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29 17:11

귀츨라프의 종교 개념 독서: 익힘

며칠 동안의 접촉이긴 하지만, 귀츨라프는 1832년, 한국인과 최초로 접촉했던 개신교 목사이고 그 접촉을 기록으로 남긴 인물이다. 이 접촉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 귀츨라프에 대한 다른 내용은 이 블로그의 “<Visit to the Chinese Coast>: 귀츨라프가 쓴 성경학교 교재”를 참고하던지 리진호의 <<귀츨라프와 고대도>>를 참고할 것. 최근에 나온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에도 귀츨라프 방문의 전후 상황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귀츨라프가 남긴 기록은 다음 책이다. 이 책은 구글 북서치를 통해 구할 수 있다. 이글에도 책 전체를 첨부파일로 올려놓는다.
Charles Gutzlaff, 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 1833, with Notices of Siam, Corea, and the Loo-Choo Islands (London: Frederick Westley, 1834).
PDF 파일: Journal_of_Three_Voyages_Along_the_Coast.pdf

이 책 중에서 한국 방문 내용은 “두 번째 항해 제4장” 부분이다. 일제시대 구스타 후사부로라는 아마추어 학자가 일역하여 소개한 이래, 우리말로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
내가 이 기록에서 눈여겨 본 것은 역시 종교에 대한 언급. 7월 27일 일기에서 해당되는 언급이 등장하는데, 마침 왼쪽 페이지 위에는 “종교 관념”(religious notion)이라고 그 부분에 대한 제목을 달아놓았다. 해당 부분의 번역과 원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7월 27일
그들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유교 교의가 대중적인 믿음인 것 같았다. 그들은 창시자를 모시기 위한 사원을 세워 두었고, 공자의 가르침에 틀림이 없다고 믿었으며, 우상에 예배드리기는 하지만 불교를 혐오하고 도교에도 물들지 않았다.
영혼 불멸을 믿는다고 공언(公言)하면서도, 그들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토록 위로가 되는 교리에 대해서 그들이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의구심을 표현하면 화를 냈다. 우리는 그들 집에서 우상숭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어떠한 종교 의식도 행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으로 볼 때 그들은 매우 비종교적인 민족이고, 삶과 죽음에 위로를 제공해주는 건전한 교리를 받아들이고픈 열망도 전혀 없었다. 우리는 서기(西紀, CE)의 시작을 설명하면서 인류의 구세주에 대해 말해줄 기회를 자주 가졌다. 그들은 만물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구속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듣고 읽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熱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한 무심함은 한국인들의 특성인 정신적 냉담의 정도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338-39)
여러 전통들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인의 “종교 없음”을 주장한다. 후의 선교사들이 반복하게 되는 종교없음 담론이 이미 귀츨라프에서 등장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고작 며칠 동안 보고서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이러한 식의 보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이 수집되었느냐 보다는 어떠한 전제, 어떠한 정보가 미리 수집되어 적용되었느냐일 것이다. 접촉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기보다는, 미리 갖고 있는 결론이 접촉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료는 인식의 틀에 대해서 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의 종교 인식을 찾기 위해 그가 탐사한 다른 지역인 류쿠, 지금의 오키나와 지역에서 한 비슷한 언급을 찾아보았다. 아래의 짧은 관찰을 통해 귀츨라프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행하고는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거부하고 있으며, 진정한(그의 표현을 따르면 ‘이성적인’) 종교를 갈망하고 있다는 암시를 준다.(362-63)
귀츨라프가 종교의 의미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한 대목은 그의 주선교지인 중국에 대한 서술에서이다. 이 책에는 “중국의 종교”라는 장(章)이 따로 할당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종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 인간과 하느님 간의 거리를 넘어서 다다르게 해주는 연결이 종교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그것을 통해 사악한 세상은 그 황폐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황폐함은 지상의 모든 진실한 종교의 부재의 즉각적인 결과이리라. 그러나 종교라는 이름은 단순한 오류와 미혹의 체계들에도 흔히 붙여진다. 이 경우 지고 존재에 대한 숭배가 그의 피조물에 대한 숭배로 경시된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인간은 ‘그에 가까이’(brought nigh) 다가가는 대신에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중국에 퍼져있는 종교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위의 마지막 문장이 그 종교들에도 적용된다는 점이 애석하다. 일단 족장시대의 종교(the patriarchal religion) 가 얼마나 많이 유지되고 있는지 확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대 중국인의 믿음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록에서 상제라는 이름으로 지고 존재에 대한 원시 숭배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우리는 천, 혹은 황천(皇天)이 위대한 하느님이자 인류를 복되게 하는 이로 숭앙받았다고 믿는다. 상제에게 바쳐진 희생은 노아와 그의 후손들이 드렸던 것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370-71)
위의 언급들은 중요하다. 우선 귀츨라프는 선교사들의 종교 개념이 이중적임을 자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에 관한 것’을 종교라고 여기는 이상적인 종교 개념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상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는 현실적인 개념도 갖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것은 종교가 보편적 용어로 확장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개념적 혼동은 해결되지 않은 채 저자의 서술에 계속 깔려있다.
두 번째 중요한 쟁점은 귀츨라프가 중국에 (진정한) 종교의 흔적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이유를 역사적인 접촉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너선 스미스는 비교에 대한 지적에서, 낯선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것을 발견하였을 때 관찰자들이 적용할 수 있는 논리로 유사(아날로지)와 상사(호몰로지)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상사의 논리, 즉 비슷함이 동일한 역사적 뿌리의 공유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은 계몽주의 종교연구에 흔히 나온다. 귀츨라프의 설명은 바로 그 상사의 논리에 기반해 있다. 물론 귀츨라프의 상사의 논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국의 상제에서 하느님을 찾으려는 것은 바로 마테오 리치 이래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승하고 있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종교 개념에서 예수회의 보유론이라는 유산은 필수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자료를 통해 생각하게 된 하나의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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