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3 02:24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신변잡기

때론 짙타를 받기도 하지만, 나의 지론은 ‘사랑=소유욕’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전제를 깔고 있는 모든 연애 담론과 실천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 나에게 <<향연>>의 그리스 현인이 펼치는 사랑론이 좀 뜻밖의 것이어서 간단한 기록을 남긴다. 
에로스(사랑)에 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눈 후 책의 중간쯤부터 소크라테스가 끼어들어 자신 특유의 논리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기 시작한다.


(1)여기서 그가 대뜸 던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에로스는 특정 대상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랑하는 것인가?” 
(2)문답의 결과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에로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바로 그것을 욕구한다.”고 할 수 있다.
(3)“에로스는 자신이 욕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하면서 그것을 욕구하고 사랑한다.”
(4)“결국 자신이 갖고 있지 않으나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 바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만 욕망과 사랑은 존재한다.”
[플라톤, 박희영 옮김, <<향연: 사랑에 관하여>>(문학과지성사, 2003), 108-14.]

처음부터 사랑은 한 주체가 상대방을 대상화하여 욕구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상대방과의 상호관계의 문제는 고려되지 않으며 오직 주는 쪽에서의 문제일 뿐이다. 서양 전통에서 주체와 대상간의 관계가 이렇게 일방적인 것임을,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한참 연구주체와 연구대상의 관계를 논하는 논문을 쓴 뒤라, 주체-대상이 이처럼 살벌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짝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 노인네의 사랑론에는 상호적인 교감은 전혀 안중에 없다. 사랑은 서로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나의 낭만적인 견해를 사정없이 깨는, 자신에 결여된 것을 욕망하는 이 사랑에는 분명 아픈 경험의 페이소스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예상하게 된다. 이것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 대비되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의 감성이다.

1982년에 해오라기는 쓰디쓴 정서를 바탕으로 그렇게 노래했다.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지 혼자 남았다고 느껴질 때
추억을 생각하라 그랬지 누구나 외로운 거라 하면서

그리고 이런 말도 했었지 지난날이 자꾸 떠오르면
애쓰며 잊으려 하지 말랬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오로지 주려고만 하랬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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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지나다가 2009/11/07 23:59 # 삭제 답글

    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저 노래가 85년인가요? 그 이전인 것 같은데요... 제가 85년 보다 약간 이전 학번인데요, 1학년 때 과모임에서 저 노래를 하다가 몇몇 남학생들이 "받"을 "박"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고 슬글슬금 모두가 합창하던 기억, 그리고 여학생들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있어서요. ^^
  • 房家 2009/11/08 00:50 #

    글 올릴 때 간단히 검색하고 올린 것은 1985년 해오라기 독집 앨범에 실린 것이었는데,
    다시 알아보니 이 노래는 1982년도 앨범인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에 수록이 되어 있군요. 이 앨범엔 정광태, 신형원 등도 참여했군요.

    1982년에 옴니버스 앨범에 수록해서 알려진 노래를 1985년에 독집 앨범을 낼 때 실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본문의 년도는 1982년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권최 2009/11/10 17:14 # 삭제 답글

    오빠가 상호교감에 대해 할 말이 있어? 오빠가 사랑하는 건 '죽은 사람들'이자나. 푸하하하.
    그런데 난데없이 '향연'은 왜 읽었어? 하긴 난 최근에 난데없이 '사랑의 단상'을 여러 번 읽었어. 사랑의 대상이란 어쩌면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전에 바르트를 읽을 땐 신경쓰지 않던 구절인데 이번엔 왠지 좀 납득이 갔던 것 중 하나는, 사랑이라는 담론은 아주 우연하고도 하찮은 기회에 다가오는 언어의 '번득임'으로만 존재한다는 거였어. 아~ 그건 그렇고, 정말 비슷하지 않아? 사랑과 종교 말야. ㅋ
  • 房家 2009/11/10 21:11 #

    향연을 읽어보니 철학책으로 읽기에는 아깝다는 느낌이 들어.
    뭐라해도 이건 무당에게 배운 사랑 이야기니까.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은... 별로 쓰고 싶진 않았는데, 글 전개하다 보니 마지못해 집어넣은 것.
    내 생각을 고집할 이유는 없어.
    정녕 그게 별 거 아닌(아니 반응이 없기 때문에 별 거인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갈망 중에 생겨나는 것이라면, 종교와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런 얘기는 종교를 연구할 수 있다는 나의 자신감을 깎아먹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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