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31 00:00

기독교와의 만남과 하느님 개념의 형성 기독교세계

이 글은 어느 곳에 간단히 발표하기 위해 쓴 것인데, 굉장히 허점이 많다. 딴에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고자 했는데,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이 굉장히 많이 깔려 있다. 자료들로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 많아서, 그걸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말이 막힐 수밖에 없는 글이다. 게다가 꽤 복잡한 내용을 짧은 분량에 담아야 하는 사정에 글이 많이 불친절하다. 제대로 풀어쓰면 3배 분량은 족히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일단 저질러 놓고, 욕이나 비판들을 무리 없이 잘 받아들이고, 다시 방향을 잡아 조사하는, 배포 큰 연구자가 되어야 겠다. ^^


기독교와의 만남과 하느님 개념의 형성

1.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B. Tylor)는 189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보고되는 유일신 관념들이 원래 고유한 전통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와 접촉한 이후 서구적 신 관념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들이라고 주장하였다.(Tylor1982) 타일러의 주장에 적극적인 반론을 펼친 이는 앤드류 랑(Andrew Lang)이었다. 그는 세계 각지에 원시적 유일신 관념이 원래부터 존재해 왔다고 반론을 편다. 이들의 논쟁에 대해서, 이후 종교학사의 추이는 랑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Sharpe: 88-91) 랑의 주장은 나중에 슈미트에 의해 원시유일신론(元始唯一神論)이라는 거대한 이론으로 발달하게 되며, 이러한 주장들은 엘리아데의 학문체계 내에 종합되어 ‘물러난 신’(Deus Otiosus)이라는 항목 아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1982년 조너선 스미스가 발표한 논문,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The Unknown God)은 새로운 관점에서 타일러의 주장을 재음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고유한 창조주로 알려져 있고 원시유일신론의 중요한 자료로 제시되었던 이오(Io)신의 존재가, 사실은 서양인들과의 접촉 이후에 생성된 자료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Smith1982: 66-68) 같은 맥락에서, 스미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오래된 지고신(至高神)으로 알려졌고, 엘리아데 저작에서도 사라진 신의 중요한 예로 언급되었던 늠바쿨라(Numbakulla) 역시 기독교의 영향 이후 토착 전통과의 혼합을 통해 생겨난 신의 이름임을 지적하였다.(Smith1987: 5)
종교학에서 자료로 삼고 있는 ‘원시’ 민족에 대한 보고서들이 대부분 18,19세기에 서양과 접촉한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자료에 대한 재검토와 이른바 고유한 것, 원시적인 것으로 주장된 사실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예외적인 한두 가지 자료에 대한 교정을 넘어서는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서양과의 만남에 의해 형성된 종교학 자료에 대한 전면적인 재성찰인 동시에, 서양과의 만남의 양상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지고신 관념이 생각했던 것만큼 원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지적은 단순히 자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적의 의도는, 그 자료가 증언하는 것이 원시의 관념이 아니라 자료가 생성된 근대에 서양 종교 관념과의 만남이 전통과 어떠한 화학작용을 일으켰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자료가 생성되는 수십 년의 짧은 기간 동안, 비서구인들은 때로는 서구적 관념을 수용하여, 때로는 그에 대항하기 위하여, 때로는 그에 자극받아서 전통의 재료를 구성하여 새로운 관념을 창조하였다. 이 과정을 살피는 것이 서구와의 만남을 성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인 고유의 신앙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원시 ‘하느님’ 관념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2.
종교계에서나 학계에서나, 한국인들이 오래 전부터 하느님 신앙을 지녀왔다는 주장은 그다지 의문시되지 않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계에서는 한민족 고유의 하느님 신앙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신앙 체계를 이룬다. 기독교의 경우, 진보적 입장의 논자들은 한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유일신 종교를 용이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보수적인 입장의 논자들은 하느님이 한민족 고유의 신 개념으로 다신론적인 전제를 함축하고 있어 수용할 수 없으며 유일신적인 ‘하나님’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 모두 민족의 오랜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이 기독교 신격으로 대치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민족종교의 경우, 민족 고유의 오래된 신격을 자신들이 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종교의 입장이 되었건 하느님 개념이 한국 고유의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종교학자들은 하늘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유한 신앙 전통이 존재해온 사실에 견해를 같이 한다. 원시유일신론으로서 하느님 관념이 존재해왔다는 극단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막연하나마 하늘에 대한 숭배 의식이 존재하였으며, 이것이 근대 이후의 하느님 신앙과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 한국 고대의 막연한 하늘 관념을 ‘물러난 신’이라는 엘리아데 개념을 통해 해석하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정진홍; 김승혜; 최종성) 이러한 종교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에 대해서, 단 베이커(Don Baker)가 최근에 중요한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예로부터 유일신 관념 하느님이 있었다는 강한 믿음이 한국인들의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과 결합하여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유한 유일신 전통으로서의 하느님은 근대에 서양과의 접촉 이후 만들어진 ‘창안된 전통’(invented tradition)이라고 베이커는 강력하게 주장한다.(Baker: 107-8) 나는 베이커의 주장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이 논문을 전개할 것이다. 특히 베이커는 기독교 선교사 자료에 대해서 중요한 지적들을 하고 있는데, 이 논문은 그의 주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음을 미리 밝혀둔다.
베이커의 주장은 한국에 오래 전부터 유일신이 있었다는 대중적인 하느님 ‘담론’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갖지만, 학계의 논의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학계에서 기독교 접촉 이전의 유일신론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존의 입장에서 문제삼고 싶은 부분은 하늘에 대한 고대 한국인들의 태도가 근대의 ‘하느님’ 신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이다. 그 연결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근대의 서구와의 만남이라는 중요한 계기에 의해서 재구성된 것이라는 점을 이 논문을 통해 주장하고자 한다.

3.
한국의 기독교 수용은 1780년대 남인 계열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며 1794년 주문모 신부의 입국, 1836년 프랑스 신부 모방(P. P. Maubant)의 입국으로 본격화된다. 천주교 신자들이 기독교 유일신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한 말은 ‘천주’(天主)였다. 마테오 리치(Mateo Rich)가 중국 선교에서 제안했던 이 용어는 별다른 이견 없이 한국 천주교 공동체에 수용되었다. 천주교 신자나 선교사의 저술에서 천주를 대체할만한 우리말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1860년대 후반 페롱(Ferron) 신부와 리델(Ridel) 신부가 동시에 작업한 한글-불어사전 작업이 좋은 예이다. 페롱 신부가 편찬한 불한사전의 ‘Dieu’ 항목에는 ‘텬쥬’만이 실려 있으며(Ferron1869), 리델 신부가 주도한 한불사전인 <<한불뎐>>에도 ‘Dieu’로 풀이된 ‘텬쥬’ 항목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파리외방전교회: 513)
기독교계에 ‘하느님’이 처음 등장한 것은 최초로 한글 성경을 번역한 개신교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에 의해서이다. 로스는 한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만주에서 의주 출신 한국인들을 만나 도움을 받으며 1875년경부터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1882년 <누가복음>을 번역하고, 1887년에 최초의 한글 신약번역인 <<예수셩교젼셔>>를 발간하였다. 로스는 번역 준비 작업으로 한국인 이응찬(李應贊)에게 한글을 배우고 그 결과 1877년에 한국어 교본 <<Corean Primer>>를 발간한다. 이 교본에는 기본적인 한국어 문장들이 실려 있는데, 종교를 다루는 부분에서 하느님 명칭은 발견되지 않는다.(Ross1877) 그러나 1882년에 <<Corean Primer>>의 증보개정판으로 출판된 한국어 교본 <<Korean Speech: With Grammar and Vocabulary>>에서는 종교에 대한 부분이 대폭 보완되었으며, ‘God’에 대한 번역어로서 ‘하나님’이 등장한다.(Ross1882: 86) 같은 해 번역된 <누가복음>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 (로스의 저술에서 ‘하느님’과 ‘하나님’ 표기가 혼용되는 것은 우리의 논의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로스가 아래아(ㆍ) 표기 대신 ‘ㅏ’나 ‘ㅡ’를 사용한 데서 오는 표기법상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로스가 하느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문헌은 1879년의 <<History of Corea>>인데, 여기서 로스는 한국인들이 지고신에 해당하는 순한국어 명칭 하느님을 갖고 있다고 서술한다.(Ross1879: 355, 옥성득:7에서 재인용) 요약하면, 로스는 1877년 이응찬에게 처음 한국말을 배울 때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지만, 1882년 첫 낱권 성서 번역이 나오기 이전, 적어도 1879년에는 ‘하느님’을 발견하였다. 나는 이 하느님 발견이 로스의 한국어 실력의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한국어 선생이 처음에는 이응찬 혼자였다가 1877년 이후 백홍준(百鴻俊)을 비롯한 네 명으로 늘어난 것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문헌고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제시한다. 이응찬에게는 친숙한 말이 아니었던 ‘하느님’은 당시에는 새로운 말이었을 것이며, 그 말을 알고 있었던 백홍준 등 다른 한국인들에 의해서 로스에게 전달되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로스에게 전달된 ‘하느님’은 어디에서 왔을까가 문제가 된다. 나는 ‘하느님’은 천주(天主)의 한글 표현으로서 19세기 중엽에 생성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기독교 이전의 용어가 아니라, 기독교 수용 이후의 신조어이다. 이 말이 언제 어디서 생성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신조어가 대중화된 것이 동학(東學) 운동을 통해서라는 점이다. 최제우(崔濟愚)는 최고신을 만난 경험을 1860년 4월 한글 가사 <용담가>(龍潭歌)로 서술하였는데(표영삼: 111), 여기서 최고신의 이름은 ‘님’이다. <<용담유사>>(龍潭遺詞)에는 ‘님’, ‘하님’ 등 다양한 표기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한글표기법이 통일되지 못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만큼 이 용어가 새로운 것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용담가>에서는 “날님도 님도 이리 될 우리 신명”이라는 대목도 등장한다.(윤석산: 38) 동학교도들은 서학과 동일시되는 것을 꺼려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 대상을 천주라고 부르기보다는 하느님(날님)으로 부르려는 경향이 강했다. 동학 운동을 통해 이 용어는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1870년대 말에 성서번역을 준비하던 로스에게도 전달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동학의 신 명칭을 기독교와의 접촉 이후의 새로운 것으로 보는 나의 입장은, 하느님이 한국의 고유 신격이라는 대부분의 동학연구자들의 견해와 반대되는 것이다.(표영삼: 111, 최동희&이경원: 34-39) 한편 현재 천도교(天道敎)에서는 ‘한울님’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4.
로스에 의해 한글 성서 번역에 채용된 하느님이 순탄하게 기독교 신 명칭으로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후에 서울에서 선교사들은 낯선 말 하느님을 사용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으며, 1894년의 번역자회에서는 상제, 신, 천주, 하느님을 놓고 투표를 해서 4:1로 하느님(하님)보다는 천주(텬쥬)를 사용하자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당시 개신교 선교사 스크랜튼(Scranton)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듯이, 하느님은 “단지 중국 용어 천주의 한글 번역”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용어로 생각되지 않았다.(이만열&옥성득: 64) 개신교 신 명칭이 ‘하님’으로 고정된 것은 1906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하느님’에 한국인 고유의 신앙이라는 의미의 층이 덧씌워지면서, 점차 하느님이 기독교의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된다. 다른 말로 해서, ‘하느님’에 대한 고유한 신앙이 존재했다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하느님’은 실체를 지니게 되었고 의미 있는 번역어가 될 수 있었다. 이들 선교사의 주장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하느님 담론’을 형성하는 재료를 공급했다는 점에서 우리 논의에서 중요하다. 하느님을 성서 번역에 채용한 존 로스는, 하느님이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인들에게 천상의 지배자로 이해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Ross1883: 209) 선교사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고유 신앙으로서의 하느님을 주장한 이는 게일(James Gale)인데, 그는 한국 문헌에 나타난 하늘에 대한 언급들을 수집하여 고유한 하느님 신앙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Gale1916; Gale1909) 이러한 주장의 효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Underwood)의 경우이다. 원래 언더우드는 선교사들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느님 대신 천주나 상제(上帝)의 사용을 고집하는 입장이었는데, 한국인들이 오래 전부터 하느님을 모셨음을 ‘발견’하고 그 용어의 사용을 수용하게 된다. 언더우드가 발견한 것은 동료 선교사인 헐버트나 게일이 주장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한국인들의 종교적 심성에 오래 전부터 하느님이 존재해왔다는 주장이다.(Underwood1910) 선교사들의 원시 하느님 관념에 대한 주장들은 실증적으로 증명된 내용은 아니지만, 그 주장 내용이 현재 한국의 종교계나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5.
앞서 우리는 천주교 자료에서 발견되지 않던 ‘하느님’이 동학을 통해 대중화되고 개신교 성서 번역에 채용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 용어가 천주교와의 만남을 경험한 이후 천주(天主)의 한글 번역어로서 19세기 중엽에 생성된 새로운 말이라는 가설을 제기하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 천주교인들의 진술에서 천주에 상응하는 우리말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음은 1801년 순교한 정약종(丁若鍾)이 남긴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主敎要旨)의 첫대목이다.

무릇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봄에 그 위에 임자[主]가 계신 것을 아는 고로 질통고난(疾通苦難)을 당하면 앙천축수(仰天祝手)하여 면하기를 바라고 번개와 우뢰를 만나면 자기 죄악을 생각하고 마음이 놀랍고 송구(悚懼)하니, 만일 천상에 임자가 아니 계시면 어찌 사람마다 마음이 이리하리오?(정약종: 11)

이 대목은 한국인의 하늘 관념을 기독교 신에 연결시킨 명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흔히 하늘 관념과 하느님의 연결성이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늘’과 ‘임자’, 다시 말해 종래의 하늘 관념과 기독교 신 사이의 불연속성이다. 뒤의 문답에서, “저 푸른 하늘이 천주가 아니시냐?”라는 질문에 대해 정약종은 “하늘을 보고 공경함은 이 하늘을 공경함이 아니요, 하늘 위에 계신 임금을 공경함이라”라고 답하고 있다.(정약종: 22)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주장한 하느님 ‘있음’의 논증에만 귀를 기울였지, 그 이전의 천주교 자료에서 나타난 하느님 ‘없음’이라는 침묵의 논증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 사실에 주목할 때 ‘하느님’을 통해 기독교와 한국종교의 만남의 양상을 새로이 고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도서

Baker, Don, "Hananim, Hanunim, Hanullim, and Hanollim: The Construction of Terminology for Korean Monotheism,"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5-1 (2002): 105-131.
Gale, James, "The Korea's View of God," The Korea Mission Field 12/3 (1916): 66-69.
Gale, James, Korea in Transition (New York: Eaton & Mains, 1909).
Ross, John, "Corean New Testament," Chinese Recorder and Missionary Journal 14 (Nov., Dec., 1883): 491-497. (김정현1982에 수록, 206-213)
Ross, John, Corean Primer (Shanghai: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 Press, 1877).
Ross, John, History of Corea: Ancient and Modern (London: Elliot Stock, 1891[1879]).
Ross, John, Korean Speech: With Grammar and Vocabulary (Shanghai: [s.n.], 1882).
Sharpe, Eric, 윤이흠&윤원철 옮김, <<종교학: 그 연구의 역사>> (한울, 1986).
Smith, Jonathan Z., "The Unknown God: Myth in History," Imagining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Smith, Jonathan Z., To Take Place: Toward Theory in Ritual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Stanislas Férron, Dictionnaire Francais-Coréen (한국교회사연구소, 2004[1869]).
Tylor, Edward B., "On the Limits of Savage Religion,"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21 (1892): 283-301.
Underwood, Horace G., The Religions of Eastern Asia (New York: Macmillan, 1910).

김승혜, “한국인의 하느님 개념 - 개념 정의와 삼교 교섭의 관점에서,” <<종교신학연구>> 8(1995): 107-128.
김정현, <<羅約翰(John Ross), 한국의 첫 선교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2).
옥성득, “용어 '하나님'의 역사 소고: 해방 이전 한글 성경번역자들의 '하나님' 이해를 중심으로,” 장로회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윤석산 註解, <<용담유사>> (동학사, 1999).
이만열&옥성득 편역, <<대한성서공회사 자료집 제1권: 로스 서신과 루미스 서신>> (대한성서공회, 2004).
정약종, 하생래 감수, <<주교요지>> (성황석두루가서원, 1986).
정진홍, “‘하늘’님 考,” <<宗敎學序說>> (전망사, 1984).
최동희&이경원, <<새로 쓰는 동학: 사상과 경전>> (집문당, 2003).
최종성, “동학의 신학과 인간학,” <<종교연구>> 44(2006): 139-168.
파리외방선교회, <<한불뎐(韓佛字典, Dictionnaire Coréen-Francais)>> (Yokohama: 1880).
표영삼, <<동학1: 수운의 삶과 생각>> (통나무, 2004).

핑백

  • 종교학 벌레 : 한국 고유의 하느님 개념에 대한 고찰 2009-01-12 20:31:48 #

    ... "기독교와의 만남과 하느님 개념의 형성"</a>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글이다. 기본적인 자료들을 찾아 보강하고자 하였는데, 다른 부분들은 글의 대강만을 제시하였고 동학에 관련된 5절(수운이 창조한 하느님 관념) 부분만 집중적으로 서술하였다. 수업 시간에 동학 자료들을 읽으면서 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발표하면서 이루어진 글이기 때문에 생긴, 불균형한 글의 구성이다. 이 내용들이 글로 완성되어서 어디다 기고하기까지는, 아직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 ... more

덧글

  • 소걸음 2007/07/31 22:46 # 답글

    "하늘을 보고 공경함은 이 하늘을 공경함이 아니요, 하늘 위에 계신 임금을 공경함이라”에서 "하늘 위에"는 十二重天說 중 종동천을 가르키는 것이 아닐까요?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B&i=167503&v=43
  • 房家 2007/08/01 01:11 #

    십이중천설은 솔직히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공부를 해서 정리된 다음에야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이야기는 정약용이 나눈 것처럼 물질적 하늘(蒼蒼有形之天)과 주재자로서의 하늘(靈明主宰之天)의 구분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약종은 주재천으로서의 하늘을 강조했죠. 정약용처럼 그것을 유교 경전에서 적극적으로 찾는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요. 정약용처럼 원시 유교와의 연속성을 찾는 작업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다른 각도에서 하늘의 임금 개념은 당대에 출현한 새로운 언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인용해 보았습니다.
  • sungoak 2008/12/28 05:05 # 답글

    많은 부분에 원문을 주로 달고 있지만 다수가 옥성득의 논문들과 책에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보여지군요. 물론 한두 곳에 그의 논문과 책을 주로 넣었지만 이런 식의 글쓰기는 그야말로 표절입니다. 1) 1차자료를 주로 달때 어디서 그것을 먼저 알게 되었는지 2차자료를 주로 달지 않으면, 2) 어떤 논문이 그 표현이나 논증이나 문장을 처음 사용했는데 그대로 가져가면 표절입니다.
  • 房家 2008/12/29 08:22 #

    먼저 말씀드릴 것은 1차 자료를 원자료에 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남의 글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은 '재인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 글에서 옥성득 선생님의 글에서 도움 받은 부분은 두 곳입니다. 1)로스의 번역 과정에 관련해서. 옥선생님 글을 통해 본 자료에 대해서는 주로 충분히 표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개신교 선교사들의 하느님 주장에 관련해서. 이 부분은 특별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정리입니다. 옥선생님이 잘 정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알고 있고 일반적인 자료들에 관한 내용이라 특별히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료를 인용한 맥락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일일히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2차 자료를 통해 1차 자료를 찾고 공부하는 과정을 각주로 표시하는 것이 의무사항이라고 생각해오지는 않았는데, 그 부분은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소개한 글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료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분야의 선행연구를 언급함으로써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도가 보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분야를 다루는 글에서 선학의 글을 통해 배운 자료가 인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더구나 1차 자료를 소개받은 후 그것을 재검토해서 인용하는 것에 대해 표절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제 글에 관심가져 주신 것은 고맙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글이 "이런 식의 글쓰기"라고 폄하당한 느낌이네요. 하지만 글에 대한 채찍질로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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