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2 23:04

랜디스가 채록한 한국 동요 기독교세계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성공회 선교사 중 한 명인 랜디스는 인천 지역에서 병원과 고아원을 운영하였다. 그는 고아들에게 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동요를 채록하여 1898년 미국 저널에 발표하였다. 수록된 지면은 다음과 같다.
E. B. Landis, "Rhymes of Korean Children," The Journal of American Folklore 11-42 (1898): 203-09.

랜디스가 의례를 중시하는 성공회 선교사이기 때문에 다른 개신교 선교사들과는 달리 의례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났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그의 글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 동요는 내 관심과는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동요 모음의 첫 두 노래가 (그가 성공회 사제로서 중시했으리라 생각하는) 의례와 사제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는 곡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왜 처음에 실렸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의 스타일대로 건조하게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가 이 노래들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1. 
첫째는 상제를 놀리는 노래이다. 랜디스는 이 노래의 분위기가 ‘매우 경멸적’(abusive)이라고 해설한다. 2행의 ‘회’는 운율을 맞추면서도 무덤과 관련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무덤의 복토를 일컫는 회덮기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랜디스의 영어 음사는 아래와 같다.

상제, 상제, 어데가
Sang Chyei, Sang Chyei, etai ka
회, 회, 어데로 가
Hoi, Hoi, etera ka
장사날이 언제이오
Chang sa nali enchyei o
일, 일, 이레날이오
I1, II, irhei nal io.

전래 동요 모음집에 실린 비슷한 노래는 다음과 같다.

상주(喪主)
상제 상제 어데 가오
산수자리 보러갑네
산수자리 어디메요
동글동글 동산이오
장사날이 언제이요
일 일 일헤날이오
죽 한 그릇 해주리까
곰 곰 고맙쇠다
김소운, <<김소운의 한국구전동요>>(앞선책, 1993), 82.


2
둘째는 중을 놀리는 노래이다. 2행의 ‘뱅이’는 잘 해석되지 않는다. 뱅뱅 돌아다니는? 3행과 4행은 신랄하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행색, 그리고 가재를 잡아먹는 모습으로 희화화된다. 랜디스는 이 노래가 ‘승려를 비하(derision)’하는 것이라고 해설한다.

중, 중, 까까 중
Chyoung, chyoung, kakke chyoung
울 너머 뱅이 중
Oul nemou painge chyoung
접시 밑에 핥아 중
Chyepsi mithei haltai chyoung
돌 밑에 가재 중
Tol Mithei kachai chyoung.

전래 동요 모음집에는 비슷한 노래가 여러 지역에 있다. 

돌중

중 중 까까중
어디서 왔나
황장사서 왔네
무엇하러 왔나
동냥하러 왔네
무엇 가지고 왔나
바랑 메고 왔네
무엇 치고 왔나
목탁 치고 왔네
염불할 줄 아나
염불은 못하네
아이고 요 너머 조 너머
개똥밭에 돌중일세그려 (경기도)

중 중 까까중
접시 밑에 핥아 중 (경기도)

중 중 때때중
칠월이 번개중
소맷독에 빠진 중
대꼭지로 건진 중 (전라북도)
김소운, <<김소운의 한국구전동요>>(앞선책, 1993), 98-99.

안성에서 전래되는 노래에는 ‘뱅이’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역시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저자는 이 노래가 머리 깎은 아이 놀리는 노래라고 해설하였다. 이 해설은 현대 시점에 해당하는 것이고 아마 조선말에는 진짜로 중을 놀리는 훨씬 살벌한 노래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중 까까중
울 넘어 팽개중
김치국에 빠진중(『안성군지』)
김헌선, <<한국 구전동요 연구>> (민속원, 2013), 411-12.


덧글

  • ㅎㅎㅎ 2018/02/18 12:39 # 삭제 답글

    저는 그 비슷한 동요를 부르면서 성장했습니다. "중중 까까중"은 스님(탁발승)앞에서 부르지는 않았구요... 일부 용감한 아이들은 그러기도 했습니다. 머리에 버짐(그때는 기계충이라고도 했습니다)생긴 친구들의 중처럼 박박 깍은 머리를 놀릴 때 불렀던 기억이.... 별걸 다 기억나게 하시는군요... ㅎㅎ
  • 房家 2018/02/18 19:21 #

    우와, 어릴 때 이 노래를 부르셨군요! 이 노래가 광범위하게 전승된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이렇게 확증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스님에게 직접 부르는 건 19세기면 모를까 20세기말에는... 대단히 용기 있는 친구군요. 즐거운 추억 공유해주어 감사합니다.
  • Esperos 2018/04/08 22:44 # 답글

    '염불할 줄 아나 염불은 못하네'라는 구절은 조선말-일제시대에 걸쳐 땡중이 늘어났다는 부분을 연상케 하는군요. 어찌어찌 계만 받았을 뿐 승려로서 의례를 거행하지 못하고 탁발만 받으러 다니는 땡중이 늘어나니, 노래도 이런 게 생가지 않았을까 싶군요.
  • 房家 2018/04/10 12:34 #

    예, 당시 종교 상황이 날카롭게 반영되어 있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 신노스케 2019/03/14 15:20 # 삭제 답글

    저도 저 노래를 동요집에서 보았고 50년대 생인 어머니가 간신히 기억하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저는 듣지 못했고요

    1번 노래야 산업화로 농촌 공동체가 깨지면서 사라졌을 것이고
    2번은 성철 스님 등이 주도한 불교 개혁 운동으로 사라졌으리라 보입니다
    탁발이 정말 요식 행위 수준으로 된, 그야말로 금지되고
    불교 정화운동으로 승려 자질이 대폭 향상되면서 저 노래가 유지될 이유가 사라졌죠
    승려 자질 향상
    조선 이후 추락한 승려의권위 회복
    탁발 금지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서 노래를 부를 이유가 사라진 것이지요
  • 房家 2019/03/14 16:11 #

    백년 사이 불교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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