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9 19:43

구조와 역사의 잡음 독서: 메모

구조주의는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취약하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심지어 구조기능주의는 사회의 변화보다는 정지된 상태를 설명하는 보수적인 이론이라는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들은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너무 손쉬운 정리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글에서 흥미로운 것은 역사와 구조가 일으키는 긴장이다. 구조는 공시적인 것이지만 통시적인 변화의 와중에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고려 없는 구조는 맥이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변화, 우연한 사건(event)이 구조 안에 어떻게 포섭되며 어떻게 구조를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레비스트로스 책에 언뜻 등장하지만 눈길을 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들이 토템이라는 전통적인 분류체계 내에 배열되는 모습.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더 극적이다. 수용소에 마구 뒤섞여 살게 된 원주민들이 그 안에서 다시 부족적 질서를 만들어간다는 고집스러운 이야기.

“무엇이든 토템이 될 수 있다”고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의 부족에 대하여 어떤 이는 기술하고 있다. 그들이 문명과 처음 접촉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이나 ‘선원’과 같은 존재들이 이미 그들 토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토템의 목록은 자연환경을 어떤 철학적 도식에 의해 체계화하려는 의도이기보다는 역사적 축적의 결과이다.” 코라호, 방랑자호 등 유명한 배를 주제로 한 토템의 가요도 있다. 2차대전중에 어떤 씨족 영토에 공군기지가 세워졌는데 카타리나와 같은 대형 항공함을 노래한 토템 가사까지 있다.(<<야생의 사고>>, 236)

 

역사와 체계 사이의 끊임없는 비극적 투쟁의 예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약 30부족에 속하는 900명의 생존자가 정부가 만든 수용소에 아무렇게나 수용되었다.……이 상황에서 전통적인 신앙이나 습관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집단수용된 데 대한 원주민들의 첫 번째 반응은 각 부족의 구조를 조화시키기 위한 공동의 용어체계와 상호 대응규칙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이 전체 관련지역에서 부족사회의 구조는 어디서나 반족과 4분족이 기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느 4분족에 속하느냐고 물으면 “우리들의 말로 나는 아무개이니 여기선 제가 ‘웅고’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238-39)



우연한 덧붙임>

의례는 구조적인 속성을 추구한다. 구조적인 의례는 조용하다.
그렇기에 조너선 스미스가 묘사한 의례가 행해지는 이상적인 성전은 고요하다.

“완전한 정적이 지배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아리스테아스>, 95) 이것을 우리의 용어로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전 안에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흐트러짐이 없는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성전 내의 행위들은 깨끗함/부정과 관련된 일련의 위계적이고 사제적인 교환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다.(<<자리 잡기>>, 177)

그러나 조용함을 추구하는 것이 의례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해도, 역사적 요인들이 삽입됨으로 인해 항상 잡음(noise)이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를 여는 제야의 타종 행사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명박 물러가라”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KBS는 이 잡음을 제거하고 방송을 내보냈다. 이 잡음이 의례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잡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의 의례(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는 순간에 잡음이 생겼다. ‘사죄하라’고 항의한 참석자 때문에 잠시 소란해진 것. 행사의 진행자는 “이 나라를 위해 가신 국민장에서 고인의 가시는 길을 편안하게 보내주시길 간곡하게 바란다”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내야 했다.(관련기사) 조용한 것, 질서 잡힌 것은 의례의 속성이고, 예상치 못했던 역사적 요인이 잡음으로서 삽입된다.(모든 역사가 잡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화되어 의례에 삽입되는 역사가 분명 있기 때문에. 이 경우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잡음이 소거된 의례만이 의례 연구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조용한 의례에 우리 삶의 의미가 온전히 담기는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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