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7 15:06

“더 리더: 책 읽어주는 사람”의 공부쟁이 신변잡기

<더 리더>를 소설(소설 제목은 “책 읽어주는 남자”)과 영화를 비교해서 볼 기회가 있었다.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소설 묘사에서 전달되는 느낌을 좋은 방향에서 살려낸 장면들이 많았다.
그런데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단순화되는 부분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것 중 하나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내가 느낀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남자 주인공의 신분이다. 영화에서는 변호사, 소설에서는 법제사를 연구하는 교수이다. 원작에서는 철학교수였던 아버지에 대한 묘사라든지 공부하는 이로서의 주인공의 성격이 잘 묘사된다. 주인공은 법대학생 시절 한나 재판을 경험한 이후 법의 의미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던 것 같고, 그래서 법을 집행하는 현장에서 일을 하기보다는 법을 연구하는(연구에는 연구대상과의 거리가 동반된다) 학자로 일종의 회피 성격을 갖는 직업 선택을 하게 된다. 학자라는 위치는 문맹인 한나와의 대조를 보다 강조한다. 어쩌면 한나가 ‘책’을 밟고 올라서 자살한다는 것은 이 대조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법학자라는 주인공 직업은 소설 작가 슐링크의 원래 직업과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독자의 흥미를 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영화에서는 제거되었다.

공부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 우유부단하다. 어떠한 결단을 내려한 시점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친 이후에는 행동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는 식의 정당화를 열심히 한다.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이 소설의 주인공 성격에 심하게 공감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한나에게 손을 뻗어야 하는 시점이 두셋 나오는데, 그는 우물쭈물하다 놓쳐버린다. 그 결과 한나와 그 사이의 거리는 항상 좁혀지지 않는다. 딱히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대방을 절망시키는 어정쩡한 태도, 그것은 긴 수감 생활을 마친 한나가 사회에 복귀하기보다는 자살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나의 자살은 이 작품에서 해석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영화에서는 마지막 만남에서 주인공의 차가운 태도를 강조함으로써 이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생뚱맞다. 소설은 보다 미묘하다. 주인공은 준비할 것을 하면서도 ‘더 다가가지 않았다.’ 좁혀지지 않은 거리, 그것이 그녀의 절망이 이유가 된다. 영화에서는 공부쟁이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설정상 생략하였기 때문에 자살에 대한 설명이 다소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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