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4 04:24

불교 전래와 토착문화 독서: 메모

매우 산뜻한 불교 개론서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에서 불교의 전래 과정에 대한 내용.(이 책의 주요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메모를 남길 생각이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가 전해질 때 토착전통을 자신의 체계 내로 복속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많은 이들이 불교가 토착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고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좀더 완벽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즉 불교가 전래된 이래, 그 이전까지 가장 높게 받들어지던 토착신들은 불교의 신으로 개종되었고, 다른 나머지 신들은 적절한 불교 의례들을 통해서 복종시키거나 파멸되어야 할 악귀 정도로 그 서열이 강등되었다. 물론 불교경전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을 그 토착신들이 자발적으로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묘사한다.[베르나르 포르, 김수정 옮김,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불교를 둘러싼 23가지 오해와 답변>>(그린비, 2011), 133.]


이런 과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차돈의 순교 이야기에 숨겨져 있기도 하다. 포르는 선명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잘 알지 못했던 사례들이라 메모해둔다.

티베트의 첫 번째 불교 군주였던 손챈 캄포는 티베트 전 지역을 뒤덮고 있던 여귀를 퇴치했다고 한다. 왕은 여귀의 몸이 열두 급소에 탑을 세움으로써 꼼짝 못하게 ‘못질’했다고 한다. 라싸에 있는 조캉 사원은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여귀의 중심부, 즉 그녀의 성기의 위치로, 조캉 사원은 이 위에 자리하고 있다.(134)

마헤슈바라는 힌두신화에서 중요 신인 시바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이다. 허나 시바는 불교에서는 악귀로 강등되었는데, 왜냐하면 시바는 자신이 모든 존재의 주재자라고 주장하며 불교로 전향하기를 거부한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의 거만함으로 인해 결국 시바는 죽음으로써 응징당했다.(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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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abbala 2011/11/04 10:49 # 삭제 답글

    우리나라 ‘삼국유사’ 이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 房家 2011/11/04 15:48 #

    정확한 말씀입니다.
    제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잘 기억하는 것은 아닌데,
    절이 창건설화 중에는 그 지역의 용(혹은 이무기)를 불법으로 다스리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삼국유사에는 불교가 토착적 신앙을 복속시키고, 그 신앙의 성스러운 자리를 불교의 성소로 만든 사례들(그것이 이야기 형태로 윤색되었지만)이 꽤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오스왈드 2011/12/16 08:08 # 삭제 답글

    의상대사가 용을 퇴치하고 절을 세웠다 류의 전설이 저러한 전통을 계승한 것이지요
    기독교 성인담 등에서 악마를 퇴치하고 교회를 세웠다 도 비슷하겠고요...

    물론 무속도 저항을 했죠
    함경도 무가 창세가에서
    미륵과 석가의 싸움, 그리고 패배하는 미륵과 꼼수로 승리하는 석가 모습이
    당대 밀려나야했던 무숙의 슬픔을 상징화한다는 주장도 있죠
  • 房家 2011/12/16 16:01 #

    좋은 사례들입니다.
    저는 주류 종교 입장의 이야기보다는 이런 식의 이야기에 많이 끌리더라고요.
  • 오스왈드 2011/12/16 16:53 # 삭제 답글

    저 석가와 미륵의 싸움은 몽골 한국 함경도를 거쳐 오키나와까지 발견되는 일종의 문화축인데....
    중간다리에 해당하는 일본이 저런 신화가 업는 것을 보면
    오키나와는 후대 유입인 듯 하고....
    북방에 저런 신화가 있는 것으로 보면...
    뭔가 감은 잡힙니다
    몽골에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와 불교가 한 때 대립했고..
    확실한 것은 아니나 함경도 여진족과 토착-사민해서 간 사람들 말고-인들 사이에...
    재가불교라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불교가 있었다는 말
    재가승놀이라는 민속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아는 기존의 불교와는 또 다른 형태의 불교가 있었지 않았나 합니다
    그 불교와 후일 주류 불교가 전해지면서 생긴 갈등이 저 창세가에 빚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재미있는 것 하나는 저 창세가에 궁예불경 일부가 들어갔다는 설도 봤습니다
    물증은 없지만 말은 된다고 봅니다
    철원에서 함북은 금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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