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9 12:38

수신교과서의 제사, 우상, 귀신 서랍1: 문서

근대 수신교과서 중 하나인 <초등소학수신서>는 유근이 1908년 저술한 책이다. 60개의 주제마다 짧은 이야기, 그림, 생각할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유근은 장지연과 함께 <황성신문> 주필로 활동한 지식인이고, 후에 대종교 교주로 활동한 인물이다.(한국민족백과사전 항목) 이 교과서에는 유교적 교양을 가졌으면서 합리적 지식인이었던 유근의 면모가 드러난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던지는 질문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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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21:06

“보통교육 국민의범”의 ’의식‘ 서랍1: 문서

1908년 발간된 예절 교과서 <보통교육 국민의범>(普通敎育 國民儀範)은 일본의 수신서 <의례교범>(儀禮敎範)을 번역한 책이다. 일제가 ’국민‘의 몸짓을 규제하려는 의도에서 집필한 책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이 책에는 사회생활의 각종 예절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엔 의례에 해당하는 내용도 꽤 있다. 당시 동서양의 의례, 예절들을 모아 소개하는 책들이 여럿 있는데, 이들은 의례 연구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책의 21장은 ‘의식’이다. 학교 행사의 기본적인 규정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4절에는 칙어 봉독을 할 때 최고의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일본의 교육칙어를 말한 것이리라. 심지어 칙어를 읽는 이는 양복(프록코트)를 읽는 것이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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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15:53

동묘의 똑딱시계(?) 독서: 메모

"여행객은 이곳저곳에서 수호신의 형상을 종이에 그려 내부에 걸어놓은 작은 오두막을 보게 된다. 벽에는 한글과 한자로 적힌 기도문이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1년 360날 모든 아픔과 질병, 불운에서 구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간간이 더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떤 유명한 전사를 기리고자 세운 것일 것이다. 건물 안에서는 아마도 쏘아보는 눈을 하고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수염을 기르고 의자에 도전적인 자세로 앉아있는, 붉은색과 금빛으로 칠한 신격화된 전사의 형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숭배자들이 헌물로 바친 아주 이상한 물건들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오래된 칼이 그곳을 지키려는 듯이 보이는 반면에, 워터베리 시계(Waterbury clock)가 조롱하듯이 짤깍거린다. 나는 전에 한 사당에서 못 신게 된 고무장화 한 짝을 신상 앞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시주한 사람이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쓰레기더미에서 주웠음직해 보였다."
윌리엄 길모어, <서양인 교사 윌리엄 길모어, 서울을 걷다 1894>, 이복기 옮김(살림, 2009), 92-94.(번역 약간 수정)

1886년부터 1889년까지 근대 교육기관 육영공원에서 헐버트, 벙커와 함께 교사로 일했던 길모어(George W. Gilmore)는 몇 년간의 한국 경험을 정리해 책으로 썼다. 그 책의 종교 부분 서술에는 피상적인 정보도 있지만, 그의 직접 경험에서 비롯한 내용도 있다. 위의 내용에서 그가 말하는 전신(戰神)은 관우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방문한 관제묘는 동묘일 가능성이 크고. 재미있는 내용은 신단에 서양 물건이 모셔져 있다는 내용. 그가 직접 본 것이고 실제 상황이었을 것이다. 워터베리 시계라니! 필자의 눈에는 소박해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 한국 상황에서 엄청난 귀중품을 봉헌한 것이다. 더구나 고장 안 난 것으로. 필자는 책 다른 부분에서 한국인이 서양 시계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107) 고무장화를 바쳤다는 진술도 흥미롭다. 무당이 신에게 시바스리갈을 올리는 것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물 건너온 새 물건을 신에게 바치는 장면이 19세기말 기록에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2019/08/12 17:11

박정희 시대 국가의례와 만주국 독서: 메모

"한석정은 기념비 앞에서 행해지는 전사자에 대한 1분간의 묵도, 행진, 시국강연 청강, 선전영화 시청, 포스터 작성, 학생웅변대회, 집회와 대운동회 참가 등의 국가의례를 예로 들면서 이러한 것들은 원래 1930년대 만주국의 국가행사였다고 한다.... 가정의례준칙은 낭비나 허례허식을 삼가는 협화식(協和式) 결혼식을 상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전국 각지에 세워지는 동상 역시 만주국에서 제사지낸 공자나 관우의 재래(再來)일 따름이다. 한석정이 지적하듯이, 만주국에서 행해진 규율화의 방법을 엄밀하게 반복할 수 있는 국가는 박정희 정권기의 한국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박정희 정권 치하의 한국은 만주국에서 거행되던 국민대회, 추도식, 전몰자기념비, 학생웅변대회, 표어 짓기, 반공대회, 체조, ‘건설’이나 ‘재건’이 붙은 슬로건, ‘총력안보’, 총동원‘ 등을 모조리 모방했기 때문이다."
(강상중 & 현무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270-71.)

내 어린 시절에도 행해졌던 국가의례들을 검토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장 국가”라는 개념을 북한에 적용해볼 생각이 있었는데, 과거 우리나라에도 가능할 것 같다.


2019/08/11 23:25

인제군 민속과 교회 서랍1: 문서

5월에 인제군에 가서 작은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다. 지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약간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만든 것. 대단한 내용은 아니어도 앞으로 알아보았으면 하는 소망도 담긴 소박한 발표 내용이다. 올여름은 인제군에 가지 못하고 지날 것 강아 그때 기억을 담아 발표 자료를 올려놓는다. 강원도 개신교 선교를 개척한 무어 선교사 이야기, 인제군과 관련된 역사 자료 조각들, 그리고 기독교와 민속의 관련성에 대한 제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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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00:54

일본 극우의 종교적 배경 독서: 메모

1. 이제 한 달이 넘어가는 아베 정권의 경제 도발을 계기로 일본 정권을 이끄는 극우 정치세력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 집권세력은 “일본회의”라는 우파조직에 속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이 조직은 태동 이전부터 여러 종교 집단과 뗄 수 없이 얽혀있다. 가장 중요한 종교 세력은 신도 본청과 생장의 집이 꼽힌다. 신종교 생장의 집에 관련해 김태기의 논문 “일본회의의 성장과 종교단체의 역할: 세이쵸노이에를 중심으로”에서 몇 대목을 메모해 놓는다.

2. “생장의 집”(生長の家, 세이초노이에)은 1930년 <생명의 집>이라는 출판물을 통해 유명해진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세운 신종교이다. 다음은 기본 교리의 일부이다.
“기독교, 불교, 신도 사상을 융합한 것으로 모든 종교는 하나의 실상(實相)으로 귀결한다.”
“세상의 진리, 즉 실상을 깨달으면 병이 낫고 행복해질 수 있다.”
“생장(生長)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으로, 얼마든지 무한하게 창조해 신장해 가는 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일본 신종교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주장으로, 이런 교리만 보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위의 내용을 인용해놓은 것은 교명의 ‘생장’이라는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리를 바탕으로 현실을 어떻게 읽고 발언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3. 마사하루는 1930, 40년대에 일본의 전쟁을 지지하면서 국수적 민족주의 성향과 천황 신앙의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전투기를 위해 재산을 헌납하고 학도병 동원에 나섰다. 그는 패전 이후 전범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았으나, 1950년대 이후 천황 국가 완성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교리를 천명하였다. 그는 1959년 <일본국민회의>를 결성했는데, 이는 1997년 결성된 보수우파단체 <일본회의>로 연결되는 한 흐름을 이룬다.

4. 마사하루의 주장과 가르침, 생장의 집의 조직적 활동은 우파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마사하루가 천황 국가를 완성하기 위해 주장한 내용은 건국기념일 제정, 히노마루 게양운동, 야스쿠니 참배, 교육기본법 개정 등 실제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진행 중인 일본 우경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형성하였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의 주장 중 하나인 명치헌법 복원운동은 지금 준비작업이 진행 중이고.

5. 생장의 집은 1960, 70년대 일본 우익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고, 그때의 운동가들이 현재 일본회의의 주축이라는 점에서 연관이 크다. 다만 현재의 생장의 집은 일본회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인다.
1985년 마사하루 사망 이후 2대 교조인 세이쵸는 전임자와 반대되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운동의 목적은 국가 간의 조화와 번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국수적 민족주의보다는 국제평화 지향하는 쪽으로 지향을 바꾼다. 그는 대동아전쟁을 반성하는 입장도 낸 바 있다. 다음의 그의 말은 매우 상식적이다. “조금 잘못되면 우익이 되어버린다. 단순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되어버린다. 일본인만이 번영하면, 다른 나라 사람은 어떠한 비참한 일을 당해도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신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이러한 변화에 반발한 일부 조직이 이탈하였는데, 이들을 마사하루 원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탈 조직은 일본회의에 동조하는 쪽이다. 생장이라는 동일한 원리 아래 이처럼 다른 정치적 입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하다.


2019/04/19 20:15

고깃덩어리와 성화 서랍2: 도상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한 화가 피테르 아르첸Pieter Aertsen(1508–1575)의 1551년도 작품 “이집트 피신이 보이는 푸줏간 진열대Butcher's Stall with the Flight into Egyp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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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19:40

고통의 시각적 표현 독서: 메모

고통의 시각적 표현의 역사를 고찰한 다음 논문에서 필요한 대목 둘을 정리함.
Suzannah Biernoff, "Picturing Pain," In Anne Whitehead & Angela Woods (eds.), The Edinburgh Companion to the Critical Medical Humanities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6), 16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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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7 00:41

초기 감리교회의 성만찬 독서: 메모

다음 논문에서 두 가지 사항을 메모해둔다.
박해정, “초기 한국 감리교회 성만찬 양상들: 1885-1935”, <<신학과세계>> 5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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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18:16

성인전, 성유골 독서: 메모

성인전은 보편적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특수한 사실을 희생하여 쓰여진 글.

성인전의 내용이 오늘날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근접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중세 성인전 작가가 성인 전기를 집필한 목적은 성인의 인격이나 개성에 관한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말해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모든 시대 모든 성인에게 공통되는 성스러움의 보편적인 특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예증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예증이 성인의 생애와 죽음의 독특한 점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시되었기 때문에 성인의 보편적 특징을 예증하는 본보기와 일화들은 특정 성인의 생애에서 반드시 따올 필요가 없다.……성인전은 특정 사실보다 본원적 진리를 우선시하는 성인의 정형화된 세계관, 즉 다른 성인전에서 조금씩 따온 ‘상투적 정형들’(topoi)로 이뤄진 세계관을 담고 있다.
패트릭 J. 기어리, 『거룩한 도둑질: 중세 성유골 도둑 이야기』, 유희수 옮김 (길, 2010), 33.

성유골(relics)은 사람들 사이에 살아 있는 존재.

중세 전기 사람들은 성유골을 살아 있는 존재로, 아니 그것에 도움을 간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했다.……‘유골을 통해 드러난 성인의 권능’이니 ‘영적 실재의 물리적 표상으로서의 성유골’이니 하는 추상적 관념은 성유골이 무엇인가에 대한 중세인의 개념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성유골은 사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계속 살고 있는 성인 그 자체다.
패트릭 J. 기어리, 『거룩한 도둑질: 중세 성유골 도둑 이야기』, 유희수 옮김 (길, 2010),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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