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31 18:59

<Relating Religion> 2장: 엘리아데 저술의 맥락 독서: 발제

다음은 조너선 스미스의 <Relating Religion>의 2장에서 메모한 것이다. 이 책의 2, 3장은 엘리아데의 대표작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논문이다. 여기서 다루어진 엘리아데의 책은 우리나라에 두 종류의 번역이 나왔다. 불어판을 번역한 이재실의 <<종교사 개론>>(까치, 1993)과 영어판을 번역한 이은봉의 <<종교 형태론>>(한길사, 1996)이다. 제목이 영 딴판인 것은 아래에 잘 설명되어 있듯이 출판 과정의 우여곡절 때문이다. 불어판 제목인 “Traité d'histoire des religons”를 <종교사개론>으로 옮긴 것은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스미스의 의견을 참고한다면 ‘Traité’는 간단한 입문의 의미인 ‘개론’보다는 포괄성을 담고 있는 ‘론’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엘리아데는 본격적인 ‘종교사’를 서술하기 앞서 그에 대한 서설로서 형태론적인 접근을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이니 ‘종교사에 대한 개론서’라고 받아들여지는 이 제목은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다. 한편 영어 제목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을 옮긴다면 ‘비교 종교 연구에서 나타나는 유형들’ 정도가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pattern'은 유형이다. 그러나 엘리아데가 생물학의 유형론(morphology)적 접근을 종교 자료에 적용한 것이라는, 아래 글에 나오는 조너선 스미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책 제목을 <종교 형태론>이라고 옮긴 것은 (관점에 따라서는) 엘리아데의 의도를 잘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글(2장)은 다음 글(3장)에서 엘리아데 책의 구조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에 앞서 책의 맥락을 소개하는 글이다. 엘리아데의 작업은 괴테의 생물학적 기획(괴테의 생물학, 이 얼마나 낯선가...)의 연장선상에서 독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괴테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지만, 엘리아데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예컨대 <종교형태학>의 영어 번역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이 신중하지 않게 이루어졌고, 엘리아데가 그것을 검토하였는지도 불분명하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우리가 ‘원서’로서 귀하게 여기던 그 책이 그런 책이었다니. 엘리아데의 무신경함에 화가 난다. 책 제목 나오는 과정도 그랬고... 물론 당시 급박한 상황이라든지 엘리아데의 엄청난 작업을 보면 번역에까지 신경 쓰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학자가 자기 저서에 책임감을 가져야지. 그는 위대한 사상가임에는 틀림없으나, 학자로서는 불친절하다. 고생하는 후학들도 생각해줘야 한다.
또 스미스의 평가 중에 엘리아데 말년의 대작 <세계종교사상사>를 ‘awkward’하다고 평한 것도 놀랍다. 책이 미완성이고 체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건 부정적인 표현이다. 아무래도 스미스는 엘리아데의 지적 전성기인 1949-57년의 작업을 중시하는 것 같다.


Jonathan Smith, <<Relating Religion>>
2. Acknowledgements: Morphology and History in Mircea Eliade's 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 (1949-1999) Part I: The Work and Its Contents

“<형태론>은 종교학에서 영향력 있는 접근을 정초한 저작이다. 이 책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면서 생각할 수는 있어도, 이 책을 회피하거나 제외하고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에 관하여:

엘리아데의 이전 저작에서는 연금술, 요가, 루마니아 민속에 관한 연구는 있었지만, 전지구적 스케일의 연구가 나온 것은 <형태론>이 처음이다. 1937년 부카레스트 대학에서 한 종교 상징에 대한 강의가 첫 시작이 되었고, 1940-41년에 “(비교)종교사 서설”('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Religions' or 'Prolegomena to a Comparative History of Religions') 원고 작성을 시작한다. 1945년에 파리에서 원고 집필을 재개하였으며, 1946-48년 고등교육원의 강의가 기초를, 특히 처음 두 장(章)의 기초를 이룬다. 1948년에 불어로 출판을 의뢰하기 시작. 처음에는 “종교사 서설”을 제안했으나 기각, 다음에는 “성스러움의 형태론”을 제시했으나 기각. 1949년에 “종교사 개론”(Manual of the History of Religions; Traité d'histoire des religons)으로 출판되었다. 독어판과 영어판에서는 각각 <종교적인 것과 성스러움 것: 종교사의 요소들>, <비교 종교학의 유형들>(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불어 제목의 ‘traité'는 입문서로서의 간결함(introductory brevity), 포괄성(comprehensiveness)을 모두 의미하는데, 스미스가 보기에는 엘리아데가 의도한 것은 후자의 특성이다.
영어 번역은 1958년에 나왔다. 1949-57년에 엘리아데는 가장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 그때 프랑스판 <종교형태론>(1949), <영원회귀의 신화>(1949), <샤머니즘>(1951), <요가>(1954), <대장장이와 연금술사>(1956), <성과 속>(1965), 그리고 야심적인 소설 <금지된 숲The Forbidden Forest>(1955)이 출간되었다. 1958년에는 시카고 대학에 적을 두고 영어권 청자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1955년에 <영원회귀의 신화>가 번역되었고, 다른 번역들이 준비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 책은 출판인의 딸이자 회자 설립자의 여동생인 로즈마리 쉬드(Rosemary Sheed)가 번역하였다. 그녀가 다른 불어책을 번역하였다는 기록도 없고, 엘리아데가 번역을 검토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번역은 불만족스럽다. 쉬드는 계속해서 공식(formulation)들을 잘못 번역하고 본문을 잘못 이해한다. 영어 번역에서 엘리아데의 기술적 용어들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장이 빠지기도 하고, 기독교 주제를 다룰 때는 문장이 첨가되기도 한다.

형태론과 역사:

비트겐슈타인이 <황금 가지> 말고 <형태론>에 대해서 말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프레이저의 진화론, 발전론적인 자료 배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조언한다. “역사적 설명, 즉 발전 가설로서의 설명은 자료를 요약하는--자료를 개관하는-- 단지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프레이저가 모아놓은 자료들은 괴테가 말한 “알려지지 않은 어떤 법칙”을 지시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사실적 자료들을 정렬하여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쉽게 통하게 하고 그것에 대한 분명한 관점, 일목요연한(perspicuous) 방식으로 보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일목요연한 제시는 우리가 ‘연관성을 본다’는 바로 그 사실에 놓여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형태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일목요연한 방법, 그것을 괴테의 용어로 ‘형태론적’(morphological)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드러낸 것은 문화 연구에서 뿌리 깊은 인식론적인 이원성, 즉 형태론적인 접근과 역사적 접근의 이원성이다. 진즈부르그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유형론적/형식적(typological or formal) 연관성과 역사적 연관성 사이의 대립적 관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하려는 것은 형태론과 역사를 통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스미스가 <형태론> 독서를 통해 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형태론과 역사라는 두 관점의 통합의 실험을, 두 관점 간의 논쟁의 역사를 <형태론> 안에 집어넣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괴테와 엘리아데:
괴테의 식물 연구는 1790년 논문 <식물의 변태>(Metamorphosis of Plant)로 대표되는데, 그 연구가 19, 20세기 생물학 사유에 남긴 족적은 잘 정리되어 있다. 다른 분야의 족적을 몇 개 들어 보면, ⒜ 헤겔의 <<철학적 과학의 백과사전Encyclopaedia of Philosophical Sciences>>(1817) 초판에서 “식물”과 관련한 단락은 괴테의 형태론적인 개념을 전개하였으며, 역동적 통일체라는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린네의 정적이고 외적인 분류를 극복하였다. 데리다의 Glas(1974)는 이것의 확장된 변형을 취하여 창조적으로 놀이를 했다. ⒝ 괴테의 「변형」에 대한 릴케의 철저한 연구는 그의 Sonette an Orpheus(1923)에 영향을 주었다. ⒞ 언어학에서 ‘유기적 형식’이라는 훔볼트의 개념, 그리고 생물학에서 괴테의 보다 이른 시기의 ‘Urform’ 이론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노엄 촘스키의 Cartesian Linguistics라는 지성적 모험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 괴테의 식물학적 형태론을 “세계사의 형태론”으로 전환시키려는 슈펭글러의 전면적인 시도가 있다.
엘리아데가 <변태>에 가졌던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스미스의 “티끌 모아”에 대해 논평할 때, 종교학자들이 현상학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실제로 머릿속에 있는 것은 형태론이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엘리아데의 저작에서 역사와 유형의 역할이 잘못 이해되는 것은 엘리아데가 괴테의 형태론의 자장(磁場) 안에 있음이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엘리아데는 <시련>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괴테가 식물 형태론을 연구하고 있을 때, 그는 모든 식물 형태들을 추적하여 그가 “원형적 식물”(the original plant)이라고 부른 것까지 소급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결국에는 그 원형적 식물(Urpflanze)을 잎과 동일시하였다. …… 내 입장에서, 최소한 나의 초기 입장에서 볼 때, 나는 많은 나무들--사실들, 사람들, 의례들-- 가운데 숲에 대한 시야를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학자들은 “원형적 식물”, 자기 분야에서 말하면 원형적 이미지(the primal image)의 추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간단히 말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구조주의는 …… 의미의 기초가 되는 원형적 질서(the primordial order)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어떤 의견을 가진 종교학자가 되었든 간에 그의 의무는 성스러운 현상의 원래 의미를 파악한 후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괴테의 형태론:
괴테의 형태론 이해에는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헤겔이 했던 대로, ‘발전’이라는 동적인 범주를 도입하여 린네의 정적인 분류학에 비해서 역동적인 이론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트겐슈타인이 했던 대로, 프레이저의 진화론 혹은 발전론 도식에 비교해서 개관적이고 전체적인 도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느 편이 되었든 공통적인 것은 당대의 패러다임에 대한 반명제로서 사용되었다는 것이고, 엘리아데가 괴테를 수용한 방식도 그러했다.
괴테의 식물학 논의를 정리해보자. 괴테는 린네가 유기체의 전체 유형이 아니라 특정한 부분(식물의 경우 생식 기관)에만 집중하였다고 비판한다. 괴테는 식물 각 부분의 다양성을 발견하였는데, 그 다양한 형태 아래에는 일반적인 형성의 과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확장, 그러고 나서 수축하고 마침내는 소멸하는 과정이다. 표면의 차이들 아래에는 과정의 심층적인 유사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괴테가 ‘변태’라고 이름붙인 변형의 내적인, 논리적인, 목적론적인 원칙들의 결과이다. 괴테가 보기에 린네는 식물의 발전적이고 생장적인 측면을 무시하였고, 또한 퇴행적 변형의 역동성도 인식하지 못했다. 괴테는 세 번째 유형의 변형으로 “우연적 변형”(accidental metamorphosis)을 말하는데, 그것은 외부적 동인에 의해서 우연적으로 영향 받은 것이다. 환경, 질병, 곤충과 같은 외부의 사건이 내적인 변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괴테가 상정하는 내적인 동질성 개념으로부터 두 가지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 첫 번째는, “모든 것은 잎이고, 이 단순성으로부터 가대한 복잡성이 가능해진다.” 식물 생장과 생식의 다른 기관들은 잎에서 도출된다. “우리가 잎이라고 부르는 식물 기관 속에는, 모든 형태로 자신을 숨기고 드러낼 수 있는 진짜 프로테우스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원형, 원식물에 대한 생각이다. “원형적 식물(the Urpflanze)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생물일 수 있다. 자연은 그것을 시샘할 것이다. 그 모델로부터, 식물들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엄격히 논리적인 식물이다. 다시 말해, 실제로 존재할 수는 없지만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18, 19세기 생물학 사유에서 ‘원형’이라는 용어는, 논리적으로 유적인(logically generic) 이해[린네 전통에서의 이해]에서 논리적으로 발생론적인(logically generative) 이해[괴테의 이해]로, 역사적으로 유적인(historically generic) 이해[‘원형’을 계통적으로 ‘조상의’ 형태로 재규정한 다윈으로 대표되는 이해]로 바뀌면서 풍성한 결과를 낳았다. 다윈 이래로 형태론적 사고는, 적응에 더 초점을 둔 결과 괴테가 배제했던 환경의 영향에 의한 변화에 가치를 복원하면서, 형태의 문제에서 기능에 대한 물음으로 형태론의 관심을 변화시키면서, 이러한 새로운 관심에 맞추어 조절되었다.
칸트는 괴테와 다른 관점에서 린네 분류학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린네 학파의 분류 구분은 유사성에 기반한 부류들과 관련된다. 그러나 자연의 구분은 발생의 관점에서의 동족 관계의 관점에서 동물을 나누는 계열과 관련된다.” 그는 인위적 형태론을 대체할 자연적 형태론을 주장하였고, ‘자연사’라는 새로운 과학이 그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역사와 계통 안에 숨어있는 유사성에 대한 탐구이다.

엘리아데의 작업 구도:
이게 엘리아데와 무슨 상관인가? 엘리아데가 식물 형태론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독자들이 <형태론>을 괴테의 기획의 관점에서 평가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19, 20세기 문화 유형론의 제안들이 칸트식 자연사의 의제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전파를 우선시했던 문화 유형론은, 엘리아데가 평생에 걸쳐 대화 상대로 여겼던 범바빌로니아 학파, 그레브너와 프로베니우스 학파, 그리고 스칸디나비아ㅡ이 민속학자들의 유산으로 대표된다.
진즈부르그는 프로프의 저작을 평가하면서, 동일한 자료를 해석하는데 있어 형태론적 방식과 역사적 방식을 모두 사용하는 ‘두 권 전략’(two volume stratagem)을 사용했다고 지적한다. 엘리아데의 <형태론>은 두 권 중 한 권으로 의도된 책이다. 역사를 다루는 두 번째 책은 무엇일까? 스미스는 그 두 번째 책이 어설픈(awkward) 미완성 저작 <세계종교사상사History of Beliefs and Religious Ideas>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내용을 <샤머니즘>, <요가>,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특히 <샤머니즘>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은, <종교형태론>의 원고가 완성되어 가는 동시에 1946-51년 동안 샤머니즘에 관한 작품의 초고가 작성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샤머니즘>의 머리말이 비록 너무 응축되어 있지만 역사적 기획과 관련해서 엘리아데의 가장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언급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더 설득력을 얻는다. 샤머니즘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을 다룬 이후, 엘리아데는 <종교형태론>의 짝으로 계획된 책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역사적인 글을 시작한다. 어떤 종교현상에 대해서도 “동시에 형태론이자 역사가 되는 포괄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 과제인 종교학자의 작품 속에서 “‘역사’에 부여된 중요성과 관련하여” 시급한 질문을 그 책이 제기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이 “머리말”이 적어도 짝이 되는 책의 서론이 될 만한 내용의 거친 윤곽이라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엘리아데 자신의 위치에서도 건설적이며, 종교학에서 “종교”에 대한 그의 이해를 역사적 민족학, 현상학, 형태론, 그리고 역사기술의 이해와 구별 짓는다는 점에서도 비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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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학 벌레 : 괴테의 이파리, 벤야민과 엘리아데의 현상학 2009-11-11 13:43:22 #

    ... 근에 조너선 스미스가 엘리아데의 &lt;&lt;종교형태론&gt;&gt;에 붙이는 주석에서 괴테의 식물 형태론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때 좀 황당했다.(&lt;&lt;Relating Religion&gt;&gt;의 2장을 참고할 것) 처음 듣는 괴테의 식물학 책도 신기했거니와 엘리아데가 직접 언급도 하지 않은 책을 &lt;&lt;형태론&gt;&gt;의 구조를 ... more

덧글

  • JJ 2018/03/28 04:26 # 삭제 답글

    어라...그럼 까치본을 읽는 편이 나으려나요??
  • 房家 2018/03/28 15:45 #

    어려운 문제입니다. 원칙상으로는 불어판 번역이 나은 건데, 그 번역이 좋은 것인지는 딴 문제라서요. 한길사 책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불만이 많았습니다. 잘 읽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밀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까치 책이 좋다는 평가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꼼꼼히 대조한 것은 아니지만 까치 책에서 중간의 몇 문장이 뭉탱이로 빠진 것을 본 적이 있어서 크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영역본을 주로 참고합니다. 시원한 대답 못 드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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