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연구”, 학생 시절부터 내가 꿈꾸던 수업이다. 한국기독교라는 분야에 대한 종교학적 성찰을 적용하는 세미나 수업. 그런 수업은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언젠가는 펼쳐보리라는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매우 우연한 기회에 대학원 수업이 나에게 주어졌고, 이제 나는 꿈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설익은 주제에 꿈을 접수하게 된 내 처지를 한탄하는 신세다. 대학원 수업의 속성상 한 번 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기독교연구(114.690)
짧은 연구 기간 동안 내가 관심 가진 주제는 ‘선교’라는 종교현상이다. 때문에 한국기독교 연구는 선교, 선교사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꾸려질 수밖에 없었다. 선교는 크로스오버다. 서양(미국)과 한국, 기독교와 이교, 그들과 우리를 잇는 작업이다. 그러기에 선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편을 모두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종교학에서 선교를 연구하는 것은 한편에서 한편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양편을 이해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자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자료 위주로 세미나를 구성하고 싶었다. 선교사 자료에 푹 빠져서 그 안에서 자연스레 연구주제를 도출하는 논의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구성할 능력이 아직 없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의 자료 장악력이 부족한 탓이다. 계획서를 수정할수록 연구서의 비중이 높아갔다. 여러 전공자들이 무리 없이 공유할 내용을 찾다보니 구체적 자료보다는 이론적 쟁점을 제시하는 연구 성과들을 고르게 되었다. 그렇게 얼기설기 부족한 채 하나의 세미나가 시작된다. 내가 했어야 하는데 미처 못 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래 내용은 강의계획서 일부.
1. 수업 목표
기독교 근대라는 시간적 맥락에 선교사라는 매개적 존재를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이 수업 에서는 이 때 발생한 ‘만남’에 주목하고자 한다. 만남의 의미는 종교, 인종, 문화 등 다양한 차원에서 조명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수업에서는 개신교 선교초기(19세기말-20세기전반)에 선교사와 한국 교인에 의해 작성된 자료들을 주된 검토 대상으로 놓되, 이러한 자료를 어떠한 종교학적 시각에서 읽어낼지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자 한다. 선교를 다룬 서구의 종교학 연구 성과들과 한국기독교사의 자료들을 병행해서 읽음으로써 한국기독교에 대한 종교학적 논의의 방향을 고민하고자 한다. ‘한국기독교에 대한 종교학적 연구’는 아직 제대로 확립된 분야는 아니지만, 이 수업을 통해 그 풍성한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3. 평가 방법
[수업 참여 및 토론 30%, 발표 30%]
이 수업은 세미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수강생들은 매주 수업 시간에 읽을거리에 대한 감상문을 1매 내외로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감상문은 교재를 읽은 후 머릿속에 중요한 것으로 남는 내용, 즉 자신의 문제의식이나 논문 작업의 입장에서 의미 있다고 간주되는 내용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논평을 덧붙인 글을 말한다. 발표자는 감상문을 제출하지 않는다.
매주 2-3명의 학생이 할당된 자료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여 세미나를 진행하도록 한다. 발표 형식은 자유롭지만 발제문을 사용할 경우 3-4쪽 이내, 최악의 경우 5쪽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과제 10%]
선교사 문헌 한 권을 읽고(목록은 ‘수강생 참고사항’에)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A4 3장 이내로 작성하여 10월 17일(제5주 수업)에 제출할 것.
[보고서 30%]
수강생의 관심 주제에 따라 선교사 문헌을 활용한 보고서를 기말에 준비한다. 마지막 주 수업에 보고서의 서론을 포함한 대략적인 내용을 발표한다.
4. 강의 계획
제1주(9월 5일) 강의 소개
제2주(9월 12일) 천주교 선교사와 동아시아의 만남(1)
마테오 리치, 송영배 옮김, <<천주실의>>(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1-4편.
제3주(9월 19일) 천주교 선교사와 동아시아의 만남(2)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5-8편.
제4주(9월 26일) 한국의 천주교 수용
정약종, <<주교요지>>(성황석두루가서원, 1986).
<황사영 백서> [<<黃嗣永 帛書와 異本>>(국학자료원, 2003).]
개천절 휴일(10월 3일), 종교학과 답사 예정(10월 10일)
제5주(10월 17일) 개신교 선교사와 동아시아의 만남(1)
Brigit Meyer, “Beyond Syncretism,” Charles Stewart & Rosalind Shaw (eds.), Syncretism/Anti-Syncretism (New York: Routledege, 1994), 45-68.
Norman J. Girardot, The Victorian Translation of China: James Legge's Oriental Pilgrimag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235-85.
[참고] 존 로스,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1882), 1-5장.
*서평 과제 제출
제6주(10월 24일) 개신교 선교사와 동아시아의 만남(2)
Eric Reinders, Borrowed Gods and Foreign Bodies: Christian Missionaries Imagine Chinese Relig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4), 39-62, 100-31.
이사벨라 버드 비숍,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살림, 1994), 45-64.
제7주(10월 31일) ‘종교’의 인식
데이비드 치데스터, 심선영 옮김, <<새비지 시스템: 식민주의와 비교종교>>(경세원, 2008), 1-2장.
George Heber Jones, "The Spirit Worship of the Koreans," Transactions of the Kore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2 (1901).
제8주(11월 7일) 선교 문학(1)
Hyaeweol Choi, Gender and Mission Encounters in Korea: New Women, Old Way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9), chap. 5.
W. Milne, S. A. Moffett 옮김, <<장원량우샹론>>(예수교책, 1896).
제9주(11월 14일) 한국 개신교인의 기독교 이해
최병헌, <<셩산명경>>(조선예수교서회, 1912).
길선주, Deberniere J. Torrey 옮김, <<만사성취>>(한국고등신학연구원, 2008).
제10주(11월 21일) 개신교 선교사의 비교 종교(1)
Jonathan Z. Smith, Relating Religion: Essays i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2004), chap. 15.
G H 존스, 옥성득 옮김, <<한국 교회 형성사>>(홍성사, 2013), 61-108.
제11주(11월 28일) 개신교 선교사의 비교 종교(2)
Sung-Deuk Oak, "Healing and Exorcism: Christian Encounters with Shamanism in Early Modern Korea," Asian Ethnology 69-1 (2010): 99-132.
Horace Grant Underwood, The Religions of Eastern Asia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10), chap. 5.
제12주(12월 5일) 기독교 최고신 논쟁
데이비드 치데스터, 심선영 옮김, <<새비지 시스템: 식민주의와 비교종교>>(경세원, 2008), 1, 2, 4장.
James L. Cox, The Invention of God in Indigenous Societies (Durham: Acumen, 2014), chap. 1.
제13주(12월 12일) 종합 토론, 기말보고서 계획 발표
기말보고서 제출(12월 19일)
5. 수강생 참고사항
세미나는 자료와 몇몇 연구서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기독교사 전반의 흐름을 파악하고 싶은 수강생은 다음 책을 참고할 것.
김성태, 방상근, 조현범 외, <<한국천주교회사>> 1-4권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2011).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 기독교의 역사>> 1-3권 (기독교문사, 2011, 2012, 2009).
*서평 대상 도서목록
마르다 헌트리, 차종순 옮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884년부터 1919년 삼일운동까지 한국 초기 교회 역사>>(쿰란, 2009).
캐서린 안, 김성웅 옮김, <<조선의 어둠을 밝힌 여성들: 은자의 나라에 처음 파송된 선교사 이야기>>(포이에마, 2012).
C.D. Stokes, 장지철 & 김흥수 옮김, <<미국 감리 교회의 한국 선교 역사, 1885-1930>>(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소, 2010).
존 로스, 홍경숙 옮김, <<존 로스의 한국사>>(살림, 2010).
해리 로즈, 최재건 옮김,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연세대학교출판부, 2009).
아서 브라운, 류대영 & 지철미 옮김, <<극동의 지배: 한국의 변화와 동양에서 일본의 패권 장악>>(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3).
윌리엄 아서 노블, 이현주 옮김, <<이화>>(넥서스CROSS, 2011).
제이콥 로버트 무스, 문무홍 옮김, <<1900, 조선에 살다: 구한말 미국 선교사의 시골 체험기>>(푸른역사, 2008).
윌리엄 블레어, 김홍만 옮김, <<찬성의 고백>>(옛적길, 2002).
윌리엄 블레어, 김승태 옮김, <<정금 같은 신앙>>(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5).
매티 윌콕스 노블, 강선미 & 이양준 옮김, <<노블일지 1892~1934 : 미 여선교사가 목격한 한국근대사 42년간의 기록>>(이마고, 2010).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 김철 옮김, <<(언더우드 부인의)조선 견문록>>(디자인하우스, 2008).
제임스 게일, 심현녀 옮김, <<선구자: 한국 초대 교인들의 이야기>>(대한기독교서회, 1993).
로이스 스와인하트, 송창섭 옮김, <<조선의 아이 사랑이: 선교사 서부인이 구한 조선의 아이들>>(살림, 2010).
엘라수 와그너, 김선애 옮김, <<(미국인 교육가 엘라수 와그너가 본) 한국의 어제와 오늘 1904~1930>>(살림, 2009).
미네르바 구타펠, 이형식 옮김, <<(조선의 소녀) 옥분이: 선교사 구타펠이 만난 아름다운 영혼들>>(살림, 2008).
디오니시 빠즈드냐예프, 이요한 & 이정권 옮김, <<러시아 정교회 한국 선교 이야기>>(홍성사, 2012).
세실 허지스 외, 안교성 옮김, <<(영국성공회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살림, 2011).






덧글
한국인이면서 자신의 말조차도 못하는 바로로 만든 일제의 간악함이 묻어 있습니다. 말장난을 하라고 한국어가 있고 문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말을 써서 한국기독교는 한국의 기독교로 특정하고자 함으로 영국성공회, 영국의 성공회입니다, 로만 가톨릭, 로마의 가톨릭입니다, 한국기독교하면 한국에서 나온 기독교, 즉 구세주의 가르침으로 마치 재림예수가 한국에서 나온다는 이상한 신흥종교입니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자생하여 나온 우리나라 종교는 아닙니다,
한국의 언문자는? 하나나라입니다. 표어는? 대한제국 헌법에는 "광명천지"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나라 국호조차도 뜻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한은 하나입니다. 또한 나라칭으로 하나나라이름 한으로 우리를 칭하는 나라칭이고 민족칭이며, 신칭입니다, 엘족과 같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한"은 아무리 주시경이 이야기해도, 봉헌한 반민족주의자의 언변에 놀아날 사람들이 아닙니다. 즉 한은 十日十으로 "하나"입니다, 천부의 하나로 하나로 대광명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뜻하는 하나입니다, 한은 바로 광명천지로 광명, 하나의 나라, 천지라는 뜻으로 하나, 하나님의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러한 하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해서 마음대로 봉헌하는 이승만 장로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채호선생의 말로,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없는 나라, 정신, 신칭을 팔어먹은 놈은 더 나쁜 놈이다. 이게 바로 "하나" 대광명을 팔아먹었다, 즉 하나민족, 하나겨레인 한을 엘과 바꿔서 엿바꾸어 먹었다고 민족주의자가 아니고 반한주의자라고 합니다. 분명하게 천주교의 왜의 선교시, 왜에서는 신교의 신은 韓神입니다. 이는 무슨 뜻인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한국신이라고 하는 "하나님"입니다, 신불습합이라고 하는 왜불교의 신은? 大日如來[대일여래]입니다, 즉 대일은 대광명이라는 "하나"입니다, 우리말입니다, 환인천제를 "대일광명천제"라고 하는 말로, 하나가 환이고 한이라는 정운이고, 바로 "하나"가 우리나라, 우리고 삼위일체, 대광명 하나님, 일신이라는 뜻입니다. 고로 한국의 기독교의 한국은 쓰면 안되는 말입니다.
기독이란? 왜한자번역을 중역한 것으로 다시 한글로 썼다고 하는 것으로 문제가 음운론적으로 있고, 심각한 왜문자번역글로 한글, 즉 개신한글로 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제대로 쓰면서, 왜 크리스트/크리스토는 [ㅋ]음이 왜 전부 [ㄱ]로 쓰냐고 묻습니다, 이는 왜문자에는 [ㅋ, ㅌ, ㅍ]라는 음소가 없는 음절문자로, 전부 [ㄱ ㄷ ㅂ]로 합니다, 피터, 페드로를 [베드로], 폴, 포올을 [바울, 바오르] 즉 초성자음의 우리나라 정음도 모른다는 것은 초딩도 못나온 사람의 번역, 즉 그저 일제성서번역에 급급한 오류입니다.
크리스트/크리스토를 번역한 것은 일제의 성서번역입니다, 한자를 썼다고 합니다. 基利斯督[기리사독]이고 이는 그리스도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자음, 즉 초성으로 [ㅋ, ㅌ]를 전부 [ㄱ ㄷ]로 마치 그리스-도라는 헬라교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왜한자, 약식으로 쓰는 방식이으로 구리사도의 구도, 즉 기리사독의 기(리사)독으로 "기독"이라고 하고 단순 일제한자발음대신, 한국의 발음으로 기독이라고 한 것입니다, 중국한자가 아니다는 것으로 음독에서 큰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이는 번역도 하나 못하고, 아무리 최현배가 똑똑하고, 한글창제 기독교 개신성서보급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알겠지만, 이러한 기본 음운도 하나 못구분하면서 어떻게, 한글의 음운을 연구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21세기면 21세기 국제화시대에 지구는 평평하다, 왜 일제한자, 왜의 소리를 우리 말이라고 해서 훈민정음의 음소를 일제한자가 마치 옳고 우익이다, 뉴라이트라고 해서 쓰고 있는지, 참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민망할 따름입니다. 고로 기독교라고 해서 쓰려면, 아예 "크리스채너티"라고 해서 기독교의 원 영어를 쓰는 것이 정상적인 한국인의 양심입니다.
일제성서의 倭字로 된 여호와[女好媧]로 된 것을 한글로 개신한글 개글로 적으면 그것이 영어번역인가요? 정말 한심한 나라로 미친선비 조선국의 유태교[주자교]의 망나니 짓으로 인해 "나라"을 말아먹은 것이 목자 전부 이씨들입니다.
주자교란 명나라 주원장의 주이쉬 朱子씨네로 이는 유태인이고 주자교는 猶太敎의 한문입니다, 즉 이 유태교의 유일신명이 야훼로 이를 여와[女媧]로 西王母로 西土의 創造의 女神으로 야훼/야웨라는 "유태교"의 국신이고 "유일신명"으로 이를 일제은 여호와[女好媧]로 신도교 神道의 여신명을 성서에 神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를 그대로 重譯한 일제성서개역글로 완전 개찬이었다.
김 용옥은 평생을 쪽발이 영어로 "토마스"를 도마로 톰을 도무로 토마스복음으로 해야할 것을 "도마복음'으로 도마를 뽁으면 도올 똘[咄]이 되나요? 그러고도 학자고 교수짓을 하면 그게 대만3류대학출신자지 무슨 한글도 모르는 사람이 교수짓을 하고 질엘하냐고 합니다.
가져다 써도 야훼/야웨 정말 못하세요? 그게 궁금합니다, 어째서 전부 쪽발이 倭字를 번역? 하면 그게 무오류설? 신성설로 무오류설인가요? 정말 이상한 나라 엘리트나라 엘리트 선민으로 엘족이면 다 엘리트에요?
죽 개신교도 같습니다, 야훼/야웨는 유태교의 유일신명인데 왜 이를 중국 유태교/주자교의 한문으로 일제의 신도교의 여신명 여호와[女好媧]가 왜 하나님이 되어야 하나요? 이상한 유태인 전주 木子들의 역성혁명으로 나라가 망한 최악의 미친 신으로 놀고 있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