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0 20:03

책: 고아에서 일어난 힌두교와 가톨릭의 만남 독서: 익힘

지난 달에 책 한 권의 내용 정리하고 평가한 발표를 했다. 알렉산더 헨(Alexander Henn)의 『고아에서 일어난 힌두교와 가톨릭의 만남: 종교, 식민주의, 근대성』(2014)이라는 책. 아래 파일이 발표 내용이지만, 내용 이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 쓴 글의 일부를 밑에 첨부하였다.
Alexander Henn, <Hindu-Catholic Encounters in Goa: Religion, Colonialism, and Modernit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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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19:34

숨은 종교 모델과 혼합현상 이론 독서: 발제

‘기독교 인류학’이라는 연구 흐름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조엘 로빈스의 논문의 대략의 내용. 그는 이 글에서 과거 인류학에서 비서구인의 선교와 관련해 많이 사용해온 ‘숨은 종교’ 모델을 비판하고 혼합현상 개념을 사용하기 위한 대안적 모델을 제안한다.

Joel Robbins, “Crypto-Religion and the Study of Cultural Mixtures: Anthropology, Value, and the Nature of Syncretism,”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79-2(2011): 408-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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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5 04:43

메리 더글러스의 종교 종교학공부

써야하는 글이 있는데,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 거의 반년 이상 빚으로 남아 있다. 추석 연휴에 써보려 했는데 역시나 지나갔고 앞으로 한 달 이상은 자동으로 더 넘어가게 생겼다. 이번에 내가 속한 연구집단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에 기고한 글은 쓰지 못한 이 책에 대해 미리 쓴 후일담이다. 메리 더글러스에 대한 회한을 가볍게 적어보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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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7 22:22

모스 "증여론"에 대한 더글러스의 서문 독서: 발제

메리 더글러스는 1990년에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의 영어 번역서(Gift)에 서문을 썼다. 현대 사회의 상품 소비에 대한 연구를 한 학자의 입장에서 <증여론>의 가치를 독창적으로 평가한 후에 학사적인 의미를 서술하였다. 뒤르케임과 그 학파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인상적인 글이다. 아래의 글은 너무 오래 전에 독서한 메모인데, 너무 잘못 읽지 않았기만을 바라며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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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5 21:27

차례 상차림의 원칙 종교학공부

홍동백서와 어동육서와 같은 말들은 유교 경전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성균관 의례부장)이 몇 년 전 신문에서 소개되었고 올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법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격식을 갖추느라 고생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뉴스이다. 모르기에 집착해왔던 법도에 무슨 근거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뉴스에는 그 다음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으로, 홍동백서와 어동육서가 근거가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분명 홍동백서는 <주자가례>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 엘리트의 입장에서 경전적 근거가 없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제사의 법도는 경전의 공백 때문에 실천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법도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정성스레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승과 실천에서 추출할 수 있다. 홍동백서, 어동육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원칙이다. 다음 논문을 읽으면서 이러한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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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7:05

슈바이처의 선교 경험 독서: 메모

슈바이처의 선교 회고록에서 인상 깊은 몇 구절을 발췌. 원서를 확인할 수 없어 대부분 번역서를 따름. 2016년 출판된 책이지만 사실상 1976년 번역이어서 옛 어투가 정겹다. ‘토인’(土人)이 ‘native’의 번역인 것은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아’(自然兒)는 무엇을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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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20:47

"개종과 혼합을 넘어" 독서: 발제

Lindenfeld, D., & Richardson, M. (Eds.). (2011). Beyond Conversion and Syncretism: Indigenous Encounters with Missionary Christianity, 1800-2000. New York: Berghahn Books, Introduction.

토착민들이 외부 기독교 선교사의 세계 내 유입에 반응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고 편집된 책. 저자들은 종교 간의 만남(cross-religious meeting)이나 종교적 상호작용을 다루는 이론적 모델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인류학에서 이 주제의 논의는 혼합현상과 개종에 집중되어 왔는데, 이러한 기존의 논의의 틀을 뛰어넘겠다는 야심이 보이는 제목이다. 편집된 책이 흔히 그렇듯이 내용에 비해 제목을 잘 지었다. 새로운 이론의 의지는 좋으나 대단히 참신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책을 구하지 못했으나 구글 북스 덕분에 서문이라도 온전히 확인할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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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2:00

"죄인이 된다는 것"(Becoming sinners) 앞부분 독서: 발제

로빈스의 책 "죄인이 된다는 것"(Becoming sinners) 앞부분을 다시 정리함. 이전 발제문에서 빠졌던 앞과 뒤의 내용을 붙여서 글의 맥락을 좀더 알아볼 수 있겠끔 정리. 파푸아뉴기니 개종 사례에 대해, 기존의 문화적 틀이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혼합말고 다른 표현을 써서 서술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인류학에서 기독교를 다루어온 방식에 대한 진솔한 평가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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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9 02:43

회복 의례의 부재 독서: 메모

회복한 사람에겐 의례를 치를 자격이 있다. 여러 원시 부족에게는 재진입 의례가 있었다. 낙인이 찍힌 사람을 정화하여 다시 사회로 받아들일 때 치르는 의례다. 이 의례는 부활을 뜻한다. 의례 후에 삶은 새로이 시작된다. 내가 겪은 두 번의 심각한 질병은 병원에서 받은 검사나 처치로 마무리되었고, 이런 결말은 의례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대사제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은 한낱 의료 기술자로만 남기를 택했다. 자신들이 개입함으로써 몸의 상징적인 가치가 변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자기 힘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하여 환자나 의사 모두 질병에서 영적인 차원의 경험을 놓친다. 의례에 뒤따르는 명료한 자기 인식을 의학의 세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리하여 아팠던 사람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재진입하여 적응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204-205.

2017/05/31 19:47

트랜스휴머니즘의 죽음관에 대한 한 신학적 비판 독서: 발제

이 글의 저자는 기술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태도를 신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이라고 비난한다. 거의 바벨탑 느낌. 전형적인 신학적 논리. 이 글에 대한 내 생각은 저자가 사족처럼 붙여놓은 마지막 문장과 같다. “물론 트랜스휴머니즘이 기독교 구원론 드라마를 구현해야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이 글은 왜 쓴 거지?

Todd T. W. Daly, “Diagnosing Death in the Transhumanism and Christian Traditions”, Calvin Mercer & Tracy J.T Rothen ed., <Religion and Transhumanism> (Santa Barbara: Praeg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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