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6 16:16

껄끄러운 종교 이야기 독서: 익힘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요청에 의해 써서 드린 글이다. 서평 대상인 책이 안 좋은 책이라서는 아니다. 필요한 내용을 열심히 집필한 책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다만 학문적인 맥락에서 내가 하고픈 이야기가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정중하게 무난히 쓴 것 같다. 마음속에 말하고 싶은 간절함이 없는 상태에서도 글을 생산하는 것은,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껄끄러운 종교 이야기, <<전쟁과 기독교: 미 제국의 두 기둥>>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이 20년 넘게 연구실에 붙여놓은 ‘방법론 테제’에는 연구대상인 종교와 그에 대한 연구의 껄끄러운(tenacious)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스스로의 특성을 영원하고 초월적이고 영적이고 신적인 것이라고 표상하는 담론, 실천, 공동체, 제도”이고, 이에 대한 연구는 “종교의 시간적, 상황적, 위치적, 이해관계의, 인간적, 물질적 측면”을 논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엔 종교가 스스로 그러하다고 밝히는 바와 종교학이 말하는 바가 어긋나기 마련이며, 따라서 종교학은 종교가 원치 않는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번에 서평을 의뢰받은 책 최천택·김상구의 <<전쟁과 기독교: 미 제국의 두 기둥>>(책과나무, 2013년)을 읽으면서, 필자는 과연 한국 종교학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껄끄러운 이야기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성찰이 요청될 때, 종교학이 그런 작업을 제대로 해주는 것보다는 다른 영역의 전문가나 활동가의 힘을 빌릴 때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도 그러한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과 기독교>>는 한국인에게 선망의 대상인 미국이라는 국가의 실체를 고발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절반 정도(3,4장과 5장 일부)가 종교에 관련된 내용인데, 나는 이 부분에 한정해서 느낀 바를 말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주력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미국과 기독교에 대한 미화된 신화를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미국은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이상적인 사회도 아니며, 기독교라는 종교도 세속에서 유리된 고매한 이상적 종교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정당화하고 정치 경제적 이해를 관철시켜 온 역사를 지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보이기 위해 이 책에서 방대한 자료와 사례들이 제시된다. 저자들의 노고가 충분히 느껴지는 부문이다.  
  이 책의 논의 전개는 치밀하기보다는 폭발력을 지닌 특징을 갖는다. 때로는 통찰력을 지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학계에 속한 필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비약을 보이기도 한다. 저자들은 미국이 정교분리를 천명한 헌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원리가 국가운영에 배여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그러한 국가가 잦은 전쟁을 수행해왔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운다. 또 다른 대목에서는 최근 미국의 전쟁 영웅 만들기 노력을 가톨릭과 개신교의 마녀사냥의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논의하기도 한다. 또 군목 제도의 신학적 딜레마, 기독교의 성전 개념을 논한 후 최근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만행을 규탄한다. 돌직구처럼 시원한 논의 전개이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좀 더 숙고를 요청하는 비약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논리 전개의 덜 세련된 측면이 독자에게 껄끄러움을 가져다주지 않을지 걱정이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들이 종교에 대한 허구적 인식을 깨는 데 주력한 나머지 종교가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종교는 현실의 정치경제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옳지 못한 세력과 손을 잡는 일도 흔히 있다. 그 점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책의 집필 동기이겠지만 책이 그것만을 말하고 끝나버리는 것은 아쉽다. 저자들은 미국 역사에서 종교를 통한 잘못된 행적들만을 나열함으로써 미국과 기독교의 잘못된 인식을 격파하는 데, 때로는 그런 논리적 쾌감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교는 무릇 현실 속에서 존재한다. 현실과 관계를 갖는 것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현실과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할 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진전시켰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이 책에 이러한 진전에 필요한 자료들이 확보되어 있다. 예를 하나 들면, 저자들은 기독교가 노예제와 인종차별을 정당화한 점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런 후, 맬컴 엑스와 루터 킹 목사에 의한 인권신장의 노력이 있었음을 설명한다. 전자가 종교의 과오라는 차원에서 논의되는 반면에, 후자는 인권운동으로만 언급되지 현실 속에서의 ‘종교’의 역할로는 논의되지 않는다. 종교는 현실과의 관계에서 오판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 변화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종교와 현실과의 관련성 자체가 비난받는 차원을 넘어서, 현실과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책 말미에 제시되었으면 더 좋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글

  • 2013/07/06 16: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09 08: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71828 2013/07/10 21:59 # 답글

    '논리적 쾌감' ...통쾌한 표현이네요. 저것도 마약이더군요. '반기독교 내지는 반종교인의 아편' 정도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과한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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