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0 18:05

치아와 종교 종교학공부

이번에 한국종교문화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실린 글이다. 직장 여건 때문에 애정을 갖게 된 종교 현상들을 간단히 언급했다. 언젠가 논문으로 쓰려고 눈독 들인 현상들.


치아와 종교

치의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이 분야에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시작한 일이었다. 의료의 목적은 단순한 통증의 경감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감소이다. 환자를 단순한 물리적 치료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만나야 한다는 각성이 의학계를 바꾸고 있다. 따라서 의료 교육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접근은 중요하며 종교학은 이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좋은 의료 교육기관이 되기 위해 인문학 교육은 필수이며, 치의학대학원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학제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상이 내가 치의학대학원 강사가 된 큰 맥락이다. 나의 지난 1년은 종교학이 인간 이해의 학문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실제로 그러한지를 치의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몸으로 검증해온 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종교학이 치의학에 도움이 되기는 할까?’라는 의구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여러 만남을 통해 종교가 인간의 고통에 대한 답변으로서 형성된 문화이며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 요구되는 성찰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치의학 세계에서 살아있는 융합으로 존재하고 있는 내게 위안을 주었던 자료 두 편을 여기서 나누고 싶다.


1. 치의학의 기원신화

니네베에서 출토된 고대 바빌로니아 문서 중에서 “치통의 기원신화”라고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아누 신이 세계를 만들고 늪의 벌레를 만들었을 때, 벌레가 자기 먹을 것이 없다고 신에게 탄원하였다. 신은 살구나 무화과를 주겠다고 했는데, 벌레가 뿌리치며 이렇게 말한다. “저를 늪에서 끌어내 사람의 이빨들 사이에 놓으면, 잇몸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빨에 흐르는 피를 마시고 잇몸에서 이빨 뿌리를 갉아먹겠습니다.” 이에 에아 신이 이렇게 말한다. “알았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앞으로는 에아의 강력한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다!” 이야기에 뒤이어 다음과 같은 처방전이 나온다. “에머밀로 만든 맥주, 으깬 맥아, 참깨 기름을 섞어라. 이 주문을 세 번 외우고 섞은 것을 이빨 위에 두어라.”
전형적인 기원신화이다.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태초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엘리아데가 강조하는 기본적인 신화의 역할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고대인들에게도 치아의 고통이 태초의 이야기를 요청할 만큼 근원적인 고통이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심심풀이가 아니라 고통을 치유하는 ‘주문’이었고 치료와 병행하여 암송되었다. 어떤 치의학의 역사에서도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 자료를 설명할 수 있도록 종교학에서 훈련받았다는 사실이 내게 큰 위안을 준다.



2. 치통환자와 치과의사의 수호성인

성 아폴로니아(St. Apollonia)는 치과의사와 환자들의 수호성인이다. 로마 제국 시기에 순교한 성인으로, 순교 직전에 대장간 집게로 이빨이 하나하나 뽑히거나 몽둥이에 맞아 모조리 뽑히는 수난을 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적지 않은 수의 그림에서 성 아폴로니아는 한 손에는 죽음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집게로 이빨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된 성인은 아니지만 아직 유럽에서는 치과 환자들이 “성 아폴로니아여, 저를 위해 기도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몇몇 성인숭배와 비슷하게, 성 아폴로니아 숭배는 끔찍한 고통을 당한 순교자가 유사한 고통을 겪는 신자들의 탄원을 받아주는 존재로 극적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치아가 아픈 중세 유럽인들이 자신의 기도를 잘 이해하고 들어줄 대상을 찾다가 성 아폴로니아를 찾아낸 장면을 상상해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성 아폴로니아는 이빨 집게를 들고 있는 도상적 특징으로 인하여 의사와 환자라는 상반된 성격의 집단을 모두 대표하게 된 역설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근대 치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치아의 고통은 현존하는 현상이다. 아플까봐 무서워 치과가기 싫다는 환자들은 여전히 많이 있고,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의사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 역사 이래 존재해온 치아의 고통에 문화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은 종교문화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인간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예비 치과의사들이 종교문화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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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binumb 2017/05/10 22:49 # 삭제 답글

    임플란트를 두 개나 한 입장에서 매우 절절하게 읽었습니다. 저는 성 아폴로니아 메달을 목에 걸고 다녀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두번째 임플란트 시술에 턱뼈 조직 이식하는 수술이 포함되었었는데 그 몇 시간 동안 의사선생님이 CCM을 크게 틀어놓으셔서 그 이후로 CCM은 저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 房家 2017/05/11 20:24 #

    아폴로니아의 메달, 나도 꼭 필요해요! 치의대 연구실에 비치해 두어야 겠어요.
    그러고보니 치과 많이 간 건 알고 있었지만 시술 받을 때의 고통에 대해서는 별로 물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네요. 한미 양국의 치과에 대해서도 경험한 바가 많을 것 같고... 몇 시간 동안 그 음악 들으며 입 벌리고 누워 있었다니, 참 상상이 안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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