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9 21:40

메소포타미아의 질펀한 이야기와 창조 모티브 종교학공부

신화에서 창조신화를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놓는 것은 성서 차례에 익숙한 사람들이 갖기 쉬운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성의 문제와는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엘리아데도 창조신화를 가장 중심적인 신화로 보았는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창조신화는 가장 먼저 상상된 신화가 아니다. 신화는 삶의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출발하며, 창조신화의 우주론을 생각할 정도로 인식이 추상화되는 것은 후대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신화는 신화적 사유의 열매에 해당하지 뿌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대에 집성된 신화 자료에서 창조 이야기는 첫머리에 온다. 그것은 성서뿐만 아니라 많은 신화 자료들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논리상 창조 이야기가 우선하는 것이지, 실제 신화 형성의 차원에서는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성서에서는 창세기가 가장 앞에 위치하지만, 히브리 성서를 실질적으로 형성한 원체험은 출애굽의 경험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형성한 일이며, (창세기가 아니라 출애굽기가) 가장 오래된 이야기 층을 이룬다. 창세기는 후대 고도로 발달된 신학적 작업의 소산이다. 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도 비슷한 것을 본다. 그들의 신화는 생활의 가장 긴요한 부분에 대한 성찰이었으며, 그 주제는 풍요라고 생각된다. 풍요는 그들의 성생활을 통해서 묘사되고 상상되었다. 그리고 기원에 대한 물음은 나중에 이 풍요에 대한 성찰의 한 결과로서 나타나게 된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두드러지는 것은, 성생활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 종교에는 성생활에 대한 내용도 포함한다는 정도의 서술은 부족하다. 아예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섹스는 메소포타미아 종교적 사유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체험이며 따라서 섹스에서 비롯한 관념들이 종교 사상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메소포타미아 종교에서 ‘성스러움’이라는 추상어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핵심 개념은 ‘깨끗함’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깨끗함 관념(SIKIL)은 아직 섹스를 경험하지 않은 처녀의 성기를 뜻하는 말이다. <엔키와 닌시킬라/닌후르상>에서 딜문을 성스러운 장소로서 찬양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딜문의 땅은 거룩하다(pure). 딜문의 땅은 순결하다(virginal). 딜문의 땅은 깨끗하다(pristine).” 이 문장에서 세 개의 개념, “ku3 / sikil / dadag”가 등장한다. 모두 깨끗함과 신성함을 동시에 함의하는 말들이다. (그 의미들은 대략 “holy/pure, clean/pure, bright/clean”이라고 파악된다고 한다. 조철수, <<수메르신화>>, 200.) <목자의 결혼 텍스트>는 풍요를 불러오기 위한 우주적 성행위를 강조하는 노래이다. 그 시에서 인안나는 수레 바퀴를 감싼 장식에 비유하며 자기 성기가 아직 털도 듬성듬성한 순결한 처녀지(處女地)라는 점을 노래한다. 자신의 성기가 물을 잘 댄 토지라고 이야기하며, 어서 쟁기질을 하라고 상대방 두무지를 좨친다.

현대인들이 성스러움에서 가장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섹스를 통해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종교적 사유를 형성하였다. 풍요의 주제를 형성한 섹스는 창조 모티브로도 확장된다. <인간의 탄생> 앞부분에서 태초에 “모신들이 남신들과 잠자리를 하여 신들을 낳았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잠자리를 하다로 번역된 단어(gis3, dug3)는 ‘남자의 성기를 말하다’나 ‘박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앞에 나온 두무지의 ‘쟁기질’도 같은 단어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성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들은 번역자를 곤란케 하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성의 위치가 고대 사회와 완전히 반대의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성은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은폐된 영역으로 쫓겨났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어휘들은 음담패설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현대어로 이 문헌들을 번역하면 항상 점잖게 완곡어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의미 전달의 문제를 야기하고 삶의 경험을 직접 표현하려는 태도에 대한 왜곡이 된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완곡어가 아니며, 성을 돌려 말해야 한다는 관념 자체도 그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성기(性器)라는 중성적 언어, 음부(陰部)라는 비유적 표현의 한계가 드러난다. 현대 사회의 공적인 영역에서 추방된 우리말 자지와 보지는, 금지됨으로 인해서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진 언어이다. 그것들을 발언하는 일은 고대에는 성스러운 힘을 지녔다고 한다면, 현대에는 상스러운 힘을 지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인의 감각에선 껄끄럽긴 해도,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배태한 삶의 직접성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직접적 언어의 사용이 방법이 된다. 그들이 현대인과 달리 성을 자랑스러운 것으로 생각한 것은 <인간의 탄생>의 마지막에 엔키가 사람들이 “내 자지를 칭찬할 것이다.”라고 호언하는 것에도 잘 나타난다.

<엔릴과 닌릴>(원문 번역)이 현대 관점에서는 포르노에 속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는 것은 그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닌릴의 어머니는 닌릴에게 일어날 일을 이렇게 예견한다: “이제 그의 자지가 부풀어 오를 것이고, 그는 너에게 입맞추려 할 것이다. 신나서 정액을 네 자궁에 채워넣을 것이다.” 예견한대로 엔릴은 목욕하는 닌릴을 보고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 목욕은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며, 섹스를 위한 중요한 예비 단계이기도 하다. 플롯 상 강간의 동기로 설정되었다기 보다는 목욕은 ‘깨끗함’을 추구하는 의례적 과정이다. <신부의 축복>이라는 문헌에서도, 인안나가 축복을 내리기까지 계속해서 하는 행동은 거시기를 물로 닦는 것이다. 그 준비가 된 후에야 왕은 인안나의 보지에 얼굴을 파묻는다. 씻는 것은 섹스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엔릴이 닌릴을 범하고자 했을 때, 한 번 빼는 닌릴의 반응은 처녀성을 강조하는 레토릭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거시기는 작아서 아직 늘어날 줄 모르고, 내 입술은 작아서 키스할 줄 모릅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엔릴이 “정액을 그녀 속(음부)에 쏟아붇는다”는 사정(射精) 장면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엔키와 닌시킬라/닌후르상>(원문 번역) 역시 신들의 섹스 장면들의 모음이다.

“엔키는 닌투를 향해 자지로 수로를 파들어간다.
자지를 갈대숲 안으로 빠뜨린다.
자지를 위엄스럽게 치켜올린다.”
여기서 묘사되는 것은 현대의 야설에서나 볼 수 있는 성행위에 구체적 장면들이다. 그리고 “엔키는 자궁 안으로 정액을 쏟아부었다. 그녀는 자궁에 엔키의 정액을 받았다.”는 장면이 거듭해서 나온다. 다른 장면을 하나 더 들면,

엔키는 우투의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그는 손으로 그녀 가슴을 움켜쥐고 그의 허벅지에 눕혔다.
그는 그녀 아랫배를 문지르고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으로 그녀 가슴을 움켜쥐고 그의 허벅지에 눕혔다.
그는 작은 여인에 자지를 박고 키스하였다.
엔키는 우투의 자궁에 정액을 쏟아부었다.
그녀는 엔키의 정액을 속에 받았다.

여기서 엔키의 섹스 파트너로 나오는 여신의 이름은 닌시킬라(Nin-sikila), ‘순결한 보지 여주’이다. 처녀와의 섹스 모티브가 다시 등장한다. [야콥슨은 텍스트에서 이 여신이 닌시킬락(Nin-sikilak), ‘정결례의 여주’라고 이름이 바뀌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어원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이 두 여신들이 통한다고 생각된다. 처녀성-깨끗함이라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엔키의 다른 섹스 파트너로 닌임마(Nin-imma), ‘보지의 여주’가 등장하기도 한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엔릴과 닌릴>에는 나오는 성기에 손대고 맹세하는 풍습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 “만일 당신이 나의 여주라면, 내 손을 당신 보지에 대게 해주십시요.”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상대 성기에 손을 대는 맹세 방식은 성서의 창세기에도 등장한다.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어라. 나는 네가 하늘의 하느님, 땅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24:1-9, 또 47:29-31에도 이러한 맹세가 나옴.)


메소포타미아 종교에서 신을 의미하는 접두사는 ‘닌’(NIN-)이다. 닌릴, 닌후르상, 닌갈 등의 신 이름이 ‘닌’을 통해 지어졌다. 이 닌은 다름 아니라 보지에서 나온 말이다. 위의 인안나 조상에서 보이는 보지의 모습이 그대로 아래에 보이는 그림문자 닌의 기호가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종교는 성(性)스러운 종교이다. 나는 메소포타미아의 성스러움 관념은 “깨끗한 보지”(깨끗함은 처녀 상태이기도 하고 씻는 의례를 통해 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로 가장 잘 요약된다고 생각한다. 질펀한 자료들을 해석할 때, ‘신들도 포르노를 찍었구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신들의 포르노로부터 종교가 생성되었다’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성서의 묘사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바라볼 기독교인들은 이것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의 종교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것이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종교인 메소포타미아 종교는 종교가 인간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되었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섹스의 경험이 성스럽게 생각되었고, 그래서 그 경험이 종교를 상상하는 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덧글

  • Bond Girl 2007/04/22 03:51 # 답글

    성스러움이 성스럽지 않는 순간이 되어버린 건 슬픈 일이군요. 하지만 여전히 방가님처럼 직설화법으로 쓸 자신은 없네요.
    인도의 카마수트라가 가지는 많은 의미중에서 사람들은 가장 손쉬운 부분만을 끄집어내서 해석하는 것도 그렇고요. 밀교의 한 종류 중엔 가장 최상의 선정이 남성이 마지막에 참고 견디면서 단전에 그 에너지를 밀어넣어야 한다고는 하는데 그걸 후일에는 외도라고 하거나 혹은 폄하하기도 하고요. 등등 실생활에서 옛날사람이든 지금 사람이든 그런걸 편안하게 말하는데는 보통의 내공으로는 힘들듯 싶어요.

    인간경험이 종교상상의 바탕이라는 말은 종교를 참 인간적인 것으로 보게 해주는 것 같아서 좋네요. 물론 종교는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긴 하지만요. ^^
  • 房家 2007/04/22 13:00 #

    밀교의 최상의 선정 이야기는 도교의 방중술과 매우 비슷하네요.
    상호관계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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