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0 23:30

종교는 자연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되었다? 종교학공부

일반적으로 인류 역사에서 종교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곤 한다. 원시인들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미지의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 차서 살았다. 어느 날 번개가 ‘꽝!’ 치는 날 밤, 그들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상상하였고, 그것이 종교의 기원이 된다...
종교학사에서는 백 년 전의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설명이지만, 상식의 세계에서는 지금도 흔히 통용되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원복의 만화 <<신의 나라 인간 나라: 종교편>>의 첫 부분에서 종교의 첫 단계를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글 끝에 첨부된 그림을 참조할 것.)

요즘 읽고 있는 책, <<“암흑 속의 이교도들...”'Heathens in the Blindness...'>>(E.J. Brill, 1994)의 5장은 이런 식의 설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어 재미가 있었다. 게으른 내가 하는 식으로 낡은 이론이라고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다. 저자  발라강가다라(Balagangadahara)는 이런 식의 설명을 ‘공포 이론’(fear theories)이라고 부르며 공포 이론의 전개과정에 함축된 잘못된 전제들을 따지는 생산성 높은 논의를 이끌어낸다. 이 논의의 몇 부분을 메모하였다.


1) 공포 이론의 자연 이해 방식에 대한 딴지
저자는 공포 이론에 대해서 이렇게 따진다. “이러한 설명이 얼마나 말이 될까? 정말 얼마나 그럴 듯 한걸까? 내가 보기엔 별로 그렇지 않다. ‘원시인’이 세계를 혼돈으로 경험했다는 주장은 거의 믿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설혹 원시인이 경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의 질서 있음에서 받은 인상일 것이다.”(167)
인간이 자연의 모습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 밤낮, 천체현상 등 주기적인 자연의 질서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매양 접하는 자연의 모습이고, 또 그러한 모습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론은 뒤르케임이 <<종교 생활의 기본 형태들>>에서 뮐러의 종교 정의를 비판하면서 선보인 바 있다. 중요한 반론이다. 일상적인 자연보다 비일상적인 자연 경험에 의해 종교의 시작을 설명하는 것, 너무 선정적인 이론이다.


2) 자연은 정말 무서운 대상인가?
저자는 ‘공포 이론’이 순전히 현대인의 관점에서 원시인의 생활을 상상하고 있다고 꼬집는다.“옛날 사람들에게 자연 세계가 적대적인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그들이 안정을 희구하면서 ‘결핍’의 세계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안정성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168) 저자는 원시인들이 굶고 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굶는 게 다반사인 이들이 그것을 공포로 느낄 리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나 내가 그들의 세계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면, 우리는 그 세계를 결핍이라고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그들의 보통 세계가 우리에게는 결핍의 세계인 것이다.”(169) 공포 이론은 우리 멋대로 생각해낸 두려움에 기반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3) 종교가 자연의 공포를 해소한다는 것은 기독교적 모델이다
저자는 이런 식의 설명에 기독교적인 논리가 내재해 있다고 지적한다. 이 지적은 나로서는 생각도 못했던 것인데, 굉장히 신선했다.
자연을 악마의 힘이 깃든 두려운 대상으로 상상하는 것은 기독교 전파 이전의 게르만 인의 신앙(정말로 게르만 인의 신앙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그렇게 파악되었다)을 연상하게 한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전해짐으로써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해소되었다는 언급은 기독교 전파 과정을 서술할 때 흔히 등장한다.
공포 이론은 자연이 주는 두려움이 종교의 발명(신 존재를 상정하는 것)에 의해 해소되었다는 줄거리를 갖는데, 이것은 기독교가 자연이 주는 두려움을 해소시키는 모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종교 기원에 대한 ‘세속적’ 이론들은 서양의 기독교 전파라는 역사적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이 드러났으며” “인류 역사를 유럽 역사에 일치시키려는 경향”이라고 비판한다.(172) 


이 비판 과정에서, 공포 이론에서 전제된 자연, 종교, 종교의 역할 등이 모두 서양인의 머릿속에 있는 것임이 잘 나타난다. 우리 입장에서 다시 물어 보면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과연 자연은 두려움을 주는가? 과연 종교적 설명이란 것은 신을 상상하는 것인가? 등등. 이런 식의 논의에 가장 반대 되는 사례로, 도교(道敎) 전통을 생각하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 이원복의 <<신의 나라 인간 나라>> 중에서 종교의 시작을 설명한 부분.


덧글

  • 자일 2009/01/13 10:57 # 삭제 답글

    일전에 기독교의 '야훼'는 당시 히브리 탈출자들이 이주 도중 접한 화산이었던 시나이산을 신으로 형상화했다는 글을 읽었는데... 발라강가다라(이름이 재미있지만 어렵군요^^)는 아니라고 하는 건가요? ^^;
  • 房家 2009/01/13 13:29 #

    자일님 말씀이 맞습니다. 화산에 대한 '충격과 공포'에서 야훼 개념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발선생이 문제삼는 것은 종교의 시작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가 종교에 대한 일반론으로 주장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입니다. 그건 서구인의 종교경험이지 '원시인'에 뒤집어쒸울 수는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 사기꾼 후보생 2014/04/02 22:40 # 삭제 답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제서야 알고 들렀습니다.
  • 房家 2014/04/03 00:04 #

    방문을 환영합니다.
  • 초등학생 2014/04/03 20:33 # 삭제 답글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자료 숙제 참고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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