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5 21:06

공덕으로 이루어진 선물경제 얻어 배우는 인생

그저께 들었던 발표는 현실 불교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가득하면서도 지적 고민의 수위도 상당히 높았던 글이었다. 그 글의 어느 대목에서 발표자(명법 스님)은 선물경제라는 흥미로운 개념 적용을 선보인다. 그는 불교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기복불교 비판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기복불교는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이유에서 비판받지만, 어떤 의미에서 기복불교는 근대의 결과로서 비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에 강조되는 개인주의, 그리고 그것에 부응하여 불교가 서비스산업처럼 기능하는 것이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 이후의 기복불교는 “승가공동체의 물적 기반인 증여에 의한 선물경제를 폐기하고 서비스 제공이라는 자본주의적 교환경제로 바꾼 것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여기서 ‘선물경제’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필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사용된 개념을 말하는 것이리라. 한국 불교계를 진단하는 글에서 이 개념을 만날 줄이야. 식민지 상황에 대한 연구에서 화폐경제의 유입으로 전통적인 선물경제가 붕괴하고 자본의 약탈적 성격에 삶이 피폐해진다는 연구는 본 적이 있다. 
글에서 선물경제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 분명한 것은 전통적인 한국불교에 존재했던 선물경제는 이상적인 상황으로 그려졌다는 것. 뒤의 한 대목에서는 “승가에 대한 포괄적 공양을 미덕으로 알던 보시문화가 특정 승려, 특정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보시문화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선물경제는 재가자와 출가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환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덕 개념이 마나mana나 하우hau처럼 공동체를 순환하는 역할을 하는 걸까? 흥미롭다. 글의 마지막에서 “승가공동체는 증여와 나눔, 공유의 경계 실천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나 승가의 덕목 중 이화동균(利和同均, 이익으로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을 언급한 것도 이상적인 선물경제의 모습과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덧글

  • 남중생 2016/09/06 20:36 # 답글

    저도 포스팅 제목 읽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공덕=마나라면, 불교 포틀래치도 있는걸까?
  • 房家 2016/09/07 00:27 #

    발표자가 언급한 것은 '보시'까지이고, 공덕부터는 제 상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환할 수 있는 개념은 공덕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요. 선물경제에서 나눔이 꼭 포틀래치 처럼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나라는 법은 없지만, 포틀래치, 참신한 생각이네요. 생각만으로도 유쾌합니다.
  • 남중생 2016/09/07 22:02 #

    등신불이나 스스로 몸을 던져 사자먹이로 하는 것 같은 과시적인 퍼포먼스들이 생각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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