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03 20:39

<에누마 엘리쉬>와 창조 이야기 독서: 발제

<에누마 엘리쉬>는 상당히 오래된 문헌이고, 따라서 인류의 태초의 종교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흔히 받는다. 그러나 <에누마 엘리쉬>는 바빌로니아라는 새로운 왕조의 성립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작된, 고도로 정치적인 신화이다. 여기엔 많은 오래된 전승들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통해 고대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먼저 이해되어야 할 것은, 이 신화가 어떻게 전승된 재료들을 가져다 사용하였는가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단순히 <에누마 엘리쉬>와 창세기의 비슷한 부분을 찾아서, 창세기가 <에누마 엘리쉬>의 영향을 받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신화의 저자는 신화소라는 재료들을 부려 쓰는 사람이다. 두 신화에는 비슷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고 지적할 수 있는데, 그 재료들이 사용된 맥락은 전혀 다르다. 비슷한 재료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그 다른 활용까지 이해해야 한다.
야콥슨은 <에누마 엘리쉬>에 관련된 다양한 전승들을 지적한다. ①수메르의 신 계보가 사용된다. 신의 이름들은 아카드어로 바뀌는 변화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가장 주요신인 엘릴을 제외하고 그 자리에 마르둑이라는 새로운 신을 위치시킨다. ②닌우르타가 수로 사업을 하는 부분, 사로잡은 적을 처리하는 부분에서 <루갈-에>와의 관련성이 보인다. ③젊은 신들이 춤과 놀이로 늙은 신들을 자극한다는 모티브는 아카드의 것이긴 하지만, 인간들이 소음으로 신들을 성가시게 한다는 <아트라하시스>를 연상시킨다. ④살해된 신으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트라하시스>에 나온다. ⑤친부살해(parricide)를 통한 세계창조는 아카드의 요소인데 이는 후에 <신통기>를 비롯해서 그리스와 페니키아에 널리 등장한다. ⑥폭풍신과 바다의 대결이라는 모티브는 우가릿의 바알과 얌을 비롯해 지중해 연안에 널리 나타난다. (Thorkild Jacobsen, <<The Treasures of Darkness>>, 167-8.)
<에누마 엘리쉬>는 신화 전승들을 재구성해서 새 세계관을 구성하는 ‘신학적 작업’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창세기의 저술과 비교할 측면들이 있다. 처음에 제시되는 신들의 계보는 축약되어 있다. 원래 수메르 신들은 남녀가 짝지어 자식들을 낳는데,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여성 배우자 신들이 모두 생략된 채, 아누, 안샤르, 누딤무드(엔키)까지 바로 제시한다. 마르둑의 아버지인 엔키를 강조하기 위한 간결한 제시이다. 또한 신화의 세계 창조 이야기가 바빌로니아의 신전 에상길라의 건축을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하는데, 이는 제관계 창조이야기(창세기1장)와 매우 비슷한 점이다.
비교를 위해 창세기에 등장하는 두 창조 이야기와 <에누마 엘리쉬>의 도입 부분을 살피도록 하겠다.

①제관계 문서의 창조 이야기(P기자, 창세기1:1-8)
하느님(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신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테홈) 위에 있고,
강한 바람(루하 엘로힘)은 물 위에 움직이고 있었는데,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하느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②야훼 전승의 창조 이야기(J기자, 창세기 2:4-9)
주 하느님(야훼)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주 하느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주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주 하느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③<에누마 엘리쉬>의 시작 부분
위에 하늘이 아직 불리지 않았고
아래 마른 땅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때
신들의 아버지 태초의 압수와 신들을 낳은 모체 티아마트가 자기들의 물을 한데 섞고 있었다.
늪지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섬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이 나타나지 않아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들이 그들 안에서 생겨났다.

(1) 태초에: 이 지역 창조 신화들이 시작되는 전형적인 표현은 “~할 때”이다. 첫 단어 ‘에누마’는 ‘그 때에’를 의미한다. 창세기 처음의 시작도 ‘태초에’이며, 야훼 전승의 창조 이야기도 ‘그 때에’로 시작된다. <아트라하시스>의 처음도 ‘신들이 사람 대신에 노동을 하고 노역을 감당했을 때’이다. 이런 신화적 공식을 따라 창세기 1:1의 첫 부분은 문장으로 끊지 말고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로 번역되는 것이 옳다.

(2) 강한 바람: 제관계 기자가 묘사하는 태초의 상태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강한 바람(하느님의 영)은 티아마트를 둘로 갈라 세계를 만든 마르둑이 지녔던 바람과 통하는 단어이다. 깊음(테홈: 티아마트와 관련)이 바람에 의해 갈라지는 것이 세계 창조의 처음으로 이해된다.
한편 ‘둘로 가름’은 제관계 문서에서 기본적인 창조 행위(바라)를 이룬다.

(3) 제관계 이야기가 추상화시킨 단어들을 통해 웅장한 우주론을 제시하는 반면에 야훼 전승의 이야기는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다는 현실적인 묘사이다. ‘늪지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섬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에누마 엘리쉬의 분위기와 친연성을 갖는 묘사이다.

(4) 마르둑이 티아마트를 둘로 갈라 하늘과 땅을 설정한 뒤 하는 일은 신들의 거처를 정하고, 별들을 세워 해를 정하고 절기를 나누고 열두 달로 일 년의 날짜를 정한 일이다. 창세기에서는 육해공의 생물의 거처를 정한 뒤에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고 명령한다.

(5) 사람 만들기: 야훼 전승의 창조이야기에서는 “주 하느님(야훼)이 땅의 흙으로 사람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묘사한다. 하느님의 구체적 행위가 드러난, 전통적인 전승에 충실한 묘사이다. 반면에 제관계 문서의 창조이야기에서는 보다 추상적으로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을 괴롭혀온 알쏭달쏭한 구절,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가 등장한다. 이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전승의 신들의 회의에서 인간 창조가 결정된 대목이 창세기에 변형되어 들어가는 과정에서 찌꺼기처럼 남은 표현이다.

(6) 말씀으로 창조: 제관계 문서의 엘로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이집트 멤피스 창조 신화에서 프타(Ptah)는 가슴과 혀로, 즉 생각과 표현으로 세계를 창조하는데, 이 신학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름이 불리는 것을 창조의 결정적 요소로 생각한 것은 <에누마 엘리쉬>의 시작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야훼 전승에서 야훼가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도록 하는 것에서도 두드러진 주제이다.

(7) 제관계 문서의 “어둠이 깊음(테홈=짠물) 위에 있고, 강한 바람은 물(단물) 위에 움직이고 있었는데”는 <에누마 엘리쉬>의 “신들의 아버지 태초의 압수(단물)와 신들을 낳은 모체 티아마트(짠물)가 자기들의 물을 한데 섞고 있었다”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조철수) 야훼 전승에서 “땅에서 물이 솟아서”에서 물은 홍수, 범람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로 이 역시 홍수에서 태초의 상태를 상상한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적 상상력이 반영된 표현이다.

덧글

  • 2017/02/22 08:3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房家 2017/02/25 09:02 #

    간단히 답변 드릴 수밖에 없네요.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는 구약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히브리성서가 다신론 요소들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그 시대 사람들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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