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3 20:38

귀신과 하느님은 한뿌리 독서: 메모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이 집중되었던 부분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이었다.(이 대중적 감수성은 기독교적 감수성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간과 원숭이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 존재들이 발전의 연속선상에 놓인 것에 대한 생래적인 반감이었다.
19세기말~20세기초, 종교학의 초기 이론을 형성한 종교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반감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신’이나 ‘이교도’라고 불렀던 녀석들이 버젓이 종교라는 범주 안에 들어와서 기독교와 연속선상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현재 관점에서 진화론은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의 차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기각된다. 그러나 당대에는 반대 이유에서 비난을 받았다. 진화론적인 이론에서는 미신들을 기독교와 감히 “연속선상”에 놓고 설명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반감 가졌던 것이다. 
그러한 반감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것은 ‘귀신’이 ‘하느님’과 연속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망자의 혼, 귀신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유일신론으로의 발달을 이야기한 것은, 기독교인에게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 못지않은 불쾌함을 야기했으리라. 



종교학이 종교진화론에서 계승한 가장 중요한 사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연속성’을 들 것이다. 이후의 종교학 논의에서는 발전의 단계라는 통한 우열의 가치평가는 배제하면서도, 원시종교와 고등종교를 연속선상에 놓는 사유는 받아들였다. 나는 판 데르 레이우나 엘리아데 같은 주요 이론가들이 선배들의 ‘원시종교’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이론에 어떻게 통합하였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매럿에 주목한 이유 역시 원시종교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이론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 학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에서도 귀신 이야기가 종교적 감정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게 등장한다. 귀신과 신의 연속성을 긍정하는 것이 논의의 중요한 축이다.
어떤 켕기는 것(uncanny)에 대한 느낌 가운데서 종교적 두려움은 처음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포’와 그것의 ‘거칠은’ 형태들, 그리고 언젠가 태곳적 인간의 마음속에 생소하고 새롭게 나타난 ‘켕기는 것’에 대한 느낌으로부터 모든 종교사의 발전은 시작되었으며, 이 새로운 출발과 더불어 인류에게 하나의 신기원이 수립된 것이다. ‘귀신’들과 ‘신’들이 이 뿌리에서 나왔고 ‘신화적 감각’과 ‘환상’의 여타 산물들도 이 감정이 객체화되는 가운데서 산출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모든 종교사적 과정의 원초적이며 질적으로 고유한, 그리고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출될 수 없는 기본적 요소요 기본적 본능으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모든 종교 발생의 이론들, 예를 들어 정령숭배론이나 주술이론이라 혹은 민속심리적 설명들은 처음부터 그릇된 길을 걷게 되며 진짜 문제를 지나쳐 버리게 된다.
[루돌프 오토, 길희성 옮김, <<성스러움의 의미>>(분도출판사, 1987), 50-51.]
귀신을 접할 때의 스멀스멀한 느낌, 오토는 그것을 종교의 기본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귀신에 대한 공포’의 형태로서 나타나는 누멘적 공포는 그것의 소박하고 거칠은 첫 번째 술렁임으로서의 이른바 ‘원시인들의 종교’가 지닌 본질적인 특징이다.”(52) 이러한 기본적인 감성이 다른 종교들과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강조된다. “도깨비나 유령 이야기들의 ‘무시무시함’이 전반적으로 높은 심성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아직도 매력과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 좋은 예라 하겠다.”(52)
누멘적인 것의 감정은 더 높은 단계들에 있어서는 비록 단지 귀신의 공포와는 다른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래도 자신의 본래의 계보와 친척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귀신 신앙이 다신 신앙으로 고양된 지 오래다 할지라도 제신들은 언제나 누멘으로서 어떤 ‘으스스함’, 즉 ‘켕기며 공포적인’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 성격은 ‘숭고성’에 의하여 완성되거나 도식화되게 된다. 이러한 요소는 최고의 단계인 순수한 하느님 신앙의 단계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질상 사라질 수도 없다.(53)
오토가 하느님 신앙에 남아 있는 귀신과의 연속성의 예로 드는 것은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야훼의 진노와 질투 등이다.

하지만 오토가 원시종교에 대한 설명을 자신의 이론체계 내에 흡수하면서 변형시킨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오토의 일관된 주장은 종교적인 것이 고유한sui generis 현상이라는 것, 철저하게 외부에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가 윌리엄 제임스가 한 말 “저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자기 식으로 끼워 맞추어 인용한 것(44-45)은 자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귀신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도 그것이 외적인 것이라는 것이 강조된다. 그에 따르면 켕기는 것은 “여타의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영역에서는 주어지지 않으며 자연적인 것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범주”이다. 더 나아가 “오싹함이란 어떤 초자연적인 것이다.”(52) 그에 따르면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감정’인 것이다. 

핑백

  • 종교학 벌레 : 제임스의 논의: 귀신에서 하느님으로 2010-05-25 23:09:19 #

    ... 지 않는 존재의 실재성”The Reality of the Unseen이다. 그는 여기서 귀신 이야기와 하느님에 대한 감각을 연속선상에 놓고 논의를 진행한다.(이것은 오토의 논의보다 앞선 것이다.) 그는 별다른 껄끄러운 논의 없이 천연덕스럽게 사례들을 이어간다.(62-75) 사례와 사례들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귀신 이야기는 하느님 ... more

덧글

  • Esperos 2010/05/23 21:33 # 답글

    진화론이라는 개념에서 영향받은 바가 있겠지만, 얼기설기한 개념 수준에서만 그렇겠지요. 진화론을 두고 공격하여 '인이 원숭이에서 나왔다'라고 했지만, 인간이 아닌 것에서 인간이 되었다는 것, 인간이라는 구분이 신 앞에서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인 구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서 온 거부감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합니다. 게다가 자연선택설이란 '신의 섭리' 같은 개념을 무시하는 것으로 느꼈겠지요.

    저는 이러한 종교학 논의들이 어떤 자기 가설을 연역적 명제로 간주하고 설을 푸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종교가 '자연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나왔다는 이야기처럼요.
  • 房家 2010/05/23 23:27 #

    1. 진화론과 사회진화론은 유비관계에 있지 엄밀한 적용이라고 보기에 힘든 점이 많습니다. 종교진화론 역시 진화라는 아이디어를 갖고왔지 생물학적 진화론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뒷받침된 논의는 아닙니다.그래서 얼기설기한 개념 수준에서 그렇다는 표현에 동의합니다.

    2. "인간이라는 구분이 신 앞에서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인 구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서 온 거부감"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3. 종교학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설'에 기초를 둘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이 때문에 (특히 종교인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도 인간에 대한 논의인 이상 "진지한" 가설 이상의 것을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교학의 영역이 사회과학과 많이 겹침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인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설을 세울 때 전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거기에 문화적 종교적 전제가 끼어들어가지 않았을까를 종교학은 계속 반성해왔고 그것이 종교학사를 이루어왔죠.
  • KIM 2010/06/11 02:20 # 삭제 답글

    이제는 "판 데르 레이우"가 맞는 표기법인가요? 외국 학자들 이름은 자꾸 바뀌어서 혼란스러워요.
  • 房家 2010/06/11 11:12 #

    이건 내가 주장하는 표기법. 현행 네덜란드 인명 표기법에 따른 것.
    아직 종교학계에서 받아들여진 표기는 아니에요. 다만 내가 작업하는 책에서는 이렇게 표기할 예정.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뉴2


일과 배움과 놀이가
채 나누어지지 않는,
두루뭉술한 공간을 꿈꾼다

주인장: 방가房家
한국기독교자료: 벌레2

free counters

통계 위젯 (화이트)

5855
390
856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