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4 17:20

안티기독교에 관한 글 기독교세계

올해 초부터 이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반년 이상 도망 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후다닥 해치웠다. 내키지 않는 글은 처음부터 깔끔하게 거부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어떤 책에 한 꼭지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게 할당된 주제는 ‘안티기독교 운동’이었다. 고백하건데 나는 이 운동의 내부를 잘 알지 못하며 글을 다 쓴 지금도 많은 조사를 해보지 않았다. 내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이라면 ‘공부하지 않고’ 써야한다는 이상한 지론이 있긴 한데,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준비 부족이다. 나는 글의 방향을 약간 틀어서 안티기독교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한국기독교(주로 개신교)가 욕먹는 현상이라는 좀 더 일반적인 주제로 글의 범위를 넓혔다. 조사 부족도 이유지만 그게 좀 더 대중적인 관심사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리 억지로 쓰는 글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있어야 쓸 수 있는 노릇이기에 그렇게 했다. 

그런 준비 과정에서, 평범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왜 ‘개독’이라고 불릴까요?”라는 선정적인 제목이 붙었다. 몇 년 전에 블로그에 쓴 글을 기본적인 줄기로 해서 살을 붙여서 글을 완성했다. 앞으로 출판이 되기까지는 꽤 변화가 있겠지만, 일단은 숙제를 마쳤다. 부끄럽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억지로 한 숙제에 내가 줄 수 있는 정성의 최대치는 여기까지가 아닌가 한다.



기독교는 왜 ‘개독’이라고 불릴까요?: 안티기독교 운동

요즘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기독교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욕하는 댓글을 보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생긴 개독이라는 신조어는 이제 널리 알려진 표현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이 그렇게 불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정치적 행태를 비판하는 시위에 나선 한 신학생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기독교가 다 개독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 한국의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기독교에 대한 좋은 평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유행하는 표현으로 말하면, 넷심(인터넷 민심)의 대세는 기독교에 대한 비호감입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공개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비교적 최근, 1990년대 이후의 현상입니다. ‘안티기독교’ 운동 단체들이 활동을 개시한 것도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이에 기반을 둔 반대운동은 왜 최근에 확산된 것일까요? 이 안티기독교 운동이 나타나게 된 종교사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를 통해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왜 교회가 욕먹게 되었을까
앞서 1990년대 이후에 두드러진 현상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왜 이때부터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일까요? 전에는 교회에 문제가 없었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긴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교회의 문제는 전부터 쌓여 있었던 것이고, 다만 그것이 최근에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그 문제를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사회적 배경이 형성되었고 비판 여론이 조성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사안, 사회적 배경과 논의의 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교회 내부의 입장에서 볼 때 1990년대는 개신교회의 위기가 시작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60, 70년대에 세계적으로도 예를 찾을 수 없는 고속 성장을 했던 한국 개신교회는 90년대 이후 교세 정체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의 개신교 인구는 1960년에 62만 명(추정), 1985년에 648만 명, 1995년에 881만 명으로 엄청난 성장을 해오다가 2005년 인구조사에서는 861만 명으로 오히려 소폭 하락합니다. 성장의 중단은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고도 성장기와는 다른 교회 운영이 요구됨을 의미합니다. 마치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기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야 했던 것처럼, 이 시기 교회에서는 이전이라면 교회 성장 속에 묻혀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을 문제점들이 서서히 갈등의 원인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문제들은 성장을 주도해온 대형 교회를 위주로, 교회를 사유화한 형태를 보인 목사들에게 주로 제기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 내부의 관행으로 묵과되어오던 것들이 이제 사회적인 상식의 기준에서 비판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시작이 된 것은 2000년경에 이슈가 된 대형교회 목사의 2세 세습 문제입니다. 당시 주요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는 신문에 기사화되어 교인들과 일반인들의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교인들 중에서는 교회 내분의 문제가 언론에 기사화되어 사회적인 비판을 받는 것에 당혹해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교회 내부의 일에 대해서도 사회적 상식에 입각한 비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교회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일부로서, 비신자를 포함한 ‘우리’의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터넷 매체가 등장한 21세기 들어 교회 문제가 공론화되어가는 속도는 무척 빨라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교회 내부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일들이 여러 번 있었으며, 최근에는 교회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뉴스앤조이>와 같은 인터넷매체들에서 교회 문제가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90년대 이전에는 교회 내부의 문제가 일반 사회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신종교에 관련된 사건이 보도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주류 교회 내부의 문제가 이슈화되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경 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 사회 일반의 비판적 여론이 형성된 이후, 언론과 인터넷 매체에서 교회에 관련된 보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대부분은 교회에 문제점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교회의 부적절한 반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사건들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것은 이 짧은 글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사건들을 나열하는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오웅진 신부가 운영하는 꽃동네에 관련된 문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교회 재산 운영과 관련된 분규, 몇몇 대형교회의 주도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친미집회,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던 교계 집회, 김선일씨 사건을 비롯한 해외선교 관련 내용, 기독교 정당 설립, 쓰나미나 일본 대지진이 불신앙의 대가라는 일부 목사들의 부적절한 언급, 봉은사 땅밟기 등 다른 종교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 등. 이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 중에는 여러분들이 들어본 것도, 지나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점을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건들에서 교회는 대부분 문제의 장본인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로서는 대답하기 곤혹스러운 문제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으며, 기독교의 본질과는 다른 문제”라고 방어적인 대답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본인들에게도 그리 속 시원한 답변은 아닙니다.
이제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많이 알수록 교회에 대해 비판할 거리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부분의 교회는 반성과 개선의 노력을 보이기보다는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리는 오만하다’는 기독교 특유의 자존심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적용되어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크게 보아 개신교회가 비판 대상으로 부각된 시기는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 운동이 전개된 시기와 일치합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안티’ 운동이 유행했습니다. 이 운동의 출발은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을 독점해왔던 보수적 언론에 대하 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보수 세력으로 인식되었던 개신교회에 대한 반대 운동이 ‘안티기독교’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안티기독교 운동은 특정 종교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지만, 더 큰 맥락에서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라는 사회적 맥락과 떼놓을 수 없습니다.

2. 인터넷 공간의 출현과 안티기독교 동아리의 형성
앞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이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형성된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특수하게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존재합니다. ‘안티기독교’ 집단이 그들입니다. 이 집단의 형성 역시 최근의 현상으로 주목할 만합니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환멸을 느끼고 나온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교회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에 자극을 받아 이에 대항하는 논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조직화되어 동아리를 구성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아니 그럴 기회가 없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특이한 취향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의 개인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여기에는 인터넷의 발달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터넷이 어떻게 안티기독교인들을 결집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까요?
종교에 대한 정보, 특히 특정 신앙공동체에 대한 정보는 내부적인 성격이 강해 외부에 공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회영역에 비해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각 교단의 입장을 반영하는 종교적 지식은 신학 교육을 통해 체계화되어 보급되지만, 그러한 이해관계와 무관한 내용은 체계화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해관계에 반하는 내용이 체계화되기는 더 어렵죠. 인터넷이 종교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때, 초기에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간의 친목을 위한 공간으로 많이 활용되었지만 점차 종교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담론의 장의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종교에 관련된 게시판은 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도하였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설전을 통해서 논리로 다져진 반기독교인들이 성장하게 됩니다. 게시판, 카페, 블로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반복되는 내용들은 어느 정도 체계화되어 지식으로서 축적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단순한 반감에서 욕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논증이라든지 종교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한 글들이 생산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형성된 종교문화는 안티기독교 운동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종교현상에 영향을 미친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기독교적 성향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측면에서 기독교 교리를 비판합니다. 우리나라의 반기독교인들의 비판의 논리는 신앙인들과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다듬어진 부분도 있고, 서양의 무신론 전통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 서양에서는 리처드 도킨스를 위시하여 과학적인 차원, 특히 생물학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학자들의 저서가 주목받고 있으며 이러한 책들은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도 활발하게 소개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기는 책 자체의 가치에 기인하는 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에 반기독교적인 관심,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합리적인 차원에서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이 강하게 형성된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컸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서양의 전통적인 무신론, 최근에 과학적 접근에 의해 강화된 무신론이 최근 한국의 반기독교적인 토양을 만나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 무신론 전통이 한국 내의 관심과 만나 수용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얼마 전 반기독교시민연합에서 무신론 광고를 개제한 일이 있습니다. 무신론 문구를 버스 광고 문안으로 게재하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습니다. 영국의 무신론 단체가 추진하고 도킨슨 교수가 지원한 버스 광고에는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이내 우리나라 반기독교 단체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에 의해 도입되어서 국내에서도 버스에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창조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라는 아이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광고가 실렸습니다. 작은 사건이지만 이 일은 우리나라의 반기독교 운동이 사회적인 활동을 개시한 것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반기독교 운동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양상을 보이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반기독교 운동은 단순한 기독교 반대를 넘어서 종교법인법 제정과 같이 종교의 사회적 책무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3. 1920년대와 1990년대 개신교회의 평행이론
이제까지 우리는 최근의 반기독교적인 정서의 대두와 그것이 조직화된 양상으로서의 안티기독교 운동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1990년대 이후 시작되었고 2000년대 들어 강화되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움직임이 우리 종교사에서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역사적 시점을 1920년대로 이동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강점기가 한참 진행 중인 1920년대는 삼일운동이 좌절된 시기인 동시에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조가 지식인들에게 수용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눈여겨보고자 하는 것은 사회주의 민족지도자들이 기독교를 반민족적인 집단으로 규정하고 반대 운동을 펼쳤다는 점입니다. 여러 사회주의 단체에서는 종교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토론회를 통해서 반기독교적 입장을 선전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한양청년연맹이라는 단체는 1925년 10월 25, 26일에 반기독교 대강연회를 개최하여 ‘기독교는 미신이다’, ‘현재 기독교의 해독’, ‘악마의 기독교’ 등의 제목의 강연을 진행하려다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해 12월 25일을 ‘반기독데이’로 정하고 김익두와 같은 유명한 부흥사들을 ‘고등 무당’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최근의 안티기독교 운동의 선구가 되는 움직임을 이 시기 사회주의자들이 보여준 것이지요. 
저는 1920년대와 최근(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기독교에 대한 일반 사회의 인식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20년대 이전의 사정을 보도록 합시다. 1890년대부터 한국에 소개된 개신교는 문명의 종교의 대명사였습니다. 개신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원리를 알려주고 민족운동의 자양을 제공한 종교였습니다. 그랬던 개신교가 1920년대에는 개혁적인 이미지를 상당히 상실하고 반종교적 태도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변화입니다. 이 시기 개신교는 상당히 보수화가 진행되었고, 반면에 교회에는 젊은 신도의 유입이 줄어들었습니다. 1920년대부터 해방까지 교회 인구는 정체되었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주도하는 힘을 상실하고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만 주력하던 시기에 교회는 성장의 위기를 맞이하고 외부적으로는 반기독교적인 비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최근의 상황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1970, 80년대 산업화와 성장의 시기에 개신교도 성장을 함께 하였습니다. 개신교는 도시의 성장을 상징하는 종교로서 사회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는 종교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성장 일변도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난 반면에 개신교는 이전의 성장 원리와 신학에서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신교의 이미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을 대변하는 것이 되었고, 교회의 보수화와 더불어 젊은 활력을 상실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의 교세 감소는 개신교회가 사회주도적인 가치를 상실하고 오히려 사회의 발전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시기에 일어난 일이며, 이것이 반기독교운동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때든 특정한 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반불교적인 사람, 반유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필이면 반기독교, 그중에서도 반개신교적인 사람들이 나름의 문화와 공동체를 형성하였다는 것은 종교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실입니다. 종교에 반대하는 것 역시 ‘종교현상’입니다. 무신론이 서양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특수한 종교현상이듯이, 한국의 안티기독교 운동 역시 한국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종교현상입니다. 우리는 이 종교현상을 통해서 종교와 사회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봅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한국의 산업화와 더불어 고속 성장을 하다가 1990년대 이후 성장이 멈추게 되며 이는 교회의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주된 과제가 성장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던 시기에, 개신교회는 이전의 패러다임을 고수함으로써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던 세력이 아니라 변화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인식되게 됩니다. ‘개독’은 개신교회의 이러한 사회적 이미지 하락을 대표하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의 한 산물로 안티기독교 운동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미디어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사용 이후 교회 내부의 정보가 사회에 공유되는 속도와 범위가 확연히 증가하였고, 이는 교회의 일들이 사회적 관심거리가 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전이라면 개인적 호오의 영역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보의 공유와 교환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반대가 하나의 운동으로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티기독교 운동은 종교가 믿는 사람들끼리의 문제가 아니고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임을 잘 보여주는 종교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더 읽을거리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옮김,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
블루칼라, <<신 벗어던지기>>(미담사, 2010).
필 주커먼, 김승욱 옮김, <<신 없는 사회>>(마음산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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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speros 2012/08/14 18:03 # 답글

    "자신의 창조물을 창조하는" =>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하는"

    본문에 오타가 있습니다. 종교에 반대하는 것 역시 종교현상이라는 말씀은 잊기 쉬운 부분을 지적하는군요 ^^;;
  • 房家 2012/08/14 23:53 #

    고맙습니다. 오타가 없어야 하는 원고인데, 중요한 것을 잡아주셨네요.^^
  • 개울 2012/08/22 21:50 # 삭제 답글

    벌레박사님 글!
    역시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저의 갈한 목을 적셔주시는 군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 개신교 신자입니다.^^*
    (솔직히 저는 '개신교인이다, 가톨릭 신자다' 하고 표현하는 걸 안좋아 하는데요,
    그 이유가 제 신앙이 부끄러워서가 절대 아니고보니
    이런 글 밑에선 '제가 개독이라 불리는 개신교인입니다' 하고 말하고 나서야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ㅎㅎㅎ)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기보다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맛보고 가는 것 같습니다.
    맛있다는 느낌보다 씹고 삼키고 소화시키는 데 불편함이 없어 '좋은' 음식을 '잘' 먹고 가는 것 같구요.

    공감과 이해로 끄덕일 수 있는 내용으로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문장으로 전체 글이 훌륭히 정리가 되네요.

    "안티기독교 운동은 종교가 믿는 사람들끼리의 문제가 아니고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임을 잘 보여주는 종교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벌레박사님의 글에 딱히 연결된 주제랄 순 없는 얘기긴 한데요, ^^*
    언젠가 1900년(?) '의화단의 난'을 '의화단 운동'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서 안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정요구를 받았지요.
    제 나름의 인간적이고, 신앙적이고, 역사적인 가치판단이 왜 없었겠습니까만서도 의도적으로 '운동'이라는 표현을 선별해서 썼던 기억이 납니다.
    솔직히 된소리 들을 줄 알면서 부러 썼습니다.
    고칠 때 고치더라도 제가 왜 그 단어로 표현했는지에 대해 얘기라도 할라구요.
    단순히 언어선택이 문제가 아니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를 달리해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벌레박사님 글을 읽으면서 그 때 나눈 대화들이 소리없이 지나갔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잘듣다가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서 곧잘 딴 생각을 하곤 했네요.
    그래서 저 핵교 댕길 때 공부 못했습니다. 그 버릇... 여전 하군요.^^
  • 房家 2012/08/23 01:05 #

    제 글을 아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으며 어떠한 상념에 빠질 수 있다면, 그 또한 그 글의 소임을 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정하라고 요구할 때는 가치판단이 들어간 표현을 중립적인 것으로 바꾸라는 경우가 많은데,
    개울님이 받은 요구는 그와 반대였던 것 같네요.
    이유는 그것이 상식적인 표현이기 때문이겠지만...
    언어선택은 크던 작던 관점의 문제를 수반하는 것인데, 개울님의 온당한 표현이
    과거의 위정자의 관점을 따르고 있는 우리의 상식에 막혔네요.
    그러는 한편,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쓴 표현(게다가 위의 글의 경우 꽤 조심하기도 했고)들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도 약간 딴 생각을...
  • 시골마을 주민 2013/01/31 15:14 # 삭제 답글

    대단한 통찰력이십니다. 안티기독교의 대두 배경에 대해 역사적 고찰과 더불어 아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 房家 2013/02/05 05:21 #

    쑥스럽지만 격려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 지나가다가 2013/08/30 08:06 # 삭제 답글

    보수개독들은 안티들을 사탄마귀라 하는데..그러지 않습니다.


    Q.안티들은 개독들에게 상처를 받아 실족한 사람들이다.

    A. 개독들에게 상처를 받은게 아니라..개독 교리에 실망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극히 일부는 그렇게 만만하게 볼 사람들은 아닙니다. 바이블로 얼마든지 구라쳐서
    먹고 살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합니다만..양심적으로 역사학적으로 비추어 볼 때..???

    하지만.. 사본학 생성과정에 대한 본문비평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역사의 허구성과 본문비평(Hebrew and Aramaic OT Text: BHS 1~4th ed.& Greek NT Text: Nestle – Allen1~ 28th ed.)의 허구성을 알기에 바이블 안티를 하는 겁니다. 우습게 봤다가 반론 단단히 당하는 경우가 허다 할 겁니다.
  • 房家 2013/08/30 17:03 #

    조언 감사드립니다. 이 댓글도 만만히 볼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집니다.
  • 韓契로 2016/01/16 07:55 # 삭제 답글

    한글, 한글전용 개신개화파, 성서번역 마춤법 - 이 승만의 한글간소화파동 등등.
    우선 우리나라 말과 글자, 즉 글을 쓰는 법에 대해 완전 작살을 냈습니다.

    한글이 아니고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입니다. 언문이란 "쌍놈말"이 아니고 선인의 말씀[彦言]의 문자로 문자입니다, 즉 개신개화파라는 일제의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쪽발음하는 아이의 문자지교와 문명개화? 개화가 開花가 아니고 開化라고 하는 씨빌라이제이션의 영어한자번역이라고 하였습니다, 완전 쓰레기 왜한자로, 이것은 倭字[왜자]의 훈민정음자로 적은 것입니다. 즉 훈민정음은 음소라고 하는 음의 최소단위입니다, 이것은 모음과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소이고, 이 훈민정음으로 글자를 적은 것을 "언문"이라고 세종대왕이 말씀하신 용어입니다, 즉 훈민정음글자를 언문이라고 언문 28자를 만들었다. 글자론으로 글자란 문자 중 字로 소리글자인데 소리란 音이 아니고 聲으로 이는 글자소, 字素[grapheme]으로 초성, 중성, 종성의 삼성으로 되어 있고 이 삼성일체 하나가 바로 글자다, 글자론에 대한 문자의 형성론까지 다 들어가 있는 음운학에 기초한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음소조합문자로 음소조합은 syllable[음운]글자로, 즉 초중성[음절]에 종성[Coda]까지 들어간 음운글자로 문자음운으로는 음소-음절-음운의 세 단계가 있는데, 언문은 음소를 이용한 음소글자이고, 이는 조합에 의해, 음절-음운까지 글자의 모든 소리까지 즉 글소리의 글씀의 모든 것을 쓸 수 있는 언어학자고, 이러한 문자발명[문명]은 이 세상에 존재치 않았던 위대한 문자입니다, 즉 한국언어도 음운소리언어로 단순 초중성음이 아니고, 초중종성음으로 밝, 맑, 붉, 흙 등으로 음운글자로 쓰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자질문자로, 세계최고의 자질 음소조합문자라고 합니다.

    그럼 왜 기독교, 기독이라고 하고, "개독"은 무슨 뜻인가요? 바로 일제한자놀이로, 지금까지는 일제 음운론이나, 글자유희에 놀아났지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 쪽발이 문자론으로는 전혀 세계 언어나, 문화를 창달할 문자체계가 아니다는 것을 말합니다, 개독은 "개신기독"의 준말입니다, 改新基督의 준말, 개[신기]독입니다, 이는 기독의 형성과 동일합니다, 基利斯督[기리사독]의 왜자번역한자로, 이를 그대로 한글?로 적은 즉 개신한글[개글]로 적은 것이 "기리사독" 음독입니다. 다시 줄입니다, 중간 2글자는 빼고 "기독"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큰 문제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리사독/기독은 무슨 말의 음차인가?

    우리는 미개해서 모릅니다, 개종자[改宗者] 개신들이 말씀해수세요, 아니 그것도 몰라? 바로 조센진.
    Christ지, 영어로는 [크라이스트]고 라틴말로는 Christo[크리스토], Oh, yes, I see.. Christmas..크라이스트마스 - 3자음일 경우, 앞은 모음은 단모음으로, 그리고 중간 자음은 묵음[silent].. ye...[크리스마스]

    아.. 크리스토를 그래서 [그리스도]라고 했군요.. 일제한자로 음차로 [기리사독]이고 이를 기독교라고 기독이라고 했군요. 그런데, 왜, 크리스토/크리스트가 그리스도, 기리사독으로 ㄱ, ㄷ인지요? 조센진은 머리가 빠가라서 그걸 모르냐? 유길준과 주시경에게 물어봐.. 아 그거 본음과 임시의 음이라는 개종자의 개신한글론이요.. 음, ㅋ은 ㄱㅎ으로 ㅋ 임시음의 본음은 [ㄱ]이다, ㅌ은 ㄷㅎ으로 ㅌ의 본음은 [ㄷ]이다, ㅍ은 ㅂㅎ으로 ㅍ의 본음[일본음]은 [ㅂ]이다, 이게 본음이 음의 원소면 음소인데, 정음이 음소로 1음, 1음가의 정음이라는 말인데, 또 이를 본음과 임시의 음이라고요? 정음이 임시의 음으로 조작된 정음이라고요? [k, t, p]가 음소지, 함음의 자음이라고요? 그렇다니까. 빠가.. 일본음을 봐, 없잖아, [ㅋ, ㅌ, ㅍ]가 없어, 1960년대 이후에나, 음절문자에 가기구게고를 [카키쿠케코]라고 하라는 격음이지, 전부, [ㅋ, ㅌ, ㅍ]를 낼 수 없는 언어와 문자의 쪽발음 내는 아이들이 ㅋ, ㅌ, ㅍ의 본음, 일본음은 [ㄱ, ㄷ, ㅂ]라고 했지요, 그걸 주시경이 본음과 임시의 음 이론이라고 해서, 제시한 것이 격음, 거센소리는 본음이 [ㄱ, ㄷ, ㅂ]다고 해서 성서번역 한글에 집어넣어 이를 성서번역 한글마춤법한 것이지요.

    한글은 그래서 개글, [개신한글]로 개신교성서번역을 한 언문자로, 이는 개글이라고 합니다. 훈민정음의 원칙도 안 지켜진 일제음운으로 말했기에 유키치? 개소리를 한글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개신한글, 개글이라고 줄여서 부릅니다, 정음파에선느 한글학회의 주시경 창제의 한글은 언문도 한문도 전부 부정하고 오로지, 개신성서번역을 위한 일제한자번역글자로 개글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크리스채너티가 아니고 그리스도교의 준말이면 실제는 키톡교라고 해야지요, 본음과 임시의 음이란 없습니다, 정음이 1음으로 음소인데, 이를 없애려고 한 일제 개신한글학회의 만행입니다.

    크리스트/크리스토[라티말이라도], 크리스트 혹은 크리스토라고 쓰는 것이 정음파고, 본음이라고 해서 일본음으로 그리스도하는 것을 개글파, 개신한글파라고 합니다, 일제가나는 음절문이라, 기리시독, 즉 한자로 基利斯督이라고 쓰고 기리시도, 크리스챤을 기리시단[丹]이라고 한자로 쓴 것으로 [기리사독]이 우리나라 정운이니, 그렇게 쓰고, 성서번역 한글이라고 해서 이를 기리사독이 아니고 [그리스도]라고 하고 줄여서 [기독]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써야 하냐고 물어도, 옛날 성스러운 한글성서번역으로 여호와의 뜻이라 고치면 안된다고 하는 최현배의 기독교와 한글에서 밝힙니다, 완전 돌아버리는 소리지요.

    이는 특히 영어/라틴말 등 전 인명과 지명에 나옵니다, 즉, 피터/페드로를 [베드로] ㅍ이 ㅂ으로 폴, 포울, 파울로를 [바울, 바우로], 즉 ㅍ이 ㅂ.. 마크/마르크/마르코를 [마가]? 크의 [ㅡ] 음절문자가 없기에, [가]로 그래도 [마가], 토마스를 [도마], 수도 없는 ㅋ, ㅌ, ㅍ의 본음은 [ㄱ, ㄷ, ㅂ]라고 본음으로 표기하라는 주시경의 본음주의 표기법, 성서마줌법이 아직도 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라행은 초두에 못온다? 라디오를 나디오, 디는 구개음화 [나지오]라고? 루카/루카스가 ㅋ 본음 ㄱ으로 ㄹ은 ㄴ으로 [누가]복음.. 이것이 개신한글의 표본입니다, 주시경, 최현배의 개신한글 창제, 일제본음?이 조선인의 본음이라고? ㅋ, ㅌ, ㅍ를 발음을 못하는 민족이라, 진평을 신뻬이라고 하고는 이를 따라하라고? 하니. 내 참..

    Catholic, Cat, 캩은 아니더라고 캐톨릭이나, 영어말로 로마음으로 [카톨릭], 그럼 왜 [가톨릭], 본음표기법, 주시경/최현배의 본음발음표기법, ㅋ의 본음은 ㄱ로, 그런데 왜 ㅌ이 ㄷ으로 한했나요? th는 라틴어로는 [ㅌ]로 영어로는 [ㅆ]에 가짜은 치음의 발음이니, 그대로 라틴음으로 [ㅌ]. 외래어표기법으로는 [카톨릭]인데, 성서마춤법에는 신성한 개글[개신한글]로 써야하므로, [가톨릭], 신성한 일본음, 본음표기법으로 카톨릭하면 일자무식한 조선인이고, "가톨릭"하면 改宗者,. 개신개화인이다.

    즉 이러한 사람들의 자신들이 개신기독교, 즉 천주기독교, 천독교와는 구분하기 위해 "개독"교, "개독인"으로 개독은 기독교중에 개신기독의 준말입니다, 개신, 改宗者, 개글, 개신한글, 개신기독, 개독, 개독인, 개독교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앤티기독교, 앤독교가 아니고 개신기독교로 개독교고, 개독인은 개신기독인이라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만든 용어지, 앤티기독교는 앤독교라고 해야지요, 아니변 반독교라고 해야, 합니다.

    제대로 한국말이라고 알고 개신개화해야하는데, 일제한자로, 그대로 번역하고 줄이는 것이 훈민정음 언문해가 아니고 이는 개신한글로 개글론이라고 하는 개글날로 주시경, 최현배의 한글 뭐라고 하는 것은 전부 개신한글로 개글입니다, 훈민정음은 언문만이 아니고 한문의 소리, 한자도 다 표기가능한 음소조합글자로 "언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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