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7 03:29

종교 개념의 세번째 영역 종교학공부

얼마 전에 피터 바이어(Peter Beyer)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구적인 종교 개념이 비서구사회에 적용된 과정을 개괄하는 강연이었는데 나에게 너무 익숙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다소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그가 청중들의 수준을 다소 낮게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돌같이 단단한 논의 전개는 인상적이었지만, 내용은 다소 평범해서, 도대체 그의 대표적인 이론 작업인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논의가 종교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회의만 느낀 채 강연장을 떠났었다.
오늘 종교 개념에 대한 다음 논문을 읽고서 그의 학자로서의 저력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 종교학자들의 종교개념 논쟁을 깊이 있게 정리하고 자신의 대안도 설득력 있게 제시한 글이다. 그의 대표작에 해당하는 글은 아니겠으나 그의 정연한 논리에서 배울 점이 많은 글. 내가 그에 대해 가진 생각이 ‘짧았음’을 느끼게 되었다.
Peter Beyer, "Conceptions of Religion: On Distinguishing Scientific, Theological, And" Official" Meanings," <<Social Compass>> 50-2 (2003): 141. 파일: Beyer_Conception_religion.pdf

바이어는 종교 개념에 대한 논의들을 둘로 분류한다.
1) 신학적인 종교 개념. 이 논의의 고전인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쓴 윌프레드 스미스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 스미스는 종교 개념의 불만족성을 이야기하고 ‘신앙’(faith)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는데, ‘불순한 종교’를 버리고 ‘순수한 신앙’을 지향하는 그의 태도에 신학이 함축되어 있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2) 다른 하나는 학문적인 종교 개념. 다소의 견해차는 존재하지만, 맥커천, 치데스터, 아사드, 피츠제럴드 등 종교의 정치사회적인 맥락을 강조하는 최근의 비평적 학자들의 입장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입장이 두드러진 것은 “종교만을 위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종교는 오직 학자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한 조너선 스미스일 것이다. 학문적 기획의 맥락에서 논의되는 종교 개념이다.


바이어가 주장하는 것은 신학적 개념과 학문적 개념의 구분 외에 현실적인 종교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이론적 목적을 위해 정의하는 종교 개념도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와는 별도로 ‘보통사람들이 일컫는 범주’(folk category)로서의 종교 개념의 층위를 분리할 것을 제안한다.
3)그는 이것을 ‘공공의’(official) 종교 개념이라고 부른다. 여러 국가들의 법률 체계에서 다루어지는 종교, 정부, 법정, 매스 미디어, 교육 기관에서 다루어지는 종교를 말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종교는 법적인, 행정적인 맥락에서 규정되는 종교라는 것.


이 제안은 종교 개념의 현실적인 작용의 문제를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학자들의 책속의 논의와 구분되면서도, 또 구분되기 때문에 학술적 논의를 도움되는 방향으로 참고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의 영역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티사 웬거는 미국 뉴멕시코주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자신의 전통적인 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전통을 ‘종교’로 명명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미국 정부가 전통 춤을 없애는 정책을 펴자, 원주민들은 이전까지는 풍습(custom)으로 분류되었던 자신의 전통을 종교로 명명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종교가 됨으로써, 그들의 전통은 미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 의거하여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Wenger, Tisa, ""We Are Guaranteed Freedom": Pueblo Indians and the Category of Religion in the 1920s," <<History of Religions>> 45-2 (2005): 89-113. 파일:Wenger_Pueblo_and_Religion.pdf] 이러한 종교 개념의 전략적 사용은 공공의 종교 개념 영역에서의 일로 잘 이해될 수 있다.
다른 예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무교/무속이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특히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미신 취급을 받았던 예도 공공의 영역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전씨 아주머니 이야기) 전에 내가 종교 개념에 대해 쓴 어설픈 논문에서는, 논문을 여는 부분에서는 공공의 종교 개념에 대한 사례들을 늘어놓고, 본문에서는 학문적 개념에 대한 고민을 전개했다.(덧씌워진 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지금 생각해보니 바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 영역을 구분한다면 좀 더 논의가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글

  • 2011/02/26 12: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房家 2011/02/26 15:02 #

    오호 고마워요. 학회 회원이라.. 근사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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