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23 00:34

기독교 교육과 좋은 학벌 기독교세계

미국인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자녀를 교육 기관에 보내지 않고 대신 부모가 직접 아이들 교육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교육을 홈스쿨링(Homeschooling)이라고 부르는데, ‘가정교육’이라고 번역하면 의미 전달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영어 표현을 그대로 쓰도록 하겠다. 홈스쿨링하는 부모의 대부분은 매우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이다. 그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학교가 너무 세속적인 악으로 가득찬 곳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안전한 가정에서 기독교 교리와 결합된 지식(예를 들어, 노아 홍수 이야기와 지질학을 연결시키는 식의)을 가르친다.

이 운동을 소개하는 한글 웹페이지를 보면 유용한 정보(운동의 역사에 관한)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운동을 바라보는 “교육학적 편견”이 잘 드러난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교육=학교교육'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다시 가정에서 학습을 하는 '홈스쿨링(Homeschooling)'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의 다양한 정보와 현장체험을 위주로 이루어지는 맞춤 학교 '홈스쿨' 은 과연 어떤 걸까? ... 홈스쿨링은 가정에서 학생의 개성, 흥미, 학습능력 등을 고려해 부모와 학생 스스로가 교육 과정, 학습 방법, 학습 계획 등을 설정하여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최적의 교육 환경과 방법을 택하는 '대안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맥락은 이것이 “선진국”에서 행해진다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을 펼치는 부모들이 종교적인 맥락에서 이 일을 하고 있으며, 가정을 기반으로 세속 문화에 대항하는 대안적 문화(혹은 공간)을 창출하려는 노력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운동으로 보기 이전에 종교운동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교육을 통해 종교적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이해되어야 한다.

이 운동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보인다. 세속과 절연된 세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독교 가정이 세속과 가질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이러저러한 역설적 상황이 빚어질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학벌에 대한 관심이다. 이번에 읽은 이 운동에 대한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해리스(Gregg Harris, 홈스쿨링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의 설명에 의하면, 하버드나 예일은 한때 종교적인 대학이었으나 “이제는 슬프게도 반기독교적 인문주의의 요새이다.” 그러나, 그가 독자들에게 홈스쿨링이 자녀들에게 교육적으로 불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키고자 할 때에는 아이비 리그와 세속 교육을 부활시킨다... [그의 책에서 사례로 다루어진] 한 소년은 집에서 과학에 뛰어나서 하버드에 입학한다... 적이 이제는 성공의 유용한 표준으로 변모한다...
해리스는 책에서 이 분명한 비일관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성경 학교나 오랄 로버츠 대학(Oral Robert University)에 간 소년들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성공의 상징이 필요할 때, 기독교인들은 흔히 그것을 자기들 문화에서 끌어오기보다는 비기독교 세계에서 끌어오곤 한다.
(Colleen McDannell, "Creating the Christian Home," <<American Sacred Spac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5).)

기독교적인 이념을 실현하는데 비기독교적인 이념인 학벌이 중시된다는 역설, “성공”에 세속적 가치판단이 개입하는 상황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간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모순이다. 그들 자신은 그러한 점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홈스쿨링을 통해 자식을 하버드 대학에 보내고 기뻐하는 부모의 심정에 더욱 동감하지 않을까싶다. 우리나라에서 종교적 동기와 학벌이 결합한 유명한 예는 <<다니엘 학습법>>이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2000년에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서울대 종교학과 4년간 평균 점수 99.26 취득)하고 십대 시절에 “다니엘처럼 되겠다!”며 굳게 정했던 뜻을 따라 곧바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전도사” 김동환이 쓴 이 책은 자녀를 둔 개신교인 부모님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 책에는 하느님이 내린 성공이 왜 서울대를 통해서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 질문 자체가 우문이다. 은총의 의도를 질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저자가 학교를 다닌 그 시기에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닌 주변 인물이기에 그 책을 편하게 읽지 못한다. 그가 기도의 힘을 통해 세속의 무리들을 극복하고 잘났다는 서울대생들을 제쳤다고 이야기하는 구도에서, 나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제압당한 세속의 무리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구질구질한 뒷얘기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성공담이 개신교 부모들에게 공명한 그 지점, 주님의 도구가 왜 하필 서울대이여야 한다는 점에 이의가 별로 제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왜 그가 세속적인 학문(그 중에서도 불경하기가 으뜸인 종교학)에서 최고 점수를 획득하여야 하며, 그것이 어떠한 의미에서 주님의 도구가 되느냐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다한 질문도, 설명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덧글

  • 진주형님 2006/11/23 11:07 # 답글

    우리 주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일들의 단면 중 으뜸이겠죠.
    우리나라 기독교인 중 일부의(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식을 잘 나타내는 글 같습니다.
  • 房家 2006/11/23 13:05 #

    미국의 보수 개신교인들은 세속과의 분리 의식이 뚜렷하지만,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은 세속적인 성공과 종교적인 의미가 일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위의 경우, 미국인들에게는 모순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요.) 그 차이를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가고일 2006/11/23 12:41 # 답글

    저경우에는 칼뱅식 논지가 도움이 돼 줄거 같긴 하군요.
    돈은 세속의 도구이지만 도덕적으로 벌고 도덕적으로 쓴다면 문제가 없다......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세상에 물들지 않고 도덕적으로 공부해서 도덕적으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세속적인 학벌이라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 房家 2006/11/23 13:10 #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다"와 "이것이 더 좋다"의 차이는 분명 있습니다.
    서울대를 주님의 도구로 쓰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식에게는 다른 대학보다 서울대가 주님의 도구로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설명이 필요하죠. 자식이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기독교적인 것,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신학적 사유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소걸음 2006/11/23 14:17 #

    아마 이 사회의 리더(주류, 지배층)가 되어 더 많은 권세와 힘을 얻어 그것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 설명하지 않을까요? ^^
    오히려 문제는 믿음과 세속적 성공의 강한 상관 관계를 주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 房家 2006/11/23 15:50 #

    기독교를 사회의 주류로 위치시키려는 이념, 미국에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사회의 이념이지만 지금은 그 때에 비해 초라해 졌습니다. 19세기 미국 개신교가 주류를 움직이려는 위엄있는 모습이었다면, 지금 보수적 개신교는 주변부로 밀려나 자기들끼리의 문화라도 형성하려는 모습이죠. 위의 논문 저자의 입장이 그러한데요, 앞으로 개신교 문화의 방향을 보려면 "뉴 라이트 운동"같이 주류사회로 편입하려는 방향보다는 대안적 문화를 만드려는 홈스쿨링을 통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류사회를 움직이려는 이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그 이상이 좌절 모드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아마 이명박 장로가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 andy 2006/11/25 13:43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교회에서 자주 추천되어지는 책을 택했군요. 님의 주장에 많은 부분 동의하면서 한 편으로 성공의 잣대가 지극히 세속적인 교인들의 인식이 비난받을만한 것은 아니라 봅니다. 개신교에게 있어 전도의 사명을 성취시키는 도구는 언제나 세속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마저도 영적인 산물로 봐버리는 거죠. 영육간의 모든 성공이 결국 신의 은총이라는 식의 발상! 그나저나 이보단 "나의 구질구질한 뒷얘기는 중요치 않다"고 하셨는데, 전 그 뒷얘기가 자꾸 듣고 싶네요.ㅋㅋ
  • 房家 2006/11/26 14:56 #

    제가 반대하는 세속적 이상, 학벌지상주의가 종교적 담론을 통해 강화되는 양상이 보여서 제가 비판적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세속적 이상과 종교적 이상의 결합 자체는 비난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 forjesuschrist 2007/01/11 14:53 # 답글

    홈스쿨링하는 부모의 대부분은 매우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이다.라는 말이 와닿는데요.. 미국에서 보수적인 개신교 부모들이 홈스쿨링을 하는 일과 보수적인 기독교계 출판사인 규장에서 홈스쿨링 책을 낸 일 모두 의미는 같다고 봅니다.
  • 房家 2007/01/12 21:54 #

    그렇네요. 규장에서 책이 나왔군요.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소개가 되어 있군요. 아직 우리나라엔 홈스쿨링이 종교적인 교육이라는 것이 잘 알려진 상태는 아닌 것 같지만 말입니다.
  • ㅇㅇ 2018/10/29 18:19 # 삭제 답글

    어머님이 주셔서 어렸을 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저 책에 짜여진 도식적인 공부패턴은 지금 보면 모던 타임즈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쩜 저런 잔인한 방법을 생각해낸건지...이 글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면 참 놀랍네요.

    그가 종교학과 학부생이었다는 점은.. 모순적이네요. 몇 년 전에 교수님 말씀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워서 고득점을 맞는 학생들에 대한 다큐가 있었죠. 그런 부류였는지 몰라도, 독선적 태도로 4년간 학부에서 무엇을 배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신학적 근거나 당위 외에도, 저자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음을 볼 수 있겠어요. 약자를 보살피는 것은 사람들이 신부나 목사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기능인데, 저자의 논리는 오히려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죠. 학원에서 들으면 놀랍지 않지만, 교회에서 듣자니 어색함만 남는달까요.
  • 房家 2018/11/14 22:49 #

    말씀하신 것에 동의합니다. 표현 하나하나가, 내공이 대단하신 게 느껴집니다.
    그가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신 부분은 저자 혼자라기보다는 교회문화의 구조적 문제일텐데, 지금 교회가 비판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교회에서 듣기 어색한 이야기가 교회에서 주류의 위치에 있다는 게 역설적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메뉴2


일과 배움과 놀이가
채 나누어지지 않는,
두루뭉술한 공간을 꿈꾼다

주인장: 방가房家
한국기독교자료: 벌레2

free counters

통계 위젯 (화이트)

336
235
913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