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11 03:16

유신론적 관점의 종교와 과학 논의 독서: 익힘

하마터면 잘 알지 못하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르칠 뻔 했는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런 일을 면하게 되었다. 강의계획서라는 것을 짜기 위해 일단 좋은 책 한 권(존 호트,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 추천받아 교재로 박아놓긴 했는데, 이제 와 그 내용을 살펴보니 내가 선호하는 방향과는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 책으로 강의를 진행했다면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 눈에 그려진다.
사실 나는 일반적으로 “종교와 과학”이라는 논의에 모종의 불신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 논의가 신학적 성격에서 벗어났는가에 대한 불신이다.(종교철학에 대한 불신과 비슷하다.) 이 교재를 통해 그 불신은 더 강해졌다.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여기서 논의되는 종교가 종교학 일반에서 논의되는 그런 종교가 아님을 명확히 한다. “내가 이 책에서 ‘종교’라고 말할 때 우선적으로 ‘인격적인’ 신이 이른바 ‘예언적’ 믿음과 연결되어 있는 유신론적 신앙을 염두에 둔다.”(11) 뒤에서 이 내용은 다시 강조된다.


“신앙인들은 신을 세계에 대해서 열정적인 관심을 갖는 인격적인 존재로 상정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종류의 종교다. 그것은 윤리적 가치에 대한 막연한 헌신이나 우주에 널리 퍼져 있는 신비에 대한 느낌이 아니다.”(51)
더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논쟁은 과학이 인격적인 유신론적 신과 양립 가능한지 물을 때만 실제 신랄함을 유지할 수 있다.”(51)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잘 쓴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 입장은 나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힘들지만 이 책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갈등, 분리, 접촉, 지지의 넷으로 분류하고 그 중에서도 접촉과 지지의 태도를 저자의 입장으로 강조한다. 이 두 입장은 발달된 입장으로 소개되는데, 그 둘은 발달된 ‘신학’이기도 하다. 예컨대 접촉의 태도는 과학의 논의를 신학의 재료로 삼자는 입장인 것 같다. “우리는 신의 개념을 진화 생물학, 상대론, 양자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의 최근 발견과 연결시키기를 원한다.” 저자는 이것이 “신학이 오늘날 취할 가장 적절한 방향”(64)이라고 말한다. 맞다. 과학의 발달을 승인하며 그 토대 위에서 신학을 구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신학하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종교학 강의에서 가르치고 고민해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또한 지지의 태도는 다음과 같다. “인격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 실재의 한없는 이해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지지해줄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69) 신학적 태도가 과학과 충돌하기보다는 형이상학적으로 뒷받침해주기도 한다는 신학적 모색이다.

기본적으로 신학자의 책을 집어든 내가 잘못한 것이다. 정말 제대로 공부해 가르치려면 방향을 새로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론 강의에서 신중심적인 종교 정의에서 벗어나라고 학생들에게 거듭 강조한다. 그런데 종교와 과학 분야의 개설서에서는 처음부터 유신론적인 전통의 고민임을 못 박는다. 훌륭한 신학적 고민이 펼쳐질 발판이기는 하겠으나 ‘종교’의 속성에 대한 고민을 펼 발판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식의 종교-과학 논의는 그 옛날 프로이트 선생이 <문명 속의 불만>이라는 강연에서 보인 바 있는 종교관에서 거의 발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안의 논리는 다듬어져 있으나 그 전제된 바 때문에 보편적인 종교 이론이 되기에는 부족한 그런 논의 말이다. 최근에 읽은 종교학 개론 책에 프로이트의 종교 개념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타당하게 설명해놓았다. 바로 이 이야기가 “종교와 과학”이라는 분야를 신학적 논의에서 벗어나 내 관점에서 새로이 이해하고자 할 때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러한 이론의 바탕에 자신이 속한 문화의 전제들이 깔려 있음을 무시했다. 즉 어떻게 인간이 종교적으로 되는가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은 그가 속한 문화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행동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또한 그의 생각은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교, 유대교와 비슷하다고 추측하는 관점에 대단히 많이 의존하였다. 프로이트는 종교가 자기 아버지와의 관계를 보상하기 위해 신으로 불리는 천상의 아버지를 창조하는 소년의 심리 과정에서 생겨난다고 가정했다. 그러한 추측은 신을 아버지의 모습으로 상상하지 않거나 혹은 신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비-그리스도교 전통에는 적용될 수 없다. (Malory Nye, <Religion: the Basics>, 5-6.)

덧글

  • 2013/08/12 20:4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房家 2013/08/13 01:49 #

    재미있지도 않은 글들 읽느라 고생이 많았네요. 나도 연락하는 사람 거의 없이 지내요. 그래도 나는 학계에 있다보니 살다보면 만나겠지 하면서 그냥 지내요. 더운 날 잘 지내기 바래요.
  • 2014/03/25 11:5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房家 2014/03/26 04:02 #

    요약과 압축의 와중에 상실된 의미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봐도 이런 식의 요약은 입문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겠네요. 그렇다고 친절한 글로 풀지 못하는 것은 제 에너지가 고갈된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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