이 이 거대한 사진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의 실패한 꿈이 빚은 작품, 그 괴물의 미학이 주는 역설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편, <<은뢰: 조선신궁에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풍경>>, 정선태 외 옮김 (소명출판, 2015), 164.


2019/11/21 00:57

치아 고통의 종교적 표현 종교학공부

종교학회에서 그동안 조사해오던 성 아폴로니아 숭배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발표하였다. 전체 윤곽은 꽤 드러난 듯싶다. 자신이 떨어지는 글의 논리만 조금 더 보강한다면 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은 일레인 스캐리의 책이 생각의 틀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래는 발표에 사용한 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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