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9 20:15

고깃덩어리와 성화 서랍2: 도상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한 화가 피테르 아르첸Pieter Aertsen(1508–1575)의 1551년도 작품 “이집트 피신이 보이는 푸줏간 진열대Butcher's Stall with the Flight into Egypt”이다.



1. 육중한 고깃덩어리와 소머리가 충격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그림의 제목을 보고 더 충격을 받았다. 제목을 보고 설명을 듣고서야 고기 뒤쪽으로 성가족(당나귀에 탄 성모, 성모가 안은 잘 보이지도 않는 예수, 당나귀를 끄는 요셉)이 이집트로 피신가는(그러면서 신자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성화가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세속적인 고기 그림과 종교적 그림의 스케일의 비대칭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비평가들은 세속적 관심이 증대한 결과라고 많이 설명하는 것 같다. 액면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작가의 의도가 시원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작은 종교 그림이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성가족이 나누어주는 영적인 음식과 세속적 음식이 대조되는 것일수도 있다. 현실의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그림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고기가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해설이다.

3. 종교적 주제는 그림의 그럴듯한 외피일까, 숨겨진 의도일까?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당시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의 영향이 강해 종교화를 거의 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 작가가 그린 제단화들은 파괴되어 전해지지 않고 세속적인 그림만 남아있다. 상황에 대한 작가의 적응이 어느 정도였느냐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 그림은 음식 정물이 기독교 주제를 크기에서 압도하는 최초의 그림으로 정물화의 선구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덧글

  • 신노스케 2019/04/19 20:53 # 삭제 답글

    브뤼겔도 일상화 속에 성경의 주제를 담아 놓았죠
    님이 언급한 대로 칼뱅파 및 성화 성상 파괴 운동에 대한 일종의 여운이 있는 듯 합니다
    성화이면서 서오하 아닌 듯
  • 房家 2019/04/21 23:27 #

    브뤼겔은 세속적인 그림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공부할 게 많군요. 아르첸이라는 화가는 성상파괴운동의 영향을 한몸에 받고 삶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 ㅇㅇ 2019/08/05 16:28 # 삭제 답글

    제목 이야기 하시기 전엔 종교화인줄 몰랐네요. 그냥 무의식적인? 육식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재료가 건조하고, 세밀하게 그려진 것에 민감했나 보다 생각했죠. 게다가 요리는 아니라지만, 화가가 식재료 플레이팅을 형편 없게 한 것도 한몫하는 듯 해요.
  • 房家 2019/08/06 23:37 #

    저도 그랬을 거에요. 확실히 먹음직스러운 배치도, 실용적인 배치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어떤 내적인 질서로 배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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