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9 16:25

교회 소각사건을 통해 본 재건교회의 성격 얻어 배우는 인생

이달 초 들은 발표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요약함.

1. 1947년 재건교회의 ‘교회 소각사건’을 다룬 발표였다. 재건교회는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한 출옥성도를 중심으로 해방이후 조직된 교단으로, 교회 갱신에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낸 곳이다. 경남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교세를 유지하고 있는 보수적인 교단이다. 이 교회에 대한 학술적인 발표는 처음 접하는 것이라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2. ‘소각사건’은 자체로는 작은 사건이다. 경남 함안군의 강명교회와 외암교회를, 일제강점기에 가미다나를 모셨다는 이유에서 불태운 사건이다. 그 경과를 상세히 소개한 글이다. 이 사건은 일제 신사에 절한 ‘마귀당은 허물고 깨끗한 성전을 지어 바치자’라는 재건교회의 창립정신을 보여준다. 교인들은 “외암교회도 우상을 숭배하였으니 그 표상으로 소각하자는 최덕지의 견해에 의견일치”하며 이를 실천하였다.
재건교회가 해방직후 회개를 주장하며 발표한 3대 권위, 5대 강령 등을 보면 ‘성전성별’, ‘깨끗한 성전을 지어 바치자’, ‘마귀당은 일절 버리자’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사건은 소규모이지만 이 강령이 정말로 실천된 것으로 의미가 있다.

3. 내가 볼 때 꼭 정리되어야 할 개념은 여러 번 등장하는 “깨끗함”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깨끗함의 기준이나 경계는 무엇이었는가? 그 정의상, 깨끗함은 오염과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에 현실에서는 파괴적일 수 있다.

4. 글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박윤선의 언급이 소개된다. “우상 섬긴 제단 버릴 수도 있고 수리해 쓸 수도 있다. 그들은 불태우는 쪽을 택했다.”
글이 정말 설명해야 하는 내용은 이것이다. 버릴 수도 있고 수리해 쓸 수도 있는 것인데 왜 버리는(불태우는) 쪽을 선택했는가? 글에서는 잘 해명되지 않지만, 발표자 김정일 선생은 답변에서 당시가 ‘해방 정국’임을 강조하였다. 내 식으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당대는 친일 청산이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시기였고, 교회 소각은 그러한 절실한 시대적 상황에서 요청되는 강력한 퍼포먼스였다고. 해방 후 70년이 되도록 친일 청산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아도, 그러한 강력한 퍼포먼스(혹은 부역자 처벌)가 전국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경남 산골의 한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쉬울 정도다.

5. 글 중간에 재건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구별된 생활”을 약간 소개한다. 이곳에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 하는 노력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주일날 돈 쓰지 않기 위해 아무리 멀어도 걸어서 교회 출석하기, 전기 사용 않기, 수돗물 미리 받아두기, 공적시험 포기, 생산 활동 휴업”
구체적인 내용이 유대교의 안식일 지키기와 비슷한 점이 많아 흥미롭다. 유대교에서는 안식일에 생산 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전기 사용, 운전, 불을 사용한 요리 등을 금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논리에서 이런 실천이 나온 것인지 확인하고 싶다. 어린 시절 재건교회의 독실한 신자였던 경상도 출신 한 선배가 한 이야기도 기억난다. 주일에 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교회에서 배웠기 때문에 시험을 앞두고는 항상 유혹에 시달렸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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