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3 02:47

매럿 이전과 이후의 종교학사 독서: 메모

매럿에 대한 한 논문 소개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매럿은 종교학사에서 거의 잊혀져가는 학자에 가깝다. 그런데 키펜베르크는 매럿이 전애니미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시점(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을 종교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지적한다. 굉장한 통찰이다!

20세19세기 종교학은 원시종교를 통한 종교 기원의 탐구가 유행했던 시기이다. 물론 그 시기의 종교 연구도 ‘야만인’의 종교를 문명사회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끌여들였다는 점에서, ‘그들’과 ‘우리(서양인)’ 간의 연속성 상에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해의 진전을 평가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야만인은 야만이고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비슷한 부분은 고대의 ‘흔적’ 혹은 ‘잔존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시기 원시종교에 대한 연구에는 야만인과의 거리는 여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20세기 넘어와서 매럿 이후 원시종교라는 자료의 성격은 복잡해졌다. ‘원시’를 언급하는 것은 실존하는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라기보다는 인간의 종교적 심성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프로이트나 뒤르케임에게 원시종교는 인류의 심리적 구조라든지 사회의 기본적 형태를 밝히기 위한 자료로 사용된다. 이전의 순진한 접근은 이제 프레이저와 같은 학자에서나 볼 수 있었다.
키펜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교사의 모든 현상에 존재하는 공통된 형태를 확인함으로써, 매럿과 그를 지지한 학자들은 기본 구조의 분화로 인식되는 구분들로서 종교사의 사실들을 기술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그래서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이 체계적인 전환에 의해, 종교사를 서술하는 방식이 영원히 결정되었다. 잔류물(survival)에 대한 추구는 끝났다. 종교사의 자료들은……인간 정신과 사회생활에 대한 통찰을 열어주는 것이 되었다.
[키펜베르크(Hans G. Kippenberg), <<근대에서 종교학의 발견하기(Discovering Religious History in the Modern Age)>>(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135.]

키펜베르크는 종교학자들의 ‘만장일치’를 말한다. 종교학사는 매럿 이전과 매럿 이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종교학자들이 ‘원시’를 논하는 방식에는 매럿의 전애니미즘, 마나 이론의 영향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엘리아데가 논하는 ‘고대인’, 피상적인 독자들이 현대인의 내면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옛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오해하는(학생들의 엘리아데에 대한 오해를 참고할 것) 바로 그 개념 사용은 바로 매럿의 논의 전환에 의해 예비된 것이었다.

종교의 씨앗이 힘에 대한 경험이라는 생각은 나탄 죄더블롬, 루돌프 오토, 게라르두스 판데르 레이우에 의해 종교 이론으로 받아들여졌고, 막스 베버와 에밀 뒤르케임이 이 생각을 인용하였다. 1900년 이후로는 종교를 분석하는 모든 중요한 사조(思潮)들에서 매럿의 전애니미즘을 수용하였다.……학자들의 이와 같은 만장일치는 전애니미즘의 근거가 다소 박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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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학 벌레 : 귀신과 하느님은 한뿌리 2010-05-25 03:11:49 #

    ... 는 판 데르 레이우나 엘리아데 같은 주요 이론가들이 선배들의 ‘원시종교’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이론에 어떻게 통합하였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매럿에 주목한 이유 역시 원시종교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이론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 학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루돌프 오토의 &lt;&lt;성 ... more

덧글

  • 타지마할 2009/09/10 03:33 # 삭제 답글

    ㅎㅎㅎ
    <<종교의 씨앗이 힘에 대한 경험이라>>는 울 방쌤님의 표현은 참 좋은 지적이십네다.

    전 요즈음 우연히 교보문고를 지나다가 발견한 <<우주뱀=DNA>>라는 "샤머니즘과 분자생물학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는 당시의 학자들이 종교를 연구하는 자세에 대한 << ‘야만인’의 종교를 문명사회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끌여들였다>>는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 있습네다. 이 책의 저자인 Jeremy Narby는 초기 인류학자인 Edward Tylor로부터 시작된 소위 '야만인' 내지는 '원시인'들의 삶을 연구하는 자세에 대해 비판합니다. <<비일관성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가?>>라면서 말이지요. (이 비판의 대상에 C.G. Jung도 포함되지만서도...)

    이와 더불어 그는 후기 구조주의 연구자들의 좌절도 같이 지적합니다.
    <<인류학의 연구대상>>이자 <<역사의 바깥에 살던 '원시인'들이 태양 아래 눈처럼 증발하기 시작>>했다는 표현과 아울러 그는 Pierre Bourdieu의 <<객관주의는 그것이 객관화하는 관계를 객관화하지 못한다.>>는 문장을 인용합네다.

    자신들이 몸소 경험하지 못한 영적인 현상들을 그저 야만인의 행위 또는 정신병, 히스테리 증 정도로 몰아 부치는 행위는 객관성과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자들에게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은 연구 자세와 태도라 생각합네다.

    울방쌤님께서 말씀하신 <<종교의 씨앗>>인 <<힘에 대한 경험>>이 연구자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육화되어 제 3의 눈을 획득할 수 있게 되기를... 물론 북구의 신 Odin처럼 자신을 <<人身供犧>> 해야만 가능할 테지만...
    ^^**!!!
  • 房家 2009/09/10 20:13 #

    제목만 봐서는 제가 집어들지 않을 것 같은 책이지만 소개해주신 내용은 흥미롭습니다.
    지적해주신대로 이전 학자들의 원시인들에 대한 태도 비판, 즉 '대상과의 거리'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위의 인용문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고 느껴지고요.

    "힘에 대한 경험"이 연구자의 삶에 녹아들기! 저도 이것을 위해 정진해야 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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