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9 01:42

종교학 성공담? 종교학공부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정보는 많지만 건질 것은 많지 않은 책이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인문학이 어떻게 그들의 성공에 기여했는가?)은 조금 언급된 내용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핵심에 대한 취재가 잘 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종교학 사례가 책의 1장에 조금 나오는데 그친 아쉬움도 있다.(사실 내가 책을 산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는데). 종교학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종교학 전공자 마이클은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분야의 일을 전반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인문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한다. 그는 2학년 때 비교종교학 수업에서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 자신을 강타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취직한 이유는 프로그램 입문 과정 수업을 하나 들었던 덕분이다. 그는 졸업 이후 신학대학원을 다니다 그만두고, 우연히 얻은 직장에서 주소 라벨을 관리하다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후 어셈블리어를 공부하고 컴퓨터 회사에 입사한다. 그러다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작은 기업을 창업한다...

2. 1974년에 졸업한 게리의 사례. 그는 유교사상에 관한 논문을 쓰고 낮은 학점을 받은 적이 있다. 몇 달 동안 중국 역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후에야 사상을 형성한 맥락을 이해하고 왜 낮은 학점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미친 짓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훈련은 나중에 정치 활동과 직장 업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책에서 열 명 넘게 등장하는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 성공담은 비슷하다. 저자가 피상적인 정보만 제공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인문학 덕분에 성공했다기보다는 인문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종교학(인문학)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거듭해서 나오는 말은 인문학이 이들에게 낯선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었다는 것이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들이 취업한 첫 번째 이유는 이들이 그나마 스탠퍼드를 나왔기 때문이고(어렵게나마 취업한 것은 동문의 도움이 컸고, 학교가 실리콘 밸리 근처에 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인문학"만" 한 것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컴퓨터 수업도 들었기 때문이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인문학이 낯선 분야 개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문학이 실생활과는 먼 뻘짓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책의 성공담은 아이티산업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것이 많고 지금처럼 분야가 확립된 이후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인문학 중에서도 가장 뻘짓인 종교학이야말로 4차산업시대를 대비한 학문이라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군대에서 한 삽질이 살아가는 데 통찰을 주었다는 위안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스탠퍼드 졸업자들도 문송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만 확인한 책이었다.


2018/11/22 13:29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종교적 발언 독서: 메모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주술적 치료를 거부하고 합리적 의학을 제창하였지만, 그들에게 현대 과학의 태도를 지나치게 뒤집어씌우면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합리성을 추구하였지만 반종교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것은 새로운 종교적 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전집에 나온 인상적인 내용으로, 다음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반덕진, <<히포크라테스의 발견>>(휴머니스트, 2005).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시작은 이렇다. 그들이 신을 거명한 것은 면피용이거나 관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아클레피오스 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다.

“나는 아폴론 신, 아스클레피오스,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 파나케이아,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을 두고 그들을 나의 증인으로 삼아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계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202)

종교적 치유를 거부하고 합리적 의학을 주장한 내용. 그런데 ‘합리적 의학’에는 당대의 젠더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여자들은 예언자들의 권유로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많은 봉헌물, 특히 매우 값비싼 의상을 바쳤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완전히 속은 것이다. 혈액의 흐름만 원활하다면 이 질병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병에 걸린 소녀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결혼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임신하면 좋아지기 때문이다.”(277)

모든 질병은 신적이라는 선언은 엄숙하다. 다만 여기서 신은 변덕스러운 성격의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해당하는 더 발달한 개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의학은 새로운 신론에 바탕을 둔다. 

“어떤 질병도 다른 질병보다 더 신적이거나 인간적일 수 없다. 모든 질병은 비슷하며 모두 신적이다. 각 질병은 각각의 본성이 있으며, 어떤 질병도 자연적 원인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294)

의사의 철학적(인문학적) 자질을 강조하는 아래 내용에도 새로운 종교론이 명확히 표현된다. 미신의 탈피와 탁월한 신관!

“철학자인 의사는 신과 같다. 지혜와 의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사실 의학은 지혜에 필요한 모든 자질들을 내포하고 있다. 의학은 공정성, 겸손함, 신중함, 건전한 사고, 판단력, 평온함, 단호함, 순수함, 정중한 언어……미신의 탈피, 탁월한 신성을 가지고 있다.”(338)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알려진 말의 원래 맥락.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기회는 쏜살같이 지나가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339)


2018/11/14 01:05

예루살렘에 중첩된 성스러운 폭력 독서: 익힘


<예루살렘 광기>는 종교와 폭력의 근원적 관계라는 저자 필생에 걸친 물음이 낳은 묵직한 책이다. 희생제의적 폭력이 종교의 근저에 놓여 있다는 르네 지라르의 종교 이론이 종교사를 이해하는데 이렇게 절실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통해 납득될 수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기독교 변증으로 가버리는) 원래의 이론가 지라르보다 오히려 저자 제임스 캐럴의 입장이 더 깊이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저자는 성서 전체가 폭력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장에서 태어나다시피 한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폭력을 억제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읽어낸다. 이 문제로 평생을 고민한 깊이가 담긴 통찰이다. 
꽤 두꺼운 책이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아우르며 다루기 때문에 범위가 넓지만, 저자의 입장에서는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이다. 밀도 있는 서술이 많다. 카렌 암스트롱, 레자 아슬란, 그리고 이번에 제임스 캐럴의 훌륭한 저서를 만나면서, 대학교수로 있는 종교학자는 아니지만 그 못지 않은 수준을 갖춘 ‘전문 저술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은 결코 아마추어가 아니다.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전문적인 역량을 집중하여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길이 있음을 이들에게 배웠다.




2018/11/10 01:12

서울시내 답사(1) 돌아다니다가

2018년 11월 3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답사에서 들린 서울 시내의 종교시설들(1)
종묘, 천도교 중앙대교당,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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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0 01:10

서울시내 답사(2) 돌아다니다가

2018년 11월 3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답사에서 들린 서울 시내의 종교시설들(2)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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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0 00:04

서울시내 답사(3) 돌아다니다가

2018년 11월 3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답사에서 들린 서울 시내의 종교시설들(3)
정동 덕수궁 주변에 빼곡히 들어찬 기독교 답사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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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23:56

종교적/세속적 물질 경험 독서: 메모

현대인과 종교적 인간의 물질 경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엘리아데는 재치 있게 ‘communion’(교감/성만찬)을 사용한다.

현대인들은 물질을 다루면서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기껏해야 미적인 경험을 얻는 정도이다. 그는 ‘자연 현상’으로만 물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시의 종교 체험과 현대의 ‘자연 현상’ 경험을 갈라놓는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빵과 포도주라는 성만찬의 요소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물질’로 확장되는 교감(communion)을 상상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미르체아 엘리아데,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이재실 옮김(문학동네, 1999), 146-147, 번역 수정)

엘리아데의 패기 넘치는 지적. 그는 현대인과 종교인의 단절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이 부분에서는 살짝 (변형된) 연속성을 주장한다. 현대 과학기술이 성취한 것 안에는 연금술사들이 꾸었던 천년의 꿈이 포함되어 있다고...

자연의 완성과 속죄라는 구제론적 신화는 자연 전체를 ‘변환’시키려는, 즉 자연을 ‘에너지’로 변형시키려는 산업사회의 비장한 계획 속에 숨겨진 채로 살아남아 있다... 따라서 문화사적 차원에서라면 시간을 대체하려는 욕구에서 볼 때 연금술사들은 현대사회의 관념체계가 지닌 본질을 예견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186-189)


2018/10/26 21:08

밋밋해지는 경험 독서: 메모

현대 사회에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글이다. 저자는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경험을 획일화시키는 자본주의적 기획을 극단적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은 우리의 경험이 균질화, 동일화, 밋밋해짐 등이다. 이 경향은 물론 종교적 경험과 반대된다. 엘리아데가 말한 ‘종교적 인간’은 균질화된 시간과 공간을 비균질화함으로써 의미를 얻는 존재이다. 정말로 현대인의 경험이 평평해지는 것이 추세라면, 종교적 인간은 평평해진 경험 구석에 국물처럼 잔존해 있는 추억과 같은 쓸쓸한 존재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밋밋함에 저항하는 동력이 종교에서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이런 우울한 전망에 대한 반론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일반화된 동일성은...차이의 감소나 제거를 통해서, 즉 오늘날 대부분의 제도적 맥락에서 효과적으로 또는 성공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달성된 것이다. 그리하여...거의 모든 곳에서 어떤 새로운 밋밋함blandness이 확산된다.(94-95)
조너선 크레리, <<24/7: 잠의 종말>>(문학동네, 2014)


2018/10/10 18:03

신정론과 관련 영화 목록 업데이트 서랍1: 문서

하느님의 올바름을 묻는 요즘 영화들

위의 링크는 이번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에 실은 글이다. 요즘 새로 공부한 내용이 없다보니 평소 강의 때 하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 썼다. 짧은 분량의 글이라 몇 편의 영화만 그것도 해당 장면만 불친절하게 언급해서 줄거리를 모르는 독자는 좀 안 와닿을 수도 있다. 더 다룰만한 영화도 많은데 분량 때문에 생략했다. 깊이 있게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신정론 주제를 건드리는 영화가 많다는 것은 기성 종교에 대한 불신의 태도가 늘고 있는 요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주목할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2018/10/02 14:58

기적을 쟁취하려는 경쟁사회 기독교세계

1. <루르드(Lourdes, 2009)>는 제목 그대로 프랑스의 유명한 성지 루르드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우리나라에서는 대구 성모당이 이곳을 본떠 만들어졌다.) 전신불수인 주인공이 루르드에서 기적적으로 치유 받아 몸을 움직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느님의 기적을 찬양하는 전형적인 종교영화이다. 그래서 나도 심드렁하게 보고 있었는데, 갈수록 영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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