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5 19:57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종교학입니다 독서: 익힘

오래 전에 작업했던 번역 원고가 여러 선생님들의 수고 끝에 출판되었다.(출판이 물 건너갔다고 생각해서 원고의 일부를 블로그에 올려놓기도 했다: 빈 무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년 전에 하청 받아 작업해놓았을 뿐 이번에 책으로 나올 때 신경도 쓰지 못하였는데, 내 이름이 번역자로 올라가 있어 나도 놀랐다. 번역자가 여러 명이고, 내가 번역한 분량은 4분의 1정도이고 끝까지 책임진 것도 아닌데 어부지리로 공역자가 되었다. 송구스럽다.

대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전에는 하청 받은 원고만 번역했기 때문에 나도 출판된 책을 받아보고서야 책 전체를 처음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또 대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출판된 책을 보니까 이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상당히 좋은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역시 내가 할 소리는 못 되지만, 내가 번역한 글들[크로산, 로버트 밀러, 마커스 보그의 글]이 책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도 전체를 살펴보고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쑥스럽지만 광고글을 한 편 올린다. 이 책은 선배가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내가 보기엔 출판시장에서 묻힐 가능성이 95% 이상이다. (저자가 많은 책이라 혼란스럽지 않도록 더 잘 편집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지만, 이 책은 내가 본 이 출판사 책 중 가장 편집이 잘 되었으므로 이 정도면 만족한다.)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광고하는 게 크게 꺼려지지는 않는다.

진짜 예수는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 10점
폴 코팬 지음, 방원일 외 옮김/누멘

이 책은 예수의 부활이라는 핵심적인 쟁점을 놓고 복음주의 학자들과 자유주의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을 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 역사적 예수 연구서들은 한국기독교연구소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잘 소개되어 있는 편이다. 그래서 도미닉 크로산이나 마커스 보그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번역된 것의 의미는 <역자후기>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른 견해를 가진 기독교 학자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일반적 인식 사이의 간극을 자주 체험한다. 문자주의적 신앙이 강하다는 우리나라에선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런 내용이 보수적인 교인들에게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는가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기획은 바로 학문적 성과와 신앙의 충돌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고 그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책에서는 보수적인 입장의 크레이그와 자유주의적 입장의 크로산을 맞붙이고 다른 토론자들을 통해 논의를 보충한다. 게임 하듯이 누가 이겼다고 손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꽤 세련된 논쟁을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명확하게 확인한다. 신앙에 관련된 사항 치고는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지닌 대화가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이 논쟁은 보수적인(혹은 복음주의적인) 학자와 자유주의적인 학자 간의 토론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표현은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 식으로 좀더 세게 표현한다면, 이것은 학자들간의 논쟁으로 뭉뚱그리기보다는 신앙적 입장과 학문적 입장의 대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선명하다. 이것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스스로의 신앙을 되뇌는 신학적인 언어와 남을 인식하고서 발언하는 인식의(종교학적) 언어의 대립이 될 것이다. 이 대립이야말로 책의 논쟁의 핵심이 되리라.
그들이 나눈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짧은 대화지만 내재한 입장의 차이가 바로 드러난다. 신앙의 내용은 기독교 내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는 태도로부터 종교학을 끄집어내어 공격하는 비상한 감각의 신학자와 그것을 굳이 감추지 않으며 응대하는 크로산 사이에서 튀는 불꽃을 감상할 수 있다.

크로산: 제가 예수는 인간이면서 신이었다고 말할 때, 제가 ‘신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신앙의 행위입니다.……‘예수는 신이었다’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한 진술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말하고 있는 제가 예수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버클리: 잠깐만요, 우리는 여기에서 비교종교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저는 당신이 이런 후원을 받아가면서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군요.

크로산: ……버클리 씨, 우리는 비교종교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쪽에는 다른 종교들이 있습니다.

버클리: 아뇨, 우리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크로산: 말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폴 코팬, 유기쁨 & 방원일 옮김, <<진짜 예수는 일어나 주시겠습니까?>>(누멘, 2010), 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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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widow7 2010/03/15 22:41 # 삭제 답글

    이런 논쟁적인 책은 좀 읽혀져야 하지만, 복음주의(라고 적고 기복신앙이라 읽죠)적인 한국에서는 애초 이단 취급하고 언급조차 없죠. 이 땅에 예수가 필요한 이유는 온갖 죄악과 범죄의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죠.
  • 房家 2010/03/15 23:50 #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신앙은 미국에서 배워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쪽은 논쟁이 발달된 문화이다 보니까이런 논쟁이 이루어진다는 게 우리랑 다른 것 같아요. 우린 생각이 다른 쪽은 아예 생까고 죄악시하다보니 대화의 시도가 자라나기 어렵고 외골수 신앙이 더 심해지는 모습을 많이 보죠.
    말이라도 나누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대화의 테크닉을 길러나갈 필요가 있어요.
  • binumb 2010/03/16 00:38 # 삭제 답글

    다작의 번역자로 등극하셨네요ㅋ 새로나온 책 소개글을 진작부터 트위터로 옮겨보고 싶었는데 덕분에 해봅니다. 경축드려요ㅋ 이 책도 친필싸인 부탁드려요
  • 房家 2010/03/16 17:14 #

    예, 책만 있다면야, 고마운 일이죠.
    이 아이디는 바이넘을 '쌍으로 무딘 X'로 바꾼건가?
  • 시리 2010/03/16 13:34 # 답글

    축하해요. 내가 한달 전에 존 쉘비 스퐁 강연에 갔었다고 말했나? 일반 교회에서 그렇게 처녀 수태를 부정하고 동성애자를 포용하자는 내용의 강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생각보다 많은 200명 가까운 청중이 $50씩이나 내고 그 강연에 왔다는 것도 놀라웠어.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아직은 생각하기도 힘든 일인데...
  • 房家 2010/03/16 17:19 #

    보내준 스퐁 책은 구경했지.
    그런 이야기를 교회에서 진지하게 듣는구나... 참 미국 사람들은 어쩔 땐 단순해 보이면서도 진지할 땐 참 진지하고, 파악하기 힘든 사람이야. 하긴 난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파악이 안되긴 하지만...
  • 책벌레 2010/04/10 00:32 #

    존 쉘비 스퐁 주교..꼭 강의를 들어야 할텐데 영어도 모르고, 미국에 살지도 않으니 만날 수가 없겠군요. 그냥 책으로만 만날 수밖에요.
    한국 성공회에서였다면 반응이 크게 세 개이지 않았을까요.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으로부터 신앙적인 영향을 받은 나처럼 진보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진지하게 경청할 것이고, 교의적인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에게는 위험하게 여겨질 것이고, 대다수의 교우들은 정말 먹고 살기에 바쁜 분들이니까 관심이 없을 것이고..
  • aoatoddl 2010/03/16 17:33 # 삭제 답글

    이야....축하해요^^ 나 이책 주문했거든? 목요일날 학교가면 번역자 사인해줘요.
  • 房家 2010/03/16 17:42 #

    고맙습니다. 제가 번역자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 2010/03/16 17:5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房家 2010/03/16 19:41 #

    메일로 알려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bhang813@empal.com
  • 시리 2010/03/17 06:18 # 삭제 답글

    그런데 오빠 언제 "도시 이야기 33가지"라는 책도 썼어? 알라딘 저자 소개에 나와서 한번 봤는데, 흠, 좀...
  • 房家 2010/03/17 13:56 #

    응, 그런 게 있어요.
  • 자일 2010/03/29 16:42 # 삭제

    폴 코팬의 책에도 당근 관심이 가지만 "도시 이야기 33가지"도 궁금하네요. ^^;
  • 房家 2010/03/29 17:20 #

    예상치 못했던 지적이네요.^^
    저로서는 그리 자랑스러울 게 없는 책이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는 대로 이 책에 대한 생각을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 ametje 2010/05/25 15:59 # 삭제 답글

    존 도미닉 크로산과 마커스 보그의 주장이 '학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약학에 무지한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학문적으로 오류입니다(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니 당연히 '신앙적'일수는 없지요). 학문적으로 보인다고 학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이 대립하는 것도 아닙니다. 요즘 도올 김용옥이 신학을 당일치기로 공부한 후 도마복음에 대한 책도 내고 강의도 하고 있는데 학문적으로 오류 투성이입니다. 신학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사람은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발행한 예수 관련 책들을 읽고 자기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능통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더군요.
  • Thom Yorke 2016/03/25 23:48 # 삭제 답글

    <빈 무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를 읽다가 건너 건너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책으로 출판되었다니 사서 보아야겠네요. 번역에 감사드립니다^^
  • 房家 2016/03/26 12:25 #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재고가 많이 나가진 않았을테니 절판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 karta moje biedronka 2022/09/17 00:09 # 삭제 답글

    글 잘쓰시네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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