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5 02:19

뒤르케임 <기본 형태> 1권 1장 메모 독서: 발제

뒤르케임 책에서 종교 정의에 관한 부분. 
Émile Durkheim, Karen E. Fields (tr.), 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 (New York: Free Press, 1995); 에밀 뒤르케임, 노치준 & 민혜숙 옮김,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민영사, 1992), 1권 1장.

1권 1장. 종교현상과 종교에 대한 정의

종교 연구에 앞서 종교 정의를 제시하는 것, 현재 연구에서는 상식화된 것이지만 그런 작업을 제대로 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뒤르케임은 당시 종교학자들이 정의의 문제에 엄밀하지 못했음을 비판하고 하나의 본을 보인다. 그의 종교 정의 작업은 종교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들을 검토하는 데서 시작한다.

Ⅰ. 종교는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Ⅰ-1. 그가 처음 지적하는 것은 종교는 초자연적인 것the supernatural에 관한 것이라는 서구 사회의 뿌리 깊은 관념이다. 이러한 선입견에 다음과 같은 당시의 대표적인 종교 정의들을 포함시켜 논의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성 이상의 어떤 존재의 편재에 대한 믿음”(스펜서) “지각할 수 없는 것을 지각하려는 노력,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노력, 무한한 것을 향한 열망”(뮐러)
초자연적이라는 인식에 대한 그의 반론은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종교사에서 매우 최근에 등장하였다.”(23/52)
“우리가 이해하는 바대로의 초자연이란 관념은 최근에 나타난 관념이다.” 
초자연적이라는 관념은 ‘자연적’이라는 관념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자연을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북미원주민 연구에서 초자연적인 종교 개념이 적용된 점에 대해 비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뒤르케임이 제기한 문제가 현재 학계에서도 의미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Ⅰ-2. 신비한 것, 비일상적인 것이 종교의 근본적인 요소라는 종교학의 설명에 대하여
초자연 개념을 비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뒤르케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종교 관념은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이고 일반적인 것을 무엇보다도 표현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신은 괴기함, 기이함, 비정상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우주의 일반적인 운행, 별의 이동, 계절의 리듬, 매년 식물의 생장, 종의 유지 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26/56)
종교는 일반적인 것에 관한 것이냐 비일상적인 것에 관한 것이냐, 이것은 종교학자의 중요한 갈림길이다. 그 갈림길에서 뒤르케임은 자신의 입장을 투명하게 밝힌 것이다. 예를 들어 누미노제 경험을 강조한 오토처럼 정반대의 선택도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선택 지점이라는 점은 조너선 스미스의 글에서 잘 표현된다. 이 글에서 스미스는 뒤르케임의 노선을 따를 것을 천명하고 있기도 하다.
종교 연구자가 직면한 가장 흥미로운 선택의 딜레마……“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 아니면 “유럽에서 매일 보는” “흔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가? 이것이 바로 종교를 인간 경험과 표현의 괴상한 범주로 상상할 것인지, 인간경험과 활동의 일상적 범주로 상상하는 것인지 사이에 생기는 긴장이기도 하다. 
내가 일관성 있게 상정해 왔던 것은 학문적인 기획으로서 종교학의 발전을 위해 가장 생산적인 쪽이 바로 일상성의 상상력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화와 같은 종교학의 자료를 훌륭하게 다룰 수 있는 방식은 다가(多價)적이고 응축되어 있는 고도의 상징 언어로서 신화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이야기”로, 그리고 평범한 담론의 부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주장은 신화나 다른 종교적 자료가 아무런 특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너선 스미스, <<종교 상상하기Imagining Religion>>, 서문에서)
요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화성인의 종교학'을 할 것이냐 '지구인의 종교학'을 할 것이냐의 갈림길이다. 내 경우에는 지구인의 종교학의 길을 가는 중이다.

Ⅱ. 종교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두 번째 선입견은 종교학 개론 수업의 최대 과제와 일치한다. 바로 기독교적 모델의 종교 정의(종교는 ~를 믿는 것이다)를 제거하는 것. 뒤르케임은 타일러의 정의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이러한 선입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분류하였다.
종교에서 신의 존재가 중심이라는 인식을 반박하기 위해 뒤르케임은 불교의 사례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Ⅲ. 성과 속
종교의 특성은 성속의 분리라고 제시. 종교학의 가장 핵심개념인 성스러움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종교현상은 믿음과 의례의 두 기본 범주로 나누어진다.”(34/67)
“세계를 성과 속이라는 두 부류로 인식하는 실재적 혹은 이념적 분류체계”(34/67) 
성스러움이 본래 정해진 대상이 아니라는 중요한 언급(엘리아데의 성현의 변증법에 해당)도 등장한다.
“성스러운 것은 단순히 신이라 정령이라고 불리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다. 바위, 나무, 샘물, 자갈, 나뭇조각, 집, 그리고 어떤 말도 성스러워질 수 있다.” “성스러운 대상의 영역은 단번에 고정될 수 없다. 그 범위는 종교별로 무한히 변화한다.”(35/67)
엘리아데의 성속 개념과 뒤르케임의 관계에 대해 조너선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뒤르케임의 이원론이 지닌 역학을 유지하면서도, 애매하고 관계의존적인 뒤르케임의 성스러움을 오토의 거룩함the Holy이라는 언어로 대체하려는 것이 엘리아데가 지닌 “전략”의 일부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조너선 스미스, <<Map Is Not Territory>>, 91(4장).)

Ⅳ. 공동체라는 요건
그는 종교 정의에 공동체라는 요건을 도입하기 위해 주술과 종교의 대립을 이용한다. 그러나 주술/종교의 대립은 이 책에서 버려져야 할 몇 안 되는 요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성스러운 세계와 그것과 세속의 관계를 동일한 방식으로 상상하기 때문에 결합된 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 그것을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 없는 종교는 없다.”(41/76-77)
“교회는 단순한 사제들의 혈맹이 아니다. 그것은 평신도와 사제를 비롯한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 도덕적 공동체이다. 주술은 일반적으로 이런 유의 공동체를 갖지 않는다.”(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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