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8 21:49

조상, 영혼의 모습 종교학공부

다음 글은 현대 사회에서 제사가 변화하는 양상 중 하나를 지적하고 있다.

제사에 투영된 영혼관의 탈락이다. 조선 후기 전래된 가톨릭이 제사를 비판할 때의 논리를 살펴보면 죽은 자는 음식을 받아먹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톨릭은 사후 영혼이 극히 존귀하므로 세간의 유형한 음식물을 양식으로 삼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지옥이나 연옥에 간 영혼은 제사를 흠향하러 이 세상에 올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신주는 나무 조각에 불과하며 사람이 죽으면 어느 물건에 깃들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신념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현대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도 영혼의 존재를 신뢰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한 것은 그에 대한 물음을 묻지 않는다. 또한 조상의 기운이 내 몸 속에 유전된다는 것을 굳이 믿으며 제사지내는 사람 역시 많지 않다. 즉, 현대인들은 영혼관 또는 생사관에 깊이 집착하지 않는다. 제사는 의식儀式으로 남아있지 그 이면에 있는 세계관까지 우리에게 전달하지는 못하였다.
이욱, “조상제사, 왜 지내는가,” <<조상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민속원, 2012), 58.




우리는 제사를 지내지만 제사의 대상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애초 유교 전통에서도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었고, 그것이 위에서 언급한 서학 영혼관과의 충돌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현대인의 무관심은 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조상이 어떠한 형태로 오시고 어떻게 음식을 먹으며 우리와 소통하는지, 우리에게 정통적인 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지내는 제사와 차례일 뿐이다. 신화가 비어있는 의례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상상이 빈 신화를 채우기도 한다. 일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문을 일정 정도 열어놓는다. 조상이 음식 드시러 오라는 의도인데, 조상신이 어떤 형태로 상상되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다소간의 물질적 형태를 취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파트에서 제사 지낼 때 현관을 약간 열어 둔 것도 보았는데, 이 경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신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했다.



이 에피소드는 조상에 대한 다른 종류의 상상이다. 정답이 없기에 생길 수 있는 상황으로, 윤회와 섞여 나온 새로운 발상이다. 영혼관이 부재한 의례는 즐거운 상상의 영역을 열어주지만, 어쨌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의례가 계속된다면, 또 계속되려면, 의례적 상황에 기반을 둔 설명(교리, 신화)이 공동체에 상식적인 것으로 공유되는 것이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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