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1 03:35

시민K와 초기 개신교사 얻어 배우는 인생

며칠 전에 <시민 K, 교회를 나가다>(현암사, 2012)의 저자 김진호 선생님을 내 수업 시간에 초청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찔끔찔끔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이 책 한권 제대로 읽는 것이 천 배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읽히고 저자를 모시는 시간을 마련한 것인데, 너무나 고맙게도 선생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셔서 흔치 않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올해 내가 받은 여러 행운 중 하나였다.

아래 내용은 그날 토론에서 오간 내용은 아니고 이번에 선생님 책을 다시 읽으면서, 특히 제1부 1장(37-48)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을 메모한 것이다. 

제1부는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되짚는 부분인데 그 중에서도 1장은 내가 관심 갖는 시대를 다루고 있어서 특히 유심히 읽었다. 이 책에는 각주가 없다. 학술서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책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하지만 하고 있는 이야기의 중량감은 학술서를 넘어선다. 여기서 제시되는 핵심적이고 굵직굵직한 진술들은, 사회적으로 학자들에게 요청되었던 내용들이다. 상황 때문에, 성향 때문에, 실력 때문에, 연구 부족 때문에 필요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진술들이 시원하게 제시된다.
일반 논문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만났다면 내 반응은 “이 부분에는 각주가 필요해”였을 것이다. 도대체 어떠한 자료를 근거로 그런 진술이 가능한 지를 묻는 것이 학계에 있는 나의 본능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에는 각주가 필요하다. 자료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요청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책과 저자의 역할을 고려할 때 이 책이 제시하는 통찰들이 연구 주제로서 많은 것을 제시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1. 1907년 무렵 개신교회의 급성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본군의 진군 루트였던 평안도 지역에서 군대 폭력을 피해 많은 이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 이 부흥운동의 전사前史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39) 좀 더 강경하게, “교회의 대부흥은 1907년의 대부흥운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41)
전쟁과 교회성장의 연관성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인정할 것이다. 예컨대 <한국기독교의 역사>와 같은 교재에도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어디서도 이처럼 선명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비록 성령 운운하는 신학적 설명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학자들은 복합적인 배경을 선호하지 이처럼 선명한 진술은 체질적으로 기피한다. 그만큼 위험하고, 종교를 사회적인 요인으로만 설명하기보다는 내부적 요인과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무언가 여지를 남겨두고자 하기 때문이다.

2. “1893년에서 1983년까지 한국에 파송된 개신교 선교사는 거의 90퍼센트가 미국인이고, 그 대부분은 미국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었다.”(38)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큰 틀에서 인정하지만 단순화된 측면이 있다고 보이는 진술이다. 특히 초기 개신교 선교사가 근본주의자라는 주장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일단 근본주의는 미국에서 1910년 이후에 등장한 사조라는 점에서 그 이전의 사람들에게 적용하려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19세기말에 들어온 1세대 선교사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지만 다양성을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근본주의가 강화된 것은 1920년 이후로 보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에 대해서는 내가 연구를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3. (대부흥운동 때) “종교적인 엑스터시에 이른 대중에게 교회 지도자들이 요구했던 것은 윤리였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했다.……이제 조선인의 삶은 신앙적 분리 실천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배타성으로 신앙을 해석하게 된다.”(43)
개신교인의 죄의식에 대한, 대단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이 내용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논증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논문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도이다.

4. “(선교사들의) 복음은 ‘야만적 사회인 조선’과 ‘불신앙’을, ‘선진적인 사회인 미국’과 ‘신앙’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미국주의적이다.”(43)
기독교 신앙은 미국적이라는 주장이 이 글의 핵심인데, 이것은 초기 개신교 자료만 갖고서는 확실하게 입증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는데, 이것을 자료를 통해 이야기하는 데는 상당한 논쟁이 야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로는 자료의 ‘무의식’을 읽어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5. (평양대부흥회에서) “지도자의 몸에 안착하여 그 몸을 위해서만 봉사하는 영, 지도자의 몸을 위해서만 활력을 뿜어내는 영, 그렇게 순화된 존재로 영은 도구화되었다.”(48)
다소 어려운 표현이지만 교회사에서 매우 핵심적인 쟁점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교회에서 신비체험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의 문제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다시 개신교 지도부가 대부흥운동의 신비체험을 완전히 통제한 것으로 묘사한다. 과연 그러한지는 심각하게 연구할 주제이다. 대부흥운동의 체험이 이러한 종교사적 관점에서 해석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6. 다소 뒤의 내용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반공적인 증오심이 나운몽의 기도원 운동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 것(63-64)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더구나 책 말미에서는 한국 개신교가 한국 전통이라는 타자를 포용할 가능성을 여기서 찾기도 한다. “나운몽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자 천지신명이고 부처이며 각종 조상신들의 표상을 엮은, 곧 사람들 각각의 심상 속에 함께하는 신성의 이름으로, 그 신성들의 연합체인, 하나이자 여럿이고 여럿이자 하나인 그 신, 곧 그가 믿은 야훼의 이름으로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다. 하지만 주류 기독교에 편입되지 못한 이 전통은 곧 사라졌고, 해석의 전문가들에 의해 언어화되는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223-24)
종교학을 통해 조명되어야 할 중요한 현상을 제시한 것이리라. 열심히 연구하겠다는 말 이외에 내가 더 할 말은 없다.


덧글

  • Esperos 2013/06/01 14:35 # 답글

    서울대 수업인가요? (털썩) 좋군요. '기독교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었다가 그냥 선교 시간이라 수강 변경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저도 저런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먼 하늘).

    1. 러일전쟁 때 일본 육군은 첫 번째 병력이 인천항에 상륙해서 북진했지요 그렇게 서해 쪽에 가깝게 황해도를 가로질러 평양에 도착하고, 배를 타고 평양에 바로 상륙한 두 번째 병력과 합류해서 압록강 하류 쪽을 통해 만주로 지나갔습니다. 만약 이렇게 일본군이 진군하면서 폭력이 심하여, 주민들이 북부 지방에 있던 교회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 비단 평양 쪽이 아니라 황해도나 평안도 북부(압록강 하류 근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텐데, 좀 의아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당시 일본군 진군로에서 평양만 한 대도시는 없었으므로 개신교 선교사도 예배당도 평양에 더 많았을 터, 다른 지역에서는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해도 평양에서는 가능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병력이 합류하느라 평양에 머문 시간이 더 길었을 테니, 주민들이 느끼던 부담은 다른 지역보다 더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4. 제가 수업을 들은 것도, 저자의 책을 읽은 것도 아니라 얼른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런 구도라면 '미국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제국주의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저런 태도를 보인 선교사들이 꼭 미국인이 아니었으니까요. 천주교 신자인 제가 이런 말하기는 좀 뭣합니다만, 아메리카 대륙에 가톨릭 선교사들이 선교하러 갔을 때에도 비슷했지요. 물론 이 와중에도 구체적인 선교방침이 수도회나 선교회별로 좀 달라서, 세부적으로 이야기하면 복잡하다고 하지만 넓게 보면 말이지요.

    5.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그러한 신비체험을 전례(개신교 용어로는 성례전?)와 교계제도로 녹여버리는 방침을 택했죠. 2세기 교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편지에 적기를 자신이 방언을 하되 "여러분은 주교에게 순종하시오!"라는 내용이었다고 했지요. 4세기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사도행전에 나와 있던 것과 같은 기적은 그때를 위해 하느님이 일시적으로 허락하신 예외적인 것.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그쳤다"라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이게 교회 내부의 주류 해석이었지요. 1-2세기 문서를 보면 기적 등을 통제하려는 몸부림이 보입니다 ^^;;; 이러한 기적이 영지주의적인 분파, 가령 몬타누스파, 아펠레파 등과 연계되어서, 어떤 학자는 1-2세기의 교회 지도자들이 기적이니 환시니 하는 것에 학을 뗀 것이 아니냐고 하더군요.

    천주교 쪽은 지나치게 교회의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성직자에게만 종교적인 권능(?)을 부여한다는 개신교 측이 자주 하는 말이 있지요.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개신교를 향해서도 저런 비판이 있군요.

    6. 한국 개신교의 반공성에 대해서는 조금씩, 하지만 여러 곳에서 언급하는 것 같군요. 저는 가끔씩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만능의 악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목회자들이 쓰는 글을 보면 '빨갱이=무신론자=사회의 암적 요소=대한민국의 적' 하는 도식이 있는 경우가 있더군요.
  • 房家 2013/06/02 23:56 #

    이번 주에 종강을 하니, 수업이 거의 마우리되어 갑니다. 이번 학기에도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더) 공부가 많이 되었던 시간입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신학적 색채를 완전히 빼고 기독교 역사를 다루는 수업은 아직도 많지 않습니다. 이 수업도 제가 맡고 나서 색깔이 많이 달라졌고, 학생도 약간 줄었는데(!), 그래도 이런 식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제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가 지독하게 반공적이고 미국 친화적이라고 대놓고 말합니다. 제가 여기 언급한 부분은 초기 역사에서 그런 현상의 뿌리를 찾는 작업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해방 이후 전개되지요. 그래서 위의 이야기는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죠. 그런 의미에서 '제국주의적'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미국이라는 특수한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저자의 의도입니다. 반공주의도 나중에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요.
    기적의 문제를 어떻게 제어하느냐...는 종교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꼭 정리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회측의 서술만큼 믿을 수 없는 자료도 없거든요. 멀리 미국에서 기행을 일삼는 중세 성녀들만 공부하는 mori 님도 이 문제를 치열하게 다루고 있죠. 용인되는/용인되지 않는 신비체험과 교회의 관계를요.
    개신교 역사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공무원(^^)이 없다보니 교파별, 교회별로 엄청나게 다양한 입장을 갖게 되었고, 반면에 그것을 정리해줄 만한 공식적 입장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예를 들면, 개신교 신자들에게 방언이라는 현상에 대한 태도는 교회마다 상당히 틀린데, 그에 대한 공식적인 정리가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마다 방언을 어디까지 허용하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는 핵심적인 사안인데, 그런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곳은 그리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 피아 2013/06/09 22:20 # 삭제 답글

    제목도 그렇고,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지네요!~
    안그래도 동생이 내일 도서관 간다는데 그 편에 빌려오라고 해야겠어요 :)
  • 房家 2013/06/11 14:56 #

    책 읽어보면 쏙 빠져들 거에요.
    제목은 좀 아리송해도 책을 열면 확 와닿는 이야기들이 가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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