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19 16:20

덧씌워진 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서랍1: 문서

저번 주에 발표했던 글의 내용. (대단한 스크롤의 압박) 이거 때문에 그동안 약간 바빴다. 글을 써야 공부를 하게 된다는 내적인 이유에서, 이번에 한국 온 기념(?)으로 한 편 쓰게 되었다. 논문 형식의 글을 제대로 써 본 기억이 없다. 대저 논문이 되려면 주장을 담아야 하는데, 나는 내가 뭘 주장하는 지 헷갈릴 때가 많다. 게다가 뭔가 주장을 하려면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한데, 준비하다가 볼 일 다 보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썼던 글은 논문은 아니고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논문 서론의 일부에나 들어갈만한 내용이다. 어줍쨚은 연구 동향에 계획이 부가된 어정쩡한 글이다. 누가 무슨 이야기했고 하는 식의 나열들. 그동안 영어 책 좀 읽었다는 자랑은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무얼 생각하는지를 명료화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거릴 것이라는 생각. (블로그 내용들이 꽤 들어갔다.)




덧씌워진 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방원일


1. 들어가는 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유명한 에이스 침대 광고 덕분에, 범주를 규정하고 대상을 범주 안에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일이 담론적 전략임은 우리나라에 잘 인식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종교에 대한 발언들에서도 전략적인 선택과 배제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신교인들에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로, 한 목사님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확실한 진리인 부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교한다.1) 다른 목사님은 칼 바르트의 주장을 원용해서 비슷한 설교를 하신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계시'입니다.”2) 그런가 하면 개신 교회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유교의 종교성이 왈가왈부된다. 한 설교에서는 유교가 종교가 아니고 제사는 제대로 된 신앙 대상을 모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유교에서는 신(神)이 없는 고로 종교가 아닙니다... 유교에서는 고등윤리는 있으나 신관 내세관이 없으므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3) 반면에 다른 설교에서 개신교인이 제사를 지내서 안 되는 이유는 반대로 유교가 종교이기 때문이다: “유교가 어떻게 우리나라 전통 풍습입니까? 유교가 어떻게 종교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종교를 통합하라고 했습니까?”4) 무교를 외부의 시각으로 규정하는 발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오랜 기간 무교를 미신으로 비난해온 전형적인 기독교의 논리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샤머니즘에는 신학도 구원론도 없습니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미신 신앙일지는 몰라도 종교는 아닙니다.”5) 반면에 무교는 종교이면서 종교 아닌 척 한다는 반대 이유로 비난받기도 한다: “2000년 재경부의 통계에 의하면 무속인, 역술인이 98만명이라 했습니다. 아마 지금은 100만명이 넘을 것입니다. 무속을 종교가 아니라 문화라고 속이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유린하고 있습니다.”6) 한편, 증산도는 에이스 침대나 개신교와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차이가 있다면 도(道)라는 전통적인 범주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증산도는 종교가 아닙니다.... 증산도는 바로 그 우주의 변화하는 섭리를 밝혀주는, 나아가 개벽이 도래하는 이치를 밝혀주는 곳입니다.”7) 우월성을 획득하는 것 외의 다른 요인들도 개입되어 있겠지만, 기공수련 단체들도 종교 범주에 포섭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우가 아니고, 또 정치적 탄압이라는 다른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파륜궁의 창시자 리훙쯔가 자신들의 수련이 종교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태도는 우리나라의 기공단체의 태도와 통하는 바가 있다: “파룬궁은 종교가 아닙니다... 파룬궁은 불교와 도교를 뛰어넘는 기공수련입니다.”8)
종교 규정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입씨름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종교 개념에 대한 연구들에서 제시된 고전적인 명제들을 감지하게 된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종교 개념은 다종교적 상황에서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의 <<종교의 의미와 목적>>에서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주장 중 하나이다. 스미스는 서양에서 17세기와 18세기에 생겨난 체계적 실체로서의 종교라는 관념은 논쟁과 호교론의 산물임을 지적한다.9) 이것은 다만 서구 개념사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타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로버트 컴패니(Robert Ford Company)는 스미스의 테제를 중국의 사례에 확장 적용한다.10) 스미스는 다만 동아시아에 서구와의 만남 이전에 종교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지적했지만, 컴패니는 중국의 중세 문헌에서 종교 개념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은유적 지시라고 할만한 도(道), 교(敎), 법(法) 등의 개념11)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컴패니는 이들 개념의 등장에서 서구의 종교개념 형성에 비견될만한 개념 형성 과정(스미스의 용어로는 물상화(reification))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개념은 유불도 삼교의 만남과 상호 인식이 배경이 되어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떠오르는 것은, 종교를 정의하는 일이 정치적인 자리싸움에 관련된다는 최근 학자들의 논의이다. 이것은 누항의 종교 입씨름뿐만 아니라 상아탑의 종교 정의 논란에도 관련이 된다. 탈랄 아사드(Talal Asad)는 종교 정의 자체가 담론 과정(discoursive process)의 역사적 산물임을 지적한 바 있다.12) 아사드가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보편적 종교 정의를 비판한 이래, 종교의 실체적 정의에 대해 회의와 반성들이 이어지고 있다. 종교 개념에 담긴 기독교적 전제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교학과라는 학제에서 종교라는 대상을 고유한 실제로 놓으려는 태도를 학계 안의 자리잡기 싸움으로 보고 비판하는 저작들도 나오고 있다.13) 이러한 흐름에 있는 연구 중에 최근 티모시 피처럴드(Timothy Fiztgerald)의 <<종교학 이데올로기>>(The Ideology of Religious Studies)에 담긴 비판은 신랄하기까지 하다. 피처럴드는 종교의 자율성(autonomy)을 담지하려는 종교현상학 전통은 위장된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학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종교학 내에 계속적인 환원주의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논쟁이 세계 각지의 문화적인 맥락에서 이루어 진 적은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만약 실제의 맥락에서 고찰된다면 범문화적인 종교 개념은 분석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 환상임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14) 종교 개념을 폐기할 것인지 손봐서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입장 차이가 크지만, 적어도 한 덩어리로서 실체를 지닌 종교 개념에 대한 의구심은 공유되고 있다. 종교를 체계(system)이라고 부르는 말버릇마저도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올 정도이다.15)
종교 정의는 남과 대면하는 계기에서 출현한다는 것, 그리고 종교 개념 정의는 정치적인 맥락을 가진다는 두 주제는 앞으로 논의에서 거듭 만나게 될 것이다. 우선 종교 개념이 만남의 계기에서 적용된다는 점과 서구적 전제가 적용된 종교 개념을 재성찰하는 작업을 미국 종교사의 예를 통해 살펴본 후, 종교 개념의 정치적 맥락에 관한 연구들을 살필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 개념에 대한 물음을 통한 새로운 종교학사 서술의 가능성을 알아보기로 한다.


2-1. 아메리카와의 만남과 종교 개념

비서구 문화권에서 들어온 자료들이 종교학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막스 뮐러(Max Műller)를 비롯한 오리엔탈리스트들을 자극했던 인도와 중국의 문헌들, 성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뒤집어 놓은 서남아시아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들, 인류학자들의 저작을 가능케 했던 신세계의 민족지 보고들, 이러한 새로운 발견들이 종교학을 가능케 했던 배경이 되었다.16) 그러한 의미에서 다름과의 만남은 종교에 대한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17) 이후 종교학사의 전개에서도 새로운 자료의 발견은 이론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10년대 프로이트, 뒤르켐, 프레이저 등의 학자를 종교학 논의에 끌어들인 토테미즘이라는 자료, 1930년대 마나이즘(manaism) 이론을 유행하게 한 멜라네시아와 북미 원주민 자료들, 그리고 역사적 현실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 멜라네시아의 화물 숭배에 대한 보고들18)이 그러한 예들이 될 것이다.
종교 개념의 적용에 있어 타자와의 만남은 결정적인 순간이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유럽의 장사꾼, 선교사, 여행가들은 “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종교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존 개념과 새로운 자료의 불일치에 의해 생성되는 이 순간의 느낌은, 세계 각처에서 유럽인들이 남긴 자료들 속에 “종교 없음”의 서술로 공통적으로 남아 있다. 종교 없음의 서술은 비교를 통한 종교 개념 성찰의 시작이다. 종교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한 번도 물어본 일이 없는 종교의 의미를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종교 비슷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던 종교 범주에 대한 재정의와 수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남의 순간은 비교의 인식에 대해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만나 아메리카라는 명명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지리상의 지평의 확장은 아니었다.19)그것은 세계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들의 세계관이 붕괴되는 순간이었으며,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한 아담과 이브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성서적 세계관의 위기였다. 세계관의 위기에 해결하기 위해 유럽인들은 인류가 한 뿌리에서 나왔는지 세계 각지의 여러 기원에서 나왔는지를 놓고,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가설이 성서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20) 타자와의 만남은 인식론 측면에서의 도전을 야기했고, 종교에 대한 인식도 세계관의 변화와 맞물려 일어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나단 스미스(Jonathan Z. Smith)가 종교 개념에 대한 논문 "Religion, Religions, Religious"를 유럽인과 신대륙 사람들의 첫 만남을 인용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신세계”에 대한 두 번째로 오래된 영어 책(1553)에서 리차드 에덴은 카나리아 군도 원주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콜럼버스가 그 곳에 처음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벌거벗었고, 부끄러움도 없고, 종교나 하느님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같은 해에, 정복자 역사가 페드로 시에자 드 레온은 북 안데스 원주민들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한, 그들은 어떤 종교도 지키고 있지 않으며, 예배드릴 집도 전혀 없다”고 묘사한다.21)

이들의 언술에서, 첫 만남을 통해서 종교에 대한 유럽인들의 자기 이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에덴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라는 교리 위주의 이해를, 레온은 “지켜야 무엇과 예배드릴 집”이라는 의례 위주의 이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만남들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명하는 과정에서, 대륙 내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계속 이어졌고, 비슷한 보고들이 축적되었다. “인디언”(Indian)이라고 불린 북미원주민(Native Americans)들에 대한 보고들 중에서 비슷한 사례를 몇 개 더 열거해본다. 17세기 북미 북동부의 믹막(Micmac)족을 만난 프랑스 법률가 레스카봇(Marc Lescarbot)은 그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종교의 의례적 측면이 강조된다: “제의와 신에 대한 예배가 없다면 나는 그것을 종교라 부를 수 없다.”22) 역시 믹막족 사이에서 지냈던 르클렉(Chretien LeClercq) 신부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이 날까지 사원, 사제, 희생이나 종교를 가리킬 어떤 것도 갖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믹막족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23) 한편 알곤킨(Algonkin)족을 관찰한 예수회 수사 비어드(Pierre Biard)의 종교 없음 서술은 다른 식의 전형성을 띤다.

이 야만인들은 어떤 확실한 종교, 왕권이나 정부, 학문이나 기술, 상업이나 사회생활도 갖고 있지 않다. 그 결과 그들이 본 적도 심지어 생각해 본적도 없는 것들에 대한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명상하는 것, 숭고한 것들을 아는 것, 그리고 영혼의 고귀한 영역을 완벽케 함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기쁨을 전혀 누리지 않는다.24)

만난 사람들이 종교를 비롯한 문화의 여러 영역을 갖추지 못한 야만 상태에 있다는 진술의 패턴은 유럽인들의 보고에서 많이 등장한다. 이런 식의 보고에서는 종교 여부의 문제를 넘어 대상의 인간성 여부가 문제가 된다. 종교는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요건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이며, 종교에 대한 논의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식민지 정책상의 문제에 적용될 가능성을 지닌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나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를 필두로 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와 만났을 때 갖고 있는 종교 개념은 물론 기독교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신대륙 사람들에서 종교, 즉 기독교를 찾으려 했고, 기독교가 없으면 기독교 비스므리한 것이나 타락한 형태의 기독교, 즉 우상 숭배나 미신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우상 숭배나 미신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25) 이 때 종교 범주 설정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콜럼버스는 흔히 아메리카에는 종교가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사용한 종교라는 말은 우리의 것과 다르다. 조나단 스미스의 지적에 따르면, 콜럼버스의 용법에서 종교에 해당하는 말은 믿음(faith)이며, 종교라는 말은 가톨릭을 가리켰다. 콜럼버스가 말한 것은 아메리카에 이슬람이나 우상 숭배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종파(sect)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며, 그러므로 가톨릭(“우리의 믿음”)으로 개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26) 보편적 종교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콜럼버스의 저작으로부터 지금 관점에서 종교 있음/없음의 자료를 뽑아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될 것이다.
만남에서 종교에 대한 물음은 시작되었고, 만남을 통한 비교의 인식이 이어지면서 종교 개념의 범위는 계속 수정을 겪어왔다. 유럽의 관찰자들에게는 종교 있음과 종교 완전 없음 사이 미신(superstition), 이교(pagan, heathen), 우상숭배(idolatry) 등의 범주들 자리하였다. 뒤에 살펴볼 예들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겠지만, “종교가 없다”라는 발언은 ‘종교 있음/종교 없음’의 2분법적인 구도에 기반한 것 보다는 ‘종교/미신/아무것도 없음’이라는 3분법적인 구도에서 행해진 것들이 많다. 그러므로 “종교가 없다”라고 했을 때는 “그들은 종교가 아니라 미신을 갖고 있다”라는 의미일수도, “그들은 종교의 타락한 형태(미신)도 갖고 있지 않다”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유럽 개념사에서 미신과 종교는 서로를 규정해주는 상대 개념으로 존재해 왔다. 유럽인들이 그 상대 개념들이 공유된 기반 위에 있음을 지각한 것은 비교인식이 꽤 오래 진행된 이후의 일이다.27)


2-2. 북미 원주민 종교 연구에서 종교 개념 성찰

만남28)과 종교 개념의 관계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최근 북미 원주민 종교사 연구의 성과들을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국 종교사 연구에서 만남이라는 주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종교 연구자들의 문제 제기29)에서 시작되어, 청교도 백인 위주로 서술되었던 중래 미국 종교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서술하는 관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30) 특히 북미 원주민 종교 연구에서는 유럽인들과 신대륙 사람들의 만남에 대한 성찰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분야의 개론서 <<북미 원주민 종교들>>(Native American Religions)에서 샘 질(Sam Gill)은 “인디언”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향한 유럽의 시선에 대한 연구이며, 이 연구는 북미 원주민보다는 유럽인에 대한 것들을 밝혀주는 것이기에 유럽과 유럽-아메리카의 역사에 더 관련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31) 유럽인들에 의한 종교 개념 덧씌우기의 역사를 인지하면서, 질은 북미 원주민 연구에 있어서 신중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종교 개념을 적용한다.

세계의 범위와 성격을 표현하고 규정해주는 이미지, 행위, 상징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안에서 살아가며 의미와 그 성취의 조건을 찾아내는 우주적인 틀(framework)을 제공해주는 것들을, 우리는 종교적인(religious)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갖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행위, 절차, 상징들을 종교적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32)

이 정의에서 특징적인 것은 종교(religion)라는 명사형이 아니라 종교적인(religious)이라는 형용사형을 사용하는 전략이다. 이 작은 변화를 통해 종교는 인간 삶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의미로 탐구된다. 믿음의 대상이 되는 추상적 덩어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행위하는가(act religiously)를 탐구하는 수행적인 관점(performative view)에서의 연구가 의도되고 있는 것이다.33) 질은 이 저작을 통해 신, 성스러움, 예배, 믿음, 교의, 제도 등과 같은 서구적인 기준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북미 원주민들이 삶 전반에 깔려있는 우주론(cosmology)을 기술하고, 그것이 삶의 다양한 방식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논의에서 약간 벗어날 수도 있지만, 북미 인디언 연구에서 서구적 전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예로 케네스 모리슨(Kenneth Morrison)의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 작업에 대한 비평을 살피기로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보아스는 미국 인류학의 아버지로, 실질적으로 북미 인디언 연구는 그와 그의 학파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의 작업 전제들이 지금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아스는 “이론에 대해서 지독한 불신”을 가지고 당시 이론이었던 단계진화이론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각 개별 문화가 그 나름의 배경에 따라 그 자체의 맥락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4) 과연 그의 저작을 보면 종교에 대한 엄밀한 정의의 노력을 하지 않는데35), 그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종교에 대한 서구인들의 상식적인 가정들이 연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종교를 오래된 관습의 산물로 과학과 대비되는 것으로 보았다. 모리슨은 보아스가 종교를 주관적인 감정이 투사된 것이며 실재에 대한 비이성적인 믿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북미 원주민들 문화에서 “사람과 힘, 주술적 힘, 영적 세계, 초자연적 존재들 간의 상호작용”을 커뮤니케이션의 행위로 설명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보아스의 작업에서 우주 중심의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 자연과 초자연의 구분과 같은 서구적인 전제들과, 신비, 성스러움, 깨끗함 등과 같은 용어들이 규정 없이 사용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모리슨은 보아스 이래의 학자들은 세 측면에서 북미 원주민 종교를 잘못 해석해 왔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실재에 유신론적, 위계적, 비인격적인 개념들을 덮어씌웠기 때문에 존재론(ontology) 측면에서 오해가 있었으며, 두 번째, 지식과 인과성에 비인격적이고 주관적인 철학을 덮어씌웠기 때문에 인식론(epistemology) 측면에서 오해가 있었으며, 세 번째, 윤리에 기능적, 자기-지향적, 실용적인 개념들을 덮어씌웠기 때문에 가치론(axiology) 측면의 오해가 있었다는 것이다.36)


3. 종교 개념 규정의 정치적 맥락

종교 개념 덧씌우기에 관련된 최근의 논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은 데이빗 치데스터(David Chidester)의 <<야생의 체계>>(Savage Systems)37)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에서 일어난 유럽인들과 아프리카인들의 만남과 서구의 종교 개념이 적용된 양상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남아프리카 사례들을 통해 유럽 관찰자들의 종교 없음에서 종교 있음으로의 서술의 전환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케이프 타운 주변의 네 부족과의 만남의 사례들이다. 호텐톳(Hottentot)족을 관찰한 유럽인들은 한동안 그들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한 선교사에 따르면 그들에겐 “하느님도 없을 뿐더러, 봉헌의 기미도, 천국이나 지옥의 징후도, 예배를 위해 따로 마련된 장소도, 휴식을 위한 안식일도 존재하지 않는다.”38)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야 호텐톳족이 달 숭배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다. 코사(Xhosa)족은 오랜 기간 불신자(Kafir)라고 불렸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들이 아랍 이주민의 후손이라는 가설이 제시되었다. 그들이 조상 숭배라는 종교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줄루(Zulu)족은 선교사들에 의해 유대인들과 동일시되었다. 줄루족의 행동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관습과 비교되었고,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줄루족 역시 미신에 머물러 있다고 선교사들은 주장하였다. 보편 종교론에 입각해 줄루족이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즉 종교를 갖는다고 하는 주장이 나온 것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소토-츠와나(Sotho-Tswnan)족의 경우에는 동물 숭배가 관찰되었고, 이것은 토테미즘으로 명명되었다. 후에 종교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 제시되기 전까지, 소토-츠와나족은 종교적 진공 상태에서 악마의 장난에 놀아난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들 네 종족에 대한 종교 없음의 서술이 종교 있음의 서술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치데스터는 공통적으로 식민지 상황에서의 정치적 이해가 작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치데스터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만난 아프리카인들이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고 위협적인 타자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들은 종교를 갖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식민지 건설을 통하여 이들이 정치적으로 유럽의 통제를 받는 상태가 된 후에야 그들의 종교의 존재가 인식된다. 그는 식민지 정치와 종교 규정의 관계를 변경의 열고 닫힘으로 표현한다: “처음 변경(frontier)이 열렸을 때, 적들은 종교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변경이 닫히고 헤게모니가 성립된 이후, 지배받고 복속당한 이 사람들은 기입되고 분석될 수 있는 종교를 가진 것으로 발견된다.”39)
종교 개념 규정과 정치 지형의 선명한 관계는 정치사회학적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모여 편집한 <<종교의 창안>>(The Invention of Religion)에서도 강조된다. 이 책에서 흥미러운 것은 세계의 종교 개념 적용 사례들이 두 흐름으로 정리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주변화 전략(a strategy of marginalization)으로, 종교를 비세속적이고 정치와 무관한 무역사적인 믿음의 체계로 규정하여 종교의 정치적 의미와 사회적 기능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인도 불교, 아프리카 전통 종교, 이스라엘 하레디즘(Haredism) 운동을 다룬 논문들이 이 전략을 분석한다. 다른 하나는 종교 개념이 상상된 공동체를 만드는 틀(template)로 작용해 민족국가를 만드는 도구가 된다는 분석이다. 오스만 투르크, 일본, 인도의 경우를 다룬 논문이 이러한 분석을 보여준다.40) 두 전략은 대조적이다. 한 쪽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쪽이고 다른 한 쪽은 종교와 정치를 결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자가 주로 유럽인들의 식민 지배의 담론으로 사용되었다면, 다른 한 쪽은 비서구권에서 유럽의 담론에 대항하는 대항담론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에서는 양 방향의 담론 전략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우가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담론 수용의 쌍방향성의 문제, 즉 서구의 담론이 비서구사회에 적용된 측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사람들이 서구 담론에 의한(혹은 대항한) 담론을 생산하고 역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은, 리차드 킹(Richard King)의 <<오리엔탈리즘과 종교>>(Orientalism and Religion)에서 잘 제시되고 있는 주제이다. 이 책에서 킹은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담론 연구가 일반적으로 범할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킹은 불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연구에서 “불교에 대한 서양 이론의 계보학을 진행하면서도 막상 불교가 생성되었다고 상상되는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누락되는 일”이 흔히 일어났음을 상기시킨다. 불교라는 타자를 바라본 유럽 학자들의 머릿속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인들이 오리엔탈리스트의 시선에 반응하고 오리엔탈리스트의 불교 표상에 기여한 방식”에 대해서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오리엔탈리스트와 아시아의 주체들의 상호관계를 강조하면서, 킹은 힌두교나 불교와 같은 오리엔탈리즘의 개념들은 “문화간 미메시스”(intercultural mimesis) 과정의 생성물로 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41) 실제로 그의 책에서는 종교나 신비주의와 같은 담론에 있어 인도 브라만 범학자들이나 스즈키와 같은 일본 지식인의 역할이 분석된다.
종교 개념에 있어 하위주체(subaltern)의 담론 전략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의 예들을 들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미국 푸에블로(Pueblo)족 사람들의 종교 담론 활용의 예를 들도록 하겠다. 1924년 미국 뉴멕시코 주 정부는 문명화(civilizing) 정책의 일환으로 북미 원주민의 춤 의식과 어린이들의 입문식 참여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한다. 춤과 입문식은 그들 전통을 전승하는 핵심적인 의례이기 때문에 푸에블로족 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법령에 대한 대응은 진영에 따라 다각도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회와 강한 유대를 갖고 있었던 어느 부족에서는 원주민들의 춤이 그들의 예술로서 조상 존중과 내재적인 미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라는 전통적인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사들이 수(Sioux) 족을 비롯한 북미 원주민들의 춤 의식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법령 반포의 배경이 되었던 마당에 미적 범주에 호소한 그들의 전략은 잘 먹혀들지 않았다. 반면에 산타 클라라(Santa Clara) 푸에블로족의 겨울 반족(半族)에서는 혁신적인 담론 전략을 구성하였는데, 그것은 전에는 종교라고 한 번도 일컬어 진 적이 없었던 그들의 춤 의식과 입문식을 “북미 원주민 전통 종교”라는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그저 관습을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푸에블로족 자신의 종교를 갖다는 방어 전략이 수립되었다. 미국 헌법에서 보장된 종교의 자유에 근거해서,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그리고 종교의 실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의 자유”가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푸에블로 전통을 지키는 효과적인 담론 전략으로 사용된 것이다.42)


4. 새로운 종교학사의 서술

앞서 우리는 치데스터 작업이 종교 개념의 형성 과정에 정치적인 목적이 개입되어 있음을 밝혀준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사실 <<야생의 체계>>는 종교 개념의 정치성에 대한 좋은 사례라는 것이, <<종교의 창안>>의 저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치데스터의 책을 독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측면에서 치데스터의 작업이 종교학에서 지니는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저작이 종교학사를 새로이 서술하는 일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릭 샤프(Eric Sharpe), 월터 캡스(Walter Capps) 등의 저술에서 우리가 만나온 종교학사는 유럽 지성사의 흐름 안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지적 흐름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만나 종교에 대한 이론을 형성하였는지를 살피는 것이 종교학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인 역사”에는 자료가 생성된 식민지 상황에서 이루어진 비교 인식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 지성사로만 이루어진 종교학사는 “못 다한 이야기”43)들을 남기게 된다. 침묵 속에 있던 영역을 서술하는 치데스터의 작업은 사실 찰스 롱(Charles Long)이 보여준 종교학사의 밑그림을 따른 것이다. 그가 인용한 롱에 따르면, 종교학사는 “종교의 속성에 대한 유럽 계몽주의 개념들과 유럽에 의해 정복되고 식민화된 세계 전역의 사람들의 폭력적인 현실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44)에 관한 극적인 이야기이다. 이 상호 관계의 관점에서 종교학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치데스터가 내딛는 중요한 첫걸음이며, 맥커천(Russell T. MacCutcheon)이 그의 저서를 최근 종교에 대한 학술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는 이유이다.45)
치데스터는 식민지 상황에서 처음 원주민들을 관찰하고 자료를 생성한 여행자, 장사꾼, 선교사, 식민 관료들의 비교의 인식이 종교학의 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해 형성된 변방 종교학(frontier comparative religion)에 의해 자료들이 생산되고, 이 자료들은 유럽의 대학에 있는 학자들이 형성하는 제국 종교학(imperial comparative religion)의 재료가 된다. 제국 종교학자들이 제공한 개념들이 변방 종교학자의 비교 인식의 틀이 되어 자료를 생성하고, 그렇게 생성된 자료와 이론이 다시 제국 종교학자들에 개념을 생성케 하는 상호적인 지식 생산과정을, 치데스터의 이 책은 그리고 있다.
그 상호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코사족의 닻 숭배에 대한 보고일 것이다. 19세기 초 런던 선교회의 반 데르 켐프(J. T. Van der Kemp)의 보고에 따르면, 유럽 난파선으로부터 나온 닻이 케이프 해안 근처 강가에 놓여졌다. 근처 부족장의 아버지가 이 닻에서 쇠 한 덩어리를 떼어갔는데, 얼마 안 가 죽었다. 이 사건 이후 닻이 바다를 관장하는 주술적 존재라는 소문이 퍼졌다. 닻에 이름이 주어졌고, 사람들은 그 장소를 지나갈 때마다 절을 하였다고 한다. 이 현상은 코사족 사람들의 세계관 안에 낯선 대상이 편입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았다. 켐프에게 이 현상은 코사족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코사 족에 미신이 만연해 있고, 종교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자료였다.46) 켐프의 보고는 제국 종교학의 자료로 활용되었다. 우선 1870년대 러벅(John Lubbock)은 주물숭배를 종교의 기원으로 주장하면서, 코사족 이야기를 주물숭배의 예로 들었다. 1885년 클로드(Edward Clodd)는 이 예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야만인들의 심성을 증명한다고 주장하였다. 1896년 기포드 강의에서 틸레(C. P. Tiele)는 가장 낮은 단계의 종교가 인류 유아기 심성의 요구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닻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아적인 환상과 공포가 주물숭배에 이르게 되었음을 주장한다. 한편 1896년 제본스(Frank Byron Jevons)는 이 사례를 종교와 상관없는 것으로 보고, 공감 주술에 의한 오류로 설명한다. 한편 인류학자 하돈(Alfred Haddon)의 저서에서 이 이야기는 원시적 심성의 심리 단계에 대한 예증으로 사용되었다.47)
치데스터의 책에서는 닻 이야기의 예처럼 변방 종교학에서 생산된 자료가 제국 종교학에서 다양한 이론들의 재료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는 반면에, 그 반대로 제국 종교학의 이론들이 변방의 비교 인식에 영향을 주는 예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교 종교학의 기본적인 방식이었던 유형론, 계보학 등의 전략, 종교 진화론 혹은 퇴보론, 보편 종교 개념 등이 변방의 비교 작업에 어떻게 작용하였는가는 많은 부분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제국과 변방의 비교종교 간의 상호관계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변방에서 이루어진 비교 인식을 고찰하는 데 좋은 참고점이 된다. 식민지 상황에서 이루어진 비교에 대한 일반화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변방의 종교학들끼리의 비교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변방 종교학은 이미 종교학사 안에 포함되어 연구되기 시작하였으며48) 적지 않은 성과물들이 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변방의 작업들을 참고로 해서 서구에서 진행된 종교학과 우리나라에서 전개된 종교학 사이의 상호관계와 비교의 인식론적 차원이 더 정리된다면 새로운 종교학사의 서술이 가능해질 것이다.


5. 본론 자리에 들어선 결론

한국이라는 변방이 종교학 이론들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는 더 조사를 해보아야 겠지만, 과문이라 그런지 주요 종교학 이론서에서 한국 종교가 등장하는 일은 별로 못 본 것 같다.49) 사실 자료로서 언급이 얼마나 되느냐 자체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많은 세계 종교 교과서들에서 중국 종교와 일본 종교를 독립된 장(章)으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Korean Religion"이라는 장을 넣어달라고 한다면 억지 주장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연구의 성과물이 어떠한 이론적 계기에서 중요성을 갖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종교 개념에 관한 종교학의 이론적 논의에서 한국의 성과물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다종교 사회의 맥락에서 종교 개념의 전략적 위상은 두드러진다.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종교 개념을 둘러싼 다양한 전술들이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선교사들이 형성한 서구적 종교 개념들이 유효한 가운데서도, 각 교단별로 근대 종교 엘리트들이 미메시스로서 형성한 대항적이고 대안적인 종교 개념들도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50)

원래 이 글이 다다르고자 했던 곳은, 근대 한국에 왔던 서구 관찰자들의 종교 서술과 비교 인식을 점검하는 데까지였다. 한국에 온 관찰자들도 종교 없음의 서술들을 남겼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종교 있음의 서술로 바뀌어갔다. 그것은, 처음에는 한국에 익숙치 못했다가 세월이 지나 차츰 종교가 있음을 깨달았다는 그렇고 그런 사연일까?51) 선교지의 만남 이야기들과 견주어 보면서, 다양한 담론과, 그만큼 다양한 비교의 인식들을 세세히 살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들은 종교적인 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던 하멜은 한국에 종교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인가? 한국인들이 천성적으로 경건하다는(by nature devotely inclined) 알렌의 보고는 종교 없음의 서술일까? 종교의 제도적 차원의 부재를 이야기하면서도 귀신 신앙이 종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비숍의 보고에 작동하는 분류체계는 무엇인가? 한국에 종교 없음의 주장을 부인하고 종교 있음의 서술을 하는 게일이 종교라는 말을 막바로 쓰는 대신에 한국인은 종교적(religious)이라는 형용사형을 사용할 때의 글결의 떨림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헐버트의 서술에서 종교와 미신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고백은 어떤 인식론적 난관을 암시하는가? 존스가 외부적 존재에 의지함을 종교로 정의하고 한국에 그러한 것들이 있다고 했을 때의 비교인식은 어떻게 이루어 졌을까? 종교적 진공에 대한 초기 서술들은, 종교 있음의 서술이 확립된 후에도 혼합주의 담론으로 전승52)되는데, 그 개념의 계보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물음만을 던지고, 필자는 결론의 자리에 각주구검을 하는 악습을 되풀이한다.

1) http://www.blessedhopebaptists.or.kr/preaching/p-33.htm

2) http://user.chollian.net/~rjdud1/missionmatt/02.htm

3) http://bbs.kcm.co.kr/NetBBS/Bbs.dll/sermon/qry/zka/B2-lBIBo/qqatt/%5E

4)http://cnmd.org/bbs/zboard.php?id=pra_1&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subject&desc=desc&no=205

5)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essay/korean-religion01.htm

6) http://www.kemc.or.kr/church/church_bib_story.htm?number=94&total=160

7) http://www.jsd.or.kr/teachOn/vodService/contents.asp?vod=vod1_01

8)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909/nd99090310.html

9) Wilfred Cantwell Smith, 길희성 옮김,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1991), p.73.

10) Robert Ford Company, "On the Very Idea of Religions (in the Modern West and in Early Medieval China)," History of Religions 42 (2003), pp.287–319.

11) 이것은 장석만이 지적한 한국의 전통적인 개념들인 敎, 道, 法, 學, 術 등과 거의 일치한다. 장석만, <<개항기 한국사회의 “종교” 개념 형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92, pp.32-37.

12) Talal Asad, The Genealogies of Religion: Discipline and Reasons of Power in Christianity and Islam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p.29. 아사드의 관점을 잘 적용시킨 연구로는 David Scott, Refashioning Futures: Criticism after Postcoloniality(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ch.2.를 들 수 있다. 스캇은 실론섬의 불교라는 실체가 담론을 통해 구성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글의 제사(題詞)로 인용한 문장에서 글의 요지가 잘 드러난다: “‘마힌다가 실론에 불교를 가져왔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13) 맥커천(Russell T. MacCutcheon)의 저작 <<Manufacturing Religion>>이 대표적이겠으나 아직 읽지 않은 고로 논외로 함. --;;

14) Timothy Fitzgerald, The Ideology of Religious Studie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New Ed edition, 2003), pp. 1-24. 피처럴드는 사회학적 접근의 자리에 서 있다. 엘리아데와 뒤르켐을 대조한 다음 대목에서 그의 입장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뒤르켐과 엘리아데의 "성스러움" 개념은 근본적으로 다른 이론적 함축을 지닌다. 즉, 하나는 신학적 초월성을 향한 함축이라면, 하나는 사회학과 집단 표상을 향한 함축이다. 그러나 하나의 대학 강의 안에서 이 둘을 마치 동일한 "종교"라는 대상에 대한 두 다른, 혹은 대안적인 접근법처럼 가르치고 있고, 그 중 어느 것을 고르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 양 가르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의 논리는 종교의 해체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것은 종교 개념을 실체화하려는 현상학의 목표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12)

15) Robert Ford Company, "On the Very Idea of Religions (in the Modern West and in Early Medieval China)," pp.293-294. 컴패니는 이 말버릇이 종교를 신념과 제의가 연합된 체계로 정의한 뒤르켐에서 비롯해 기어츠가 상징 체계(a system of symbol)로 종교를 정의한 데서 결정적으로 퍼졌다고 지적한다.

16) 일반적으로 종교학사를 다룬 책에서 잘 서술되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런 주제가 두드러진 서술로는, Hans G. Kippenberg, (trans. by) Barbara Harshav, Discovering Religious History in the Modern Age: The Age of Discoverie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ch.2. 참조.

17) 정진홍, “종교문화의 소묘,” <<종교문화의 논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p.230.

18) Charles H. Long, “Cargo Cults as Cultural Historical Phenomena,” Signification: Sign, Symbols, and Images in the Interpretation of Relig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6).

19) Charles H. Long, “Conquest and Cultural Contact in the New World,” Signification, pp.97-113. 참조.

20) Jonathan Smith, "Close Encounters of Diverse Kinds," Relating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pp.308-314.

21) Jonathan Smith,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Relating Religion, p.179.

22) Kenneth M. Morrison, The Embattled Northeast: The Elusive Ideal of Alliance in Abenaki-Euramerican Relation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p.53.

23) Kenneth M. Morrison, The Embattled Northeast, p.58.

24) Christopher Vecsey, The Paths of Kateri's Kin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0), p.11.

25) Sam Gill, Native American Religions: An Introduction (Belmont: Wadsworth Publishing Company, 1982), p.11.

26) Jonathan Smith,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Relating Religion, n.1.

27) 주목할만한 예외로는, 1781년부터 1785년까지 남아프리카에 파견된 프랑스 과학자 르 바양(Francios le Vaillant)이 있다. 그는 미신이 종교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단순히 종교의 반대 개념이아니라 종교라는 조직물의 부분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종교나 예배가 없는 곳에 미신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호텐톳족이 종교를 갖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Colonialism and Comparative Religion in Southern Africa (Charlottesville: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1996), pp.62-63.)

28) 우리나라 종교문화에서 수용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 표현은 우주론 차원에서 볼 때 사실 기술 개념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람의 머릿속을 완전히 포맷하고 한 종교문화가 전적으로 이식되는 일은 불가능하며 실제로는 두 상징 세계의 접촉과 상호작용이 일어남을 고려해 본다면 만남(encounter)이라는 언어가 적잘하다. 정진홍, “다름과의 만남,” <<하늘과 순수와 상상>> (강, 1997), 91쪽을 볼 것.

29) 예를 들어, David W. Wills, "The Central Themes of American Religious History: Pluralism, Puritanism, and the Encounter of Black and White," Religion and Intellectual Life 5 (1987): 30-41.

30) (ed. by) Thomas A. Tweed, Retelling U.S. Religious History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p.17. 특히 이 책에 실린 글들 중에서 Catherine L. Albanese, "Exchanging Selves, Exchanging Souls: Contact, Combination, and American Religious History"와 Joel W. Martin, "Indians, Contacts, and Colonialism in the Deep South: Themes for a Postcolonial History of American Religion"을 참조할 것. 앨버니즈의 글은 (마르셀 모스의 용법의) 선물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백인 청교도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미국사를 북미 원주민, 유럽으로부터의 가톨릭 이주민, 흑인, 유대인, 아시아인들과의 만남과 교환의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미국 종교사의 주류가 개신교인들만이 아니었음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는 Laurence Moore, Touchdown Jesu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3), ch.6. 참조.

31) Sam Gill, Native American Religions, p.5.

32) Sam Gill, Native American Religions, p.11.

33) Kenneth M. Morrison, The Solidarity of Kin: Ethnohistory, Religious Studies, and the Algonkian-French Religious Encounter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2002), p.9.

34) Eric Sharpe, 윤원철 윤이흠 옮김, <<종교학: 그 연구의 역사>> (한울, 1986), pp.234-235.

35) 예를 들어, 보아스는 <<원시인의 사유>>(The mind of Primitive Man, 1927)에서 종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데, 이런 정의는 당시 학계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상투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종교는... 외부 세계에 대한 개인의 관계로부터 우러나오는 관념과 행위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관계라 함은 순수한 이성적 사유에 의해 설명되는 물리적 힘의 작용에 의한 것과는 관련되지 않는다."

36) Kenneth M. Morrison, "Franz Boas and the Study of Native American Religions: Paradigm Formation and Paradigmatic Criticism" (unpublished). 여기서 비판의 근거로 제시된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은 모리슨이 북미 원주민 종교를 서술하기 위한 새 패러다임으로 구상하고 있는 세 축이다.

37)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Colonialism and Comparative Religion in Southern Africa (Charlottesville: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1996).

38)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p.37.

39)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p.69.

40) (eds. by) Derek R. Peterson, Darren R. Walhof, The Invention of Religion : Rethinking Belief in Politics and History (New Brunswick.: Rutgers University Press, 2002), pp.2-11.

41) Richard King, Orientalism and Religion: Postcolonial theory, India and 'the mystic East' (London: Routledge, 1999), pp.148-150.

42) Tisa Wenger, “"We are Guaranteed Freedom": Pueblo Indians and the Category of Religion in the 1920s,” (unpublished).

43)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xiii.

44) Charles H. Long, Signification, p.4.

45) Russell T. MacCutcheon, "Review: Savage Systems," History of Religions 39 (2000): 73-76.

46)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pp.75-78.

47)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pp.243-250.

48) 김종서, “한말, 일제하 한국종교 연구의 전개,” <<한국사상사대계 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49) 반 델 레에우의 <<종교현상학 입문>>에는 한국이라는 자료가 원시종교의 한 사례로 사용된다. 선교사 보고에서 인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원전에는 코란(Koran)이라고 되어 있던 것인데 역자들이 수정한 것이다:
49) 반 델 레에우의 <<종교현상학 입문>>에는 한국이라는 자료가 원시종교의 한 사례로 사용된다. 선교사 보고에서 인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원전에는 코란(Koran)이라고 되어 있던 것인데 역자들이 수정한 것이다:
사실 원시인들의 세계는 영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아직 잘 볼 수 있다: "영들이 하늘 전역과 땅 한치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길가에서, 나무나 바위나 산 위에서, 골짜기와 강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밤낮으로 영들은 사람들의 말을 엿듣고, 사람들 주위를 배회하며, 그들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땅에서 나와 그들에게 접근한다. 자기 집에서도 영들로부터 피할 수 없다. 영들은 벽에도 있고 들보에도 있다. 그들이 온갖 곳에 다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의 슬픈 흉내이다." 이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이 말은 많은 원시민족에도 해당된다. (반 델 레에우, 손봉호 길희성 옮김, <<종교현상학 입문>>(분도출판사: 1995), pp.79-80.)
사실 원시인들의 세계는 영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아직 잘 볼 수 있다: "영들이 하늘 전역과 땅 한치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길가에서, 나무나 바위나 산 위에서, 골짜기와 강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밤낮으로 영들은 사람들의 말을 엿듣고, 사람들 주위를 배회하며, 그들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땅에서 나와 그들에게 접근한다. 자기 집에서도 영들로부터 피할 수 없다. 영들은 벽에도 있고 들보에도 있다. 그들이 온갖 곳에 다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의 슬픈 흉내이다." 이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이 말은 많은 원시민족에도 해당된다. (반 델 레에우, 손봉호 길희성 옮김, <<종교현상학 입문>>(분도출판사: 1995), pp.79-80.)
최근의 책들에서도 한국이라는 자료의 인용은 단편적이다. 기독교를 다루는 책에서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가 인용되고, 신종교를 다루는 책에서 통일교를 언급하는 정도가 눈에 띈다. 한국에 대해 인용할 영미권 레퍼런스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50) 장석만의 연구 (장석만, <<개항기 한국사회의 “종교” 개념 형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92.) 이래 지난 10년간 한국 종교학계에서 종교 개념에 대한 업적들이 축적되었다. 이 업적들은 종교학계의 이론적 논의를 주도할만한 성격을 가지며, 남는 것은 영미권 종교학과 소통하는 문제일 것이다.

51) 김흥수, "19세기말-20세기초 시양 선교사들의 한국 종교 이해," <<한국기독교와 역사>> 19호(2003), p.13.

52) 예를 들어 후에 백낙준은 혼합주의라는 말에 종교적 진공상태라는 함의를 집어넣는다: “종교혼합행위는 우리 겨레가 진리의 확증을 찾아보려는 비판성과 신앙적 집착성을 결여함을 보여주는 예증이 될 것 같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표면적으로 볼 때에 한국인의 종교혼합은 신앙에 무관심 내지 무한한 관용성의 표현같으나, 엄정히 따져보면 종교신앙의 기갈(飢渴)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백낙준, 『한국개신교사 1832-1910』,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p.20, p.21. 방원일, <<한국 개신교 의례의 정착과 혼합현상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2, p.48에서 재인용)

핑백

  • 종교학 벌레 : 종교 개념의 세번째 영역 2009-10-07 03:29:19 #

    ... 내가 종교 개념에 대해 쓴 어설픈 논문에서는, 논문을 여는 부분에서는 공공의 종교 개념에 대한 사례들을 늘어놓고, 본문에서는 학문적 개념에 대한 고민을 전개했다.(덧씌워진 종교 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지금 생각해보니 바이어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 영역을 구분한다면 좀 더 논의가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more

  • 종교학 벌레 : 방가(房家)는... 2010-02-09 21:21:40 #

    ... 다. ***발표한 글들:“혼합현상을 이론화하기: 한국 개신교 의례의 정착과정을 중심으로”, &lt;&lt;종교학연구&gt;&gt; 20호 (2002년). “비서구세계 종교문화의 만남과 종교개념에 대한 최근 논의들”, &lt;&lt;종교문화비평&gt;&gt; 8호(2005년).“(주세서평) 뱀다루기와 종교학하기: 스네이크 핸들링에 빗댄 종교 연구 태도의 논의들 ... more

덧글

  • 화이부동 2005/07/19 19:26 # 답글

    이런 건 저장해서 자~알 읽어줘야겠습니다.^^
  • 房家 2005/07/19 22:01 #

    에구, 이런 건 그냥 제가 나중에 참고하려고 올려둔 건데요.
    읽을만한 글 나왔으면, 제가 알아서 자랑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글은 아직 멀었어요.
  • 날라리 2005/07/20 06:45 # 답글

    저도 일단 저장
  • bihnson 2008/02/09 13:07 # 답글

    이글을 읽으니, 지난 학기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사이온톨로지가 생각나는군요. 사이온톨로지가 종교냐 아니냐의 질문과 토론으로 시작했던...
    종교냐 아니냐 하는 정의문제와 아울러, "진정한 종교"라든지, "나쁜 종교"라든지 하는 표현들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개념과 정치적개입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1970년대 사이온톨로지가 미국정부의 압력에 대해 종교단체임을 주장했던 일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이글을 읽으니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생각뿐이네요. 저는 아직 입문단계라...^^; 퍼가서 찬찬히 읽으며 공부해보렵니다. 감사합니다.
  • 房家 2008/02/09 20:12 #

    사이언톨로지의 입장은, 위 글에서 자신의 전통이 종교임을 주장하면서 보호받으려 했던 뉴멕시코 주의 어느 푸에블로 원주민의 입장과 비슷한 전략이라고 생각되네요. 굉장히 복잡한 논쟁이 오갔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1970년대의 사이언톨로지라... 좋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미국의 소수 종교집단들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했는지 공부할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종교 개념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몰몬교가 자리잡은 역사도 정리놓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여하튼 미국은 종교 문화의 다양성 때문에 공부할 거리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와 다 유관한 것들이고... 에휴.

    그나저나 간만에 이 글을 보니 문제를 벌여놓기만 하고 정리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는 제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잘 정리된 제 입장을 갖고 제대로 된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뉴2


일과 배움과 놀이가
채 나누어지지 않는,
두루뭉술한 공간을 꿈꾼다

주인장: 방가房家
한국기독교자료: 벌레2

free counters

통계 위젯 (화이트)

1256
339
859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