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의 종교 서술에 대해서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정리한 적이 있다. 이번에 수업시간의 발표를 계기로 그동안 블로그에 쌓인 메모들을 총정리하고, 또 관련 논문을 통해서 전후관계를 파악해서 이번에 대대적으로 정리하였다. 하멜의 책은 "고전"이기 때문에, 그가 서술한 내용 못지않게 그 내용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의, 해석의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이 점에 대해서 왈라번의 논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첨부파일: a0100509_496ab5e91db6f.pdf) 이것으로 하멜의 서술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하멜은 종교가 없다고 말했는가?
한국 종교에 대해 논한 여러 개신교 선교사들, 그리고 그들을 연구한 학자들 대부분은 하멜을 한국에 종교가 없다고 말한 관찰자로 꼽는다. 과연 그럴까? 최근 번역을 참고하면, 종교에 관한 하멜의 서술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종교, 사원, 종교집단에 대해 말하면, 평민들은 우상들에 미신적인 의례를 행하지만, 이 신들보다는 공적 권위를 더 존중한다. 고관들과 양반들은 우상을 전혀 섬기지 않는다.”1) 하멜은 분명 ‘종교’에 관하여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의 발언과 그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생겼을까? 하멜 텍스트가 유통된 복잡한 출판과 번역과정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해 13년의 조선 생활 후 탈출한 하멜은 나가사키에 머무르는 동안(1666년 9월~1667년10월) <하멜 보고서>를 작성한다. 동인도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된 원고가, 어떤 경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출판사로 유출되어서 1668년부터 여러 형태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네덜란드에서 벨센, 스티처, 사그만에 의해서 출판되었으며, 이 중 사그만 판(스티처 판도 함께 참조하여)이 1670년에 불어로 번역되었고(미뉘톨리 판, ① 참조), 이 불어판이 1672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처칠 판, ② 참조). 또 <하멜 보고서>를 상당 부분 축약한 영문판이 해리스에 의해 발간되었다(④ 참조). 처칠 판은 1884년 그리피스가 편집한 <<조선의 안과 밖>>에 포함되었다.2) 이병도가 번역한 것(⑤)은 미뉘톨리 판과 처칠 판을 참조한 것이었다. 한편 네덜란드 국립공문서 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던 필사본이 회팅크의 연구에 의해 1920년 네덜란드어로 출판되어서 하멜 텍스트 이해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다(회팅크 판). 최근에 번역된 뷔스의 영역(⑨)이나 유동익의 한글본(⑧)은 회팅크 판을 사용한 것이다.3)

원래 회사 보고서로 작성된 하멜의 원본을 이국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 찬 대중들을 만족시키는 상업적인 출판물로 바꾸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책의 구성이 바뀌었고, 원본에 없는 흥미위주의 표현이나 해설이 부가되었다. 예를 들어 벨센과 스티처는 책 제목에 굵은 글씨로 ‘13년을 야만인들 사이에서 노예처럼 보냈다’고 적었다. 사그만은 더 했다. 그는 이전에 다른 여행기 출판에 사용하던 자바의 궁전 만찬 그림과 악어와 코끼리 도판을 하멜 책에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삽화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책 내용에 한국에 악어가 있었다는 문장을 삽입하였다. 이와 같은 악명 높은 사례 말고도, 눈에 띄지 않는 각색,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들이 많다.4)
나는 원본에는 없는 “한국에 종교가 없다”는 진술이 출판의 과정에서 덧붙여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의 간통에 관하여 설명하는 부분에서 사그만이 원문에는 없는 “남자들은 원래 호색한이다”이라는 문장을 넣은 것과 비슷하게, ‘상식’에 의거한 삽입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유럽세계에 종교가 없다는 당시 유럽인의 ‘상식’에 의거하여, 출판업자는 “우상들에 행하는 미신적인 의례”와 그에 대한 양반들의 경시를 “종교 없음”으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하멜이 내리지 않은 판단이었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바에 따르면, “한국인은 종교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문장은 불어본(①)에서 발견되며, 이후의 모든 영어본에서도 발견된다. 아마 이 문장은 사그만 판에 삽입되어서, 이후 서구에서 유통된 모든 번역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경우, 그리피스의 자료(③)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하멜이 종교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오해는 종교에 관한 선교사들의 논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멜의 종교 조직 서술
하멜의 글이 탐험에 대한 유럽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쓰여진 보고서라는 사실은 그의 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글은 동인도회사가 제공한 세부적인 지침들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한다. 미지의 지역을 방문한 직원들은 7개의 일반 항목과 그 안의 하위항목으로 세분된 지침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하멜의 글은 그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때로는 하위항목을 글자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의 목적은 회사로 하여금 한국이 상업에 좋은 대상인지를 판단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5)
하멜 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꾸밈없는6) 현실적인 묘사이다. 영역자 뷔스에 따르면, 하멜은 ‘매우’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불교 사원이 “산의 숲 가운데 매우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고 묘사했을 때, 하멜은 정말로 감명 받았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할 정도이다.7) 조선의 형벌 체계에 대한 하멜의 생생한 묘사는 유명한데, 이것은 조선의 야만성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조선 사회가 엄격하게 통치되고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유럽과는 다른 조선 사회의 ‘체계’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종교에 대한 서술에서도 하멜의 현실적인 스타일은 잘 드러난다. 조선인들이 “종교에 대해 결코 논쟁하지 않는다”(60)는 점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이마저도 굉장히 사실적인 관찰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관심은 종교 행위와 특히 종교 조직의 묘사(종교사회학적 관점!)에 있다. 그는 승려의 사회적 지위, 사원 체계와 조직의 규모, 성원의 모집과 유지에 대해 서술한다. 계율을 어겼을 때 맞는 “볼기 20~30대”(60)와 “70~80대”(61)의 언급이 인상적인데, 여기서도 하멜은 승가 조직이 다스려지는 ‘체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양반들이 기생들과 아름다운 사찰에 자주 놀러가기 때문에 “사찰이 도량보다는 매음굴이나 술집으로 보이기도 한다”(61)는 묘사가 인상적인데, 여기서도 하멜 특유의 가감없는 기술이 느껴진다.
1) Hendrik Hamel, Jean-Paul Buys of Taizé (tr.), Hamel'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1653-1666, (2nd ed.; Seoul: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1998), 59.
2) William Elliot Griffis, Corea, Without and Within: Chapters on Corean History, Manners and Religion. With Hendrick Hamel's Narrative of Captivity and Travels in Corea (2nd ed.,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85).
3) <하멜 보고서> 서지사항의 선구적인 연구는 레드야드의 것이다. 레드야드, 박윤희 옮김, “조선에 표류한 화란인들,” <<하멜 漂流記: 朝鮮王國見聞錄>> (三中堂, 1976). 그 외에 다음을 참조할 것. Jean-Paul Buys of Taizé, "About the Author and the Different Editions of the Text," in Hamel'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1653-1666; 정성화, “<<하멜 보고서>>의 서지적 해설”, 헨드릭 하멜, 유동익 옮김, <<하멜 보고서>> (중앙M&M, 2003).
4) Boudewijin Walraven, “내키지 않은 여행자들 -핸드릭 하멜과 그의 동료들의 관찰에 대한 해석의 변화”, <<대동문화연구>> 56(2006년), 58-60.
5) Boudewijin Walraven, “내키지 않은 여행자들”, 55.
6) 영역판 편집자 처칠은 하멜의 글이 “소재는 싱겁고 문장 스타일도 평범”하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레드야드, “조선에 표류한 화란인들”, 176-77.
7) Jean-Paul Buys of Taizé, "Translator's Preface," in Hamel'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1653-1666, xv.
참고자료: <하멜 보고서> 번역본들의 종교 서술 부분 비교
① Recueil de Voiages au Nord Contenant divers Memoires tres utiles au Commerce & a la Navigation (2nd ed. 1732)
Pour la Religion, les Corefiens n'en ont prelque point. Le menu peuple fait bien quelque grimace devant les Idoles, mais ils ne les révérent guéres, & les Grands les honorent encore moins, parcequ'ils fe croyent être quelque chofe de plus qu'une Idole. [영역본에 나오는 “make odd grimaces before the idols”라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은 불어본에서 기인한 것임을 볼 수 있다. "faire la grimace devant"은 ‘~에게 싫은 표정을 하다’, ‘~을 냉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숙어이다.] ……Du reflte ils ne favent ce que c'eft que de prédication, ni de miftére, auffi ne difputent ils point de Religion, croyant tous une méme chofe, & la pratiquant également par tout le Royaume.
② John Fingerton (ed.), A General Collection of the Best and Most Interesting Voyages and Travels in all Parts of the World, vol. 7 (1808-14)
As for religion, the Korefians have fearce any. The common people make odd grimaces before the idols, but pay them little refpect; and the grat ones honour them much lefs, becaufe they think themselves to be fomething more than idol. ……They know nothing of preaching, or mysfteries, and, therefore, they have no difputes about religion, all believing and practifing the fame thing throughout the kingdom.
③ William E. Griffis, Corea: The Hermit Nation, 9th ed. (New York: AMS Press, 1971[1911]), 334.
His[Hamel's] opinion was somewhat biased, since he remarks that "as for religion, the Coreans have scarcely any... They know nothing of preaching or mysteries, and, therefore, have no disputes about religion."
④ 신복룡 역주, <<하멜표류기 外>>, (집문당, 1999), 56.
조선에는 아무런 종교가 없다. 빈민들은 아무런 경외심도 없이 자신들의 우상 앞에서 얼굴을 찌푸린다. 그들은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보답을 받을 것이며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설파되는 교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암자와 사찰이 많았으며 수많은 종파가 있다. 어떤 사찰에는 5-6백명 이상의 수도승이 있다. 승려는 스스로 원한다면 기꺼이 자신의 직업을 그만둘 수 있으며 누구든지 승려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승려들은 노비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승려들은 군역을 면제받지 않으며 대다수가 번갈아 가며 성이나 요새를 경계하는 일에 복무한다. 만약 그가 깨달음을 얻으면 고승으로 추앙된다. 승려들은 말을 타고 방문을 한다. [텍스트가 많이 압축되어 있다. 종교에 대한 부분은 위 내용을 포함해 두 단락에 지나지 않는다. 역자는 다음 책에서 번역하였다고 한다. James Burney (ed.), A Chronological History of the Voyages and Discoveries in the South Sea or Pacific Ocean Part III(1620-1688) (London: Luke Hansard and Sons, 1813).]
⑤ 헨드릭 하멜, 이병도 옮김, “자료: 난선(蘭船) 제주도(濟州島) 난파기(難破記) (하멜표류기)(2) -부(附) 조선국기(朝鮮國記)-”, <<진단학보>> 2(1935년), 190-193.
宗敎에 關하여는, 朝鮮人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할만하다. 普通 種類로는 偶像 앞에서 몊가지 奇怪한 모양을 보이는 것이 있으나(아마 巫堂의 굿하는 것을 이름인 듯) 尊敬이 不足하고, (더구나) 大人(兩班)들은 그보다도 훨씬 不足하게 숭배하니, 그것은 自己네의 地位가 偶像보다 좀 더 나은 양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다. ……이 以上에 說敎라던지 神秘奧妙에 關하여는 何等의 아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에는 아무 宗敎上의 討論이 없고, 全國을 通하야 모다 同一한 것만 信하고 行할 뿐이다.
종교, 사찰, 승려, 종교의식에 대해 평민들은 신에게보다는 정부를 더 많이 신봉한다고 나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부유층에서도 종교적인 존경심이 덜하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보다 자신의 가치를 더 높게 여긴다. ……설교나 훈계는 이들의 종교의식의 하나가 아니다. 그들은 종교사의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일이 없다. 그들은 우리처럼 종교의 다양함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라 전체에서 같은 식으로 한 신만을 숭배한다.
⑦ 김태진 옮김, <<하멜표류기>> (서해문고, 2003).
……설교와 교리문답 같은 것은 전혀 없으며, 그들의 신앙을 서로에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들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해도 종교에 대해 논쟁하는 법은 결코 없다. 그 이유는 전국에 걸쳐 우상에 대해 동일한 방식으로 예배하기 때문이다.
⑧ 헨드릭 하멜, 유동익 옮김, <<하멜보고서>> (중앙 M&B, 2003), 58-61.
평민들은 약간의 미신을 가지고 있으며 우상을 섬기지만, 국가에 대해 더 많은 경외심을 가진다. 고관들 혹은 양반들은 우상을 전혀 섬기지 않는다. 이는 자신들이 우상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교나 교리를 알지 못하며 신앙 안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며 그들의 신앙에 대해서 결코 논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방법으로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⑨ Hendrik Hamel, (tr. by) Jean-Paul Buys of Taizé, Hamel'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1653-1666 (Seoul, Korea: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1998), 60-62.
As regards their religion, temples, monks and religious groups, the ordinary people do pay their idols some superstitious rites, but they have more respect for public authority than for their many gods. ……Preaching and catechism are unknown to them, neither do they instruct one another in their faith. Even if they have any faith, they never debate about religion. All through the country idols are venerated in the same 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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