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5 13:56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에 대한 논평 얻어 배우는 인생

운이 좋아서 김진호 선생님에 대한 논평을 여러 번 맡았다. 사실 ‘논평’이라는 말은 무거워서 엄밀히 따지면 내가 하기엔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이해하는 ‘논평’은 발표만 듣기에는 아쉬우니까 무언가 발표자로부터 이야기를 더 청해 듣기 위한 빌미를 제공하는 학술행위이다. 고맙게도 발표자가 풍성한 응답을 해주었기에 여느 때처럼 배울 게 많은 시간이 되었다. 아래의 글은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에 대한 논평문이다. 중간 중간에 그날 논의된 내용을 삽입했다.
논평의 대상이 된 발표문은 내가 올해 안에 출판될 책에 포함될 내용이고 내가 공개할 수는 없다. 대신 선생님 홈페이지에 있는 “대형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적 삶, 그 삶의 미학은 불온하다”라는 글을 참조할만하다. 발표문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발표문의 통찰들이 상당히 많이 담겨 있는 초기 버전의 글인 것 같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개신교 성장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것, 더 나아가 성공 신화와 대형교회를 연결해서 논의하는 것은 상식적인 논의일 것이다. 이 글은 그 일반론을 넘어서는 ‘섬세함’을 보여주기에 배울 게 많다.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를 기준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 보수주의에 나타난 다른 결을 짚어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형교회의 두 결을 짚어낸다. 그리고 후발대형교회라고 분류된 교회들이 새로운 보수주의(웰빙-보보스형 삶의 양식)을 실천하거나 대응하는 양상의 차이들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선발/후발 대형교회
기존 논의에서 대형교회를 강남/강북 대형교회, 중산층/혼합계층 대형교회로 분류했다면, 이 글은 선발/후발 대형교회의 분류를 제안한다. 이 분류는 그 기원은 통시적이되 실제적으로는 현재 대형교회의 구조적 측면을 분석하는 데 사용된다. 역사적 선후가 현존하는 구조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절묘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독자들은 통시/공시, 역사/구조가 별개의 것이라는 오해를 버려야 이 개념을 오해하지 않을 것 같다. 
이 개념쌍 덕분에 기존 분류체계에서는 다르게 분류되었을 광림교회를 선발대형교회로 분석하는 성과도 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 욕심을 낸다면, 이 글에서 제시한 보수주의의 두 결을 바탕으로 다른 개념어도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
[*발표자는 해당 프로젝트 내에서도 개념에 대한 찬반이 치열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앞으로 더 발전시켜야 할 여지가 많다고 인정해주신 것. 그리고 광림교회를 선발대형교회로 분류한 것은 아니라고 정정해주셨다. 그렇다면 광림교회는 선발의 특징을 지닌 후발대형교회, 혹은 둘의 중간적 형태로 정정하여 이해해야겠다.]

번영신학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미국의 번영신학이 선발/후발대형교회에 다른 식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했는데(12), 좀 더 설명을 듣고 싶다. 비슷한 신학이 한국의 각각의 유형의 대형교회의 맥락에서 달리 수용(번역)되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번영신학 자체가 로버트슐러-조용기 계열과 조엘 오스틴-온누리 계열로 다른 흐름이 있는 것인지? ‘성공을 지향하면서도 과정과 내용을 묻는’ 번영신학은 선발대형교회의 신학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구체적인 예가 궁금하다.
[*발표자는 로버스 슐러 류의 번영신학과 조엘 오스틴 류의 번영신학에서 내용상 구분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둘은 유행했던 시기가 차이가 있고, 그런 맥락상의 차이에 의해 한국 교회에서 다른 흐름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후발대형교회
후발대형교회 각각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노년적 신앙(소망)과 청년적 신앙(사랑의, 온누리)으로 섬세하게 구분한 것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 세부적인 궁금증이 여럿 딸려 나온다. 각 교회에 대한 분석이 교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속성을 이해하는데 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후 현재까지 교회가 겪은 변화가 그러한 속성에 변화를 끼쳤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각 교회는 지도자의 세습 혹은 변화를 겪었다. 카리스마적 목사에 의존하던 대형교회가 2세대에 이르러 변화를 보이는지? 이영훈 목사의 순복음교회, 세습 이후의 광림교회, 이재훈 목사의 온누리교회 등이 인적변화가 아닌 구조적 변화의 징후도 보이고 있는지? 세습과 외부 목회자 청빙에 의한 계승이 선발/후발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보이는데 동의하는지? 특히 사랑의 교회(옥한음/오정현)의 분규는 보수주의와 관련된 분석에서 의미를 지니는지? 
[*그날 토론에는 교회 세습(혹은 계승)과 관련된 질문이 많이 나왔다. 발표자는 현시점에서 교회 승계가 교회 성격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모든 교회에서 권력 승계가 일어나긴 했지만 권력교체는 미완성인 상태이다. 세습은 말할 것도 없고 청빙의 경우에도 창시자가 원로목사로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담임목사의 교체가 일어난 경우에도 교회 장로들은 거의가 이전 목사 때 선임된 이들이어서 새로운 목사가 교회를 이끄는 것이 제한적이든지(소망) 변화의 과정에서 충돌(사랑의)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는 1세대에 의해 형성된 교회 성격의 변화를 진단하기는 어렵다.]

자기 쇄신을 통해 세련된 보수가 등장한다는 맺음말의 분위기는 어둡다. 욕먹는 개신교회 내에서 그나마 모범적이라고 인식하는 내용들을 모아서 이렇게 비관적으로 분석하는 저자 특유의 힘이 느껴지며, 논평자도 이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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