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8 18:18

일본의 초목불성론 독서: 메모

일본 종교에 대한 한 발표에서 듣게 된 초목성불론. 일본다운 기묘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일본 중세에는 ‘초목실개성불’(草木悉皆成佛)이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경문처럼 널리 칭해졌다. “초목이라도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의 초목성불론은 원래 중국에서 온 것이다. 중국에서 초목성불론의 주장은 공空이라는 절대적 입장에서 볼 때 중생(인간)과 초목(자연)은 동질적이며, 양자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 그래서 중생이 성불하면 초목도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붓다(깨달은 자)의 절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가 평등하게 진리 그 자체이고 거기서는 중생과 초목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초목성불론이 일본에 수용되자 미묘하게 변질되고 만다. 즉 일본에서 초목성불론은 공이나 부처의 절대입장과는 무관하게,  한 포기 한 그루의 풀이나 나무가 제각각 그 자체로 완결되어 성불하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이는 있는 그대로의 이 구체적인 현상세계 자체를 깨달음의 세계로 긍정하고 범부의 일상성을 중시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명이 있고 또 있는 모습 그대로 성불의 상태라는 것이다.
(박규태, “일본인의 생명관: 계보적 일고찰”, <마음과 생명 그리고 종교> 심포지엄 발표문)

나로서는 이 교리 변화의 과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서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그 정서를 느낄 만큼 그 세계에 들어가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분재나 정원 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만 들 뿐이다. 그 변화 과정이야 어쨌든 그 결과는 나무나 풀이 제각각 성불해 있다는 초강력 생태주의 이론이 되었으니 대중적 영향력이 상당하리라 생각된다.
기독교 초기 사상가 오리게네스는 인간뿐 아니라 만물의 구원을 암시하는 만유회복론을 주장하여 이단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쓴 원래 글, 글의 맥락, 그 논의가 후대 교회사에서 받아들여진 과정, 그리고 현대의 재조명 등을 찾아 확인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짧은 시간에 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원래 주장과 후대에 받아들인 내용 사이에는 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 알아볼 필요를 느낀다. 혹시 일본불교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변화 과정이 있다면 흥미로운 주제가 되리라.
오늘 본 신문기사(조계사에서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水陸大齋)')에서는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법회를 열며, <<벽암록>>의 “천지가 모두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은 모두 나와 한 몸이다”라는 말씀을 인용했다고 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운동의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선어록인 <<벽암록>>에서 나오는 말씀이 원래는 어떤 맥락이었을까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좋은 말씀을 들어도 의심부터 드니 이것이 공부하다 생긴 나쁜 버릇일 것이다.



덧글

  • Esperos 2010/04/20 00:05 # 답글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는 나중에는 아마테라스마저 대일여래의 화신이라고 했다지요? 혹은 법화경을 일본 신들이 일정주기로 번을 돌아 지킨다는 종파도 있었고요. 막상 이세신궁에서는 오래도록 불교를 거부하고 천대하는 전통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역설적이라 생각합니다.

    초목성불론마저 일본답게 변형되었군요.
  • 房家 2010/04/20 15:46 #

    이른바 신불습합이라고 부르는, 신도와 불교의 천여년의 공존은 일본종교사에서 이해하기가 까다로운 부분인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일본적인 정서라서 까다로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근대들어 불교와의 단절을 선언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 신사와 절이 함께 있죠. 현재는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는 둘의 관계를 알면 일본종교를 좀 알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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