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7 21:13

물질성과 윤리적 행위지원성에 대한 입장들 독서: 발제

기독교 인류학(Anthropology of Christianity)라는 영역의 주요 학자인 웹 킨(Webb Keane)의 논문 “Rotting Body: The Clash of Stances toward Materiality and Its Ethical Affordances”의 요약. 웹 킨은 인도네시아 개신교 선교에서 나타난 페티시즘 담론에 대한 저서를 쓴 바 있다. 그 이후로도 물질성이라는 주제를 꾸준히 천착하고 있다. 이 글은 정교회 유골 숭배를 다룬 연구들을 통해 물질성을 둘러싼 논쟁을 검토하고 있다. 물질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 신앙의 우주론, 윤리적 성격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용어를 현란하게 사용하는 스타일인데, 그 중에서 주목할만한 대목은 ‘행위 지원성’(affordance)을 물질적 신앙을 설명하는 용어로 도입했다는 것. 처음 만나는 단어라 디자인 쪽 책까지 참고했는데, 흥미로운 시도이다. 물질의 어떠한 속성이 이러한 신앙을 유도하였는지 보다 정교한 서술이 가능할 것 같다.
 

Rotting Body: The Clash of Stances toward Materiality and Its Ethical Affordances

<사례 1>
1919년 러시아에서 페오도시 성인의 유해를 파헤치는 문제를 놓고 정교회 주교와 볼셰비키 간부가 논쟁을 벌인다. 유해 파헤치기는 교회의 신망을 떨어뜨리고 평신도들이 사제들에 속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공산당이 하는 작업이었다.
주교: 교회는 유골이 반드시 썩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적이 없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향한 열망에 사로잡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간부: “신자 대부분은(즉 기본적으로 농민들은) 유골을 부패하지 않는 몸으로 이해하지 뼈의 잔해로 이해하지 않는다. 순진한 농촌 여성들에게 뼈를 숭배하면서 거기서 ‘기적’을 기대하라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누구도 뼈를 유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1-1. 대화에는 세 주체가 등장한다. 무신론 혁명분자, 학식이 있는 사제, 그리고 언급의 대상이 되는 농민. 간부와 주교는 이성에 의존함, 물질과 정신의 구분, 농민이 물질을 잘못 이해한다고 무시하는 공통점이 있다. 간부는 농민의 무지가 사회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사제는 교회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1-2. 사제는 유골에 대해 표상적 태도(representational stance)를 갖는다. 즉 유골은 세속적 이득을 가져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신자들에게 영적 구원에 대해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1-3. 농민 신자에게 유골은 만져지는 것으로 힘을 갖는 것이다. 물질적 유골의 효력이 그들을 정교회 개종으로 이끌었다는 점은 대중 문헌에 널리 나타난다.
1-4. 이들이 물질의 참된 속성을 오해한다는 비판은, 개신교가 가톨릭에 가했고 식민지 선교에서 비기독교인에게 가한 페티시즘에 대한 공격과 같은 양상이다. 여기에는 기호 이데올로기(semiotic ideology)의 차이가 놓여 있다. 한편에는 사제와 간부의 고등 이론의 명백한 개념들이, 다른 한편에는 침묵하고 있는 이들의 실천의 함의들이.

2. 농민의 기호 이데올로기 근저에는 그들의 감각 경험이 있다. 물질에 대한 감각 경험은 행위 지원성(affordance)의 근원이다. ‘행위 지원성’은 지각하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어떤 것의 속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무 의자의 속성은 그 위에 앉음을 제공한다. (다른 책 내용 참고: 행위 지원성은 ‘물체의 속성과 행위주체의 능력 간의 관계성’이라고 정의된다. 물체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단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행위 지원성은 결정론적인 것은 아니다. 특성에 반응하는지 아닌지, 어떤 것을 어떤 목적에 선택할지 정하는 것은 인간 주체이다. 한편 윤리적 행위 지원성(ethical affordance)은 경험하는 사람이 윤리적 용어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특성이다. 

<사례 2>
루마니아에서 가뭄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수녀원에서 이콘을 빌려 비를 기원하며 마을까지 행진하였다. 비가 오지 않자 여러 설명이 나타났다. 신부들은 기도할 때 주민들의 목표가 잘못된 탓이라고 했고, 수녀들은 주민들의 도덕심이 약한 탓이라고 하였다. 주민 중에는 신부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수녀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이콘을 잘못 골랐다고 하였고(기적을 일으키는 이콘이 아니니 다른 것을 써야 했다), 어떤 이들은 애초에 비를 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3. 이콘이 발견되고 숭배되는 장소를 포함해서 이콘과 그 주변이 갖는 물질적 특성들은 그에 대한 행위와 성찰을 위한 행위 지원성으로 기능한다. 행위 지원성은 신자들에게 초청과 자극이 된다.
공산당 간부와 주교는 모두 유골의 가시성을 강조하며 성인 유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부패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냄새와 같은 감각 경험은 배제된다. 간부와 주교가 시각을 강조하는 것은 표상으로서의 이콘 관념과 연관된다. 반면에 마을 사람들은 이콘이 날라질 수 있다는 것, 몸 위로 건네질 수 있다는 것, 입 맞추고 쓰다듬을 수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 

4. 엘리트는 농민의 유골 신앙을 이기적 목적을 위한 것이고 세속적 욕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과연 이들의 말대로 이 신앙은 물질적 목적의 추구이고 과잉된 열망의 표출이기에 윤리적으로 실패한 것인가?
기호 이데올로기의 문제, 즉 기호로서의 지위와 물질에 대한 농민의 태도에 주목하자. 유골신앙(혹은 페티시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도성을 지닌 기호와 기호 배후의 행위주체의 참된 자리의 진짜 속성을 정확히 알고 기계적 인과론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유골이나 이콘이 자체로 행위주체를 갖는다고 취급함으로써 생활이 윤리적 의미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농민들은 유골이나 이콘을 상호성의 윤리 속에서 사람으로 대함으로써 무언가를 얻으려 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주장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경험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간부와 주교가 인식하는 경계 너머로 의도성을 확장하고, 자신의 세계의 윤리적 충만을 의도한다. 이콘과 유골이 어디에나 나타나는 한, 신성의 편재는 직접적인 물질적 실재의 모습을 취한다. 어떠한 사건이나 물건도 행위주체의 기호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윤리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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