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2 14:58

기적을 쟁취하려는 경쟁사회 기독교세계

1. <루르드(Lourdes, 2009)>는 제목 그대로 프랑스의 유명한 성지 루르드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우리나라에서는 대구 성모당이 이곳을 본떠 만들어졌다.) 전신불수인 주인공이 루르드에서 기적적으로 치유 받아 몸을 움직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느님의 기적을 찬양하는 전형적인 종교영화이다. 그래서 나도 심드렁하게 보고 있었는데, 갈수록 영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2. 순례단을 이끄는 수녀는 엄격한 사람이다. 엄격함이 심해 신앙 언어로 구성된 폭력을 휘두른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이에게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운명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당신이 겪는 고통엔 깊은 뜻이 있어요.”라고 못박으며, “난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라는 성 바오로의 말을 인용한다. 아픔을 주는 신정론이다. 기적을 얻고 싶어 행렬에서 이탈한 이들에게 “그래 봐야 아무 소용 없어요. 남들보다 앞에 앉았다고 주님이 고쳐 주실까요?”라고 서늘한 핀잔을 주는 장면도 섬뜩하다.

3. 순례단의 신부는 외적인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는 ‘내적 치유’가 진정한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태도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데, 문제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당신의 삶은 특별해요. 하느님은 다양하게 창조하셨어요.”라는 위로 안되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주인공에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할까요?”라고까지 말한다. 해주는 기도는 자기 철학에 맞게 “영혼을 낫게 하시고 원한다면 육신도 낫게 하소서.”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몸을 일으키자 기적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라는 이상한 대사를 치게 된다.

4. 영화 중간쯤에 주인공이 일어나 활동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기적은 마무리가 아니라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압권은 기적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떨떠름함’이다. 수근거리고, 멀거니 쳐다보고, 마지 못해 축하한다. 마치 자신이 받아야 할 기적을 저 사람이 낚아채기라도 한 듯, 기적의 제로섬 게임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5. 기적이 직후에 어떤 사람은 “의무국에 가보셨어요? 신청 안 하면 공식 인정을 못 받아요.”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지속되도록 빌어요.”라는, 위하는 말인지 분간하기 힘든 말을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일어서 있던 주인공이 피곤을 느끼고 자리에 앉는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기적의 지속 여부에 대한 열린 결말이다. 이상야릇하고 매력적인 결말이다.



덧글

  • 신노스케 2019/04/19 14:53 # 삭제 답글

    1. 루르드에서 성모를 만났다는 베르나데트는 정작 아프니까 병원도 가고 온천장도 갔다고 하죠. 기적의 샘물은 거의 안 마시고

    2. 루르드의 발현이 인정받게 된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는, 성모가 자신을 무염시태-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라고 소개했다는 부분 때문이었지요
    저 말을 시골 여자애가 어찌 알겠음? 그러니까 발현 맞음
    대충 이런 논리였는데,,,,
    그걸 왜 베르나뎃이 모를 거라고 보는지...
    알자면 알 수 있는 것이었죠

    저 개인적으로 루르드의 발현은 베르나데트가 뭔가 환상을 본 건 맞는 것 같은데-성모인지는 불확실-
    프랑스 교회가 일부러 과장한 느낌도 강하게 듭니다
  • 房家 2019/04/19 20:12 #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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