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4 04:35

[번역]<지도는 지형이 아니다> 3장 서랍1: 문서

요즘 참여하고 있는 조너선 스미스의 <<지도는 지형이 아니다ap is not Territory>> 번역 작업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책의 3장의 번역문이다. 물론 진행 중인 작업이니 이 번역은 앞으로 수정 작업을 거칠 것이다. 
원문의 해당 내용은 구글북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세 쪽을 제외하고!)
번역문 PDF 형태: Map_ch3_trans.pdf

3장의 제목은 “지혜서와 묵시록”. 묵시록이라는 성서의 장르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 이 현상(묵시록 현상)을 당시 문자문화권을 이루고 있던 고대 서남아시아권에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현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글이다. 당연히 이 글에서는 성서 밖의 자료들을 폭넓게 다루어지면서 일반적인 유형을 정립하게 되는데, 특히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묵시록 전통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1978년도에 출판된 책이니 30년이나 지난 오래된 글이고, 더구나 최근의 발굴이나 새로운 해독 등 정보에 민감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글의 의미가 그리 퇴색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지는 글이다. 물론 성서의 내용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적 맥락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일반적으로 승인되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글의 작업이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서를 “포함한” 고대 종교사 자료들을 바탕으로 (주로 정치적인) 위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는 범주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고민, 그러한 자료를 읽어내는데 권력의 작용을 어떻게 고려해야할 것인가의 고민이 살아있는 글이고, 이 살아있음은 지금 시점에서도 유효하다고 느껴진다. 게다가 현재 한국 학계를 배경으로 본다면, 글에서 사용되는 30년 전의 ‘새로운’ 자료들은 지금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 분야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관련된 수업도 좀 듣고 이야기도 조금 얻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이 자료들은 생소하다. 내 짧은 시야로는 주변에서 논의되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는 자료들이다. 엄청난 양의 역주가 필요한 데 아직 미루어 두고 있는 중.

제3장 지혜서와 묵시록(Wisdom and Apocalyptic)


현대 성서학계에서 참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가 지혜서(Wisdom)와 묵시록 현상(Apocalypticism)과의 관계를 정하는 것이다. 내가 이 논문에서 종교학자로서 바라는 것은, 성서학 분야 전문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제와는 다른 전제들에 입각해서 질문들을 제기하고, 일반적으로 고찰되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의 자료들을 증거로 사용해서 이 문제의 해결에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묵시록 문헌에 나타나는 지혜서 인물의 신화에 대한 질문이나, 지혜서와 묵시록 문헌이 예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대한 질문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보다 에둘러가는 접근 방식을 택해서, 유대교나 기독교 출처에서 벗어난 자료들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내가 이렇게 작업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연구가 앞으로의 작업을 위해 새로운 물음과 범주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혜서와 묵시록을 포함한) 후기 고대 시기의 많은 종교 현상들이 국제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나의 전제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한스 디터 베츠(Hans Dieter Betz)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찬성한다. “유대 묵시록 현상, 그리고 뒤이은 기독교 묵시록 현상은 자체로만, 혹은 <<구약성서>>로만은 이해될 수 없다. 그것들은 헬레니즘 혼합현상(Hellenistic syncretism)의 전반적인 발달 안에서 나타난 특별한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나는 혼합현상이라는 개념이 갖는 설명으로서의 유용성을 대체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헬레니즘의 종교 형태와 고대의 종교 형태 간의 연속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베츠와는 의견이 다르다.
나는 베츠와 폰 라드(von Rad)의 다음 견해에 동의한다. 즉 묵시록 현상은 비밀이나 천상의 책, 현자의 천상 여행 등의 요소들의 단순한 목록으로 축소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티브들은 근동의 고대 종교 내에서 발견될 수 있고 헬레니즘 종교의 모든 양태들에서는 전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 내가 탐구하고자하는 것은 후기 고대 묵시록 문헌에서 이 요소들이 조합된 유형과 그 밑바탕에 있는 사회 구조이다.


베로수스(Berossus)의 <<바빌로니아카(Babyloniaka)>>의 단편을 고찰하는 것이 우리 연구의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베로수스는 바빌론의 마르둑의 사제로, 기원전 290-280년경에 책을 저술해서 안티오쿠스 1세 소테르(Antiochus I, Soter)에게 헌정하였다.
베로수스에 관한 증언들(tesstimonia)은 두 범주로 나눠진다. 그리스와 로마 저자들로부터 알 수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천문학자이자 점성술가였고(비트루비우스(Vitruvius), <<건축 십서(De arch.)>> 9.6.2; 플리니우스(Pliny), <<박물지(N.H.)>> 7.123), 바빌로니아의 시빌(Babylonian Sibyl)과 관련이 있는 묵시론자였다(파우사니아스(Pausanias), 10.12.9; <<수다(Suda)>> “델피의 시빌” 편(s.v. Sibulla Delphis); cf. 코레네의 모세(Moses Chorene), <<아르메니아 역사(Hist. armen)>> 1.6). 유대교와 기독교 자료에서 알 수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신화학자이자 역사가였다(요세푸스와 에우세비우스. 이 둘은 분명히 알렉산더 폴리이스토르(Alexander Polyhistor)에 의한 베로수스의 발췌문에 의존한다). 이 두 형태의 증언들은 분명 베로수스의 다른 측면들을 평가하고 다른 직업으로 그를 분류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증언들은 우리가 묵시록에서 친숙하게 접하는 전반적인 유형 드러낸다. 그 유형은 점성술적 결정론에 의해 지배되는, 창조로부터 최후의 파국에 이르기까지의 우주와 인간들의 역사이다.
베로수스와 바빌로니아의 시빌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시빌과 유대인 시빌리네스(Sibyllines)의 관계, 특히 <<시빌의 신탁(Oracula Sibyllina)>>의 97-154행, 809-829행의 개정에 관련해서 그 관계를 고찰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전승은 극히 불명확하다.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가장 오래된 증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팔레스타인을 벗어나 사는 히브리인들 중에 사베(Sabbē, 보다 최근에는 삼베데(Sambēthē)나 삼바티스(Sambathis)로 수정되었다)라고 불리는 여자 예언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베로수스이고 어머니가 에리만데(Erymanthē)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바빌로니아의 시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집트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10.12.9; cf. 가명(假名) 유스티누스(pseudo-Justin), <<그리스인들에게 드리는 권고(Cohor, ad Graecos)>> 37.3) 이 쟁점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이 정도로 하자. 나는 베로수스를 전하는 전승들의 역사적 정확성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대신에, 베로수스 내의 몇 요소들만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바빌로니아카>>는 창조로부터 최후의 멸망까지 세계의 역사를 기술하고 그 사이의 바빌로니아 역사의 시대구분을 제공한다. 베로수스는 세계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잘 알려진 신화 전승을, 바빌로니아 역사의 시대구분을 할 때는 역시 잘 알려진 연대기 전승을 주로 사용한다. 많은 세부 사항들이 묵시록 문헌의 모티브들과 상응하기 때문에 흥미롭다. 오아네스(Oannes)의 홍수 이전의 책들에 관한 전승(F1, Jacoby), <아트라하시스(Atrahasis)>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길가메시(Gilgamesh)>로 대표되는 전승들과 분명히 관계가 있는 우주창생과 홍수 전승을 포함한 시수트루스(Xisuthrus)의 숨겨진 책(F4), 외국 왕들의 통치와 우상숭배 및 종교적 쇠퇴 발생의 상호관련성(F11) 등이 그러한 사항들이다. 남아있는 핵심적인 묵시록 단편(F21)에는 처음과 끝이 분명하게 상호연결되어 있다. 모든 것들은 불에 휩쓸릴 것이며 세계는 홍수에 잠겨서 태초에 존재했던 물의 카오스로 되돌아갈 것이다.
“원(原)묵시록적(proto-apocalyptic)”이라고 묘사될 수 있는 이 책에 관련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의 성격에 대한 주장이나 묵시록의 기원에 대한 범바빌로니아적인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책의 저자의 성격에 대한 주장이다. 셀레우코스 시대는 바빌로니아 “학파”가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바빌로니아 지식인들의 주요 활동이 천문학, 점성술, 수학, 역사기술, 그리고 고대 의례 지식의 복원에 이르렀던 때였다. 베로수스는 바로 그 셀레우코스 시대 때 학식 있는 바빌로니아 사제였다. 이 바빌로니아 지식인들은 후에 풍부한 그리스와 이집트의 천문학 및 점성술 문헌과 스토아 철학학파를 통해 정점에 이르게 될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서기관 체제(scribalism)와 연속선상에 서 있었고 수메르 시기로부터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현인들에 이르는 단절 없는 전통에 이어져 있었다. 이 서기관 체제야말로 지혜서와 묵시록의 상호관련성에 대해서 베로수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첫 번째 단서인 것이다.
서기관들은 교육을 받은 유식 계층의 엘리트 집단으로,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사안 모두에서 백성들을 통치하는 데 소중한 역할을 했던 지식인 귀족이었다. 그들이 도맡은 역할은 다양했다. 문화유산의 수호자, 지적인 혁신자, 지혜문학이 문화를 넘어 유통되게 한 세계여행자, 법률가, 의사, 점성술사, 점술가, 주술사, 과학자, 궁정 대신, 언어학자, 해석가 등.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것은 스스로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지키고 전수하였고, 그들의 삶과 그들의 원형인 조상에 대한 전기와 성인전을 기술하였으며, 다른 이들의 작업을 보존하고 그것에 주석을 달았다. 그들은  천상에, 설계도에 써 있는 것에 따라 율법을 창조한 신에, 천상의 궁정에 있는 선생님이었던 신에, 자기들의 서기관 활동을 투사하였다. 그들은 서기관과 서기관 활동들을 신적 지혜라는 인물을 통해 실체화하였다. 그들은 숨겨진 천상의 토판(土版), 신의 말씀에 의한 창조, 태초와 종말에 관하여 사색하였고 그럼으로써 창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암기하고 기억하였으며, 기록하였다.
서기관 지식의 진수는, 알트(A. Alt)의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목록학(Listenwissenschaft)으로서의 특성이다. 목록학은 목록들과 분류체계에 의존한다. 그것은 선례(先例)를 확립함으로써, 유형, 유사성, 관련성을 관찰하고 그것들의 반복에 주목함으로써 발달한다. 그러한 그들의 기본적인 신앙은 모든 새로운 상황에 한정된 숫자의 범례들을 관련시키는 데 있었다. 그들의 목표―서기관이 두브샤르(dubshar), 소페르(sopher), “칼데아인”(Chaldean), 랍비(rabbi) 중 어떤 이름으로 불리던 간에―는 모든 것들을 그들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 그 절대적 완전성에 다름 아니었다. 이 완전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범례(paradigm)와 특수한 사례 사이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연결시키는 복잡한 해석학과 해석의 기술을 발달시켰다.
서기관의 이러한 신앙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중요한 지적 성취인 거대한 바빌로니아 오멘(omen) 시리즈를 통해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 신앙은 역사 서술을 포함하여 모든 다른 문학 장르에 퍼져 있다. 서기관에게 어떤 사건들이 선례에 비춰 볼 때 중요성을 가진다면, 그것들의 유형이, 그것들의 ‘가치’가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는 한, 그는 동일한 텍스트를 멀리 분리된 두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메르 문학 중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의 하나가 <수메르와 우르의 파괴에 대한 애가(哀歌)>인데, 이 작품은 기원전 2500년의 구티(Guti) 인의 침입을 애도하며 기원전 2100년경에 지어진 것이다.

우룩의 불행 때문에, 아가데의 불행 때문에, 나는 가슴이 찢어집니다.
우룩의 여인은 울었습니다. 그녀의 권세가 떠나갔다고.
아가데의 여인은 울었습니다. 그녀의 영광이 떠나갔다고……
우룩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녀가 겪은 약탈과 수치 때문에 울었습니다.
당신의 영광의 왕관은 나에게서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신랑, 좋은 시절의 남편 마르둑이 내게서 멀리 가버렸습니다.

동일한 텍스트가 기원전 287-286년에 헬레니즘 군주 안티고누스(Antigonus)의 파괴 행위를 애도할 때 다시 복사되었다. 이 동일한 텍스트가 수메르 “본래의” 종교적 표현인 동시에 헬레니즘 바빌로니아 “본래의” 종교적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예들에서 “후대의 복사”라는 관념은 기각되어야 한다.) 힉소스 인의 침입이 이집트인들에게 본보기(pattern)를 제공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티 인의 침입은 외국인이 바빌로니아에 침입해서 지배하는 모든 행위들을 해석하는 본보기를 제공해주었다. 
이 범례적(혹은, 선호에 따라, 유형론적) 이데올로기는 꼭 묵시록 문학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묵시록 상황(apocalyptic situation)이라고 명명하고자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소위 역사적 오멘들과 역사 서술 내의 다양한 본보기들로부터 많은 예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나는 더 알려진 사례에 주목하고 싶다. 그것은 바빌로니아의 아키투(Akitu) 축제, 그리고 그것과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와의 관련성이다. 
(기원전 1200년 근처가 더 그럴듯한 연대이기는 하지만)  <에누마 엘리쉬>의 연대를 이르게는 기원전 1600년으로 추정해온 이들이 있고, 아키투 축제에 대한 초기의 언급들이 있기 때문에, <에누마 엘리쉬> 낭독과 왕의 의례적 굴욕이 나오는, 우리가 아카드어 텍스트에서 재구성한 신년 축제도 똑같이 고대의 것이라는 가정이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심지어 그 의례적 사건이 신화에 묘사된 사건들과 전혀 닮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의례학파가 죽고 되사는 신(Dying-Rising God)과 죽고 되사는 왕이라는 유형(이 유형은 두무지라는, 가능하긴 하지만 미심쩍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사실 근동에 존재한 적이 없다)을 제시한 기초가 되었던 아카드 의례 텍스트가 고대 시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은 거의 이야기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텍스트는 셀레우코스가 통치하던 시기에 쓰여진 헬레니즘 바빌로니아 문서이다. 그 텍스트는 분명히 헬레니즘 바빌로니아의 종교성을 증언하는 것이지, 앞선 시대의 실천에 대해서는 증언할 가능성만 갖고 있을 뿐이다. 헬레니즘 바빌로니아의 신년 축제는 당대의 외국의 지배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유형론적으로 이해된,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의미도 갖고 있는, 이전 의례의 반복일 수도 있다. 혹은 그 텍스트는 헬레니즘 시기에 새로 작성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의례 텍스트는 마르둑 왕이 그의 성스러운 도시를 지켜주어야 함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가 도시에 돌아와 “바빌론 백성들의 자유를 확고하게 해줄 것”을 기도한다. 그런 후 사제가 “당신의 도시, 바빌론에 해방을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이 구절에 대한 원래의 의례적 이해가 어찌되었던 간에, 여기서 당대의 국가주의적 프로파간다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후에 왕은 사제에 의해 마르둑 신상 앞으로 “귀를 잡힌 채 질질 끌려나오고”, 뺨을 얻어맞고 어의(御衣)가 벗겨진다. 그런 후에 왕은 신에게 부정하는 고백(“나는 죄짓지 않았습니다……”)을 하고나서 왕의 표(insignia)를 돌려받는다. 이것은 경건한 바빌로니아 왕을 ‘의례적으로 살해’한 것일까? 아니면 (만약 국가주의적 환상을 선호한다면) 불경한 외국인 셀레우코스 군주에게 일어날 위협일까? 왕의 고백이 결정적이다.

나는 당신네 왕권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빌로니아를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빌로니아를 전복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에사길라 성전을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성전의 제의를 잊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빌론을 [돌보았습니다.]
나는 바빌론 성벽을 때려 부수지 않았습니다.

바빌로니아 토착민 왕이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 모든 것들은 외국 통치자에 의해 행해진 행위들이다. 1360-1200년과 1116-990년의 아시리아 인들의 지배 시기, 689년 센나카리브(Sennacharib, 산헤립)의 통치, 480-476년 크세르크세스(Xerxes)의 통치, 마지막으로 316년 안티고누스의 통치 하에서 행해진 일들이다. 이스라엘 인들에게 키루스[고레스] 왕에 해당하는 존재가(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겠다는 고레스 왕의 약속은 히브리 성서의 유대교 판본의 결론을 이룬다. <역대기하> 36: 23)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도 있었다. 바로 에사길라와 바빌론을 복원하기로 지정될 수 있었던 외국 왕들이었다. 티그라트 필레세르 3세(Tiglath Pileser III, 디글랏빌레셀), 사르곤 2세(Sargon II),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 키루스, 알렉산더, 셀레우코스 1세(Seleukos I), 그리고 안티오쿠스 1세와 4세(Antiochus I & IV)가 그들이다. 신년 텍스트의 의미는 분명하다. 만일 당신이 사악한 외국 왕들이 행동했듯이 행동한다면 당신은 신들에 의해서 왕권을 박탈당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 반대로 행동한다면, “왕홀(sceptre), 왕관, 칼이 왕에게 남아있을 것이다.”
이 종교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논쟁은 <에누마 엘리쉬> 낭독에 의해 우주적 배경 안에 놓인다. 왜냐하면 <에누마 엘리쉬>는 단순한 우주창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마르둑의 도시 바빌론과 그의 사원 에사길라의 창조 신화이다. 원래 아시리아의 통치 제1기에 작성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마르둑의 왕권을 바빌론의 왕권과, 세계 창조를 에사길라의 건축과 상호 관련시킨다. 마찬가지로 그 역도 성립한다. 바빌론이나 에사길라를 파괴하고 마르둑을 무시한다면 세계는 해체되고 원초적인 물의 카오스로 돌아갈 것이다.
이와 같은 예들이 내가 묵시록 상황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모든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그 요소들은 아직 묵시록 문학이라는 미래의 지향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우리는 베로수스나 아비데노스(Abydenos)와 같은 헬레니즘 바빌로니아의 저자들의 원-묵시록적 저작들에서 이 전환의 시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의 바빌로니아 묵시록은 남아있지 않다.
나는 지혜서와 묵시록이 본질적으로 서기관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둘이 관련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바로 서기관의 범례적 사고―범례적인 동시에 성찰적인 사고방식―가 이 둘을 생겨나게 한 것이다. 이집트 자료를 조사하면 이 처음의 관점이 확장될 것이다.

II

이집트는 우리에게 바빌로니아의 현상과 유사한 다양한 현상을 제공해준다. 이집트는 본질적으로 목록학에 의해 지배되는 서기관의 문화이다. 이집트는, 그리스어로 표현한다면 원-묵시록적이라고 묘사될만한 지적인 역사학자의 전통을 갖는다.(예를 들어 마네토(Manetho)) 이집트는 힉소스 인(Hyksos)의 침입이라는 범례를, 모든 침략 행위와 외국의 지배를 해석하는 데 사용했을 뿐 아니라 묵시록 자료들에서도 사용한다. 실제로 이집트는 힉소스 인들을 혼동과 카오스의 신격 세트(Seth)와 동일시하는 등 완전히 신화적인 방식으로 이 자료를 사용한다. 이집트는 [앞에서] 아키투 축제에 대해 묘사했던 묵시록 상황에 비견되는, 고대적 스타일로 주의 깊게 쓰여진 의례 텍스트를 갖고 있다.(예를 들어 기원전 310년경의 <브렘너린드 파피루스(P. Bremner-Rhind)>에 있는 <전복하는 아포피스의 서(Book of Overthrowing Apophis)>) 그러나 바빌로니아와는 반대로, 우리는 이집트에서 거의 이천년에 달하는 시기에 걸쳐서 완전히 개화한 다양한 묵시록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집트의 경우에 우리는 묵시록 형태를 탐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묵시록화(apocalypticization)의 과정을 탐구할 수 있는 것이다.
분석에 사용 가능한 자료들로는, 네페르티(Neferti)의 성직자 묵시록(기원전 1900년 경), 소위 <민중 연대기(Demotic Chronicle)>(기원전 2세기)와 <양의 저주(Curse of the Lamb)>(기원후 1세기 초)와 같은 민중 텍스트들, <도공(陶工)의 신탁(Potter's Oracle)>이나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9장 24-26에 보존되어 있는 계시록(지금은 나그함마디(Nag Hammadi) 문서의 콥트어 개정을 통해 복원되었다)과 같은 1세기 그리스어 자료들, 그리고 <<시빌의 신탁>> III.350-361, 367-380(cf. III.46-54, 75-92; V.512-632; XI.245-314)에서 복원할 수 있는 더 오래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자료들이 있다. 이 텍스트들 사이에는 이천여 년에 달하는 연대기적 범위와 다양한 언어와 상황들이 존재하지만, 이 다양한 문서들을 비교함으로써 이집트 묵시록의 모델을 구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A)(1)예언자가 왕 앞으로 와서,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왕이 물었던 모든 것을 왕에게 선언했다. (2)이것들은 그 상황이 닥칠 때 왕이 했던 말들이다.
(B)(3)땅에 무질서가 발생해서 혼란에 빠진 백성들을 보아라. (4)사회 관계가 전도되었다. (5)종교적 의무들이 무시된다. (6)자연의 순환이 무너졌다. (7)외국인들이 나타나서 그들이 이집트인인 것처럼 행동했다. (8)전세계가 뒤죽박죽이 되었고, 신들도 고통을 받았다. (9)신들이 이집트를 버렸다. (10)생명의 땅이 죽음의 땅으로 되었다.
(C)(11)그러나 신들이 보낸 위대한 왕이 출현할 것이다. (12)외국인들은 쫓겨갈 것이다. (13)모든 관계들이 복원될 것이다. (14)모든 선한 것들이 백성, 당, 신들에게 돌아올 것이고 이집트는 다시 생명의 땅이 될 것이다.
(D)(15)이렇게 예언자는 왕 앞에서 이야기를 마쳤고, 그가 말해준 지혜에 대해 큰 상을 받았다.

전체 구조는 기본적으로 현재, 미래의 재난, 그리고 미래의 약속 사이에서 전환되는 치유와 재난의 종말론(Heils- und Unheilseschatologie) 구조이다. (A)보통 예언자와 왕의 만남으로 구성되는,  예언의 이야기 틀로 기능하는 도입부가 있다. (B)재난들은 백성(3-5), 우주(6, 8, 10), 신들(8-9)에 고통을 주는 일련의 전복들로 인식된다. 그 원인은 외국인들의 침략으로 간주된다.(7) 외국인들은 힉소스 유형과 동질화되어 신화적인 방법―이것은 구약의 “북쪽에서 오는 침략자”에 상응한다―으로 해석된다. (C)신적인 왕의 회복의 약속(11)이 뒤따른다. 그는 카오스(즉 외국인들(12))를 몰아내고 선한 질서(13-14)를 복원할 것이다. (D)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고대 이집트 창조신화와 왕권 이데올로기와의 관련성에 주목하면서 이 텍스트들 모두를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 주제와 관련된 것은 이 텍스트에 나오는 “재난들”과 풍부한 이집트 예언 전승과 지혜 전승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가르침들 간의 밀접한 상응 관계이다. “재난들”에 관한 부분은 <카케페레소아베의 애도(The Lamentations of Khakheperre-Soabe)>, <이푸웨르의 권고(The Admonitions of Ipu-Wer)>, <어떤 사람이 그의 바와 벌인 논쟁(The Dispute of a Man with his Ba)>(특히 103b-130a행)와 같이 잘 알려진 자료들과 비슷하다. 재난들은 널리 보급되어 있는 “경고”와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는 지시사항들을, 잘 알려진 예로는 <죽음의 서(Book of the Dead)> 125장의 “부정적 고백”(Negative Confession)―그런데 이 텍스트는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의 지시사항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 문제는 지혜서와 묵시록의 관련성을 이해하기 위해 서기관 체제에 중점을 두자는 나의 제안과 어울리는 것이다.
신탁과 오멘의 해석으로 표현되었든, 법적인 판결로 표현되었든, 성스러운 텍스트의 해석학으로 표현되었든, 아니면 다른 다양한 역할들로 표현되었든, 어찌 되었건 서기관들이 가졌던 범례에 대한 관심은 복잡한 해석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고, 이 해석 기술은 고대의 선례와 원형의 계속 변화하는 중요성을 발견하는 작업에 사용되었다.(때로는 이러한 관심이 고대의 선례와 원형을 꾸며내는 데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해석 기술은 동부 지중해 세계의 서기관 중심지들에 널리 퍼져서 국제적인 것이 되었다. 자료를 “업데이트”(update)하는 연속적인 과정에서, 텍스트들은 사용되고 재사용되고, 주석이 달리고, 해석되고 재해석되었다.
“업데이트” 과정은 모호한 메시지들과 실현되지 않은 예언들을 담고 있는 예언 신탁과 묵시록 전통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유대교 묵시록 문헌을 위해 다양한 해석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그 기술들 각각에는 분명히 대응하는 이집트 사례들이 존재하고 있어 면밀한 비교 조사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쿰란 자료들(1QpHab, 1QpMicah, 1QpNah, 4QpPs 37, 1QpPs 68, 1QpZeph 등)에서 사용된 페쉐르(pesher) 기법에 대해서는 <민중 연대기>의 해석 과정에서 가장 정확하게 상응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 “업데이트” 과정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유대교와 기독교 자료를 다루는 것에 비해 이집트 자료를 다룰 때 더 까다롭다. 대부분의 경우 한 전승 안에서 비교할만한 다양한 개정판들(예를 들면 <제4 에스라서> 12장과 <다니엘서> 7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는 분리된 모티브들에 대한 분석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창조 신격에 기도를 올리는 요소들의 전승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분석한 한스 디터 베츠의 작업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도공의 신탁>이라는 한 이집트 텍스트는, 루드비히 쾨넨(Ludwig Koenen)의 선구적인 작업을 통해 해석된 것처럼, 전승의 역학이 작동하고 있음을 인식할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예이다.
쾨넨의 작업은, 예언의 이야기 구조틀이 한 파피루스(<그라프 파피루스(P. Graf)> 29787)에서만 발견되는 반면에 실제 예언은 두 개정판(<라니에르 파피루스(P. Ranier)> 19813과 <옥시린쿠스 파피루스(P. Oxyrhynchus)> 2332)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이것은 같은 전승의 변형들을 비교하고 편집의 요소들과 해석을 결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몇 개의 추가적인 파피루스 단편들이 “도공” 전승에 속하는 것으로 가설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쾨넨이 이것들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한 단편(<소시에타 이탈리아나 파피루스(P.S.I.)> 982)은 유대인들처럼 외국인을 카오스적인 침략자로 간주하는 추가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대 지혜서의 주요한 발견은 성스러운 왕이라는 범례적 인물이다. (바빌로니아에서나, 이집트에서나 유대에서나) 궁정과 사원에 고용되어 있으면서, 서기관은 왕이 신의 지혜를 통해서 사회와 우주의 질서 중심이 되었다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들과 신화들을 발견하고, 발달시키고, 명료화하고, 창조하였다. 고대 “원-묵시록 상황”에서 왕의 구원의 힘, 적을 파멸시키기, 통치와 법의 확립은, 태초에 신이 카오스를 패배시키고 우주와 사회 질서를 창조했다는 신화 전승과 서로 연관되었다. 이 유형은 우주 창조론으로부터 신년 축제까지, 왕가의 찬양 시편과 연대기로부터 대관식 의례까지 매우 다양한 자료들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이집트에서 이것은 두 중요한 왕권 유형으로 표현된다. 하나는 아몬-레(Amon-Re)의 태양 신화 군(郡)이고, 다른 하나는  오시리스-호루스(Osiris-Horus)의 근본적으로 지하적인 신화 군이다. 새로운 파라오를 신의 아들로, 다시 말해 태양신이 [당시에] 통치 중인 파라오의 모습을 하고서 새로운 파라오의 어머니와 성관계를 가져 잉태된 아들로 묘사하는 아몬-레 유형에서는 태양신이 태초의 섬에서 태어나서 카오스의 힘을 물리치고 우주와 질서를 확립하는 우주창생 이야기를 제시한다. 모든 살아있는 파라오를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로, 모든 죽은 파라오를 지하세계의 왕 오시리스로 묘사하는 오시리스 유형에서는 오시리스의 동생 세트와 오시리스-호루스 간의 태초의 투쟁을 제시한다. 세트는 오시리스에 반란을 일으키고 그를 살해했는데, 이는 우주적이고 사회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호루스는 세트를 살해하고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다. 복잡한 왕권 이데올로기에서 이들 두 유형은 흔히 결합된다. “원-묵시록” 자료들에서 이들 두 왕권 유형은 이에 상응하는 재난 유형을 낳는다. 아몬-레 이데올로기는 태양의 일식과 폭풍우를 통해 카오스를 표현한다. 이에 반해 오시리스 패턴에서는 나일 강의 범람과 같은 우주의 카오스의 표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반란이나 외국인의 침략을 통해 카오스적인 것을 표현한다. 이들 두 계열의 재난도 마찬가지로 결합된다.
내가 “원-묵시록 상황”이라고 명명한 이들 전승의 고대의 예들은 풍부하며(예를 들면 메렌프타(Merenptah)의 찬가와 람세스 4세(Ramses IV)) 이들 요소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도 존속된다.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프톨레미 5세(Ptolemy V)를 위한 제드(Djed) 축제 거행을 기념하는 기원전 196년 3월 27일의 로제타 석(Rosetta Stone) 포고령일 것이다.

젊은 왕―아버지로부터 왕권을 물려받은 자―왕관의 주인, 영광스러운 자, 이집트를 일으켜 세우고 신들에게 경건한 자, 적을 압도하는 자, 인간의 문명 생활을 회복한 자……태양과 같은 왕……태양의 아들……신과 여신으로부터 솟아난 자(아버지 오시리스의 복수를 한,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와 같은)가 통치하던 때……

이 도입부 구절 뒤에 텍스트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외국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중심적인 정치적이고 우주적인 행위, 즉 리코폴리스(Lycopolis)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을 묘사한다. 처음에 왕은 나일 강이 넘쳐 반란 진압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물이 나오는 여러 지점들을 둑으로 막아” 나일 강을 통제하였다. 이 전략적인(그리고 우주창생의) 행위를 완수한 후, 그는 “사원과 모든 이집트인에 해를 끼친……불경한 인간들”의 도시 리코폴리스를 향해 진격하였다. 그는 “폭풍으로 도시를 점령하고, 전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 그리고 헤르메스처럼, 도시 안의 불경한 사람들을 모두 멸진하였다.”
대관식, 왕권의 갱신, 혹은 개선 경축과 연관된 이와 같은 텍스트들은 왕에게 봉사하는 서기관에 의해 창조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텍스트들은 예형론적 목적―한 특정한 왕을 고대 유형의 실현(혹은 반복)으로서 제시하는 것―을 위한 범례의 사용을 보여준다. 조지 포세너(Georges Posener)가 잘 증명했듯이, 이러한 동일한 프로파간다적인 관심은 가장 오래 전부터 존재한 “묵시록”인, 기원전 1991년의 네피르티의 묵시록을 낳는다. 이 이야기는 현인 네페르티가 제4왕조 스네프루(Snefru) 왕 앞에서 예언의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제12왕조 건국자 암메네메스 1세의 통치를 지지하는 노골적인 프로파간다의 한 부분이다.

레(Re)는 땅을 재창조하기 시작해야 한다. 땅은 완전히 황폐해졌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태양이 가리어지고 아무것도 비취지 않는다.……[태양이] 구름에 가리어지면, 아무것도 살아남지 않을 것이다.……적들이 동쪽에서 쳐들어왔고, 아시아인들이 이집트로 밀려내려 왔다.……나는 이 땅이 재난에 빠져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전에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났기 때문이다.……레는 사람들로부터 떠났다.……아메니(Ameny)라는 이름의 남쪽의 왕이 올 것이다.……

카오스는 정복될 것이다. 레의 세계 재창조는 그의 통치와 더불어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들은 이집트에서 이천 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발견된다. 사건 이후의 예언(vaticinia ex eventu)을 사용하면서, 예언자들은 한 특정한 왕의 등극을 (일식, 반란, 외국인으로 표현되는)카오스의 극복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창조의 확립으로 묘사한다. 그러한 텍스트들이 묵시록 현상을 “지향하긴 하지만”, 원숙한 묵시록을 볼 수 있는 것은 예언과 프로파간다가 특정한 왕에게서 분리된 이후이다. (바빌로니아와 유대에서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도 이것이 가능해 진 것은 오직 토착 왕권이 중단된 그리스 로마 시대 들어서였다. 나는 묵시록 현상(apocalypticism)을 왕의 후원이 결여된 지혜서라고 기술하고 싶다.(이 정의는 최소한 다음 두 이론을 의문시하는 효과가 있다. 두 이론은 묵시록 현상이 일반적인 박해의 상황에서 생겨난다는 “최루성 이론(lachrymose theory)”과 그것이 하위계층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최근의 유행 이론을 말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오래된 모델은 외국인혐오의 국가주의적 프로파간다가 될 수도 있다. 재난들이 반헬레니즘이나 반유대인 논쟁들―특정한 왕을 옹호하는 예언보다는 외국인에 적대적인 예언―로 환원된 <도공의 신탁>의 몇몇 단편들이 그런 예이다. 혹은 왕이 철저하게 진행되는 묵시록을 통해 완전히 우주화될 수도 있다(이것은 다양한 신의 왕권 이데올로기에 상존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나는 쾨넨의 연구가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도공의 신탁>의 다른 개정판들에서 이 과정이 작동하는 다양한 단계들을 확인하고자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이야기 틀(오직 2세기경의 <그라프 파피루스> 29787에만 전한다)에는 시원적 중요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아멘호텝 왕(제18 왕조)의 치세에, 한 도공이 헤르메스-토트(Hermer-Thot)의 명을 받아 그[?]가 기술을 연마하는 헬리오스-레(Helios-Re) 섬으로 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신성모독의 행위에 동요한다. 그들은 그릇을 가마 밖으로 밀쳐내고 깨뜨린 후, 도공을 왕 앞으로 끌고 간다. 도공은 이 행위를 예언적 징표로 해석해서 스스로를 변호한다. 그릇이 깨진 것처럼, 이집트도, 그리고 사악한 신 티폰-세트(Typhon-Set)의 추종자들의 도시도 멸망할 것이다.

이어지는 예언은 우주적이고 사회적인 질서의 파괴와 카오스의 회귀에 대해 말한다. (특이할 정도로 불명확한 언어로 묘사된) 구원자 왕이 “태양으로부터” 나와서 질서, 이집트, 우주를 다시 확립할 것이다.
“도공”은, 도공의 물레에서 태양, 신들, 인간을 창조한 양 머리를 한 고대의 신 크눔(Chnum)의 신현(神顯, epiphany)이다. 그는 전통적으로 왕에게 신탁을 주는 사람이고, <도공의 신탁>의 주제와 매우 유사한 헬레니즘 시기의 번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깨진 그릇에 대한 그의 묵시록적 해석은 <예레미아서> 19장의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행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크놈이 그의 그릇이 깨지도록 한 것은 세계를 완전한 해체와 카오스로 집어던진 것이다. 그러나 재창조의 주제는 배경에 의해서도 제시된다. 헬리오스-레 섬(이집트 어로는 화염의 섬)은 전통적으로 태양신의 출생지이고 그가 카오스와 암흑의 힘을 패배시키는 장면이 연출되었던 곳이다. 이렇게 해서 멸망과 회복을 예견하는 예언은 고대 이집트 신화의 두 주제 모두와 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관련되어 있는 배경 위에서, 그리고 예언자를 통해서 전개된다.
틀이 되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동일시 될 수 있는 재난들이나 사물을 바로잡는 특정한 왕에 대한 예언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만약 우리가 갖고 있는 텍스트가 이집트 원본의 번역이라면, 그리고 만약 (흔히 주장되는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파피루스(P. Trinity Colledge Dublin)> 192b와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원본의 작성 연대가 기원전 4세긴 3세기 중반으로 추정될 수 있다면, 그것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정 모두 무척이나 의심스럽다고 생각한다. 더 그럴 법한 가정은 이 텍스트가 원래부터 기원전 130년 경, 하르시에시스(Harsiesis)의 반란의 시기에 생산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토착민의 통치를 성공적으로 복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란은 금세 진압되었고, 어느 토착민 왕도 프톨레미 가(家)를 뒤집어엎지 못했다.
이 텍스트는 (옛 오시리스-호루스 유형을 따라서) 모호한 용어로 “티폰 사람들(Typhonians)”에 의해 이집트가 황폐하게 된 것과 “태양에서 나오고 가장 위대한 여신 이시스에 의해 세워진” 왕이 가져올 영원한 구원을 묘사한다. 그러나 쾨넨이 언급했듯이, 이 텍스트는 개별적 특성들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이집트 인들이 자신의 약함을 깨달았음을 증언한다. “그리스 인들을 물리친 것은 그(약속되어 있는 구원자 왕)가 아니다. 그가 알렉산더를 멸망시킨 것도 아니다. 멸망은 수호신이 떠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실려 나간 신들의 동상들을 회복하는 이도 아니다. 신들은 자신의 힘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도공의 예언은 특정한 왕을 지지하는 프로파간다라기보다는 그리스 인들을 적대시하는 프로파간다이다.” 이 “신탁”은 토착의 신적인 왕권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해진 특징적인 묵시록적 전환을 나타낸다―모든 결정적인 역사적 행위와 주도권은 인간으로부터 신의 영역으로 넘겨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온건한 이 희망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는 서로를 멸망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는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엘리트들, 즉 (이 신탁의 저자라고 추정되는) 크놈의 서기관 성직자들은 이 예견을 “업데이트”하기 위한 일련의 지적인 삽입들을 도입하였다. 다행히 이들 중 몇몇이 분리되어서 <라니에르 파피루스> 19813(3세기)과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2332(3세기 후반)에는 45줄 가량의 밀접하게 상응하는 내용과 놀라울 정도의 변화와 삽입을 보여주는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삽입들 중에서 우리의 목적에 가장 중요한 것을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2332의 31-34행에서 볼 수 있다. 두 개정판의 예언에서는 약속된 왕에게 55년간의 통치가 할당되었다. 그런데 후대의 주석에서는 ([옥시린쿠스 파피루스 자료집] 편집자가 제안한 재구성을 받아들인다면) 55년이 선한 왕의 통치를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양 복카리스(Bokcharis the Lamb)가 예언한 대로” 그리스 인들이 몰고 올 악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선언한다.
양 복카리스의 예언(이것은 양머리를 한 도공 신 크놈의 예언과 비슷하다)은 1세기 초의 민중 파피루스 내에 존재하고, 마네토로부터 위-플르타르크, 아엘리아누스(Aelian), <<수다(Suda)>>에 이르는 그리스-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문헌에서도 언급된다.  이 예언에서는 약속된 회복이 시작되기 전에 복카리스 왕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900년 간 이집트의 재난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된다. 이 시기는 대략 기원전 790년부터 기원후 192년에 해당된다. 만일 55년이 마지막 악의 시기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위의 연대에서 55를 뺀다면, 새 시대를 향한 전환기의 시작점으로 얻게 되는 연대는 기원후 137년이다. <옥시린쿠스 파피루스>가 저술되고 있던 때에 이 연대는 이미 지나갔고, 그래서 일견 이 예언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37년이라는 연대는 새로운 소티스[천랑성(天狼星)]  주기(Sothis cycle)와 눈에 띌 정도로 가깝고, 그래서 쾨넨은 그 예언이 사실 크게 확장된다고 주장한다. 약속된 회복은 다음 주기―그 기간은 139-1599년에 이른다!―의 어느 시점에 찾아올 것이다. “구체적인 구원자 왕에 대한 관념이 실질적으로 사라진……도공의 예언은 역사적 현실에 의해 다시 빚어진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새로운 그 무엇, 새로운 세계 주기의 예언이 되었다. 원래는 이집트의 왕권 개념에 기초를 두었던 예언이 묵시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파피루스들이 그 신탁이 3세기 후반에 유통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후대의 복사본(<옥시린쿠스 파피루스>)에 시작과 끝 부분 이야기가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텍스트가 모든 역사적 맥락에서 분리되어서 국가의 회복보다는 우주의 갱신에 대한 그림으로 이해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도공의 신탁>은 서기관의 지적인 재해석을 통해서 원래의 이집트 장르에서 분리되어 묵시록이 되었다. 바빌로니아 베로수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는 전통의 계승자인 서기관의 역사적 유형들은 우주적 역사의 범례, 세계의 창조, 파괴, 재창조의 순환 주기로 전환되었다.(이집트에서 베로수스와 유사한 저작 <<소티스의 책(Book of Sothis)>>과 함께, 마네토의 <<에집티아카(Aegyptiaka)>와 위-마네토의 서신들을 비교할 수 있다.)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전승 두 경우 모두에서(그리고 나는 유대교에 대해서도 동이한 점을 주장하고 싶다), 이 발달을 근동 서기관체제(이것에 스토아의 영향이나 이란의 영향이 있었음을 가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다) 내의 내적인 “궤도”로서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아마도 순수한 묵시록은, 특히 재난과 관련해서 <도공의 신탁>과의 친족 관계가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던 헤르메스의[<<헤르메스 전서>> 내의]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24-26행에 보존되어 있는 잘 알려진 묵시록에 가장 잘 나타날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에서 재난은 우주화되고 더 이상 왕을 통한 구원의 흔적을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재난은 세계의 “늙은 나이”의 특성이고, 세계가 진행되어 어느 불특정한 시간에 도달하게 되면 신이 “땅을 태초의 상태로 되물려서” “우주의 재탄생”이 일어나도록 할 것이다. <도공의 신탁>에서 소티스 주기와 상호 관련되었던 이집트의 갱신은, <아스클레피오스>에서는 거대한 우주년(World Year)과 상호 관련된 우주 주기가 된다.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된 콥트어 개정판에서는 주기적 성격이 더 두드러지고 약속된 재창조의 미래적 성격이 강조된다. 도공 전승의 최종적인 변형은 락탄티우스의 <<신의 교훈(Divine Institutes)>> 제7권에 나타난다. <<시빌의 신탁>>, <아스클레피오스>의 묵시록, <히스타스페스의 신탁(Oracles of Hystaspes)>의 인용구들이 한데 섞여서, 파괴와 재창조의 주기적 성격은 기독교 특유의 방식으로 개정되어서 최후의 파괴, 심판과 구원의 종말론적 환상으로 변화되었다.

III

 내가 이 논문에서 제시한 것은, 지혜서와 묵시록이 근본적으로 서기관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 둘은 범례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 범례를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고자 하는 문제의식, 그리고 근동 서기관의 특징적인 활동인 목록학에 의존하는 현상이다. 이것들이 역사서술 자료들에 적용될 때, 많은 경우 원-묵시록적 요소들을 분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묵시록 장르는 아직 존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역사적 유형이 우주창생과 왕권 전승에 상호 연결될 때, 그리고 이에 동반되는 재난과 약속의 구조가 외세의 지배라는 조건을 향할 때, 묵시록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여전히 묵시록이라는 문학 형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원-묵시록 문학과 묵시록 상황은 둘 다 헬레니즘 시기 이후의 바빌로니아 자료들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자료들은 고대 서기관 전승이나 활동과 긴밀한 연속선상에 있다. 
이집트에서는 이 동일한 요소들이, 다른 이집트 지혜서 자료들과 긴밀한 친족 관계에 있는 문학적 묵시록들과 병존하면서도 얼기설기 엮이면서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도공의 신탁>에 관한 쾨넨의 저서를 따라서, 네페르티에서부터 라탄티우스에 이르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예언에서부터 서기관 전승의 역학을 구성하는 해석과 재해석의 기술들을 강조하는 묵시록 현상과 종말론에 이르는, 2500년 동안의 “궤도”를 탐사하였다.
이 조사의 과정에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묵시록 현상의 몇 가지 특성들이 나타났다. 묵시록 현상은 왕의 궁정과 후원이 결여된 지혜서이다. 그러므로 묵시록 현상은 후기 고대 동안 종교 박해에 대한 반응으로서가 아니라 토착 왕권의 중단이라는 트라우마의 표현으로서 표면화된다. 묵시록 현상은 민중적 종교 현상이라기보다는 유식 계층의 종교 현상이다. 그것은 지중해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것은 외부(가장 흔하게는 이란의) 영향을 받은 혼합현상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발생한 전승사의 내적인 부분으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를 더 이어나가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근동 서기관 전승에서 역사적 선례와 프로파간다로부터 묵시록 현상으로 나아간 움직임을 조망했듯이, 우리는 단일한 전승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들을 탐구할 수 있겠다. 묵시록 현상이 오멘과 같은 고대 지혜서나 점성술 같은 헬레니즘 지혜서와 어떠한 관계성을 갖는지를 확실히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혹은 <진주의 찬가(Hymn of the Pearl)>와 <조시모스의 환상(Visions of Zosimos)>같은 비기독교적인 영지주의와 연금술 텍스트 안에서 묵시록적 모티브들이 어떻게 급진적으로 내면화되었는지를 연구하는 쪽으로 더 밀고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 담론의 세계에는 묵시론자가 꿈꾸어온 것보다도 더 확실하고 최종적인 종말(Endzeit)이 있는 법이다.
이 논문에서 나는 피터 브라운에 의해 진전된 시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마니교가 로마 제국에 전파된 것에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그것은 조각그림 맞추기(jig-saw puzzle)와 차이니즈 박스(Chinese boxes)이다. 조각그림 맞추기 접근 방식은 마니교를 오로지 종교 혼합현상의 산물로 본다. 학자들은 마니교 신념의 어느 조각그림이 로마 세계의 어느 종교 집단에 호소했는지를 묻는다.……이 접근은 심각한 한계가 있다. 나는 차이니즈 박스 접근 방식을 선호한다. 마니교도가 되거나 마니교도를 선호하는 것은 한 집단을 선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집단은 독특하고 복합적인 구조들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συν-χεράννυμι)로서의 혼합현상에 대한 최근의 생물학적인 해석을 버리고 [***](συν-χρητίζειν)로서의 혼합현상에 대한 이전의 사회기능론적 이해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후기(後記)
바빌로니아 자료를 더 확장해서 다룬 것으로는 다음 나의 글을 볼 것. "A Pearl of Great Price and A Cargo of Yams: A Study in Situational Incongruity," History of Religions, XV (1976), 1-19. 나는 이 논문[3장]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확인해준 다음 글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R. Drews, "The Babylonian Chronicles and Berossus," Iraq, XXXVII (1975), 39-55.

덧글

  • 2009/04/24 05: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房家 2009/04/24 05:45 #

    반갑습니다. 이 책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저도 일본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도록 구경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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