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31 20:47

"개종과 혼합을 넘어" 독서: 발제

Lindenfeld, D., & Richardson, M. (Eds.). (2011). Beyond Conversion and Syncretism: Indigenous Encounters with Missionary Christianity, 1800-2000. New York: Berghahn Books, Introduction.

토착민들이 외부 기독교 선교사의 세계 내 유입에 반응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고 편집된 책. 저자들은 종교 간의 만남(cross-religious meeting)이나 종교적 상호작용을 다루는 이론적 모델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인류학에서 이 주제의 논의는 혼합현상과 개종에 집중되어 왔는데, 이러한 기존의 논의의 틀을 뛰어넘겠다는 야심이 보이는 제목이다. 편집된 책이 흔히 그렇듯이 내용에 비해 제목을 잘 지었다. 새로운 이론의 의지는 좋으나 대단히 참신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책을 구하지 못했으나 구글 북스 덕분에 서문이라도 온전히 확인할 수 있었음)



1. 최근 인류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영향 아래 문화의 고유성과 안정성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혼성, 브리콜라주, 크리올화, 혼합현상 등 문화 간의 뒤섞임에 대한 찬양으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영국 사회인류학에서는 혼합을 아프리카 종교에 적용한 선교사들의 경멸적 평가를 받아들인 반면에, 미국의 경우 허스코비츠(Melville Herskovits)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메멜팅팟으로의 통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래 혼합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존재했다. 종교계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여전히 남아 있고, WCC에서는 혼합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1970년대까지 종교간 대화에 소극적일 정도였다.(6)

2. <세계종교사상사>에서 엘리아데의 언급. “태초부터 풍부한 자료가 존재하는 혼합현상은 히타이트, 그리스, 로마 종교, 이스라엘 종교, 대승불교, 도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 혼합현상을 특징짓는 것은 그 규모와 놀라운 창조성이다.”(3:277)

3. 혼합현상의 의미가 불충분하게 규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1)혼합현상을 균형이 잡힌 두 문화 사이의 상호작용에 제한하고(쿠바 산테리아의 경우), 선교와 같이 불균등한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표현을 모색하자는 주장. (2)이 경우에는 선택적 문화적응(inculturation)이나 문화접변(acculturation)을 제안. (3)극단적인 문화적응의 형태로 영적 집중(concentration of spirituality)가 있다. 우상숭배 금지로 토착의 신격이 제거되었지만 문화적 패턴은 유지되고 있는 경우이다. 유일신론 모델을 따라 토착 판테온이 정비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4)지역어 번역(vernacular translation). 선교학적 관점에 부합하는 용어. (5)대화, 이중 종교 참여. 문화적응은 접촉의 초기에, 영적 집중은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문화접변은 장기간의 노출 이후에, 번역과 대화는 단기와 장기 모두, 이중 종교 참여는 장기에 걸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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