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8 21:03

종교개혁가들의 종교 개념 독서: 익힘

‘개신교적인 종교 개념’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전에 귀츨라프의 종교 서술을 분석하면서, 개신교적인 종교 개념이 한국에 처음으로 적용되었다고 이야기할 때부터 품었던 의문이다. 말로는 쉽게 개신교적이라고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종교개혁가들까지 공부할 필요를 느꼈던 것. 해리슨의 다음 책에서 해당되는 부분을 정리하고 찾아보았다.
Peter Harrison, <<'Religion' and the religions in the English Enlightenmen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이 주제에 도움이 되는 다른 글로는 다음을 참고할 것.
J. Samuel Preus, “Zwingli, Calvin and the Origin of Religion,” <<Church History>> 46-2 (Jun., 1977): 186-202. 파일: Preus_Zwingli_Calvin_Origin_of_Religion.pdf

종교개혁가들은 하느님에 대한 자연지식과 계시지식(즉, 자연종교natural religion와 계시종교revealed religion)의 대립을 강조한다. 이렇게 자연과 계시를 대조한 것은 당시 사용되던 ‘자연’의 의미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의 의미를 따른 것이다. 즉, “자연 질서는 초자연적 질서에 반대된다. 이러한 도식에서 자연종교는 인간의 죄의 결과이며 계시된, 즉 초자연적인 기반을 가진 종교에 반대되는 것이다.”(6)

칼뱅은 자연지식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마음에 의해 타락한 것이라고 본다.

바울이 ‘하느님을 알만한 일이 세계 창조에 의해 환히 드러나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러한 드러남이 인간의 지혜(wit)에 의해 이해되는 것이라는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로마서> 1:19) 그와 반대로, 바울은 ‘하느님을 알만한 일’은 우리가 핑계를 댈 수 없게끔 하는 것 이외의 효과는 없음을 보여준다.(<사도행전> 17:27)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 by Henry Beveridge, 2 vols. (London: James Clark and Co., 1962), I.v (I, 62).]

하느님의 계시를 통하지 않은 자연종교는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언급,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가 나온다.(No salvation out of the Church.[Calvin, <<Institutes>>, IV.i.4.]) 이 입장은 다음 글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구세주께서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요한복음> 4:22)라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대답하신 것을 더 생각해보자. 그분은 이 말을 통해 거짓에 찬 모든 이방 종교를 공격하는 동시에 그 이유를 들었다. 즉 율법 아래에서 선택된 사람들만 구속자가 약속되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바쳐지지 않은 예배는 하느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alvin, <<Institutes>>, II.vi (I. 293).]


루터는 칼뱅에 비해 더 많은 논쟁을 겪었고 다른 종교에 대한 언급들도 더 구체적이다. 그런데 다른 종교들을 비판하는 와중에 루터는 종교들의 공통된 성향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모든 종교들이 동일한 길을 추구한다는, 변형된 다원주의 논리를 볼 수 있다.

유대인들, 터키인들, 교황 무리들, 과격주의자들이 모든 곳에 많이 존재한다.……그들이 동일한 과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 길을, 다른 누군가는 저 길을 택해서 그 결과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동일한 의도와 궁극 목표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어찌 해서든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픈 것이다.[<<Luther's Works>>, 47, 175, 17. Harrison, <<'Religion' and the religions>>, 8에서 재인용.]

루터가 종교간 비교의 논리에 도입한 다른 요소로는 ‘이교교황주의’(paganopapism)에 대한 비판이 있다. 유럽 교회의 교파 논쟁이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 모델로 사용되게 된 것. 해리스는 종교개혁가들의 논의가 종교 이론에 끼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종교개혁은 17세기 신학 논쟁의 두드러진 초점이 되었던 종교 다원주의라는  조건을 설정하였고, 동시에 종교 형태들이 다루어지는 모델을 제공하였다. 모델의 제공은 첫째, 다른 신앙들을 단순히 자연종교의 다른 현현으로 제시함으로써, 둘째, 비기독교 ‘종교들’에 기독교권 내부의 교권 다툼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이루어졌다.(Harrison, <<'Religion' and the religions>>, 9)


덧글

  • 권최 2009/09/09 02:33 # 삭제 답글

    오빠 난, 저번부터 그랬지만 positive religion이라는 개념이 잘 안 들어와.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로버트슨 스미스가 positive religion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revealed religion인데, 당최 positive가 뭐란 말인가? (니가 언니들에게 날 씹었다지? 다 전해들었다....... 걱정 돼?)
  • 房家 2009/09/09 17:22 #

    개념이 어렵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영어 'positive'가 쉽게 번역되지 않아서 문제겠지.
    내 생각엔 예언자들의 쇄신을 통해 생겨난 종교인 만큼, 여기서 'positive'의 뜻은 영어로는 "morally good"에 해당할 것 같고 우리말로는 "적극적"이 가깝지 않을까? '긍정'보다는 '적극'이 나을 것 같고 '절대'는 다른 뜻이 되어버리니... 우리말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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