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9 14:10

하늘을 닮은 그대 독서: 메모

막스 뮐러에게 종교는 무한의 지각이다. 이 지각이 은유적 언어로 표현되고, 시간이 지나 그 언어가 자체로 생명을 지닌 존재로 인식될 때 신화가 형성이 된다. 다음 이야기에 이런 과정이 잘 나타난다. 그런데 그 지각이 ‘하늘’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인간이 유한 너머의 무언가에 대한 지각을 얻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일인지를 알고 나면, 우리는 인간이 산, 나무, 강, 천둥 번개, 해, 달, 하늘, 그리고 하늘 너머에서 무한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이름 위에 이름을 덧붙이며 무한을 포착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을 천둥, 빛을 가져온 자, 천둥을 휘두르는 이, 비를 주는 분, 음식과 생명의 공급자라고 부르며, 시간이 흐른 후에는 창조자, 지배자, 보호자, 왕이자 아버지, 왕 중 왕, 신 중의 신, 만물의 원인, 영원한 분, 알지 못하는 분, 알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F. Max Müller, <<Lectures on the Origin and Growth of Religion>>, 3rd ed. (London: Longmans, Green, 1901[1878]), 49-50.
막스 뮐러의 추종자들을 자연신화학파라고 부른다. 그 명칭이 그다지 적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뮐러의 글에서는 자연 중에서도 하늘의 현상을 통해서 종교의 기원을 설명한 내용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늘이 중요하다는 것,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간이 종교성을 획득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하늘이라는 것을 뉘라서 부정할 것인가? 우리나라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소개되기 이전부터 하늘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문화는 충분히 발달해 왔으니 이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당연함에서 종교학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본다. 훗날 엘리아데가 <<종교유형론>>이라는 책, 전통별로 서술하지도 않으면서도 종교의 구조를 드러내 보이는 독특한 책을 썼을 때, 그의 논의는 하늘에서 시작한다. 하늘, 해, 달, 물, 바위, 땅, 작물로 이어지는 엘리아데의 성현들의 나열에서 하늘이 첫머리에 온 역시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얼핏 느낀 막스 뮐러와 엘리아데의 연결은 사실 희미한 것이고, 학문적으로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늘을 통해 얻는 무한의 감각이 두 학자의 학문에서 갖는 중요성이 어마어마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늘은 스스로 진정 그러함으로써 무한과 초월을 보여준다. 천공(天空)은 무엇보다도 인간사의 잡다한 일과 생활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 무엇’이다. 하늘의 무한한 높이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초월성의 상징이 드러나는 것이다……하늘은 단순히 있음으로써 초월성, 힘, 변치 않음을 ‘상징한다’. 높고 무한하고 무변하고 힘이 있기에 하늘은 존재한다.(38-39)
Mircea Eliade, Rosemary Sheed (tr.),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 (New York: Sheed & Ward, 1958).

덧글

  • 개울 2010/12/03 18:39 # 삭제 답글


    막스 뮐러~
    제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약관의 나이로 막 접어들어서던 때쯤?
    종교학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낭만적 소설의 작가로 첫인사를 했던 분입니다.
    제겐 '별'의 '알퐁스 도데', '어린왕자'의 '쌩떽쥐베리'를 떠올리게 하는 분이었죠.^^*

    저를 종교학의 물가로 이끌어 준 시작은...
    구약성서의 배경이 되는 '고대근동', 달리 표현해 '서아시아'의 문명에 가졌던 관심이 출발점이었죠.
    역사와 세계사를 좋아하던 고교시절...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 대한 호기심의 연장선이기도 하구요.
    그보다 훨씬 이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희랍/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
    제가 처음 읽은 그리스신화는 어린이용이 아니라 세로쓰기 깨알같은 글씨로 된 두터운 책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아프로뒤테는 비너스, 제우스는 쥬피터 하는 등의 이름들을 맞춰가며 읽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토양 위에서 자라온 감각 때문일까요?
    칼 융의 심리학과 만나면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종교학에 대한 열정이 구체적으로 생기더랍니다.
    신학은 들어봤어도 종교학이라는 학문적 분야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던 제가
    멀치아 엘리아데를 읽게 되면서 종교학에 대한 매력을 맛보았구요.
    뒤늦게 만학도로 신학을 공부할 때 비로소 종교학을 곁눈질 하며 살펴보게 되었더랍니다.
    유교, 도교, 논어 등을 그리스도교와 연결시켜 말씀하시는 김승혜 수녀님의 책들을 무진장 좋아했지요.

    그렇게 전문적 교육을 받지 못한 채로 저 나름대로의 관심으로 제 맘대로 종교학을 즐기는 사람이 접니다.

    그런 제가 막스 뮐러를 십여년 을 훌쩍 넘겨 종교학자로서 다시 만났을 때의 감격을 이해해 주실 수 있으실랑가 몰라~

    여튼 막스뮐러와 엘리아데를 하늘이라는 주제와 연결하여 말씀해 주시는 텃치가
    "내가 얼핏 느낀 막스 뮐러와 엘리아데의 연결은 사실 희미한 것이고,
    학문적으로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비전문가요, 문외한인 제겐 무진장 와닿는 것이어서 몇 자 적으려다... 이리 되었네요. ㅋㅋㅋ...
  • 房家 2010/12/04 01:12 #

    "독일인의 사랑"을 통해 막스 뮐러를 만나는 것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검색해보니 뮐러의 종교학 책은 우리글로 한 권 소개되어 있는데
    독일인의 사랑은 40종이 넘는 해적판들이 있어 좌절했다는...^^)
    저는 그 책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살아왔는데,
    그게 오히려 감수성이 척박한 저의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울님의 종교학에 대한 관심의 여정을 살짝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이 분야의 애호가로서 갖고 계셨던 애정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덕분에 약간의 감상을 덧붙여 적어 놓은 독서 노트에 불과한 이 글이,
    개울님의 사연이 곁들여져서 그럴 듯한 글로 둔갑하는 착각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 지나다가 2010/12/05 10:20 # 삭제 답글

    그 막스 뮐러가 그 막스 뮐러였군요. ^^
  • 房家 2010/12/05 20:48 #

    그렇습니다~
  • Andy 2012/11/03 11:19 # 삭제 답글

    사실 독일인의 사랑은 일반인들의 이해와는 달리 막스뮐러의 저작이 아닙니다.
    뮐러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원고를 발견했고 그 원고를 출판한 것입니다.
    이 내용이 책 서문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아마도 뮐러의 아버지(유명한 시인이면서 문학가였죠)가 쓰신 글이 아닐까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뉴2


일과 배움과 놀이가
채 나누어지지 않는,
두루뭉술한 공간을 꿈꾼다

주인장: 방가房家
한국기독교자료: 벌레2

free counters

통계 위젯 (화이트)

4842
304
860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