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2 20:53

프로이트 말년의 주제 독서: 메모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평전은 삶과 저술이 촘촘히 얽힌 거장의 세계로 독자를 불러들인다. 이 황홀한 초대의 내용을 쉽게 요약되지 않는다. 다만 종교에 관련된 내용 하나만을 메모해둔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 말년의 문제작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의 저술 과정과 맥락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는 괴이한 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 책이 프로이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 책이 “프로이트의 작업 전체를 보자면 약간 괴짜”이며 “역사소설”에 가까운 점이 많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527) 그럼에도 모세라는 주제(“유대인은 모세라는 인간의 창조물이다”)는 프로이트가 말년에 강박적으로 집중한 주제이며, 그런 주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많은 것들, 또 옹호 불가능한 많은 것들”을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밀고나가는 것, 그것을 “프로이트다운 것”이었다고 저자는 해설한다. 프로이트의 이 책은 역사적 논거가 희박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힘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겠다.
이 책이 유대교, 나아가 기독교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렸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프로이트의 주장 전체가 활자화되자 유대인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도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를 불쾌하게, 심지어는 괘씸하게 여기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두 번째 에세이에서 가정한 고대 히브리인의 모세 살해를 아버지에 대한 원초적 범죄, 그가 <<토템과 터부>>에서 분석했던 범죄의 재연으로 해석했다. 이것은 선사시대 트라우마의 새로운 변형이며, 억압된 것의 귀환이었다. 따라서 흠 없는 예수가 죄 많은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는 기독교의 이야기는 “명백하게 편향적으로 왜곡된 형태로” 그런 범죄를 또 하나 감추고 있음에 틀립없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이트는 궁지에 몰린 범죄자와 마주선 가차 없는 형사 같은 말투로 “어떻게 살인의 죄가 없는 사람이 스스로 죽임을 당함으로써 살인자들의 죄를 떠맡을 수 있겠는가?”하고 묻는다. “역사적 현실에서는 그런 모순이 존재하지 않았다. ‘구세주’는 한 사람의 중요한 범인, 아버지를 힘으로 누른 형제단의 지도자 외에 다른 사람일 수가 없다.”
피터 게이, 정영목 옮김, <<프로이트>>(교양인, 2011), 2: 519-20.
이어지는 서술에서는 이에 대한 당대 종교인들(유대인과 기독교인 양쪽 모두)의 반발을 다루고 있다. 사실 프로이트는 종교에 대한 적의를 갖고 그런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작업을 밀고 나갔고, 눈치 보지 않고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그것이 종교인에게는 불순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종교에 대한 과학적 논변을 밀고나가는 이 대목에서 종교학자로서의 그의 입장이 충분히 느껴진다. 그는 종교를 미워한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은 종교학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들 중 하나이다.

덧글

  • Esperos 2013/02/22 21:22 # 답글

    프로이트 이 양반은 죽은 지 오래이고 까인 지도 오래인데도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걸물은 걸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예전에 심리학 교양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프로이트 심리학 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증명불가능하다는 거라고요. 그런데 왜 아직도 프로이트 이론을 배우느냐, 프로이트 이론에 따라 치료하면 환자가 잘 낫는 경우가 있어서 버릴 수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과목이 다르지만 제 전공(미생물학) 교수님도 어느날 학부 수업 시간에 말씀하시기를 "딱 이거 하나다 싶은 게 있으면 그거 하나만 배우면 돼. 그럼 이것 저것 배운다는 건 뭐냐, 이거 하나면 된다 싶은 그게 없다는 거야." 라고 하셨는데, 과목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결론(?)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

    중학생 때인가 프로이트의 모세 관련 이야기를 읽고 크게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2차 인용을 접했을 뿐이지만 큰 충격이었죠. 지금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겠지만, 그때는 큰 쇼크였죠. 당대에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것도 놀랍지 않습니다 ^^;;
  • 房家 2013/02/24 01:29 #

    인문학에서 프로이트가 여전히 지적 성찰의 원천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심리학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축소되었다고만 알고 있는데, 어느 정도 유용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들으니 흥미롭네요. (어떤 피상적인 비판으로는 프로이트가 실제로 치료한 환자는 많지 않다는 말도 들어본 적 있습니다.) "버릴 수가 없다"는 말이 현재 심리학 분과에서 그의 위치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또 맥락은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다 싶은 것"은 오묘한 뒷끝을 남김니다. 인문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표현을 미생물학에서 만나 즐거웠습니다.
  • 2013/02/23 21:12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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