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4/28 12:57

나바호족의 말의 노래 독서: 메모

신기루로 만든 발을 가졌습니다.
걸음걸이는 무지개입니다.
태양끈 고삐를 매고 있습니다.
심장은 붉은 돌로 되어 있습니다.
내장은 온갖 종류의 물로 되어 있습니다.
까만 비의 꼬리를 가졌습니다.
멀리서 치는 번개가 그의 귀입니다.
반짝하며 퍼지는 별이 그의 눈이 되고 얼굴의 줄이 됩니다.
뒷다리는 새하얗습니다.
밤에 구슬이 그의 입술이 되었습니다.
햐이얀 조가비가 그의 이가 되었습니다.
검은 피리가 입속으로 들어가 나팔이 되었습니다.
새벽이 그의 배가 되어, 한쪽은 하얗고, 한쪽은 검습니다.
(Sam Gill, Native American Religions, p.140)

말에 대한 나바호족의 노래이다. 엉성한 번역을 때문에 아름다운 느낌이 전해졌을런지 모르겠다. 나바호족의 세계관에서, 말은 태초와 연관된 중심적인 동물이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신화 한 편 소개하는 것이었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화가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역사이다. (여기서부터 종교학은 산통을 깨기 시작한다.) 말은 나바호족에게 원래부터 있던 동물이 아니다. 약 사백년 전에 스페인인들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그 몇백년 동안 말은 나바호족에게 필수적인 운송수단이 되었고, 우주론에서도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토박이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유럽의 영향이 이처럼 신화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 신화는 태초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을 재료로 한다. 이것은 종교학자 조나단 스미스가 누누이 강조하는 테제이다. 신화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예가 있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라는 옛이야기 도입부 말이다. 굉장히 오래된 옛날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담배는 17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태초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발밑엔 근대의 현실이 자리한다. 아직도 우리에겐 역사와 신화가 대립적이라는 근대의 논리가 강하게 뿌리박혀 있고, 이런 자료들을 만나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에 대한 성찰의 흔적은 신화에서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다.
(위의 사진은 나바호족의 모래 그림으로, 태초의 창조를 그린 것입니다. 모래 그림은 드림캐처와 함께 대량생산해서 많이 팔리는 나바호 상품 중 하나죠. 제 집에도 냉장고 자석으로 되어있는 저 그림이 있습니다.)


덧글

  • 청랑 2004/04/28 19:16 # 답글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와 의미' (Myth and Meaning)란 책이 생각나네요..
    17C~18C,과학적 사고?로 감각, 감성은 신뢰할 수 없는 기만적인 세계인 반면,
    객관적인 세계는 오직 이성,지성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믿음이 보편화되면서,
    소위 과학적 역사와 감성적 신화 사이의 간극이 벌어졌다는..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와 신화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房家 2004/04/29 05:20 #

    사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신화를 바라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레비스트로스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학자죠.

    ("신화와 의미"에서 같은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야생의 사고"에 근거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브리꼴라쥬라고 불렀죠. 잡다한 재료들을 그러모아 구성한 것이 신화라는 얘기인데, 그 재료에는 전통의 요소들도 있지만 현실의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갑니다.
    책의 어느 대목에서 오스트랄리아 원주민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었을 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용소에 온갖 부족 사람들이 섞여 있어서, 그들의 전통적인 토템 분류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었죠. 하지만 그 와중에서 수용소 내의 현실을 기반으로 그 사람들 새로운 토템 체계를 구성하여 자신의 현실을 새로운 우주론으로 구성해냈다고 합니다. 신화적 상상력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얘기라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李銀周 2004/04/28 20:10 # 답글

    요사이는 신화에 대한 의미 부여가 많이 바뀌어서 신화가 꼭 부정적인 의미로만 이해되지 않죠.근데 이글에서 신화의 해석이란 말이 보통 이야기되는 그리스신화나 단군신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군요.그리고 신화에서 말하는 역사라는 것도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야 할 것 같구요.아마도 기술된 역사라기 보다는 어떤 자연법적인 관념에서의 가상적인 사실을 역사로 이야기 하시는 것 같네요.
  • 房家 2004/04/29 05:10 #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신화에 대한 관심과는 좀 다른 시각이죠. 하지만 학계에서는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요는 신화가 현실과의 관련성을 유지할 때 생명력을 담지한다는 것입니다. 단군 신화의 경우, 우리민족이 몽고에게 휘둘릴 때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되었고, 일제에 휘둘릴 때 신화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였습니다. 현실, 역사에 대한 성찰로 기능할 때 신화가 살아난다는 거죠.

    잘은 모르지만, "기술된 역사", 다른 말로 객관적인 역사라는 개념은 요즘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많이 되는 부분이죠.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객관적 역사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긴 하지만, 적지 않은 학자들은 그 개념을 문제삼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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