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5 21:08

토테미즘과 프로야구2: 사직구장의 갈매기 토템 형성 종교학공부

바쁘기도 하고, 엠블 블로그 환경도 뒤숭숭해 블로그질이 시원치 않았다. 글쓰는 것보다는 이사 준비가 마음에 더 걸려서. 그래도 올해 벌려놓은 일은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처음 구상할 당시의 열정(?)은 식은 지 꽤 지났지만...
전의 글에 이어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야구장, 집단흥분의 도가니 / 2. 부산 갈매기의 상징화 / 3. 집단흥분이 갈매기에 부착되다.


1. 야구장, 집단흥분의 도가니

야구장의 관중석은 집단흥분으로 가득 차는 곳이라는 점에서 뒤르케임적인 공간이다.(‘~적인’이라는 현학적인 표현은 좀 어색하지만 더 좋은 말을 찾지 못했다.) 그의 저서 <<종교 생활의 기본 형태>>에서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모델인 "집단흥분으로 가득 찬 공동체"의 모습은 시위 현장에서도 볼 수 있지만, 야구장의 관중들에서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관중과 집단흥분의 연결은 너무 전형적이어서 식상한 느낌마저 준다.(종교학 보고서를 채점하다보면 흔히 만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집단흥분이 ‘어떻게’ 영속화되어 기념되는가를 좀 더 정교화해서 설명하는 것은 이보다는 덜 식상하다. 뒤르케임은 사회가 생겨나는 시원적인 순간, 그 때의 집단흥분이 어떤 특정한 대상에 “부착”된다고 설명한다. 흥분에서 비롯한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주변에 있는 자연물에 부여된다. 이것이 토템이 생겨난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뒤르케임의 “상징 이론”이기도 하다.

집단에 대한 이념이 특정 상징에 부착되어 표현되는 것을 뒤르케임은 ‘표상한다’(represent)라고 했다. 이 때 이념과 상징물 사이의 관계는 논리적인 필연성을 지닌 것이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양자의 관계는 자의적(arbitrary)이다. 뒤르케임은 국가의 상징인 깃발의 예를 들어서 이 자의성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뒤르케임은 ‘상징론’은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연결을 이야기한 소쉬르의 ‘기호론’과 일맥상통한다. [학자들 중에서는 비슷한 시기(소쉬르가 약간 앞선다)에 비슷한 생각을 한 두 학자간의 영향관계를 찾아보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서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 이외의 주장을 하기는 힘들다.]
나는 집단흥분이 주변의 대상에 부착되어 상징을 형성한다는 뒤르케임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줄만한 좋은 예를 올해 프로야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롯데 자이언츠의 갈매기 상징이다.



2. 부산 갈매기의 상징화

올 한 해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이 중흥한 해라고 이야기될 수 있다. 흥행의 측면에서는 부산의 야구 열기가 되살아난 해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그리고 상징적인 측면에서는 롯데의 갈매기 상징이 완전히 생명력을 얻는 해라고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전 글에서 이야기한대로, 원래 롯데의 상징인 자이언츠는 불모성을 지닌 상징으로 이름 외에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비어있던 부분을 채워주는 상징이 등장했으니, 그것은 갈매기 상징이다. 롯데의 경기가 마무리 지어지는 시점에 관중석에서는 어김없이 “부산 갈매기” 노래가 나왔다. 그 노래는 롯데 관중들의 집단적 열광을 함축하는 노래로 굳어졌고, 롯데 팬들의 야구 관람 행위의 대미를 이루는 절차로 자리잡았다. 이 노래의 반복을 통해 롯데와 ‘부산 갈매기’의 연결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처음에 ‘갈매기들’은 롯데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 시작하였지만, 이제 와서는 롯데 야구단 자체를 상징하는 말로 성장하였다. 이제 롯데의 ‘거인들’이라는 표현은 그리 와닿지 않지만 롯데의 ‘갈매기들’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표현이 되었다. 외국인 선수 가르시아를 가리켜 “멕시코산 갈매기”라고 하듯이.
최근의 롯데 구단의 마스코트 작업에는 상징의 이동이 반영되어 있다. 거인의 형상화를 포기하고 이제는 갈매기의 형상화를 통하여 롯데의 구단 이미지를 형성한 것. 그리고 이 형상화 작업은 롯데에 대한 응원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올해 준플레이오프에서 정점에 달했다. 바로 사직구장(그리고 대구 구장에도) 대형 갈매기 풍선이 등장한 것이다. 비록 롯데에 대한 열광은 세 경기만에 짧게 끝났지만, 그 열광은 대형 갈매기로 흔적을 남겼다.
 
3. 집단흥분이 갈매기에 부착되다

올해 롯데 팬들의 열정은 야구판에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응원문화일 것이다. 파도타기나 부산갈매기 합창, 신문지 응원 등에 선수들 응원가, “마!”라는 함성 등 다채로운 응원이 야구장을 달구었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야구장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중에 어떤 것이 몇 년 전부터 해왔던 것이고 어떤 것이 올해 추가된 것인지 정확히 가려내지는 못한다. 어찌되었건 올해 이 응원문화가 전성기를 이루었고, 이 문화에서 “생산된” 것들은 “집단의 창조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부산 갈매기”에만 논의를 집중한다면, 갈매기는 집단흥분이 대상에 부착될 때의 의외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수 문성재의 노래 “부산 갈매기”는 응원가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다. 1982년에 나온 문성재 1집의 히트곡은 ‘춤추는 작은 소녀’였고 이 노래로 문성재는 10대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에 비해 같은 앨범에 실린 ‘부산 갈매기’는 주목받지 못한 노래였다. 그 이후 가수 활동을 지속하지 않은 문성재씨에게도 사직구장에서 이 노래가 불려진 것은 의외였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사직의 야구팬들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은 당시 응원단장으로 활동하던 유퉁씨에 의해서였다. 결코 흥겨운 응원가라고 볼 수 없는 이 노래는, 승리에 익숙한 팀이라기보다는 패배의 설움에 더 익숙했던 롯데 팬들의 정서에 울리는 바가 있었으리라. 이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보다도 더 사랑받는 노래가 된다. 그러나 이 노래의 ‘채택 이유’를 설명을 시도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앞서 말했듯이 집단흥분이 주변의 대상에 부착되는 것에는 우연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부산 야구팬들의 집단적인 정서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정서가 부착될 그 무엇이 필요했던 것이고, 하필 그 때 ‘부산 갈매기’라는 노래가 불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노래와 집단정서의 친연성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필연적인 관계성보다는 집단정서의 형성이 더 중요한 현상이라는 이야기이다.

갈매기가 롯데의 상징이 되어가는 과정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개입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노래가 반복적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관중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부산 갈매기’는 의미 있는 노래가 되었다. 그 시작이 어찌되었든 반복해서 불려졌다는 것이 오늘의 갈매기를 있게 한 핵심적인 요인이다. 반복을 통해서 갈매기가 롯데의 상징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올해의 열기를 통해서 확고한 자리를 얻게 되었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자이언츠는 갈매기라는 새로운 상징으로 대체될 것이 확실하다.
갈매기가 롯데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과정, 이것은 뒤르케임의 토템 문양에 대한 이론을 선명하게 예증하는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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