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8 16:30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서랍1: 문서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사도행전> 17:22-25, 새번역)

사도행전 17장 22-25절에 대한 칼뱅의 주석을 읽어보니 현재에 이해되고 있는 것과 번역 및 해석의 차이를 보게 된다. 그리스인들의 ‘알지 못하는 신’을 언급하는 이 대목은 흔히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흔적’이 존재함을 말하는 구절로 이해된다. 기독교 외부의 입장에서는 이런 논의가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되지 않을지 몰라도, 기독교 내부에서는 이런 구절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낌새가 있다는 진보적인 신학의 바탕이 된다. 소위 성취론적 신학의 전거가 되는 구절이다.
그런데 칼뱅은 이 대목을 다른 전통에 대한 호의적 태도와는 반대되는 입장에서 이 구절을 해석한다. 그의 해석은 번역과도 밀접하게 상응한다. 현재 번역(새번역)과 비교해 볼 때 눈에 띄는 부분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아테네인들은 ‘종교심이 많습니다’라는 대목은 ‘더욱 미신적이다’(more superstitious)라고 되어 있다. 칼뱅은 이 번역을 바탕으로 이 구절을 그리스인의 미신적 행위에 대한 바울의 공격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예배에 대한 논의로 뒷받침되는데, ‘예배하는 대상들’은 ‘예배드리는 방식’(manner of worshipping)으로 번역되어 있다. 예배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그 문제점은 사람이 드려진다는 점이다.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음’은 ‘사람 손으로 예배를 받음’(worshipped with men's hand)으로 번역되어 있다. 사람 손에 의한 예배를 비판하는 칼뱅의 논지는 반가톨릭적이고 반의례적인 내용으로 연결된다.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our Last Books of Moses Arranged in the Form of a Harmony>>, Vol. 35 (Edinburgh: Printed for the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7), 154-63. 파일: Calvin_Comment_Acts_17.pdf


요즘에는 ‘종교’로 번역되고 있으나 칼뱅의 주석에서 ‘미신’으로 번역되는 17장 22절의 번역들을 찾아보았다. 칼뱅 당시에는 ‘종교’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반적 의미에서의 종교 개념은 19세기에나 확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칼뱅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And, standing in the midst of Mars' Street, he saith, Men of Athens, I see you in all things, as it were, more superstitious.

킹 제임스 버전 역시 당시의 어휘 ‘미신’을 사용한다.

Then Paul stood in the midst of Mars' hill, and said, Ye men of Athens, I perceive that in all things ye are too superstitious.


영미권의 현대어 번역판에서는 ‘religious’를 사용한다. 특히 NRSV에서는 'extremely religious'라고 표현한다. 다만 ‘종교’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해서 꼭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점도 알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은 16절의 아테네인들의 ‘우상’과 연속선상에서 사용된 표현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Paul stood in the midst of the Areopagus and said, "Men of Athens, I observe that you are very religious in all respects.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Then Paul stood in front of the Areopagus and said, “Athenians, I see how extremely religious you are in every way.

우리나라 번역에서는 종교심, 신앙심으로 번역된다.

(개역개정)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공동번역) 바울로는 아레오파고 법정에 서서 이렇게 연설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여러 모로 강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새번역)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부록으로, ‘한글 킹제임스’를 주장하는 분들의 번역. 킹제임스 판의 직역이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 그러므로 바울이 마르스 언덕 한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아테네 사람들이여, 내가 보니 너희는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니라.

핑백

  • 종교학 벌레 : 무스의 한국종교 서술 내용 중에서 2009-08-08 16:19:17 #

    ... perceive that ye are very religious.) 때, 그가 말한 것은 오늘날 한국 마을에 들어온 어떤 선교사들도 진실로 똑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203)전에 지적한 바 있듯이, 아레오바고 법정을 ‘Mar's hill’로 표현한 이 &lt;사도행전&gt; 17장 22절의 내용은 옛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의 인용이다. 그런데 원래 킹제임스 성 ... more

덧글

  • 김선용 2009/08/11 07:26 # 삭제 답글

    희랍어 "데이시다이몬"을 superstitious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보다 중의적인 표현인 "종교심이 많은"이 더 나은 번역인듯. 일반적으로 칭찬으로 시작하는 고대의 연설 패턴을 보더라도 그렇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인 Theophrastus와 Plutarch 모두 데이시다이모니아에 관한 재미있는 글을 남겼는데 모두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의전-강박적인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어.

    사도행전은 실제 바울의 설교들을 기록한 것은 아니고,위의 본문은 다분히 스토아학파적인 접근(을 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 房家 2009/08/12 02:57 #

    이 구절의 원어가 '데이시다이몬'이군요. 웬일인지 제가 신경쓰는 대목들은 '다이몬'과 연결되는 것이 많군요.^^
    이 부분의 맥락에 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도움이 되는 내용들입니다. 이렇게 신약학 분야의 서포트를 받으니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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