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03 20:28

길가메쉬의 청혼 거부 서랍1: 문서

길가메쉬 서사시 중에 길가메쉬가 여신 인안나의 청혼을 매정하게 거부하고 개쪽을 주는 장면이 있다. 다음 글은 이 장면에 대한 분석이다. 그 장면의 묘사 내용은 장례의식과 연관되며, 결혼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내적인 논리가 숨겨져 있다는 재미있는 분석이다. 아부쉬의 논문(Tzvi Abusch, "Ishtar's Proposal and Gilgamesh's Refusal", History of Religions 26-2 (Nov., 1986): 143-187.)을 요약한 것으로, 함께 공부하는 최영민씨가 제공해준 내용이다. 감사를 드린다.


Tzvi Abusch, "Ishtar's Proposal and Gilgamesh's Refusal"1)
- 길가메쉬 서사시 6토판 1~79행 해석 -

현존하는 12토판의 길가메쉬는 카사이트 시대, 구마사제 신-레케-우닌니에 의해서 수집되고 편집된 것이다. 신-레케-우닌니는 전승되어오던 많은 길가메쉬 이야기들을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는 서사시를 편집한 것이다. T. 아부쉬는 이 길가메쉬 서사시 6번째 토판, ‘이쉬타르의 청혼과 길가메쉬의 거절’ 이야기를 의례와 관련지어서 의미를 파악한다. 장례의례 절차와 제물들, 죽음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에서 아부쉬는 길가메쉬 서사시 해석한다. 아부쉬는 이 부분을 길가메쉬 서사시 전체 흐름 속에서 전환을 이루는 부분으로 이해한다.

I. 길가메쉬는 왜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했을까?
절친한 친구 엔키두와 훔바바를 죽이고 돌아온 길가메쉬에게 이쉬타르 여신은 청혼을 한다. 이 이야기의 구조는 3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①이쉬타르의 청혼과 풍부한 결혼 지참물 제안과 길가메쉬의 거절
②이쉬타르 선물에 대응되는 거절 이유
③ 이쉬타르가 사랑했던 6존재(두무지, 새, 사자, 야생 종마, 목동, 정원사)의 불행한 운명
아부쉬는 이 이야기에서 길가메쉬의 차분하면서도 조리 있는 거절에 대해서 물음을 갖는다. ‘왜? 길가메쉬는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한 것인가?’ 영웅적인 길가메쉬가 이쉬타르를 승전의 보상으로 여기지도 않았으며, 이쉬타르가 두려워서도 아닐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가 여성혐오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길가메쉬가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하는 대목에 아부쉬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

II. 죽음으로 초대
아부쉬는 이쉬타르와 길가메쉬의 대화에 주목한다. 이쉬타르는 길가메쉬가 자신의 남편이 된다면 다양한 결혼선물을 줄 것이라고 유혹하지만2), 길가메쉬는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한다. 아부쉬는 메소포타미아의 장례의례와 관련해서 이 내용을 새롭게 해석한다. 전형적인 청혼가와 다른 형태를 취하는 이 청혼이 사실은 이쉬타르가 길가메쉬에게 죽음으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부쉬는 이쉬타르와 길가메쉬의 대화가 주문(主文)이라고 본다.
a) 청혼가는 일반적으로 신랑과 신부가 주고받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쉬타르는 일방적으로 신랑에게 청혼한다. 죽음은 언제나 일방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b) 장례식에서 죽은 사람은 마차를 타고 지하세계(새로운 집, 이쉬타르의 집)로 내려간다.
c) 백향목으로 만들어 진 집은 무덤(또는 관)이다.
d) 장례식에서 죽은 사람의 발에 살아있는 사람들(왕이던 귀족이던)이 입맞춤을 한다.
e) 세쌍둥이의 염소 새끼와 두 쌍의 암양은 망자에게 제공되는 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쉬타르가 길가메쉬에게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들은 장례식의 절차에 따른 것과 일치한다. 이러한 ‘통과의례’ 상으로도 결혼과 장례 의식은 의례적 요소 및 구조가 유사하다. 이 이야기에서 이쉬타르는 풍요의 여신이면서 죽음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6토판의 시작부터 길가메쉬는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등 스스로 의례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쉬타르의 죽음에 초대를 거부한다.

III. 청혼의 거부 이유
길가메쉬는 그녀가 사랑했던 6존재들의 운명을 조목조목 예로 든다. 길가메쉬가 나열하는 이쉬타르가 사랑했던 존재들은 자연 식물(두무지), 동물(새, 사자, 야생 종마), 사람(목동, 정원사)로 순서이다. 아부쉬는 이 순서에서 다른 의미를 찾는다. 이 순서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르는 시간적 진행을 이루며,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야생/자연 상태에서 문명으로, 낯선 것에서 친숙한 것 이르는 순서이라는 것이다. 이쉬타르의 청혼을 승낙하면, 이 순서의 마지막에 길가메쉬가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들도 길가메쉬처럼 이쉬타르의 사랑을 받지만, 모두 불행한 결과-죽음에 이를 것이다. 마지막 정원사 이쉴란누와 이쉬타르의 이야기는 이야기 속에 길가메쉬가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하는 비슷한 이유가 등장한다.3) 정원사가 이쉬타르를 거절하면서 말하는 내용은 길가메쉬의 심정을 대변한다. “왜 내가 추위를 피해서 갈대를 덮어야 합니까?” 이 말은 시체나 무덤을 덮은 갈대를 생각나게 한다. 정원사도 이쉬타르의 죽음을 거부한 것이다. 길가메쉬는 마지막으로 “그럼 네가 나를 사랑하니 [나도] 그들처럼 다룰 것입니까?”라며 이미 이쉬타르의 의도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길가메쉬가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원사 이쉴란누처럼 이쉬타르의 사랑(?)이 된 길가메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정원사와 같은 운명을 걷지 않고, 길가메쉬는 죽을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IV. 문명에서 비문명으로 / 하늘의 황소
비록 길가메쉬가 이쉬타르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그는 마지막에 자신의 노력이 쓸모없었으며, 죽음은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제6토판에서는 그는 아직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 이쉬타르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하는 것(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길가메쉬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움이 길들여지는 것이며, 거주민이 쫓겨나는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이며, 인간(문명)이 동물(비문명)이 되는 것이다. 이쉬타르의 제안은 결국 문명화된 길가메쉬를 비문명화시키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쉬타르의 청혼은 문명화가 아니라 비문명화, 죽음인 것이다.4)
길가메쉬는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하는데 신중을 기한다. 이쉴란누가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했지만, 결국 그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쉬타르는 청혼하면서 과일에서 동물의 순서가 나타난다.5) 아부쉬는 이 순서가 (농경)문화에서 비문명의 야생으로 이끄는 이쉬타르의 의도가 있다고 본다. 길가메쉬는 이와 반대의 순서로 거절한다. 정원사는 자신의 과실(문명)을 이쉬타르에게 바침으로 결국 죽음(비문명)을 맞이한다. 길가메쉬는 이쉬타르에게 줄 어떤 과일도 없다고 말하며, 그녀의 제안의 순서를 반전시킴으로 그녀의 주술적인 청혼(죽음)을 거부한다.
이쉬타르는 그녀가 이전에 목동을 늑대로 바꾼 것처럼, 길가메쉬를 하나의 동물(비문명)로 여기고 더 큰 동물(하늘의 황소)을 통해서 그를 야생의 질서에서 제압 하려고 한다. 하늘 황소의 등장은 ‘죽음과 삶의 갈등’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잇는다. 하늘의 황소를 죽임으로 길가메쉬는 죽음의 거부와 함께 자연 질서를 깨뜨린다. 길가메쉬의 거부와 이쉬타르의 반응은 오래된 질서의 파괴와 인간 의지의 힘이 강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V. 길가메쉬 서사시는 성장 드라마
아부쉬는 전체적인 길가메쉬 서사시를 성장 드라마로 보고 있다. 반신반인인 길가메쉬는 인간으로서 자신은 죽어야 하며, 신으로서 자신은 지하세계를 다스려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아부쉬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12토판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1토판에서 5토판까지의 길가메쉬가 미성년의 모습이라면, 6토판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길가메쉬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함으로 길가메쉬는 죽음을 인간에게 익숙한 것이며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쉬타르의 제안을 재정의한다. 그러나 그녀의 청혼은 그이상의 의미, 길가메쉬의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7토판에서 11토판까지의 여정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12토판은 이런 구조 속에서 엔키두가 길가메쉬에게 전해주는 지하세계의 이야기는 지하세계의 왕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암시한다.

아부쉬는 여기에서 길가메쉬 서사시 제6토판의 내용을 죽음의례를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 장례식의 절차에서 이쉬타르의 청혼의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길가메쉬의 심정을 분석한다. 장례 의례를 통해서 이쉬타르의 청혼이 죽음을 피하려는 길가메쉬의 이야기에서 단순히 엔키두의 죽음을 불러오는 사건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길가메쉬가 죽음에 초대되는 것이다. 또한 훔바바라는 하나의 큰 도전을 넘어선 길가메쉬가 자신의 운명을 짊어져야할 과정에 왔음을 암시하고 있다.
신화 또는 서사시로 길가메쉬는 단순히 고대 서기관들의 필사 교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야기 자체로 갖고 있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의도는 한 개인의 성장 이야기이다. 전체적인 맥락뿐만이 아닌 세부적인 내용에서도 이 의도는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아부쉬의 시도-의례를 통한 신화 분석은 기록전승(written tradition)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향이 될 수 있다.


1) Tzvi Abusch, "Ishtar's Proposal and Gilgamesh's Refusal", History of Religions, vol. 26, No.2(Nov., 1986), pp. 143-187.
2) 청금석과 금으로 치장된 전차(또는 마차)를 타고, 훌륭한 노새와 같은 폭풍의 정령에게 마구를 달 것이며, 길가메쉬가 그녀의 집에만 들어가면 왕들과 귀족들이 그에게 절하고 발에 입 맞추고, 산과 들판에 풀이 자라게 하고, 염소가 세 쌍의 새끼를, 암양이 두 쌍의 새끼를 낳고, 짐을 실은 당나귀가 노새보다 빠르고, 말이 전차를 이끌 것 것이라고 한다.
3) 이야기 속에 있는 완전한 하나의 이야기와 같은 정원사와 이쉬타르의 이야기는 길가메쉬 제6토판의 이야기 구조와 대칭된다. 이쉬타르가 정원사를 보는 것과 음식을 주겠다고하며 유혹하는 것, 정원사가 이쉬타르의 청혼/사랑을 거부함으로 이쉬타르의 저주를 받는 것 등이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다.
4) 이와 반대되는 예는 제1토판에서 엔키두가 샴하트의 유혹으로 문명화가 된 이후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으며, 엔키두는 그의 새로운 처지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쉬타르는 샴하트와 달랐다.
5) ‘당신(길가메쉬)의 과일을 내(이쉬타르)게 주며, 당신은 나의 남편이 되십시오.’ … 노새, 염소, 암양, 당나귀, 말, 황소의 순서로 이쉬타르의 청혼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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