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00:57

치아 고통의 종교적 표현 종교학공부

종교학회에서 그동안 조사해오던 성 아폴로니아 숭배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발표하였다. 전체 윤곽은 꽤 드러난 듯싶다. 자신이 떨어지는 글의 논리만 조금 더 보강한다면 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은 일레인 스캐리의 책이 생각의 틀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래는 발표에 사용한 요약문.


치아 고통의 종교적 표현: 성 아폴로니아 숭배

1-1. 인간이 육체적으로 겪는 고통의 특징 중 하나는 언어화를 거부하여 경험이 공유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치아의 고통 역시 형언하기 쉽지 않은 고통 중 하나로 존재해왔다. 이 글은 치아의 고통이 종교 영역에서 어떻게 숭배의 대상을 형성하고 소통의 방식을 구축하였는가를 찾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서양에서 치통 환자와 치과의사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아폴로니아(St. Apollonia) 숭배를 분석함으로써 치통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고통이 당대의 물질적 환경 속에서 종교를 통해 어떻게 다루어졌으며, 의학 발전과 더불어 그 의미가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1-2. 아폴로니아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여성 기독교인으로, 기독교가 박해받던 로마 데키우스 황제 치하인 249년에 동정녀로서 순교하였다. 13세기 이후 치통 환자를 위한 성인으로 대두되면서 도상 제작과 숭배가 활발해졌고,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의 신앙과 상징이 지속되고 있다.

2. 성 아폴로니아 전승
2-1. 치의학사에서 성 아폴로니아에 관한 연구는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가 아폴로니아 전승의 내용의 사실성을 검증하려고 하거나 사실성을 전제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역사학자 패트릭 기어리가 지적했듯이, 성인전 내용의 집필 목적은 성인 개인의 특징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에 공통되는 성스러움의 보편적인 특질을 전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에 근접하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상투적 표현으로 구성된 성인 전승 이면에 놓인 강조점의 미세한 변화이고, 특정한 부분이 신자들에게 수용되는 해석의 과정이다.

2-2. 아폴로니아에 대한 자료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이후 전승의 뼈대가 되는 언급은 3-4세기경에 저술된 에우세비오스 <<교회사>>에 등장한다. 이 책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성 디오니소스가 안티오크 주교 파비우스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서 희생당한 기독교인의 한 명으로 아폴로니아가 소개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폭도들이 나이 든 동정녀 아폴로니아를 잡아 옴 (2)데려오는 과정에서 턱을 쳐서 이빨이 모두 부러져 튀어나옴 (3)신을 모독하는 말을 강요하면서 산채로 불태우겠다고 위협 (4)거부하고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듦. Eusebius, Kirsopp Lo (tr.), The Ecclesiastical History (Cambridge: Harvard Univ. Press, 1964), book VI. XLI. 7.
“이빨이 모두 부러졌다”는 묘사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순교의 모습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전승의 초점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불 속에 뛰어든 행위이다. 이후 신학자들에 의해 아폴로니아가 언급되는 경우에도 죽음의 방식이 화제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녀의 죽음 선택 이전에 성령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스로 선택했다면 순교 개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러한 해석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2-3. 중세 성인전을 대표하는 저작 <<황금 전설>>(Legenda Aurea)에도 아폴로니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1260년경 도미니크회 수도사였던 야코부스(Jacobus de Voragine)가 저술한 이 책에서 아폴로니아 이야기의 분량은 확대된다. 저자는 아폴로니아의 행위가 갖는 교리적, 도덕적, 신비적 의미를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예를 들어 순교의 마지막 순간은 다음과 같이 평가된다. “이미 많은 종류의 고통에 시험받았던 이 두려움 없는 순교자는 그녀가 겪은 고통에도 불의 뜨거움에도 굴복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정신이 훨씬 빛나는 진리의 빛에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손으로 붙인 물질적인 불은 불굴의 가슴 속의 하느님에 의해 불어 넣어진 열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처녀의 덕목은 너무 영광스럽고 복되게 승리한 것이어서 순교자 가운데서 우월하고 빛난다.” 치아의 고통과 관련한 세부사항에는 작은 변화가 보인다. 이전 전승에서 이빨이 부러진 상황이 다소 불분명하게 묘사되었다면 <<황금 전설>>에서는 고문 과정에서 치아 손상이 있었다고 밝힌다. “고문관들은 잔인하게 자기들의 분노를 그녀에 가하여 먼저 그녀 치아를 모두 쳐서 튀어나오게 하였다.” Jacobus de Voragine, William Granger Ryan (tr.), The Golden Legend: Readings on the Saint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3), 1: 268-69.

2-4. 근대의 대표적인 성인 자료집은 알반 버틀러(1710~1773)가 1757~1759년에 저술한 <<버틀러 성인전>>(Lives of Saints)이다. 이 책의 아폴로니아 서술은 위의 두 기본자료의 기조를 유지하여 자발적 죽음을 강조한다. “자신의 희생이 완전히 자발적인 것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녀는 풀려나자마자 스스로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Alban Butler, Lives of the Saints (New York: Kenedy, 1956), 286.
성 아폴로니아는 위에서 살펴본 중요한 성인 자료에서 소개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서술의 강조점이다. 위의 자료에서는 치통환자의 수호성인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빨이 부러졌다는 세부사항이 포함되어 있을 뿐, 원래의 자료에서 강조한 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불 속으로 뛰어든 죽음의 장면이다. 치통환자의 수호성인은 중세 이후 대중적 신앙의 맥락에서 등장하게 된다.

3. 치통환자의 수호성인
3-1. 성 아폴로니아에 대한 대중적 신앙은 13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유행하였다. 그와 관련된 성화, 성상, 유골이 다수 제작되거나 등장하였고, 치통 완화를 위한 기도문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치통환자의 수호성인으로서의 성 아폴로니아는 이 시기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이 어떠한 이유에서 성 아폴로니아를 호출하였는지가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숭배의 중심이 된 대상들을 통해 대중들, 더 구체적으로는 치아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성 아폴로니아를 통해 추구하였던 것이 무엇인지를 추론할 수 있다.

3-2. 왜 아폴로니아가 치통의 수호성인이 되었을까? 순교 과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거나 뽑히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치통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고 아픔을 호소하는 기도를 하느님에게 전달해줄 적임자일 것이라는 대중적 인식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질병 수호성인의 예와 비슷하게, 그가 겪은 구체적 고통의 내용, 그리고 그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그의 특정 종류의 신성함의 기원이 된 것이다.
중세 프랑스에서 전승된 라틴어 주문(呪文)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준다. 주문 내용은 예수와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아폴로니아의 연민을 볼 수 있다.

예수: “아폴로니아야,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아폴로니아: “주님, 저는 피와 치통 때문에 여기 있습니다.”
예수: “아폴로니아야 돌아가거라. 피가 나면 멎을 것이고, 벌레가 있다면 그것은 죽을 것이다.” 
Leo Kanner, Folklore of the Teeth (Detroit: Singing Tree Press, 1928), 173.

현대 의학에서 치아우식증이라고 불리는 충치(蟲齒)는 역사적으로 잇속 벌레에 의한 것이라고 이해되어왔다. 피의 멈춤과 벌레의 제거가 중세인들이 이해하는 치통 치료임이 드러나는 주문이다. 성 아폴로니아의 치통 기도는 주문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중세 말 문헌에서 진정제로 쓰인 약초 목록과 함께 수록되었다. 현대도 기고문이 기도 카드(prayer card) 형태로 유통되고, 환자가 치과에서 기도를 읊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 성스러운 아폴로니아여, 당신의 열정으로, 당신이 겼은 치아와 목과 혀의 고통으로 중재하소서. 치아에서 영원히 통증이 사라지기를 원하나이다.”

3-3. 성 아폴로니아 숭배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는 도상이다. 13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숭배의 유행을 반영하여 성 아폴로니아를 그린 회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그림은 크게 두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한 유형은 아폴로니아가 순교를 당할 때 강제로 이가 뽑히는 장면을 그린 것들이다. 앞서 보았듯이 텍스트 전승에서는 불에 뛰어드는 죽음을 강조하였지만, 그림에서는 불이 배경으로 처리되거나 아예 생략되는 반면에 아폴로니아가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힌 태로 치아가 뽑히는 순간을 주제로 포착하여 강조한다.
다른 유형은 성 아폴로니아가 자신의 치아를 뽑은 집게(pincet, 겸자, 포셋)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집게에는 뽑힌 이빨이 함께 있는 경우도 많다. 이 집게와 치아가 성 아폴로니아를 상징하는 지물(持物, attribute)이 되었다. 여기엔 일종의 전도(顚倒)가 존재한다. 고통의 피해자였던 아폴로니아가 가해자의 도구를 지배하는 권능을 지닌 존재로 표상되는 것이다. 이는 후에 치통을 겪는 환자들의 수호성인이 치과의사의 수호성인을 겸하게 된 발전을 예고한다.
공식적 텍스트에 기록된 내용과 비교할 때 도상에는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내포되어 있다. 아폴로니아는 텍스트에서 나이든 동정녀였지만, 도상에서는 젊은 여성으로 그려진다. 텍스트에서는 군중에게 끌려오다가 이빨이 부러지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도상에서는 고문의 일환으로 묶이거나 사람들에 잡힌 상태에서 이빨이 뽑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이빨이 부러진다는 것과 뽑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차이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가? 여기서 중세 치과 치료의 환경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3-4. 근대 치의학 성립 이전의 치아 치료의 풍경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치료를 담당한 이는 치과의사(dentist)가 아니라 발치사(drawer)였다. 발치사는 마을을 순회하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치통 환자의 치아를 뽑는 시술을 공연처럼 보여주었다. 치통을 치료하는 방법은 사혈(瀉血)이나 발치(拔齒) 말고는 없었다. 아무 마취수단 없이 행해진 발치는 극단적인 고통과 출혈을 동반하였다. 아픈 이를 빼고 고통이 진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피가 멈추지 않고 악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세의 치아 치료는 고문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묶이거나 사람들에게 붙잡힌 채로 억지로 이빨을 뽑아내는 모습은 중세 치통 환자들의 치료장면이었고, 이는 성 아폴로니아가 당한 고통의 장면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성 아폴로니아가 들고 있는 집게 역시 고문 도구인 동시에 의료 기구일 수 있었다. 집게는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부터 등장하는, 유서 깊은 치의학 도구인 동시에 근대 치의학 이전까지 거의 유일한 치과 도구이기도 했다. 성 아폴로니아 도상과 숭배에는 발치사들이 치과 시술을 했던 의료 환경에서 치통을 극복하기 위해 그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발치를 겪어야 했던 중세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3-5. 숭배의 유행에 따라 아폴로니아의 치아와 유골(relic)을 모신 교회들이 다수 등장하였다. 모두 모은다면 상당한 양의 치아가 도처에 나타났다는 증언도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도 확인 가능한 아폴로니아 치아 유골은 15개 정도로 제시한다. 유명한 사례로는 포르투갈 포르토 성당에 봉안된 유골과 크로아티아 랍 지역 성당에 봉안된 아폴로니아 치아가 있다. 

3-6. 성 아폴로니아 숭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질병과 관련된 당대의 다른 성인숭배와 비교 연구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흑사병이 유행한 14, 15세기에 기존에 존재하던 질병 관련 성인들이 새로운 실용적 조합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열네 명의 성인 조력자”(Fourteen Holy Helper)은 각종 질병이나 불운에 특화된 성인들의 조합이다. 이들은 두통, 열병, 인후질환, 페스트, 내장 질환, 역병 등 마치 전공의처럼 자기 전공분야를 맡아 환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3-7. 고대와 중세의 텍스트에는 치통의 수호성인으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19세기 이후에 수집된 전승에는 도상에서 나타난 변화, 치통 수호성인으로서의 면모가 반영된 변화가 나타난다. 1895년에 출판된 성인전 자료에는 아폴로니아 고문 장면이 이렇게 묘사된다. “폭군이 이를 보고서 그녀를 기둥에 묶고 그녀의 아름다운 치아를 모두 집게로 하나하나 뽑으라고 명령하였다.” ‘아름다운 치아’, ‘집게’, ‘하나하나 뽑음’은 도상적 표현을 반영하여 추가된 세부 사항으로 보인다.
치의학적 관심이 더 두드러진 자료도 있다. 1939년 출판된 자료에서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문관들은 철침(iron point)으로 그녀 치아를 부러뜨리고 겸자(tong)로 치근(齒根, roots)을 뽑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주님께 기도드려서, 치통으로 고통받는 사람 누구나 그녀의 이름으로 탄원하면 즉각 고통이 덜해지게 해달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음성이 내려와 기도에 응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신부여, 당신은 기도하는 바를 하느님으로부터 얻었노라.’” 발치의 순간이 전문적으로 묘사되었고, 그녀가 치통의 성인인 근거에 해당하는 내용이 보충되어 있다.

4. 치과의사의 수호성인
4-1. 치과 환자의 성인은 치과 의사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치과 의사가 전문직으로서 형성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중세 말부터 이발외과의, 치아기술자(dentator)라는 숙련된 집단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짧은 예복의 외과의 길드를 형성하였다. 이 길드는 지신의 상징으로 성 아폴로니아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이며, 치과의사 모임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이어지고 있다.

4-2. 아가다라는 성인은 순교를 당할 때 가슴을 절단당하는 고통을 겪었고 이 때문에 훗날 성화에서 가슴이 아가다의 지물, 즉 그를 알아보는 표식이 되었다. 성화 속의 아가다는 절단당한 가슴을 마치 물건처럼 들고 다닌다. 원래의 고통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기표-기의의 결합이 일어나서, 가슴의 도상적 형태만 남아 기표로 작용하고 새로운 기의가 결합되었다. 아가다는 유방질환과 관련된 수호성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형태상 유사한 종을 만드는 길드의 수호성인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찬가지로 성 아폴로니아를 표상하는 지물, 즉 이빨이 집혀있는 겸자는 원래의 순교 맥락에서 벗어나 그의 역할을 표현하는 기표가 되었고, 도상적 유사성을 통해 발치를 주 업무로 하는 치아기술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4-3. 1557년에 마르티네즈(Francisco Martinez)가 스페인어로 저술한 치의학책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이후, 성 아폴로니아는 치의학사의 일부가 되었다. 1903년 치의학 논문에서 이 사실을 보고하였고, 1909에 출판된 치의학 역사서(A History of Dentistry)에서 서술에 포함되었다. 
성 아폴로니아는 서양 치과협회의 엠블럼으로 흔히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구강해부학회의 표상으로 사용되고 있고, 과거 대한치과의사협회의 표상에서 천사 모양의 여인으로 등장하였다. 1979년 산마리노에서는 제13차 구강보건학회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고, 1982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제70차 국제치과협의회 기념 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우표 도안에 성 아폴로니아 그림이 사용되었다.

4-4. 고통에 관해 중요한 논의를 개척한 일레인 스캐리에 따르면,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 고통은 인공의 창조물을 통해 물질적으로 변환된다. 치아의 고통을 몸 밖으로 꺼내어 대상화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은 성 아폴로니아 숭배라는 종교현상으로 표현되었다. 숭배의 형성 과정에서 원래의 공식적 전승에서는 존재도 없었던 ‘집게’가 중심적 상징의 자리를 갖게 되었다. 중세 유럽인은 발치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는 척박한 치과 의료 환경에서 살았고, 치아의 고통뿐 아니라 발치의 고통도 숭배 형성의 재료가 되었다. 성 아폴로니아 기도가 현대 치과에서 사라지지 않았음은 치과 치료에서 고통의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집게가 고통과 치료를 상징하는 것처럼, 성 아폴로니아는 환자와 의사 모두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며 다층적 상징으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덧글

  • binumb 2019/11/22 02:27 # 삭제 답글

    오오오 드디어 발표가 나왔군요! 고문과 고통에서 치료(와 기적으)로 가는 과정이라니!
  • 房家 2019/11/22 17:30 #

    기적이라니! 발표가 금방 글로 변하는 일이 있으면 해요. 올해는 딴 일 해야 하니까 내년 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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