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4 18:57

종교는 무엇에 담겨 전달되는가? 종교학공부

#1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 한 무슬림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렸다. “쿠란의 디지털 파일을 삭제하면 신성모독인가요?” 쿠란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도 적용해야 하느냐는 이 질문에 대해 채택된 답글은, 불경한 의도를 갖지 않고 즉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채 파일을 삭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가적인 반응으로는 화면에 디스플레이된 상태의 쿠란은 신성하지만 파일 상태는 그렇지 않으므로 삭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2 몇 년 전에 한종연 홈페이지를 활성화하기 위한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한창 블로그에 빠져 있던 나는 홈페이지를 연구자들의 팀블로그 형식으로 운영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내 의견에 대해 한 선생님이 게시판에 올릴 같은 내용을 블로그로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냐고 반문하셨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나는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블로그라는 새로운 채널을 통해 글을 유통하고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 나의 글도 달라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던 와중이었지만, 그 ‘새로움’을 명확하게 표현할 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탓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생각을 표현, 전달, 공유하는 양식은 숨 가쁘게 진화하고 있고, 블로그도 이메일이나 홈페이지만큼이나 기존의 형식이 되어버렸다.(그리고 한종연 홈페이지는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표현 형식들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달라지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터넷 업계의 흥망성쇠를 주도하고 있다. 담는 그릇이 달라짐에 따라 분명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3 핸드폰으로 인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맥락이 더욱 복잡해지고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종교적 정보가 받아들여지는 맥락 역시 계속 변화한다. 팟캐스트로 다운로드받은 설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이고, 아잔(이슬람 기도소리)을 벨소리로 쓰는 전화가 화장실에서 울리는 것에 대해 적절성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올해 초에 익산 할랄 타운 조성에 대한 교회의 반대 여론이 개신교인의 카톡방을 통해 전파된 일이 있었다. 이슬람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로 가득 찬 카톡 내용은 순식간에 교인들에 공유되어 교회 여론을 형성하였다. 얼마 전 조사에 따르면 카카오톡은 젊은 세대뿐 아니라 노년층에서도 보편화되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매체이다. 노년층 특유의 카톡 문화가 존재함을 경험하기도 한다.(끊임없이 생산되는 명언 모음들!) 카톡은 종교 생활의 일부를 이루면서 정보의 존재 양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매체의 변화가 종교를 어떻게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는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확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얼마 전 출판된 <종교, 미디어, 감각> 작업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매체의 변화를 따라가는 중이지 그 변화의 내용과 결과를 정리된 언어로 이론화하기 못했음을 실토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글에서는 내가 주목하고 있는 바를 나열했을 뿐이다.
종교가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서 전에 없었던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나고 있다. 쿠란 파일을 삭제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면, 경전의 권위와 관련된 물질적 형태는 어떻게 새로 규정되어야 할까? 유투브와 인스타그램으로 형성된 종교경험은 전과 어떻게 다를까? 일상 속에서 카톡을 통해 공유된 종교 정보들은 종교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대답해야 하는 새로운 질문들이다. 나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는, 즉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는 자세로 이 문제들을 고민하기를 어렵다고 생각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보다 급진적으로 형식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내 입장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뉴2


일과 배움과 놀이가
채 나누어지지 않는,
두루뭉술한 공간을 꿈꾼다

주인장: 방가房家
한국기독교자료: 벌레2

free counters

통계 위젯 (화이트)

4842
304
860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