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7 18:27

가톨릭의 복음화 회칙 중에서 독서: 메모

1975년에 교황 바오로 6세가 발표한 회칙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의 제4부 복음화의 방법 중에서 ‘대중 신심’이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이 문서의 내용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이북 형태로 제공된다.] 박일영은 이 문서가 토속종교 내지는 민간신앙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정해주는 지침이라고 지적한다.[박일영, “그리스도인이 본 무교”, <<한국 무교와 그리스도교>>(분도출판사, 2003), 23.]


그렇다. 이 문서에는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가 세계 각지의 민간 신앙과 만난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 내용은 신학적 사변을 통해 다듬어져 있어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원래 내용과 의도를 알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비기독교 전통이 ‘타종교’라는 범주로 다루어지지 않고 ‘대중 신심’이라는 부차적인 범주로 처리되었다. 이 말에는 대중은 무지하다는 옛날식 편견이 들어있기 때문인데, 이 문서에서는 이 편견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 대중은 잘 가르쳐서 인도해야 할 존재라는. 
대상 지역을 교묘하게 보편화시킨 후에(“교회가 수 세기 동안 존재해온 지역이든 현재 세워지고 있는 지역이든”), 이 문서는 비기독교 전통을 “하느님과 신앙 추구에 관한 특별한 표현들”이라고 표현한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과 관련시킬 수 있는 내용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데, 이는 비기독교 전통을 대중 신심이라는 낯선 그릇에 넣은 뒤에 하느님이라는 체로 쳐서 남은 것만을 다루는 격이다. 이렇게 재료를 완전히 다듬은 다음에야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멘트를 날린다. “오랫동안 별로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 때로는 무시되어 왔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엔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단서를 빼놓지 않고 달아놓았다. 

이른바 대중 신심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불교의 방편설을 방불케 한다. 중생을 제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에 필요하다는 것. 이것은 “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이것은 “하느님의 심오한 속성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종교심이라고 하기보다는 ‘대중 신심’, 곧 대중의 종교라고 기꺼이 부르고자 한다”고 하였다. 종교심이라기보다는 대중 종교라는 호칭 변화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종교’라는 말의 쓰임새이다. 다른 종교 전통을 대중 신심이라는 틀로 박제화 시켜놓고 그것에 다시 종교라는 이름을 돌려주었는데, 이때의 종교는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을 지시하는 상징체계로서의 종교이다. 종교가 갖는 말뜻 중에서도 낡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종교이다.
결론은 예상할 수 있는 대로이다. 문제는 이미 어떻게 이해하느냐, 대화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우리의 방편으로 그들을 사용할 수 있느냐이다.



덧글

  • Esperos 2010/06/28 13:45 # 답글

    현대의 가톨릭 신자인 저에게는 거의 "A는 A입니다" 수준인 내용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말이지요 (____) 신앙교리성 문서 '주 예수Dominus Jesus'에서도 비슷한 관점에 의거한 경고가 나오지요. 로마 가톨릭이 '신 앞에서 진정으로 유일한 보편교회 공동체'라는 의식을 지닌 한 저 정도가 최대한의 타협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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